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의 시대,
    무한경쟁이 아닌 협력·공생의 관점을!
    [정의 경제] 진화생물학자 린 마굴리스의 공생이론
        2022년 05월 16일 10: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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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빨과 발톱을 붉게 물들인 생존투쟁’의 이미지

    보수적인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민간 주도’라는 이름 아래 자유시장이나 사기업의 자유로운 생존경쟁 등이 부쩍 강조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는 강한 기업이나 개인들만이 승자독식의 법칙에 따라 부와 지위를 독차지하는 것을 순리처럼 여긴 지는 꽤 오래되었다. 이런 주장은 1859년 발표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이래 부동의 진리로 인정된 진화론이 힘을 실어주기 때문에 특히 부인하기 어렵다고 간주된다.

    한마디로 생명세계는 이빨과 발톱을 붉게 물들인 생존투쟁이라는 이미지가 연상되는 ‘잔인한 게임‘을 통해서 진화를 거듭했다는 것이고, 인간세계도 사실 별로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이기적인 인간들이 한정된 공간과 자원을 두고 시장에서 각자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해서 살아남는 기업은 더 번성하고 성공한 개인들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결과로서 불평등이 심화된다 하더라도 이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자연의 생명세계는 유혈 낭자한 생존투쟁으로 점철되어 있고 찰스 다윈이 제창한 진화론은 이를 뒷받침하는 게 사실일까? 사실 다윈은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진화를 설명했지만, 이후 허버트 스펜서 같은 사회진화론자들에 의해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으로 탈바꿈돼 격한 생존투쟁의 이미지가 강화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진화론은 유전학과 결합되면서, 모든 진화적인 새로움은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의 점진적 축적과 유전자에 작용하는 생존경쟁을 통해 나온다고 주장하는 신다윈주의 주류(현대적 종합 또는 집단유전학이라고도 불린다)가 형성되었단다. 시민들이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진화론 내러티브도 대체로 이 범주 안에 있다.

    경쟁이 아니라 공생으로 진화를 설명한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그런데 돌연변이로 분화된 개체들 사이에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치열한 경쟁이 진화의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신다윈주의와 대조적으로, “생명은 잔인한 게임일 뿐 아니라 협력자들이 이기는 공생적이고 협동적인 모험”으로 진화를 설명하는 이들이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중심에 연속 내생 공생이론(Serial Endosymbiosis Theory)’의 주창자인 진화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가 있다.

    14살 때 시카고대학에 입학한 천재였고 19살에 <코스모스> 저자로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의 결혼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 린 마굴리스는, 1967년 기존 신다윈주의 진화학설과 완전히 다른 공생발생론이 담긴 선구적인 논문을 학술지에 기고했지만 무려 15번이나 거절당한 뒤에 겨우 실렸단다. 그러면 우여곡절 끝에 뒤늦게 학계에서 인정받게 된 마굴리스의 공생이론은 도대체 뭘까?

    잠시 중고등학교 생물 수업시간으로 돌아가보자. 보통 생물의 세포 안에는 그 세포가 호흡한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성 공급하는 미토콘드리아라는 핵심적인 세포기관이 있다고 배웠다. 특히 미토콘드리아는 핵에만 있다고 알려진 DNA를 자체적으로 별도로 가지고 있을 만큼 특별하단다. 또 식물세포 안에는 광합성을 통해 태양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역할을 수행하는 엽록체라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소기관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고등생물로 진화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런 세포기관들은 도대체 어떤 진화과정으로 발생하게 된 것일까? 과연 이런 기관들이 돌연변이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사실 돌연변이가 아니었다. 린 마굴리스가 발견하고 이후 유전적 증거들로 확증된 이야기는 이렇다. 마굴리스는 진화를 ’개체‘ 수준이 아니라 ’세포‘ 수준에서 관찰하는 독창성을 보였는데 지구상에 처음 생겨난 생물은 세균으로 알려진 무핵생물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적자생존‘식으로 서로 잡아먹기만 하지는 않고, ’서로 융합‘되면서 좀 더 복잡하고 고등한 진핵생물로 진화해갔다. 그 변화무쌍한 연속적 과정의 어느 시점에서, 산소를 호흡하는 알파-프로테오 박테리아라는 세균이 특정 세포와 융합되었데 이것이 세포 안에서 미토콘드리아가 되었다는 것이다. 유사한 방식으로 광합성을 하는 녹색의 남세균이 융합되어 세포 안에서 엽록체가 되었단다. 그 결과 지금 우리가 보는 것처럼 산소호흡을 하는 고등동물이 진화했고 또 광합성을 하는 고등식물이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린 마굴리스는 “진핵생물의 기원에 관한 공생이론을 발전시켰고, 나중에는 공생을 진화의 핵심원리로 내세웠다. 1970년대에 그녀는 진핵세포가 여러 단계의 공생을 거쳐 출현했다는 연속공생이론을 발표했다. 연속공생이론은 미토콘드리아, 엽록체, 중심체/케니토솜이라는 세 가지 세포소기관에 초점을 맞췄다. 독립생활을 하는 세균들이 세포로 들어왔다가 공생을 이뤄 떠나지 않게 되면서 세포 소기관이 되었다는 것이다”(도리언 세이건 엮음 <린 마굴리스>).

    신다윈주의와 신자유주의

    주로 신다윈주의자들이 강조하는 돌연변이는 일반적으로 자연선택이 될 수 있는 새로움을 만들기보다는 손상을 일으키기 쉽다면서, 마굴리스는 진화가 돌연변이 사건에 의해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신다윈주의를 비판했다. 그녀는 말한다. “현실에서 실제로 규명된 ‘종의 기원’ 사례들은 모두 이기적 유전자를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명체들의 ‘이기적이지 않은’ 융합자들이다.” “생명이 지구 전체를 뒤덮은 것은 싸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관계망을 형성함으로서였다.”

    고생물학자 나일즈 엘드리지(Niles Eldredge)는 마굴리스의 학설을 지지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마굴리스는 더 나아가 거의 모든 생물학적 혁신은 무작위 돌연변이의 작용을 하는 자연선택을 통해서는 생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보다는 관계망 형성을 통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마굴리스의 이 생각은 진화의 가장 아름다운 개념 중 하나다”

    한편 진화학자 조시 미텔도르프(Josh Mitteldorf)는, 기존의 신다윈주의가 ’자연선택이 엄격하게 한 번에 한 유전자에 작용하는 경우‘라고 한다면, 마굴리스의 공생이론은 ’진화가 서로 유연관계가 없는 개체들의 공동체와 집단을 선택‘하는 경우라고 하면서 이렇게 논평한다. “개체선택은 사회다윈주의와 관련이 있으며, 개인의 경제적 성공을 토대로 한 사회계층을 정당화한다. 집단선택은 배려하고 온정주의를 내세우는 사회철학과 관련이 있으며, 사회안전망과 복지국가에 찬성한다.“

    조시 미텔도르프는 한발 더 나아가서 신다윈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시기적으로 겹치는 우연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오늘날까지도 신다윈주의자들은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들인 반면, 집단선택을 믿는 진화생물학자들은 정치적 좌파인 경향이 있다. 이기적 유전자가 다윈선택이 작용하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지위를 획득하던 1970~1985년은 공교롭게도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무제한 경쟁이 유일하게 진정한 경제체제로서 찬사를 받던 시기와 일치한다.”

    기후위기는 협동과 공생으로 움직이는 인간사회를 요구한다.

    인간사회가 생존투쟁과 무한경쟁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경제학 분야에서는 사무엘 보울스(Samuel Bowles) 등이 이미 깊게 연구해왔다. 한편 생물학자 마틴 노박(Martin A. Nowak)도 초협력자인 인간이 어떤 규칙으로 ’협동진화(the Evolution of Cooperation)‘하는지 자세히 연구하기도 했다(보울스의 <협력하는 종>, 노박의 <초협력자>가 번역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이제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린 마굴리스의 내생적 공생진화론까지 보탠다면, 인간사회나 시장경제가 이기적 인간들의 생존경쟁의 무대로만 묘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너무나 자명해 보인다.

    경쟁만이 아니라 협동과 공생이 또 다른 진화의 원리라는 자명한 사실은 지금 기후위기 시대에 특별한 중요성이 있다. 최근 생태경제학자 팀 잭슨(Tim Jackson)은 <Post growth>이라는 저서에서 무한경쟁의 원리만을 경제의 작동 메커니즘으로 받아들이면 끊임없는 자원소모 환경파괴, 그리고 기후위기를 피하기 어렵다면서 경제와 사회를 움직이는 방식의 방향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팀 잭슨은 마굴리스의 내생적 공생이론을 예시하면서, 한정된 자원을 두고 유혈 쟁탈전을 벌이는 인간사회가 아니라 공생의 비전을 갖자고 제안하고 있다. 공생적 진화관점은 확실히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사고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120년전 <만물은 서로 돕는다(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를 썼던 표트르 크로포트킨은, 자연선택이라는 진화법칙이 이기적 경쟁과 승자독식만을 추구하는 영악한 이들을 지속적으로 제거해줄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기후위기 시대에 다시 생각해볼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협력을 상징하는 종으로 알려진 벌들 사이에서도 반사회적 본능이 여전히 존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본능은 자연선택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거된다. 왜냐하면 긴 안목으로 볼 때 약탈성향을 지닌 개체들보다는 연대를 실천하는 종을 발전시키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기 때문이다. 제일 교활하고 가장 영악한 개체가 제거되어야 사회적 삶과 상호지원의 유익함을 알고 있는 개체들에게 이익이 된다”

    * <정의로운 경제> 칼럼 연재 링크

    필자소개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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