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닷없이 닥쳐온 농사철
    [낭만파 농부] 벼농사두레 정기총회
        2022년 04월 26일 11: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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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농사철은 늘 느닷없이 닥쳐온다. 농사 이력이 10년을 넘었으니 이제는 능란하고 여유만만할 법도 한데 여전히 일이 닥쳐야 움직이는 까닭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농한기’의 단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려는 심리가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인 듯도 하다.

    올해도 마찬가지. 봄바람이라도 난 듯 4월 중순이 지나서도 ‘일치춘심(一枝春心)’을 좇아 여기저기를 쏘다녔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화들짝 농사철과 맞닥뜨린 것이지.

    고산권 벼농사두레 정기총회가 그 현장이었다. 해마다 농사철을 코앞에 두고 진행하는 연례행사다. 지난해 활동을 결산하고 새로운 한 해의 청사진을 그리는 자리다. 연례행사라는 표현 그대로 의례적인 과정일 수 있지만 벼농사두레로서는 그 의미가 간단치 않다. 농사에 접어드는 시점이니 그 마음이 남다를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올 한해도 힘과 지혜를 모아 잘 해보자는. 설레는 무엇이 있고 활기가 넘치는 것이다.

    올해는 특히 2년 임기가 끝난 임원진을 새로 뽑는 선거가 있는 해였다. 지난해 총회에서 개정된 회칙규정에 따라 임원진이 3명 더 늘었다. 아직은 스스로 나서기가 어색한 분위기라 총무가 일괄 재청하고 저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입후보를 수락하는 식으로 선출됐다. 물론 만장일치다.

    활동보고 채택, 회칙개정, 사업계획 수립 같은 나머지 의안이야 중뿔날 것도 없는 것들이라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다. 사실 그거야 뻔한 절차였을 뿐이고, 정작 중요했던 것은 ‘사전행사’라는 이름을 진행된 프로그램이었다.

    올해 정기총회는 지난해에 이어 ‘봄소풍’을 겸해 열렸다. 막판에 이르렀다는 코비드 팬데믹이 선사한 ‘실외행사’라는 역설이었다. 간드러진 복사꽃과 산뜻한 배꽃이 어우러져 피어난 화창한 봄날,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잔디 마당이 북적거렸다.

    벼농사두레 회원인 대중음악 뮤지션 ‘추니오빠’ 오누이 밴드가 펼치는 미니 콘서트. 준비된 서 너 곡에 앙코르 한 곡으로 꾸며졌지만 가쁜 봄기운을 추어올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2022년 고산권 벼농사두레 정기총회

    이어 점심시간. 집행부가 준비한 김밥과 치킨, 피자 말고도 누구는 어묵탕을 끓여왔고, 누구는 과일을 들고 왔으며, 누구는 두릅나물을 데쳐왔다. 맥주와 함께 두레 산하 동아리 ‘막동이’가 빚어온 막걸리가 몇 순배 도는 사이 ‘동네방네 퀴즈쇼’가 펼쳐졌다. 두레 이사 고니 씨가 ‘출제’한 40문항이 하나 둘 풀려나왔다. 왜 ‘동네방네 퀴즈’냐고? 가령 이런 식이다.

    [문] 고산면 읍내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항상 마음을 깨끗이 씻는다는 내력을 지닌 정자의 이름은? ①박*정 ②장*정 ③조*정 ④세심정

    정답(세심정) 외에 나머지 셋은 벼농사두레 회원들의 이름이다. 그 이름이 하나하나 호명될 때마다 사람들은 배꼽을 쥐게 된다. 물론 정답을 맞힌 이에게는 상품이 주어진다. 그 상품이란 것도 쌀, 사골곰탕, 음료상품권, 책자 따위 회원들이 협찬한 것이다. 참석자 모두에게 하나 이상 안겨준다.

    두어 시간 흥겨운 프로그램이 끝나갈 즈음이면 사람들은 웬만큼 거나해져 있게 마련이다. 그런 상태로 총회가 개회된다. 이쯤 되면 무엇이 사전행사고, 무엇이 본행사인지 당최 헷갈린다. 한 시간도 안 돼 회의는 일사천리로 끝을 맺는다. 새로 뽑힌 임원진들의 소감과 다짐 발표가 그나마 총회의 무게를 보여준다. 회의절차로 보면 폐회선언과 함께 뒤풀이가 이어지는 것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이들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봄소풍’일 뿐이다. 꽃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고, 사람에 취해 아름다운 봄날이 흐드러질 뿐인 것이지.

    그렇게 한 매듭을 짓고 나면 남은 일은 실제 농사를 짓는 이들의 몫이 된다. 그 일주일 뒤에 ‘경작자회의’가 열렸다. 올해는 경작자가 지난해보다 크게 늘어 15팀 25명을 헤아린다. 새로 합류한 경작자들에게 논배미를 배정하는 문제와 모농사 초반 협동작업 일정을 정하는 게 주요의제다. 그에 앞서 새 집행부 첫회의를 열어 가닥을 잡았다. 논란을 벌일 일이 아니니 이번에도 회의는 짧게 끝나고 뒤풀이가 길게 이어졌다.

    벼농사두레 경작자회의

    이로써 올해 벼농사 지을 준비는 모두 끝난 셈이다. 이달 말 볍씨 담그기를 시작으로 5월 첫주 모판에 볍씨 넣기(기계 파종)와 못자리 조성 작업이 이어진다. 그래, 어디 한 번 떠나보자.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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