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는 왜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를 압도하지 못하는가?
    [국방칼럼] 항전의지, 강력한 지원, 러시아 전략전술
        2022년 05월 10일 07: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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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을 ‘압도’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압도’는 우리 측이 군사적 우위를 앞세워 상대의 저항의지를 꺾는 것이다. 적은 휘하에 있는 병력과 장비와 전술로 우리 측이 가진 능력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동요하게 된다. 우리 측은 딜레마에 처한 적이 대결을 포기하고, 다른 선택을 수용할 수 있도록 이때 결정적인 쐐기를 박아야 한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정치적 목적을 최대한으로 관철하기 위해서는 적을 ‘압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군사주의의 핵심개념인 ‘힘을 바탕으로 한 평화’이다.

    작년 미국의 싱크탱크 CSIS는 우크라이나 인근 러시아군 증강 배치를 분석한 11월 보고서를 통해 유사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을 압도하고 몇 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점령할(overrun) 것으로 전망했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도 올해 2월 초 국가안보 고위관계자들이 대부분 참석한 의회 비공개 회의 석상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키이우가 72시간 이내에 함락될 수 있다는 보고를 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보다 압도적 우위의 전력에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전쟁이 발발하자, 2월 24일과 25일에 걸쳐 블룸버그는 서방 정보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몇 시간 안에 수도 키이우의 함락 가능성을 계속해서 보도했다.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 호에 따르면 전쟁 초기 미국군과 영국군은 폴란드 동부에 망명정부를 세울 것을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에 권고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한 미 CSIS의 1월 보고서가 지적한 데로 “군사적 성공의 진정한 계산은 무력충돌이 시작된 후에만 가능”한 것이었다. 북부, 북동부, 동부, 남부 전역에 걸쳐서 다면 침공을 단행한 러시아는 남부전선에서의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북부전선에서 전략적 철수를 단행할 만큼 자국의 전략적 우위를 전장에서 충분히 구현하지 못해 왔다.

    이미지1 : 침공 일주일 전인 2월 17일 영국 국방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을 공개 경고했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를 압도할 수 없었는가? 그 이유는 ① 우크라이나가 보여준 항전의지, ② 미국의 강력한 지원, ③ 러시아 전략∙전술의 모순과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 세 가지 요인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첫째, 러시아는 2014년 돈바스 분쟁 이후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심화된 반러 정서와 독립국가 존속의 열망이 항전의지로 표출되어 전쟁의 장애물이 되리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3월 10일 미 상원 청문회에서 미 국방정보국(DIA) 스콧 베리어 중장과 에이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장(DNI)은 미국과 러시아는 각각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쉽게 무너질 것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방어선을 쉽게 돌파할 것으로 서로 오판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미∙러 모두 우크라이나의 전력, 특히 저항의지를 낮게 평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전황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랜드연구소는 2018년 미국군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싸우겠다는 의지’는 ‘싸우고, 계속 싸우고, 이기려는 성향과 결심’으로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 요소라고 단언했다. 2차세계대전에 영국군 장교로 참전했던 셸포드 비드웰도 “무력의 사용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본성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가장 기본적이고 복잡한 무기 체계가 바로 사람인 것이다.

    미 국방부는 1973년 총괄평가국을 신설하고 ‘Net Assessment(총괄평가)’라는 새로운 군사력 평가방식을 도입하였다. ‘적군 분석’은 기존의 병력 규모와 무기 수량 위주의 평가 방식이 가진 한계를 탈피하여 적의 군사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훈련, 장비, 군수의 품질과 준비 태세 등 전투력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들을 정량평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사기, 용기, 의지, 리더십과 같은 추상적인 요소들마저 객관성에 입각해 분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무형요소들은 실제 예측단계에서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에 대한 저항의지가 강하게 표출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원인은 2014년 발생한 ‘돈바스 분쟁’에 있다. 예컨대 2014년 도네츠크주에서 일어난 ‘일로바이스크 전투’는 돈바스 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단일전투에서 겪은 가장 큰 패배이다. 일로바이스크를 포위하고 분리주의자들을 진압하던 우크라이나군은 8월 24일부터 도리어 역포위를 당하기 시작했다. 양측 간에 진압군의 안전보장을 위해 ‘인도주의 통로’를 개설하자는 협상이 진행되었다. 무장해제에 대한 이견이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각하던 우크라이나군은 8월 29일 하루에만 전사 366명, 실종 158명, 포로 128명, 부상 429명이라는 참담한 손실을 입었다. 침략자들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평화협정을 패전의 결과로 받아들인 우크라이나 사회의 굴욕감은 2019년 정권교체의 싹이 되었다.

    이미지2 RKG-1600 드론장착용 폭탄- 아에로 로비즈카는 드론동호회였으나 2014년 돈바스 분쟁을 계기로 민병대로 참전했고, 성과를 인정받아 우크라이나 육군 항공정찰부대로 정식 편제되었다. 이들은 이슬람 반군의 드론 사용 폭탄공격을 발전시켜 구형의 RKG-3 대전차수류탄을 중국제 드론에 장착하여 투하하는 방식을 개발하여 위력을 배가시켰다. 이를 가지고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과 싸웠다.

    ‘돈바스 분쟁’을 전후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삶의 질’을 비교∙분석한 연구결과는 이 분쟁 이후 우크라이나인들의 삶이 전반적으로 매우 피폐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7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전체 국가 중에서 행복 순위가 돈바스 분쟁 이전(2010~2012년) 87위에서 이후(2014~2016년) 132위로 대폭 내려갔고, 러시아는 같은 기간 68위에서 49위로 상승했다. 올렉산드르 셰포틸로와 마리나 오시척은 건강과 재정적 웰빙에 관련된 통계를 가지고 분쟁 전후 기간(2012~2016년) 두 나라의 삶의 질을 비교해 보았다. 이들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두 나라 모두 분쟁으로 인해 삶의 질이 떨어졌지만 그 강도와 지속기간에 큰 차이를 보였다.

    러시아인에게는 그 영향이 분쟁 첫 해에 나타났다가 전면전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이후 대부분 사라졌지만, 우크라이나인에게는 그 영향이 2014년부터 3년 내내 크게 나타났다. 예컨대 2013년 대비 2016년 우크라이나는 실질소득이 30% 이상 감소한 반면 러시아는 10%만 감소했다. 생계유지 능력이나 재정 만족도에 대해 긍정적인 인구 비율의 경우 우크라이나는 2013년 전체 인구의 62%에서 2014년 32%로 대폭 떨어지면서 최악의 상황을 겪었던 반면, 러시아는 같은 기간 90%에서 83%로 줄어드는 데 그친 것으로 조사되었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우크라이나 인구 비율은 2012년 44%에서 2016년 50%로 증가했지만 러시아는 약간의 변화만 보였다.

    전쟁을 통해 고양된 애국심과 삶의 고통은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어졌다.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가 2021년 12월에 18세 이상의 우크라이나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에 대한 저항심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무력개입이 있을 경우, 어떤 행동을 취하겠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0.2%가 저항(비폭력 포함)하겠다고 답했다. 중요한 것은 저항의 수준인데 2015년 9월 실시된 여론조사(저항하겠다 52.4%)와 비교해 보면, 무장저항을 선택한 응답자가 23.8%에서 33.3%로 대폭 증가했다. 특히 남성 응답자의 경우 67.8%가 저항을 선택했고, 58%가 총을 들고 싸우겠다고 답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개전 후 러시아군의 대통령관저 급습 시도가 두 차례나 있었고, 관저 주변이 저격수가 은신하기 좋은 환경인 데다가, 별다른 방어시설이 없는 특성상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것을 촉구하는 경호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관저를 지키는 리더십을 보임으로써 저항의 구심점이 되었다. 3월 30일 퓨 리서치는 응답자의 72%가 젤렌스키를 신뢰한다는 미국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는 주요국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다.

    둘째, 유럽의 지정학적 상황(Status Quo)를 변경하려는 러시아의 의지를 미국이 용납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군의 나토화와 서구식 군사교리의 수용은 끊임없이 진행 중이었다. 우크라이나군과 나토군은 여러 차례 여단급 연습훈련을 진행한 바 있으며, 미국은 2014년 돈바스 분쟁 이후 2021회계연도까지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이니셔티브’와 ‘해외군사원조차관’을 통해 25억 달러 규모의 살상 및 비살상무기를 지원함으로써 우크라이나군의 재건을 위해 노력해왔다.

    미국은 독일 주둔 미 제7군 훈련사령부(ATC)를 통해 2015년부터 폴란드 국경에서 차량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우크라이나 서부 야보리우 군사기지(지난 3월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음) 근처에 ‘합동다국적훈련그룹-우크라이나’(JMTG-U)라고 불리우는 훈련센터를 운영하였으며(러시아 침공이 발생한 이후 문을 닫았다), 미군을 비롯한 나토군은 이곳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조련해 왔다.

    이곳에는 전쟁 전까지 ‘게이터 태스크포스’로 알려진 보병여단 전투팀 소속 병력 150여 명 이상이 순환배치로 주둔해 왔다.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이 2014년 이후 개선되긴 했으나, 전문가들이 그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것은 첫째 군 통수권자로서 지지율이 30%를 넘지 못하는 젤린스키 행정부의 취약한 지도력에 대해 의문부호를 가지고 있었고, 둘째 군의 작전통제역량이 여전히 미흡했으며, 30년 이상 신형전투기를 도입하지 못할 만큼 공군력이 낙후된 데다가, 전군 무기체계의 노후화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21년 8월 우크라이나와 ‘전략적 방위 기본틀’에 대한 협약을 맺은 데 이어, 11월에는 기존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특히 러시아 침략에 대한 대응을 강조하는 헌장을 맺고 추가협력을 약속했으나, 헬기와 저공 비행하는 고정익 항공기를 타격하기 위해 대공무기를 지원해 달라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은 거절했으며, 전쟁이 터져도 우크라이나에 미국군은 투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일찌감치 세워놓았다. 공화당 의원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와의 확전을 우려해 우크라이나의 전투의지를 일부러 축소한 것 아니냐고 정치 공세를 하기도 했다.

    CSIS 1월 보고서에는 “스스로를 위해 기꺼이 싸우는 우크라이나는 지원할 가치가 있는 우크라이나이다”라는 표현이 담겨 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의지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미국의 지지가 없는 우크라이나는 존속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4월 21일 현재 미 국방부가 지원을 하거나 약속한 무기는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5,500개 이상), 각종 대전차무기(14,000개 이상), Mi-17 헬리콥더(17대), 기갑 험비 차량(수백 대), M113장갑차(200대), 155M 곡사포(90문, 포탄 184,000발) 등에 이른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이 그동안 거절해 왔던 스팅어 대공미사일(1,400개 이상)을 제공하여 우크라이나의 저고도 방공망을 대폭 강화하고, ‘피닉스 고스트’(121개 이상)와 스위치블레이드(700개 이상)라는 자폭 드론을 대량 제공한 부분이다. 특히 미국이 제공하기로 결정한 ‘피닉스 고스트’ 드론은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는 신형무기체계이다.

    이미지3 FGM-148 재블린과 CLU – 이번 전쟁에서 미군과 러시아군의 장비 격차가 부각되었다. CLU는 조준기로 대전차미사일을 유도통제한다. CLU는 야간투시기능이 있는 열영상장치로도 활용이 가능하여 대전차임무뿐만 아니라 야간전투나 야간경계에서도 러시아군을 상당히 위협했다.

    전쟁 이전부터 미국은 정찰위성과 RC-135W 리벳 조인트, RQ-4 글로벌호크, E-8C 조인트스타즈, E-3A AWACS(나토군)와 같은 정찰기(ISR)를 동원해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 러시아군의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추적해 왔다. 이들이 확보한 정보와 획득된 표적들은 실시간으로 우크라이나군에 전달되었다. 4월 27일 미 엔비씨뉴스는 우크라이나군이 미군의 좌표(표적 정보)를 사용하여 러시아군의 진지와 항공기를 타격했으며, 미국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방공망과 항공기를 수시로 이동시킴으로써 러시아의 제공권 장악이 차질을 빚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CIA는 러시아로부터 젤렌스키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고, 키이우 공방전의 분수령이었던 호스토멜 공항의 탈환에 미국의 정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5월 3일자 워싱턴포스트는 가장 눈에 띄지 않으면서 우크라이나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미국의 전자전 능력이라고 밝히고 있다. 러시아군은 군용 통신장비에 문제가 생겨, 휴대폰을 이용했다가 계획과 위치가 노출되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역공을 허용했다. 러시아는 앨런 머스크 소유의 스페이스 엑스가 스타링크 시스템을 이용해 우크라이나의 인터넷을 복구하자, 이 위성 광대역 서비스를 방해하기 위해 스페이스 엑스와 치열한 전자전을 펼쳤다가 끝내 실패했다. 이 사건은 미국이 자국의 첨단 정보기술기업의 역량을 전장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귀중한 사례이다.

    3월 9일 미 상원을 통과한 우크라이나 지원액은 무기지원 35억 달러, 정부운영 18억 달러, 인도적 지원 40억 달러, 동유럽으로 미군 재배치 30억 달러 등 총액 136억 달러이다. 눈에 띄는 것은 연금과 급여 등 정부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다. 우크라이나 군인과 공무원들은 현재 미국이 주는 급여를 받으면서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셈이다. 재닛 앨런 재무부 장관은 4월 21일 5억 달러를 추가 지원하는 서명식에서 ‘시작에 불과하다’라는 의미심장한 표현을 썼다. 또 한 가지는 나토 강화를 위한 미군 재배치 비용으로 우크라이나 바깥으로 전선을 확장하지 말라는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말 없는 경고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36억 달러가 조기 소진되자 330억 달러의 엄청난 지원금액을 추가 승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4월 28일 통과한 일명 ‘랜드리스법’(우크라이나 민주주의 수호 무기대여법)은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무제한적으로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프랭크 레드윗지(영국 포츠머스대)는 이 법안은 미국이 (영국을 지원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무기고’(the arsenal of democracy)가 되어야 한다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1940년 12월 29일 라디오연설을 떠오르게 한다고 평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 전략∙전술에 내재한 모순과 문제점에 대해 검토해 보자.

    우선 러시아가 지정학적 현상유지에서 오는 안정과 함께 유럽에서 확보했던 역할과 활동공간을 포기할 만큼 절박하고, 임박한 위협을 받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예컨대 전문가들이 대러 방위선에서 가장 취약하다고 생각한 곳은 발트해 주변지역이었지, 우크라이나가 아니었다. 독일의 러시아 정책은 ‘접근을 통한 변화’ (Wandel durch Verflechtung)라는 원칙 아래 러시아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이끄는 것이었다. ‘노드 스트림’의 탄생은 상호의존(die gegenseitige Abhängigkeit)에 입각해 공동 경제이익을 추구하자는 것으로써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평화공존을 지향한 것이었다.

    그런데 크림 병합과 돈바스 분쟁에도 좌초되지 않았던 ‘접근을 통한 변화’는 이번 러시아 침공에 의해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러시아는 전후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의 재군사화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스스로 열었으며, 러시아에 대한 봉쇄정책이 정당하다는 명분을 서구사회에 제공했다. 러시아 정치학자 이반 티모폐예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많은 영토를 획득한다고 해서 안보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러시아가 전쟁, 혁명, 내전, 경제 붕괴, 외국간섭의 위기가 중첩됐던 1917~1920년 혁명기와 같은 위험한 상황이 재현되지 않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 ‘리더십 참수작전’이 실패했다.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와 ‘비무장화’라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러시아가 선택한 ‘특별군사작전’의 제1계획은 러시아공수군(VDV)의 ‘리더십 참수작전’(leadership decapitation)이다. 로버트 페이프에 따르면 리더십 참수작전은 ‘전략적 개인(Strategic Individual)’의 체포 또는 제거를 통해 정부 기능을 마비시킴으로써 전쟁지휘능력을 제거하는 데 목적을 둔다. 암살 자체에 목적을 두는 ‘표적살인(targeted killing)’과는 다른 개념이다.

    작전 개요는 침공 3일 전 명령을 하달받은 공수군 선발대가 키예프 인근 호스토멜 공항(안토노프국제공항)을 접수하면, 벨라루시에 대기중이던 공수군 본대가 비행장에 강하한 후, 공수장갑차로 키이우 방면으로 이동∙진입하여 대통령 관저, 방송국 등 주요 거점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선발대를 태운 ‘Mi-8’ 수송헬기들이 카모프 공격헬기들의 호위 아래 공항에 무사히 안착하여 교두보를 확보하였으나, 본대를 태운 IL-76 수송기가 공항 주변 상공에서 피격되는 등 공수군 주력 병력의 공항 전개가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저지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1968년 바츠라프 하벨 공항(프라하)과 1979년 바그람 공항(카불) 점령을 연상케 하는 이번 작전은 체코슬로바키아 둡체크를 거의 즉시 체포하고, 아프칸의 하피줄라 아민을 조기에 사살한 이전 작전과 달리 다양한 변수 통제에 실패했다; ① 우크라이나는 고립되지 않았고, ② 내부호응이 부족했으며, ③ 통신망 두절에 실패했고, ④ 방공망 또한 완전히 파괴하지 못했으며, ⑤ 휴대용 대공 유도무기의 반격이 있었다. 작전이 성공하였다면 타임지의 표제어처럼 ‘역사의 귀환’이 될 뻔했다.

    이미지4. 키이우 제1단계 작전 지도- 영국 데일리메일은 2월25일 러시아가 키예프 서북쪽 호스토멜 공항(안토노프국제공항) 등을 통해 러시아 공수군 1만명을 투입하여 키예프 정부를 장악하고 친러 정권을 세울 것이라는 미국 정보기관의 주장을 보도했다.

    세 번째 러시아식 ‘썬더런’(Thunder run)이 실패했다. 러시아는 제1계획의 개시와 함께 벨라루스에 주둔한 지상군으로 하여금 키이우로의 진격을 명령했다. 러시아는 특별히 키이우의 신속한 포위를 위해 제35제병협동군으로 하여금 급습작전을 펼치게 했는데, 이것이 서구전문가들이 ‘썬더런’(Thunder run)이라고 부른 제2계획이었다. ‘썬더런’은 2003년 이라크전쟁에서 미 침공군이 바그다드를 목표로 단행한 두 차례의 ‘신속결정적 기동작전’을 말한다.

    작전의 개요는 공수군이 낙하했던 호스토멜공항 주변의 이르핀, 부차 등 키이우 서쪽에 있는 베드타운 지역에 신속히 거점을 확보하고, 키이우 포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 작전은 1999년 제2차 체첸전쟁의 그로즈니 고립 작전을 연상케 한다. 작전의 성공은 식량과 탄약, 특히 연료의 원활한 공급에 달려 있었다. 문제는 러시아가 광활한 땅덩어리로 인해 물류를 철도에 의존한다는 것인데 키이우 북쪽에는 마침 철로가 없었으며, 러시아군이 보유한 차량으로 신속 진격에 충당할 보급을 책임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유명한 ‘64Km 호송대’가 멈춰 서있던 상황은 보급 차질의 결과물이다. 도로 위에서 시간을 허비한 제35제병협동군 주력부대는 우크라이나군의 지속된 매복공격과 싸워가며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에 도달했으나, 이르핀을 경계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였다.

    이미지5. 키이우 제2단계 작전지도 – 러시아는 제35제병협동군을 급파하여, 3일만에 이런 상황을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토미 아호넨/구글)

    이미지6. 3월 4일 키이우 전장지도 – 그러나 키이우 외곽 25Km지점에서 러시아군은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소모전을 계속하였다.(척 드보어)

    이미지7. 3월 28일 키이우 전장지도 – 러시아군은 22일 키이우로 들어가기 위한 남서쪽 관문인 마카리브(Makariv) 전투에서 패배한 데 이어 28일 이르핀(Irpin)마저 빼앗김으로써 위기에 봉착했다. 주보급로가 끊겼고 포위가 멀지 않았다. 퇴각은 불가피했다.(출처- 프랑스 Ouest Frnce)

    러시아군은 그동안 각 전선이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전선 내에서도 각 방면군이 독자적으로 행동함에 따라 전체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았다.. 예컨대 남부전선의 경우, 메이슨 클라크(ISW)는 동쪽(헤르손), 서쪽(마리우폴), 북쪽(자포로지아) 방면군이 각자 독자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상호협력을 통한 효과적인 공세를 만들어내지 못하였다고 평가하였다. 북부전선의 각 부대는 불과 침공 24시간 전에 명령을 하달받아 물질적, 심리적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

    개전 직후에 제기된 “공수군과 스페츠나츠(특수부대)를 왜 벌써 투입하지?”, “제1근위전차군은 왜 투입이 늦어지는 거야?”, “키예프 방면은 왜 다들 2선급 부대들이지?”와 같은 궁금증을 넘어서, “러시아는 왜 전쟁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거야?”, “러시아는 왜 지기 위해 전쟁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와 같은 전문가들의 근본적인 의문은 러시아 지도부가 애초에 전쟁이 아니라, 그들이 선언한 대로 ‘특수군사작전’을 지휘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풀릴 수 있다.

    잭 웨이틀링과 닉 레이놀즈(영국 RUSI)는 모스크바가 3일 안으로 키이우를 점령할 것으로 예상한 것으로 보고서에서 밝혔다.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이 작전을 주도할 만큼 그들은 조기에 모든 상황이 종료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다 보니, 장기전에 대한 대비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썬더런’은 제1계획의 실패에 대비한 작전이었으나, 이 작전마저 실패함으로써 러시아는 더 이상 북부전선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러시아는 동남부전선으로 전장을 축소하되 그동안 두지 않았던 전체 전선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을 임명함으로써 작전통제권을 정상적으로 군부에 이관하였고, 철수한 전선의 잔여병력을 재정비하여 동남부전선에 투입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가 말하는 2단계 작전으로의 전환이다. 이것은 ‘돈바스 대회전’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 돈바스 분쟁에서 분리주의세력과 러시아는 ‘데발체브전투’에서 우크라이나군을 포위 공격하여 승리함으로써 우크라이나가 ‘민스크Ⅱ협정’을 수용하게 만든 경험이 있다. 이 지역은 서울∙경기∙인천 면적의 약 1.2배 크기의 지역으로 이곳을 러시아가 또다시 포위공격에 성공할 경우 네오나치로부터 돈바스를 해방시켰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이미지8. 4월 11일 돈바스 전장지도 – 북쪽 하르키우(Kharkiv)–이지움(izyum)-슬랴반스크(Sloviansk)-포파스나(popasn)로 이어지는 M03고속국도가 전략적 축선이다. 러시아군이 돈바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슬랴반스크와 크라마토르스크(Kramastorsk)를 포함한 주변을 장악해야 한다. 두 지역은 분리주의자들이 최초로 봉기한 지역이기도 하다.(War Mapper)

    이미지9. 5월 7일 돈바스 전장지도 – 현재 돈바스의 주전장이다. 이지움(Izyum)에서 리만(Lyman)으로 세베르스키 도네츠강이 흐르고, ‘Shandryhove’ 주변지역 전선은 러시아쪽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다. 이곳을 돌출부라고 한다. 돌출부는 여러 면에서 접근이 가능해 공격자에게 유리하다. (마이클 맥키/구글)

    그러나 이곳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이미 2014년 돈바스 분쟁에서 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서로 너무나 잘 아는 지역이기 때문에 한 달여 전 미 국방부 관계자는 이곳의 전투가 ‘칼싸움’(Knife battle)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따라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소모전의 단계로 넘어감에 따라 양측이 입게 될 피해는 매우 심각해질 것이다. 현재 전문가들의 예상은 전쟁 초기와는 달리 러시아보다는 우크라이나의 우세에 점수를 더 주는 분위기이지만, 전쟁의 승패는 역시 결과가 나와야만 아는 것이며, 전쟁의 장기화가 어느 쪽에 유리한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번 전쟁을 반식민 해방투쟁으로 간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야 동의하지 않겠지만 전쟁이 점점 미국을 포함한 나토와 러시아의 대결 구도로 옮겨 가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현재 미국∙나토가 지원하는 무기 수준이 점점 중대형 화기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에서 전쟁의 확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랜드연구소의 마이크 마자르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서 러시아를 손보겠다는 미국의 전략적 균형 잡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 <국방칼럼> 연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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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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