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지사 감수성보다 산업국가 감수성을
    2007년 01월 15일 04: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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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환씨의 반론 잘 보았다. 하지만 몇 가지 지점은 지적할 수밖에 없다.

안태환씨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한국의 진보진영이 차베스에 주목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반미노선 때문이다. 사실 차베스 자신이 쏟아낸 그 많은 발언에도 불구하고, 차베스가 그토록 반미적인지는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많은 한국 진보진영의 인사들은 차베스의 발언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차베스 발언의 시원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한 지 5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단코 대한민국 국민이 베네주엘라 국민들보다 더 반미적이다. 전 세계에서 어느 나라의 국민들이 한갓(?) 두 여중생의 죽음 가지고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자국의 수도에서 수십만씩 밤마다 모여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겠는가?

게다가 한국국민들 대다수는 자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미국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한국의 국민들이 이토록 반미적인데, 정부는 극단적으로 친미적인 것은 필자의 생각으로는 진보진영의 정치적 무능 탓이 매우 크다.

   
 

 ▲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생방송 TV프로그램 ‘알로, 프레지덴테'(여보세요, 대통령)를 진행하고 있다. 

 
 

유엔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영국 외에는 어느 나라도 제대로 군대를 보내려고 하지 않았던 이라크에 세번째 규모의 군대를 보내는 정부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반대 한 번 못 해 본 것이 한국의 진보진영이고, 역으로 이 정부를 어떻게 해서든지 보호해보려고 하였다.

평화를 사랑한다는 시민운동은 이를 주도한 자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낙선운동조차 벌이지 못했다. 그 덕에 한국의 노동자정당인 민주노동당은 2중대론과 진보개혁세력 세대교체론으로 현 정부의 실정을 그대로 껴안아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지지율 하락을 그대로 감수하여야 했다.

문제는 진보진영의 정치적 무능이 차베스에 대한 호의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지지한 후보가 이라크파병, 한미FTA 추진 등으로 엄청난(?) 친미노선을 걷고 있으니, 시원한 발언을 쏟아내는 차베스가 그토록 부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사실 차베스와 남미 사례에 대한 진보진영의 과도한 집착은 자신의 무능과 정치적 미숙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하거나, 현단계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미노선’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우회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필자가 경제와 산업정책을 이야기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한국 자본주의의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론스타의 투기적 행태에는 그토록 분노하면서 한국자본이 외국에서 행하는 각종 만행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여야 할까?

맥팔랜드의 한강 독극물 방류에는 분노해도 이미 한국이 폐기물을 제3세계에 수출하는 것에 대해서 조용한 것은 또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의 4/4분기 영업이익이 2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서울 마포구에서는 아사한 30대 여성이 발견되는 것이 한국사회인데, 국가보안법 구속자에는 관심이 있어도 이러한 죽음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한국의 진보진영이다.

미국의 식민지(?)에 불과한 한국은행 총재가 외환보유고를 다변화하겠다는 발언으로 달러의 가격을 요동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한국의 경제력이다. 심하게 말하면 한국의 진보진영은 분단위로 변화하는 거대한 현대적 산업국가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아직도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하는 지사들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 지형이 남미와 유사하다는 부분 또한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남미에서 좌파의 집권은 우파의 경제적 무능에도 힘입은 바 크다. 경제적인 것만 너무 따지는지 몰라도 노동자당 집권 전 10년 간 제로성장을 한 브라질이 그러하고, 경제적으로 1989년과 2006년이 하등 달라지지 않은 니카라과가 그러하다.

거대한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인민의 삶을 향상시키지 못했던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도 마찬가지이다. 역으로 좌파의 도약은 정치적으로 이들 국가에서 우파의 경제적 무능과 정치적 분열이 한 몫하였고, 집권한 좌파세력들이 권력을 현실적으로 운용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제 진보는 무능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있다. 1987년 이후 20년 간 국민들은 민주화세력에 대해서 무능하다는 심판을 하고 있고, 소위 말해서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어낸 386들은 동년배 세대들에게조차 버림받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이러한 정치적 지형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상황을 타개하는 것은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명박의 대운하론으로 대표되는 개발론에 대응하는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전반적인 증세를 통한 교육과 의료 중심의 발전전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집권은 분명히 후퇴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집권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때문에 예컨대 “대안은 차베스식 체제”라고 하면 그것은 분명히 길을 잘못 짚은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40%가 지지하는 정당이다.

이들이 집권 전야에 있는 것은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있듯이 현정부의 무능 때문이다. 이것이 두렵다고 해서 시야를 남미로 돌릴 필요는 없다. 사실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할지 모른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너무나 일희일비한다. 너무나 일희일비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자그마한 성공이 있더라도 무슨 보세 가공업자처럼 이를 직수입하려 한다. 그런데 각각의 나라에 대한 전반적인 고려와 고민, 그리고 성찰은 대단히 부족하다. 차베스만 해도 그렇다. 2000년 있었던 노조의 선거를 국가가 관리하도록 한다는 국민투표는 세계적 뉴스거리가 되었던 사안이다.

ILO도 이에 대해서 항의하였고, 전 세계 노동계에서도 우려를 표명하였다. 아무리 우익노조이고 반동적인 노조라고 하더라고 이러한 방법을 쓴다는 것을 어떤 나라의 노동운동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의도적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이 부분에 대해서 차베스를 소개하는 한국의 진보진영은 별로 다루지 않았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별로 소개되지 않은 초기 브라질 노동자당의 모습이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룰라는 첫 대통령 선거에서(1982년) 단 3%밖에 얻지 못했다. 당시 구호는 ‘사회주의 브라질’이었다. 여기서 끝났다면 현재의 브라질은 사뭇 달랐을 것이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노동자당을 강화하였고, 브라질연합노조(CUT)를 만들었으며, 참여예산제와 같은 브라질 사회에서는 사실상 계급투쟁의 의미를 가지는 제도로 지방권력을 장악해 나갔다.

여기서 한마디 짚어보자면,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20년이 지났는데, 한국의 진보진영 중 이렇게 지속적으로 노동자정당 활동을 해 온 집단과 인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한국의 룰라가 될 뻔한 인물은 뉴라이트 노동운동단체를 만들었으니, 한국 진보진영의 부침은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브라질의 정치사에서 초기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전략적 함의는 일관되고 확고한 전략 같은 것 정도이다.

안태환님의 의도와는 별개로 한국진보진영의 남미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몇 가지 배경이 있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시원한 반미노선에 대한 동경, 자신의 정치적 무능에 대한 도피, 현재 한국사회의 경제적 조건에 대한 무관심 같은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1980년대를 풍미했던 NL-PD 노선의 마지막 유산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미망에서 빨리 깨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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