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로운 날, 따끈한 한잔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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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13일 10: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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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혼자라는 건
    실비집 식탁에 둘러앉은 굶주린 사내들과 눈을 마주
    치지 않고 식사를 끝내는 것만큼 힘든 노동이라는 걸

    고개 숙이고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들키지 않고 고독을 넘기는 법을
    소리를 내면 안돼
    수저를 떨어뜨려도 안돼

    서둘러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허기질수록 달래가면 삼켜야 한다는 걸
    체하지 않으려면

    안전한 저녁을 보내려면

    최영미의 ‘혼자라는 건’이라는 시이다. 이 시에서 보자면, 여자들은 밥 한끼 먹는 것조차 힘든가 보다. 순대국밥을 먹기도 전에 뭇 사내들의 ‘야리꾸리’한 시선부터 한바가지 먹어야 하니 말이다. 이쯤 되면 맘 편하게 따끈한 순대국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꺼~억 잘 먹었다며 배 두드리며 음식점을 나오는 건 하나의 호사이다.

    그런데 이런 ‘뭣 같은’ 상황에서도 ‘서둘러’ ‘안전하게’ 순대국밥을 꾸역꾸역 먹는 이유는 아무래도 단순히 허기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그 해명이 좀 부족하다. 즉 배고픔을 뛰어 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지는 않을까? 그럼 영화제목처럼, ‘순대국밥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

    혼자 순대국밥을 먹는 여자

    보통 여자들이 ‘순대국밥’을 혼자 먹을 때 겪는 불편함은 상당히 역사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의 산물이다. 가부장적인 육식문화에서 ‘동물’과 ‘여자’는 동일한 은유로 여겨진다. 즉 육식을 하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혹은 살고자 몸부림치는 ‘동물’에서 감정과 시선을 격리시켜야 한다. 그래야 ‘동물’이 아닌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이 소고기나 닭고기를 먹으면서도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유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개’와 먹을 수 있는 음식 ‘개고기’ 사이의 감정처리가 미처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과 시선이 격리되는 ‘육식문화’의 상상력은 곧 잘 인간 중심적 위계관계로 ‘진화(?)’하거나 ‘추상’화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남성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여자’에 대한 대상화이다.

    많은 폭력이나 성폭력의 희생자들은 "(제가) 고기 덩어리 같았어요."라고 말한다고 하는데(말이 길어지니 여기서 줄이자), 사실 이러한 의미는 성폭력과 육식은 서로 별개의 폭력으로 나타나지만, 동일한 언어체계에서 서로 같은 메타포로 작용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말한 논리는 ‘여자’도 고기를 먹는 일상적인 육식문화 구조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하여튼 간에 ‘혼자 순대국밥 먹는 여자’에 대한 ‘배고픈’ 남자들의 무의식은 "어라 ‘고기’가 ‘고기’를 먹네"하는 일종의 생경함이다. 사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빨간 불빛 아래에서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듯 ‘성매매’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나라에서 이러한 무의식은 성적 이미지와 쉽게 결부되고 강화된다. "어라 저 섹시한 ‘고기’가 외롭게 ‘고기’를 먹네?"

    아마도 시인은 예민한 감수성으로 이를 놓치지 않고 시어로 풀어냈을 거다. 이런 밥맛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재수도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시인은 꿋꿋하게 ‘순대국밥’을 먹는다. 왜? 맛있으니까.

       
     

    외로운 날의 따끈한 한잔과 순대국밥

    요즘같이 날씨가 추운 날이면 뜨거운 국물이 절로 생각난다. 안경에 서린 김발 너머로 순대국밥 한 숟가락 푸욱 퍼 호호 불어가며 차가운 반주 한잔하면 몸이 확 풀릴것 같은데… (이놈의 원고 쓰느냐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백기완 선생님은 감옥에 있을 때 먹고 싶어 당신을 눈물 나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잘 차려진 한정식도, 지글지글 숯불에서 익어가는 갈비도 아닌, 순대국밥에 소주 딱 한잔이라고 말하곤 했다. 선생은 기름지고 값비싼 좋은 음식을 먹어 본적이 없어서라고 말하지만, 요즘 선생의 심경이 감옥에 있을 때처럼 외롭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왠지 나에게 소주 한잔에 순대국밥이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사실 순대국밥은 없이 사는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음식중 하나이다. 시골에서 돼지 한마리를 잡으면 앞뒷다리, 좋은 살코기를 서로 노나메기 하고 나면, 그 찌꺼기인 내장에 주변에 나는 온갖 재료와 선지를 넣어 함께 나누어 먹는 음식이니 말이다.

    마을에서 돼지를 잡는 날이 그리 흔치 않던 그 옛날, 오랜만에 먹어보는 맛있는 고기 쪼가리뿐만 아니라 그렇게 서로 함께 나누어 먹는 모습이 그리웠으리라. 물론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넣어 동네 아이들과 축구를 하던 기억은 하나의 덤일 것이다.

    구수한 선지맛과 찹쌀과 당면의 촉촉함, 대창의 쫄깃한 치감 등 순대는 다양한 맛의 감각을 전해준다. 거기다 오랫동안 푹 고아낸 구수한 돼지 사골 국물은 근심으로 가득한 속을 확 풀어준다. 그래서인가? 하여튼 순대국밥은 혼자 있을 때, 쓸쓸할 때 더욱 생각나는 음식이다.

    병천에서 함경도까지

    앞서 말한 대로 순대의 재료는 특별하게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주변에 있는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해서 그때그때 만들어 먹는 것이다. 그럼에도 널리 알려진 유명한 순대로는 병천 순대와 함경도아바이 순대이다.

    병천은 천안 옆동네인데, 이곳의 순대는 찹쌀, 당면에 숙주와 같은 채소를 선지와 온갖 양념으로 버무려 속을 만든 다음 얇은 소창을 이용하여 만든다. 그래서 맛이 부드럽고 고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큰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

    반면에 함경도식 순대는 찹쌀, 멥쌀 등 여러 곡류에 채소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쪼가리들을 선지에 버무려 속을 만들어 내고 두툼한 대창을 이용하여 모양을 만든다. 그런 까닭에 쫄깃 씹는 맛이 좋고 고기 맛이 한층 더 풍부하다.

    어떤 맛을 더 좋아하느냐는 개인의 취향이지만 ‘고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오징어순대도 괜찮다. 오징어순대는 함경도 피난민이 속초에 정착하여 개발했다고 한다. 통 오징어의 내장을 발라내고 그 속에 여러 가지 채소를 넣어 삶아 낸 것인데, 쫀득한 오징어의 질감과 다양한 순대 속맛을 즐길 수 있다.

    속초항에 가면 철줄을 잡아 댕겨 바다를 건너는 곳이 있는데, 이 마을 오징어순대가 유명하다. TV 드라마 가을동화를 이 마을에서 찍었다고 한다. 훌쩍 겨울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속초를 한번 가보시라. 가는 김에 오징어순대도 먹어보고… 아~ 위 시를 쓴 최영미 시인도 속초에 둥지를 틀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오징어순대 때문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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