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과 베트남, 대륙 뛰어넘는 연대
        2007년 01월 13일 08: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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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년대를 이야기하면서 베트남을 빼놓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정당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것은 전쟁의 당사자였던 베트남과 미국, 두 나라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의 당사자도 아니면서 전쟁터에 깊숙이 밀려들어갔던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태국 같은 나라들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베트남은 베트남인들의 전쟁이었지만 전 세계인들의 문제였다.

    최소한 60년대를 관통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1968년 3월 17일 대규모의 반전 시위대가 런던의 미국대사관을 향해 행진했다. 시위대의 선두에는 ‘롤링 스톤즈’의 보컬 믹 재거와 여배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다른 참가자들과 팔짱을 끼고 미국은 베트남에서 나가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시위대가 대사관에 근접하자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이 시위대를 기습했다.

    200명 이상이 체포됐고 86명 이상이 응급구조대에 의해 병원에 후송됐다. 행진이 주를 이루던 영국의 반전 데모는 이날을 기점으로 전투적으로 돌변했다. 믹 재거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을 목격하고 노래 ‘거리의 투사들Street Fighting Man’을 썼다. 이 노래는 60년대를 기억하는 노래들 중의 하나가 됐다.

       
    ▲ (왼쪽)롤링 스톤즈의 싱글 ‘거리의 투사Street Fighting Man’와 (오른쪽)베평련의 상징이 된 ‘죽이지마라’ 로고. 이 로고는 지금 일본의 이라크반전운동의 상징으로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1965년에 이미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베평련)”이라는 반전단체가 구성돼 대중적인 반전운동을 벌였다. 베평련은 주일미군기지가 베트남전쟁의 후방 역할을 하는 것과 일본정부가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전쟁을 지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저항했다. 또한 미츠비시중공업이 베트남 민중을 학살하는 군수물자를 생산한다는 이유로 소액주주를 모아 주주총회에서 전쟁책임을 묻는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베평련의 활동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일미군기지에서 탈출한 미군을 숨겨주고 밀항선을 통해 소련을 거쳐 스웨덴으로 망명하도록 지원한 ‘반전탈주미병원조 일본기술위원회’의 운영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비밀루트를 이용해 소련으로 탈출한 미군은 20명이 넘었다.

    체 게바라는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베트남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쿠바를 떠났다. 빅토르 하라는 칠레 민중과 베트남 민중의 투쟁은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베트남에 관한 노래를 보급하기 위해 노력했다. 양심과 상식을 가진 사람에게 베트남은 결코 남의 나라 싸움이 아니었다.

    * * *

       
    Till det kämpande Vietnam
    1971년
    1 Till det kämpande Vietnam
    2 Sång om de indokinesiska folken
    3 Vietnams folk står enat
    4 Vilken president
    5 Herr ambassadör
    6 Vart än vattnet leds följer fisken med
    7 Befrielsearméns sång
    8 Sången om freden
    9 Demonstrationsvisa
    10 Till fronten
    11 Tango i Saigon
    12 Glanshammarsvisa
    13 Rädda dollarn!
    14 Sången om svalorna
     

    FNL그룹(FNL-Grupperna)은 1965년부터 75년까지 음악을 통해서 베트남과 스웨덴의 연대운동을 구축했던 집단의 이름이다. FNL그룹은 정확한 명칭은 아니고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 스웨덴어로는 FNL)을 지원하는 운동을 펼쳤던 단체들을 통칭하는 명칭으로 FNL운동(FNL-rörelsen)이라고도 불렸다.

    ‘통일FNL그룹De förenade FNL-grupperna(DFFG)’은 1971년 분절적으로 진행되던 음악인들의 연대운동을 하나로 묶으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이름이다.

    고정된 멤버로 구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적구성을 확정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프리덤 싱어즈’에 참여했던 음악인들이었다. 그래서 사실상 통일FNL그룹는 프리덤 싱어즈의 또 다른 이름, 혹은 이를 계승한 집단으로 생각된다.

    통일FNL그룹은 모두 석장의 앨범과 한 장의 싱글을 남겼다. 1971년 첫 번째 앨범인 “투쟁하는 베트남을 위해Till det kämpande Vietnam”와 이어서 1972년 “베트남은 가깝다Vietnam är nära”를 발표했다.

    오늘 소개할 음반은 이 두장이다. 이들은 1974년에 마지막 앨범인 “미래는 우리 것, 베트남의 노래Framtiden är vår, Sånger till Vietnam”를 공개했고 1975년 베트남전쟁의 종결과 함께 싱글 “베트남은 해방됐다Vietnam är befriat”를 발표했다. 베트남의 해방을 축하하는 이 싱글과 함께 통일FNL그룹은 역사적 소임을 마치고 해산했다.

    프리덤 싱어즈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만큼 통일FNL그룹의 음악도 기본적으로 모던 포크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집단의 이름만 바뀐 것은 아니다. 프리덤 싱어즈가 들려줬던 음악이 60년대 미국의 모던포크와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면 통일FNL그룹의 음악은 보다 확장된, 보다 폭이 넓은 형태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투쟁하는 베트남을 위해”는 단순한 어쿠스틱 악기와 남녀보컬의 화음이라는 구조는 유지하지만 보다 북유럽의 민속에 근접한 포크를 들려주고 있다. 반면 “베트남은 가깝다”는 포크발라드의 사이사이에 전통적인 랙타임과 프리재즈, 강한 비트의 음악을 적절하게 섞어 놓았다.

    민요에서 테크노로, 펑크록에서 레게로 종횡무진 오가면서 고정된 음악형태를 거부하는 ‘첨바왐바’만큼은 아니지만 과격한 구호 속에 음악이 파묻혀버리지 않고 음악 자체의 실험에 충실한 것이 이 시기 스웨덴 좌익 포크 뮤지션들의 미덕이다.

    * * *

       
    Vietnam är nära
    1972년
    1 Vietnam är nära
    2 Sång om dammarna
    3 En vietnamesisk bonde
    4 Rag om den nordvietnamesiska invasionen
    5 Vid läsningen av tusen poeters antologi
    6 Internationella Brigadens sång
    7 Haiphong
    8 Befrielsemarsch
    9 En kamp på tusen slagfält
    10 Militära mål
    11 Vapenhandlarens sång
    12 Roten till det onda
    13 Avskedet
    14 Maktens män
    15 Befria Södern
     

    “투쟁하는 베트남을 위해” 앨범의 가장 인상적인 트랙은 같은 제목의 첫 곡이다. 행진곡 풍의 멜로디는 가사에 담겨있는 내용을 쉽게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동시에 노래를 여는 아코디온 연주는 러시아를 비롯한 차가운 유럽의 서정을 연상시킨다. 베트남 민중들에게 바치는 노래가 아니라 러시아 혁명기의 노래라고 해도 믿을 만한 선율이다.

    ‘해방군의 노래Befrielsearméns sång’는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노래를 스웨덴어로 가사만 바꾼 것이다. 이번에도 아코디온이 등장하지만 완벽하게 동양적인 서정을 들려준다. 마찬가지로 사전 설명이 없다면 중국혁명기의 노래라고 해도 의심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사이공에서 탱고를Tango i Saigon’은 제목처럼 느닷없는 탱고에 잠시 어리둥절해지는데 닉슨정권의 베트남 정책을 코믹하게 풍자한 노래다. 나머지 노래들은 모두 모던포크의 형식에 베트남 인민의 영웅적인 투쟁, 미국의 위선,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무거운 단조의 발라드 ‘제비의 노래Sången om svalorna’를 마지막으로 앨범은 끝난다.

    이듬해 발표된 “베트남은 가깝다”는 보다 다양한 음악을 들려준다.

    우선 앨범의 제목과 같은 제목의 첫곡은 다름 아닌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의 작품이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현대음악가이면서 그리스의 군사파시스트 정권에 반대하다 투옥되고 추방된 그는 당시 망명지를 떠돌면서 조국 그리스의 민주화와 함께 베트남, 라틴아메리카의 투쟁을 음악으로 지원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몇 년 전 성악가 조수미가 자신의 음반에 수록했던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네’도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그리스의 저항운동가들에게 바치기 위해 작곡한 것이다. ‘베트남은 가깝다’는 끝부분에 영화 “희랍인 조르바”의 사운드트랙(이 역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작품이다)을 떠오르게 하는 강렬한 그리스 민요의 선율을 담고 있다. 노래 하나로 베트남-그리스-스웨덴을 잇는 국제적인 연대를 이루어낸 호쾌한 작품이다.

    ‘국제의용군Internationella Brigadens sång’은 에스파냐 내전 당시 국제의용군의 찬가로 불리어진 노래다. 베트남 연대를 주제로 한 음반에 왜 에스파냐 이야기가 튀어나오나 싶지만 60년대 유럽과 남미에서는 30년대 파시스트에 맞서는 공화파를 지원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투사들이 모여들었던 ‘국제의용군’처럼 베트남에도 의용군을 파견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간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다른 노래들과 달리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나레이션이 노래 앞에 짧게 덧붙여져 있다.

    ‘하이퐁 항구’는 닉슨정권이 북베트남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중단됐던 북부 폭격을 재개하면서 1972년 작은 항구 도시인 하이퐁에 맹폭을 퍼부은 것에 대해 비난하는 노래다. 북폭은 후방지역에 대한 대규모 폭격을 통해 전쟁수행능력과 의지를 꺾어버린다는 이른바 ‘전략폭격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미공군의 전략폭격이론은 태평양전쟁 당시 독일과 일본에 대한 공습을 통해 형성돼 한국전쟁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북한에 대한 공습과 북베트남에 대한 공습 모두 미공군의 목표는 ‘공습지역을 석기시대 이전으로 돌려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미군은 이런 작전목표를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해방행진곡Befrielsemarsch’은 비처럼 쏟아지는 미군의 폭탄을 뚫고 호치민루트를 넘어 남베트남으로 진군하던 인민해방군이 부르던 노래다.

    마지막 노래인 ‘남부를 해방시켜라Befria Södern’는 프리덤 싱어즈의 앨범에도 실려 있는 곡이며 프리덤 싱어즈와 통일FNL그룹을 비롯한 베트남연대운동의 음반을 제작한 독립레코드회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원래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에서 부르던 것으로 (베트남어 제목은Giải phóng miền Nam) 1975년 남베트남이 해방된 후 북부와 통일하기 전 15개월 동안 존재했던 남베트남공화국의 국가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만큼 이 노래는 베트남 연대운동의 주제가처럼 인식돼 60~70년대 스웨덴의 각종 연대집회와 행진에서 빠짐없이 불리어 졌다고 한다. 이 앨범에도 다른 노래들과 달리 집회에서 통일FNL그룹이 부른 것이 각종 구호와 함께 실황으로 녹음돼 실려 있다.

    * * *

    통일FNL그룹이 활동하던 시기에 함께 무대에 오르던 스웨덴의 좌익 음악집단은 ‘Knutna Nävar(움켜쥔 주먹)’, ‘Röda Ropet(붉은 함성)’ 등이 있다. 이후 이들의 음반도 입수하는 대로 소개할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

    베트남 민중들의 투쟁에 연대했던 ‘FNL그룹’의 운동은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프로그레시브 록밴드들의 모태가 됐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영역에서 음악을 통한 연대를 꿈꿨던 어느 스웨덴 밴드의 음악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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