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진’, 지지 대선후보 결정할 수 있을까?
        2007년 01월 16일 07: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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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내 유력 정파 가운데 하나인 ‘전진’의 대선기획단 활동가 말대로라면, 지금 ‘전진’은 대선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예비후보 쪽에서 워낙 전화를 많이 해서, 회원들이 혼란스러워 해요.” 정파 조직으로 모이기는 했으되, 아직은 특정 정치인을 명쾌하게 지지할 만큼의 결속력을 가지지 못한 ‘전진’이 언젠가 이런 상황에 부딪히리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비밀이었다.

    지난 주, ‘전진’ 대선기획단이 <레디앙>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고, 대선에 관련한 논의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전진’의 내부 논의를 살피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대선 준비를 더 진전시키는 계기가 될 듯 싶었다. ‘전진’에서는 최백순(기관지 편집위원), 구형구(상임집행위원) 등 대여섯 명이 대선기획단 선거강령팀으로 일하고 있었다.

    "선거 강령? 그런 거 꼭 만들어야 하나?"

    “구체적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뭐죠?”

    “대선에 관련해서 ‘전진’에서 하고 있는 일을 <레디앙>을 통해 알리고 싶기도 하고, 당 예비후보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어서”

    “두 분이 ‘전진’에서 하시는 일은?”

    “대선기획단 선거강령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뭔 강령을 또 ……. 운동권은 뻑하면 강령 만드는데, 그런 것 좀 안하면 안 되나?”

    “선거공약이나 정책은 당 정책위원회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보고요. ‘전진’ 같은 정파에서는 원칙이나 철학을 제시하는 게 맞죠. 굳이 얘기하자면, ‘민주노동당의 중기(中期) 철학’ 정도가 맞겠네요.”

    ‘전진’은 작년 12월에 있었던 회원 임시총회에서 대선방침을 의논했지만, 명시적인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대신, “대선방침에 관한 토론제안용 문서를 작성 배포한다”는 결정을 하였으니, 대선기획단 선거강령팀은 그 문서의 초안자인 셈이다.

    “작년 가을 정치대회에서 대선에 대한 난상토론을 벌였어요. ‘전진’ 같은 좌파 정치조직은 내용을 가지고 선거에 개입하는 게 옳다는 결론을 내렸죠. 그 내용에 따라 후보를 지지하거나 않거나 할 수 있는 거구요. 그래서 ‘선거강령’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선거강령’으로 당내 논쟁의 헤게모니도 만들어야죠.

       
      ▲ 2006년 10월 20일부터 1박2일로 열린 전진 정치대회
     

    예비후보들 전화 때문에 조직이 혼란스러워졌다

    원래, 이런 선거강령은 3~4월쯤에 만들려 했는데, 예비후보들이 ‘전진’ 회원들에게 지지나 캠프 합류를 요청하면서 조직 안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어요. 저희들끼리는 “노회찬, 심상정 전화 한 통 못 받으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한다니까요. 그래서 선거강령 작성을 서두르고 있고, ‘조직 방침이 나오기 전까지 개별 행동을 금지한다’는 결의도 했어요.”

    그런 결의가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진’은 2월 초에 개최 예정인 총회에서 대선방침을 확정하려 한다. 그런데 그 ‘방침’은 ‘후보 방침’이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지지 후보를 결정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부터 되짚을 예정이다. 이제 선거강령을 만드는 상황이니,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만도 하다. 먼저 선거강령팀의 시대 인식부터 들어봤다.

    “1987년 체제는 끝났습니다. 그 때 시작된 민주주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고, 그 때 시작된 노동조합의 경제주의도 끝나야 하죠.

    마찬가지로 민주노동당의 97년 체제도 종식되어야 해요. 민주노동당의 2007년 체제는 내용과 색깔이어야 하고, 그것에 적합한 대선 후보가 나서야 합니다. 이런 인식이 자연인 권영길에 반대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권영길 체제’는 이제 그 소명을 다했습니다.”

    ‘전진’이 대선 후보 검증에 적용하려 한다는 선거강령은 곧 공개될 예정이다. 그 대강의 내용은 어떠할까?

    북한 문제를 강조하는 이유 

    “정치 분야에서는, 남미 모델로 오해받을 수도 있지만, 헌법을 새로 쓰는 제헌 정도의 요구를 당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경제에서는 금융 문제를 핵심으로 봅니다. 금융자본의 위기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금융자본의 수익 목적이 부동산 폭등 같은 사회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어요. 예를 들어 금융 국유화나 적어도 특수은행 목적은행의 국유화와 같이 급진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한반도 문제는 모든 후보들에게 직접 물어볼 겁니다. 당 예비후보들은, 북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당내 누구의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 태도가 불분명해져서는 안 되죠. 한반도 비핵화와 탈동맹 중립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진’ 전체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선거강령팀은 북한 문제를 유난히 강조했다. 왜 그럴까?

    “원래부터 ‘전진’의 일관된 입장이었고요. ‘친북정당’이라는 대중 인식을 불식시켜야 하는데, 대선을 그 공간으로 이용하면 효과가 크겠죠. 북한에 대해 불분명한 태도를 가지고 대선 후보가 돼서는 안 됩니다. 대북관에 대한 논쟁은 피하지 않겠습니다.”

    이외에도 ‘전진’ 선거강령팀은 고용, 토지, 교육 문제 등에 주목하여 ‘급진적 대안’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민주노동당이 구체적인 정책을 설명해봐야, 다른 당들과 차별성도 부족하고, 대중이 그걸 이해하지도 못해요. 이번 대선을 통해 급진적 대안을 선언해야 합니다. 노회찬 의원, 심상정 의원의 구체적 부동산 정책이 좋기야 하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려야 한다고 봅니다.”

    토지, 교육 문제 등 ‘급진적 대안’ 준비 중

    “그런 게 ‘전진’이 주장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인가요? 사회주의면 사회주의지, 무슨 수식어를 다는 것도 이상하고, 사회주의를 구호처럼 쓰는 것도 이상해요. 제가 보기에는 ‘전진’의 ‘민주적 사회주의’는 주대환의 변화를 몇 년 늦게 말만 바꾸어 쫓아가는 꽁무니주의 같아요.”

    “당 강령에서는 국가사회주의를 부정하고 있잖아요. 그렇다고 ‘전진’이 시장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도 아니죠. 당 일부의 ‘진보적 민주주의’ 주장에도 반대하죠. 그래서 민주적인 사회주의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김종철(2006년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 동지 등이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전진’ 전체가 그런 말을 쓰는 건 아니예요.”

    그런데 대통령선거는 정책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다. 후보의 인격적 특성도 작용하게 마련이고, 정치능력이 아주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득표력을 염두에 둬야죠. 당의 발전 계획 같은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요. 그런 기준은 대선기획단에서 마련할 것 같습니다.”

    정파가 당의 공직 후보 선출에 개입하는 게 옳을까? 당원들의 선거권에 대한 사전 제약은 아닌가? 당직이든 공직이든 당의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정치적 견해를 관철하기 위해 구성된 정파로서의 존립 이유가 없어지기는 한다.

    문제는 인사를 결정할만한 수준의 정파가 민주노동당에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만 보자면 정파의 인사 개입은 ‘일 잘 하는 사람’보다는 ‘욕심 많은 놈’을 내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몇 달 전, 김정진(변호사)이 레디앙에 기고했던 정파 관련 글은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중앙에서 내려온 지침에 따라 투표하는 ‘전진’ 회원들의 행태를 꼬집었던 것이다.

    공식선언 없이 물밑작업만, 올바른 지도자 태도 아니다

    “당시에는 그런 것이 정당했을 수 있죠.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방식대로 하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 ‘전진’이 하려는 것은 우리 편 후보를 만드려는 게 아니예요. 후보의 철학, 사상, 비전, 인간성, 능력을 당원들에게 보여주려는 거예요. 후보들도 정파 구도에 따라 조직표를 얻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이 비슷비슷하다고 말하는데, 그건 당의 잘못된 추대 문화 때문에 그들의 구체적 차이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후보들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거예요. 지금은, 대선 예비후보로 출마하겠다는 공식선언도 없이, 물밑 작업만 하고 있잖아요. 이런 건 지도자의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공식적으로 나선 것도 아니면서 정파에 개입하는 후보들을 낙선시키고 싶어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전진’이 2월에 결정할 것은 후보가 아니라, ‘방침’이다. 이 ‘방침’은 특정 후보 지지를 결정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연말까지 확인한 바로는 아무런 결정도 하지 말자는 의견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이 고비를 넘으면, 다음에는 선거강령과 후보를 비교하여 단수든 복수든 지지 후보를 지명하는 작업이 남겠는데, 기껏 만들어 놓은 선거강령 따로, 후보 개인에 대한 선호 따로 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때, ‘전진’이 유력한 고참 운동가들의 활동력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집합체인지를 판별하는 성인식이 치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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