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누구일까?
        2007년 01월 16일 10: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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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의 대권주자 가운데 한 명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얼마 전 현대차노조 박유기 위원장에게 공개서한을 띄웠다. 손 전 지사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국민들이 현대차 노조를 보고 귀족노조라고 하는 것 잘 아시지요….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은 현대자동차 자체에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한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당장 월급이 줄어 가계가 어려워집니다. 메탈다인과 같은 부품협력업체는 위기상황으로 내몰립니다. 또 여러분과 함께 부대끼며 살고 있는 울산시민, 나아가 대한민국의 선량한 국민들까지 어렵게 합니다…..

    오늘도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경제가 좋지 않아 고통 받는 서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손 전 지사는 현대차노조의 파업이 ‘비정규직 노동자’, ‘울산시민’, ‘대한민국의 선량한 국민들’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했다. 또 ‘실직자’와 ‘경제가 좋지 않아 고통받는 서민들’ 보기에 면목이 없지 않느냐고 노조를 힐난했다. 

    손 전 지사는 현대차노조의 파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월급을 줄일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의 부품협력업체가 위기상황에 내몰릴 것이라고도 했다.

    현대차노조의 파업이 해당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급을 줄이는지, 부품협력업체를 위기상황으로 내모는지, 설령 손 전 지사의 셈법이 옳다고 해도 그 책임을 전적으로 노조에게만 전가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별도의 논의를 요하는 문제다.

    다만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소득이 제로섬 상태에 있을 때, 국가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이 먼저 문제 삼아야 할 건 제로섬 구조 자체라는 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로 가능한 노동 내부의 소득 재분배는 노동 스스로 풀어야 할 사회적 연대의 영역이라는 점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정말 궁금한 건 비정규직과 협력업체의 생존 위기를 걱정하는 손 전 지사의 ‘진정성’이 꼭 이런 기회에 발휘되어야 했느냐 하는 것이다.

    앞서 손 전 지사가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KTX 여승무원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귀울였는지 알고 싶다. 현대 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지난해 포항 건설노조는 포스코의 하청계열사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대기업의 ‘협력업체’를 걱정하는 손 전 지사가 이들의 싸움에 어떤 관심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하중근이라는 노동자가 공권력에 맞아 죽어나갈 때 손 전 지사는 하도급 관행 개선과 하청 노동자 권익 신장을 위해 어떤 대안을 제시했던가.

    대기업 노조만 고분고분 입닥치고 있으면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고 불공정 하도급 관행이 개선될 것이라는 생각이 아니라면, ‘노동자의 노동자’에 대한 손 전 지사의 관심과 애정은 좀 더 일찍, 좀 더 절박한 순간에 드러났어야 했다.

    사정 불문하고 대기업 노조에 몰매를 퍼붓는 비이성적 여론의 밥상에 안전하게 숟가락 하나 얹는 방식은 아무래도 좀 치졸하지 않은지.

    손 전 지사의 편지에서 현대차노조를 정규직 중심의 대기업 노조로 바꿔 읽어도 무리는 없을 듯 하다. 손 전 지사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국민’을 가른다. 국민의 경제적 곤란의 대칭점에 대기업 노동자를 위치시킨다. 이런 논법은 ‘국민’과 ‘국익’의 이름으로 계층적 요구를 단죄하는 보수파의 노회한 수법과 닮았다. 

    하이스코 노동자들이 장기 파업에 들어갈 때, KTX 여승무원들이 거리에서 밤을 세울 때, 포항의 건설노동자들이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일 때, 보수 언론과 정치권은 ‘국익’과 ‘국민’의 이름으로 이들의 요구를 단죄했다. 한미FTA협상에 대한 농민들의 반대도 ‘집단이기주의’쯤으로 매도했다. 

    보수파는 비정규직의 이름으로 정규직의 ‘호사’를 비난하고, ‘국익’의 이름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비난하고, 농민의 생존권 요구를 비난한다.

    이들은 언제나 ‘불법’을 탓하지만 포스코의 대체근로나 한미FTA 추진 과정상의 절차적 불비에 대해 이들이 비판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불법을 저지른 대기업 총수들을 ‘국익’의 이름으로 복권시키자고 한 것도 이들이다.

    해서 궁금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과 농민이 제외된 ‘국민’이란 도대체 뭔가. 이들의 이익이 배제된 ‘국익’이란 대체 어떤 건가. 실체가 불분명한 ‘국민’과 ‘국익’을 호출해 실재하는 계층적 요구를 각개격파 하는 것, 이게 ‘선진사회’로 가는 ‘통합’의 리더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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