• 암호화폐라는 거대한 착각 :
    '루나‧UST 폭락 사태'의 시사점
    [기고] 세 가지 착각이 냉정한 현실 앞에서 무너져
        2022년 05월 19일 02: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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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을 돌리고 있는 사람에게 확률과 기댓값을 이야기하는 것은 허무한 일이다. 37만분의 1이라는 확률, 비용보다 작은 기댓값 같은 수학적 결론은 자신이 그 한 번의 잭팟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비현실적 낙관 앞에서 무력해진다. 다단계 사기에 빠진 사람을 설득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로 난망하다. 예로 2000년대 중반 제이유그룹은 100만 원짜리 물건을 자기 돈으로 사서 팔면 250만 원을 수당으로 준다며 회원을 모았다. ‘공유마케팅’으로 포장된 이 뻔한 다단계 사기에 자그마치 35만 명이 2조 원을 물렸다. 확증편향에 빠진 비이성적 열광이 이렇게 무섭다.

    암호화폐 시장이 딱 저 꼴이다. 비현실적 낙관과 확증편향의 농도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짙다. 경제학자들이 반복해서 위험성을 경고해도 참가자들은 요지부동이다. 가격이 폭락하면 후에 폭등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폭등이 있으면 당연한 결과라고 평가한다.

    1조 달러 규모의 비트코인은 왜 화폐로 사용되지 못할까?

    먼저, 간단한 질문 하나 해보자. 비트코인이나 루나(LUNA), 테라USD(UST) 같은 암호화폐의 쓸모는 무엇일까? 일반적 대답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미래의 화폐라는 것이다. 여기서 화폐란 상품 매매에 사용되는 교환수단이자, 빚을 갚을 수 있는 지불수단이다. 실제 사례를 보자.

    암호화폐 시장을 대표하는 비트코인은 2009년 만들어져서 12년 동안 시장에 유통됐다. 그 수량도 어마어마하다. 가치가 최고치를 기록했던 2021년 11월 총액은 1조 달러에 달했다. 1조 달러는 양적완화 정책이 시행되기 전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발행한 달러(현금) 총액과 같은 액수다. 유통 기간으로 보나, 수량으로 보나, 비트코인이 진짜 화폐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면, 이미 충분히 화폐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실제로 일상에서 화폐로 사용되는가? 우리가 알고 있듯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 불법적 자금 은닉이나 거래에 사용될 뿐이다. 실물 경제에서 규모와 일상성을 갖추고 의미 있게 사용된 사례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보통 이런 분석에 관한 즉각적 반론은 엘살바도르 사례다. 엘살바도르는 2021년 6월부터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사용하고 있다.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살 수 있고, 세금도 낼 수 있고, 채무도 청산할 수 있다. 그렇다면 1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 한 마디로 ‘폭망’했다. 2021년 말에 비트코인 가치는 6월 대비 두 배로 뛰었다. 200%의 디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2022년 5월에는 다시 비트코인 가치가 절반으로 폭락했다. 200% 인플레이션이 발발한 것이다. 비트코인으로 표시된 가격이나 채무는 어떻게 됐을까? 독자들이 상상해 보기 바란다. 더 황당한 건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경제사에서는 이런 상황을 ‘화폐붕괴’라고 표현한다. 심지어 지난 1년간 정부 재정 손해도 컸다. 정부가 수출로 번 달러를 가지고 비트코인을 매입해 유통해야 하는데,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면 앉은 자리에서 재정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린다. 전문가들은 비트코인 가격이 다시 출렁이면 엘살바도르 정부가 파산할 것이라 예측한다.

    암호화폐는 금융상품인가?

    암호화폐의 쓸모에 관한 또 다른 대답은 새로운 금융상품이란 것이다. 비트코인이나 UST의 가치를 시가총액으로 평가하는 것은 이런 인식을 전제한다. 만약 비트코인이 화폐라면 시가총액이란 표현은 이상할 것이다. 한국 원화를 시가총액으로 표현하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화폐는 다른 상품의 가치를 측정하는 척도 기능이 핵심이다. 자신의 가치를 자신으로 측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를 시가총액으로 평가한다는 현실 자체가 암호화폐가 ‘화폐’가 아니라는 직접적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암호화폐는 어떤 종류의 금융상품인가? 과연 그 평가액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인가?

    기본적으로 금융상품은 실물 자산에 대한 청구권을 사고 팔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채권은 채무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정해진 날짜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고, 주식은 기업의 순이익을 배당으로 청구할 권리다. 이런 청구권의 가격은 금융시장의 참여자들이 청구액의 현재 가치를 각자의 방식으로 추정하면서 형성된다. 채무자의 파산 가능성, 기업의 미래 실적, 미래 이자율 등을 어떻게 추정하는지에 따라 가격이 변동한다.

    그러면 암호화폐는 누구에게 무엇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일까? 황당하게도 암호화폐에는 아무런 청구권이 없다. 블록체인은 권위 있는 중앙을 대신해 참여자 다수가 거래의 신뢰성을 증명하는 디지털 영수증에 불과하다. 이 영수증을 ‘토큰’으로 만들어 희소하게 만든 게 바로 암호화폐다. 청구권이 있을 턱이 없다. 따라서 이걸 금융상품처럼 취급하는 말 그대로 ‘사기’다. 암호화폐가 금융상품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매각 차익이 아니면 암호화폐의 소유 자체는 아무런 소득도,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유 자금을 유통하고, 필요한 자금을 배분하는 기능도 당연히 없다. ‘금융’도 아니고, 심지어 ‘상품’도 되기 어렵다.

    세 가지 착각

    그렇다면, 화폐도 아니고, 금융상품도 아닌 암호화폐가 어떻게 이렇게 큰 규모로 성장한 것일까? 세계적으로 2천조 원이 넘고, 국내로 봐도 50조 원이 넘는 시장이 대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인가?

    세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암호화폐 제작자들이 통화시장과 금융시장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교묘하게 사용해 세상을 속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루나‧UST 사태가 대표적이었다.

    UST는 ‘스테이블 코인’으로 불린다. 달러와 교환비율이 1대1로 유지된다는 의미다. 이는 고정환율제를 모방한 것이다. 고정환율제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외환과 자국 통화의 공급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유지된다. 하지만 암호화폐 시장에는 그런 정부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UST 제작자(테라폼랩스)들은 20세기 중반의 브레턴우즈 체제를 흉내 내 태환화폐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브레턴우즈 체제에서는 금이 본위화폐 역할을 하고, 달러가 금과 일정 비율(35달러 당 금 1온스)로 교환되는 태환화폐 역할을 했다. 테라폼랩스는 UST를 태환화폐 자리에, 루나라는 또 다른 암호화폐를 본위화폐 자리에 가져다 놨다. 1UST는 1달러 상당의 루나로 태환된다. 만약 태환화폐인 UST의 실제 거래가격이 1달러보다 내려가면 본위화폐인 루나(1달러 상당의 양)와 교환해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이 경우 태환화폐 UST가 감소하기 때문에 시장가격이 다시 상승한다.

    하지만 루나‧UST 발행사는 금이라는 실체를 보유하지 않았고, 거대한 자산과 공권력을 보유한 미국 정부도 아니었다. 브레턴우즈를 실체가 없는 디지털 토큰으로 흉내만 냈을 불과했다. 당연히 약한 충격으로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근본적 결함은 본위화폐인 루나가 1달러 가치를 담보한다는 것이 순전히 ‘선언’이란 점이었다. 금은 축적된 수량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암호화폐 루나는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암호화폐일 뿐이다. 이름만 다르지 태환화폐 UST와 다를 바가 없다. 시장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0달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0에는 무한을 곱해도 0이다. 태환화폐 UST에 대한 투매가 발생하고, 많은 사람이 본위화폐 루나로 교환을 시작하면, 루나 수량이 계속 증가해 루나의 시장가격이 0달러로 수렴한다. 그것으로 게임은 끝이다.

    참고로 브레턴우즈 체제도 비슷한 방식으로 붕괴하긴 했다. 미국의 무역적자가 계속되며 달러가 해외로 많이 풀리자, 무역 흑자국들이 달러 가치에 회의를 느껴 금 태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이 본위화폐 금을 세계 경제의 성장(즉 경제 활동에 필요한 화폐)만큼 금광에서 캐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금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태환은 정지됐고 브레턴우즈 체제는 막을 내렸다. 다만, 그렇다고 달러가 붕괴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금본위제가 관리통화제로 이행했을 뿐이었다. 세계 최고의 경제적 군사적 강국이었던 미국은 항공모함부터 자동차공장까지 현실의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 달러의 가치 토대는 미국이 보유한 국부(國富)로 지탱될 수 있었다.

    모든 암호화폐는 실제 금융시장의 제도나 용어를 흉내 낸다. 비트코인부터 루나‧UST까지 다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흉내 탓에 사람들은 암호화폐가 현실의 화폐 또는 금융상품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둘째, 암호화폐 시장이 팽창한 것은 금융세계화의 부정적 유산이 큰 영향을 미쳤다. 21세기에 빠르게 팽창한 금융기관들은 실물 경제 투자로는 만족할 만한 이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에는 주식 시장을, 2000년대 초반에는 부동산 시장을 키워 다수 국민이 대중적으로 참여하는 투기판을 만들어 냈다. 기업 이윤 총액보다 두 배 이상 큰 가계 소득이 투전판의 원천이 되었고,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의 소득과 잠정적 소득(파생상품)까지 담보로 삼아 판을 키웠다. 2008년 금융위기는 이들의 이런 방종이 만든 참극이었다.

    이런 금융기관들이 최근 손대고 있는 것이 바로 암호화폐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기관들의 암호화폐 거래는 2020년 1천억 달러 규모에서 2021년 1조 달러 규모로 폭증했다. 금융기관이 나서니 개미 투자자들도 덩달아 엄청난 규모로 암호화폐 시장에 돈을 집어넣고 있다. 그런데 국제적 금융기관들이 손을 댄다고 해서 그것이 객관적 근거가 있는 금융상품이란 의미는 아니다. 황당무계한 파생금융상품을 설계해 세계 경제를 대혼란으로 이끌었던 것이 바로 월스트리트의 거대 투자은행들이었다. 금융기관들의 최근 암호화폐 투자는 대중적 투전판을 만드는 바람잡이 역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셋째, 경제학의 결함이 암호화폐 시장을 키우는 거대한 착각의 배경이 되고 있다. 경제학은 화폐를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교환수단”으로 간단하게 정의한다. 그런데 이런 정의에는 결함이 있다. 이 신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과서들은 여러 사람의 주관적 신뢰가 합쳐지면 어떤 것이든 화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암호화폐에 관한 착각도 이런 경제학의 화폐 정의를 따른 결과다. 많이 믿으면, 많이 투자하면 비트코인이든 UST든 진짜 화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화폐 이론이 정확하게 지적하듯, 집단적 ‘신뢰’는 주관적 희망의 합계가 아니다. 객관적인 물질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그 토대가 보편적 등가물이라고 이야기했다. 가치 척도 역할을 할 수 있는 상품, 즉 스스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존재만이 화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금화나 은화는 금속의 채굴과 가공이란 토대가 있었고, 현대의 관리통화들은 중앙은행이 자산으로 보유한 정부의 지불능력(자산과 세금)이 그 토대 역할을 한다. 이렇게 보면, 아무런 가치 척도 기능이 없는 암호화폐는 원리적으로 화폐가 될 수 없다. 암호화폐에 대한 신뢰는 비이성적 열광이 만들어 낸 허상이다. 경제학의 결함이 만든 거대한 착각이다. (글의 분량상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줄인다. 궁금한 독자는 졸저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의 3장과 4장을 참조하기 바란다.)

    암호화폐의 미래

    루나‧UST 붕괴 사태는 시사적이다. 앞서 본 세 가지 착각이 냉정한 현실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을 잘 드러냈기 때문이다. 우선 암호화폐가 화폐와 금융을 흉내 냈을 뿐이란 점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알고리즘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이라 이름 붙인 루나‧UST는 사실 금 없이 금본위제를 따라 한 것에 불과했다.

    다음으로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으로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암호화폐의 불안정성이 극도로 증가하고 있다. 루나‧UST 사태는 일부 투자자들의 투매에서 시작됐다. 금리 상승으로 자금이 이동하면, 언제든지 루나 사태가 다른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암호화폐 열풍은 장기 저금리 상황에서 부동자금이 커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저금리 시대가 저물고 있다. 금융시장이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제2의 제3의 루나‧UST 사태가 터질 것이다.

    이제 암호화폐 시장에서 다들 탈출할 때다. 잠깐 다시 가격이 폭등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밤새도록 당긴 슬롯머신의 수익률은 결국에는 마이너스가 된다. 다단계의 마지막 사람은 먼저 탈출한 사람들의 이득을 자신의 손실로 책임져야 한다. 만고불변의 진리다. 루나‧테라USD(UST) 가격 폭락 역시 이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사건이었다. 참고로, 솔직히 이런 말 한다고 설득되지 않는다는 건 나도 잘 안다. 이 글이 “카지노에서 확률론 강의하는 소리”란 걸 나도 모르는 건 아니다. 암호화폐 시세에 오늘도 좌불안석인 투자자들의 무운을 빈다.

    필자소개
    연구활동가, <대통령의 숙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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