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자들 "금속 광고거부, 한겨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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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12일 08: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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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4년차 기자 28명이 실명으로 한겨레의 금속노조 광고거부 사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기자들은 12일 사내 게시판에 <한겨레 위기의 본질을 똑바로 보자-금속노조 의견광고 게재 거부를 비판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게재하고,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전 사원들에게 전송했다.

기자들은 게시 글에서 “‘한겨레의 위기는 곧 한국사회의 위기다’라는 자부심이 우리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있다. 최근 6개월 사이 잇따라 벌어진 금속노조 의견광고 게재 거부는 ‘과연 한겨레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곱씹게 만든다”고 불편한 심경을 밝혔다.

기자들은 이어 “‘민감한 문제라 일방의 주장을 싣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광고국의 판단이나, 광고국 독자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회사 의사결정시스템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기업 노조의 권력화를 비판할 때조차도 자본 앞에 약자일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야 한다는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기사는 물론, 광고에도 해당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기자들은 또, 최근 판매국이 한미FTA 홍보책자 20만부를 신문에 끼워 독자들에게 배포한 사건을 지적하면서 “한미FTA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국정홍보처의 광고는 괜찮고, 노조의 의견광고는 안된다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가…‘한겨레 지면에 긴장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도처에서 들린다. 한겨레는 회복되기 힘든 자해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자들은 이와 함께 회사 쪽에 △재발방지를 위한 회사의 광고게재 규정의 조속한 명문화 △금속노조와 독자에게 지면을 통한 공식사과 △편집국-광고국-판매국-경영전략의 동일한 가치공유 등을 요구했다.

다음은 한겨레 기자들이 게시한 글의 전문이다.

<한겨레 위기의 본질을 똑바로 보자>
-금속노조 의견광고 게재 거부를 비판한다

모든 진실이 한겨레를 보장하던 시대는 지났다. 한겨레는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 진보 개혁 매체의 중심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의제를 내놓지 못하고 전망을 공유하지 못하는 지면은 한겨레가 매일매일 찍어내는 위기의 징후다. 우리는 이 같은 현실을 참담한 마음으로 인정하려 한다.

‘한겨레의 위기는 곧 한국사회의 위기다.’ 그런 자부심이 우리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있다. 최근 6개월 사이 잇따라 벌어진 금속노조 의견광고 게재 거부는 ‘과연 한겨레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곱씹게 만든다.

금속노조의 반응은 격렬하다. 지난해 7월 포스코 건설노조와 관련한 의견광고가 거부 당한 데 이은 두 번째 ‘배신’이다. 회사는 뒤늦게 광고를 싣겠다고 나섰다.

“민감한 문제라 일방의 주장을 싣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광고국의 판단이나, 광고국 독자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회사 의사결정시스템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우리에겐 돈 없는 노동자, 농민, 학생, 시민 등이 자신의 목소리를 손톱만한 크기에 쏟아낸 생활광고의 전통이 있다. 그 공간은 낮은 곳으로 활짝 열린 연대의 상징이었다. 대기업 노조의 권력화를 비판할 때조차도 자본 앞에 약자일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야 한다는 원칙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원칙은 기사는 물론, 광고에도 해당돼야 한다.

대기업 노조와 노동운동에 보여준 한겨레의 ‘애정’에 견줘 금속노조의 반응이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섭섭함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파업이나 소화기를 뿌려댈 때야 관련 기사를 쏟아낸 지면에 대한 반성이 선행될 때 돌아오는 몫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겨레 위기의 본질을 본다.

한미FTA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국정홍보처의 광고는 괜찮고, 노조의 의견광고는 안된다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가. 판매국은 FTA 홍보책자 20만부를 신문에 끼워 독자들에게 뿌렸다. 편집국은 대기업에 편향된 기사들을 지면에 쏟아내고 있다. “한겨레 지면에 긴장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도처에서 들린다. 한겨레는 회복되기 힘든 자해를 하고 있다. 독자는 자신이 바라는 가치를 얻지 못할 때 떠난다. 독자가 없다면 광고도 없다.

한겨레는 87년 6월 항쟁이 어렵게 빚어낸 빛나는 결과물이다. 한겨레에 요구되는 도덕의 기준은 가혹하다. 터무니 없는 광고료를 요구하며 게재를 거부한 경향신문과 우리를 비교할 게 아니다. 독재에 맞서 언론자유를 지켜온 해직 기자들이 우리의 선배며, 진실의 금문자를 위해 찾아온 경영관리직들이 우리의 선배다. 의미 없는 100년보다, 18년 짧은 역사를 당당히 펼치는 것은 이 같은 자랑스런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뒤틀린 언론시장의 악다구니 속에서도, 냉혹한 매체환경의 틈바구니에서도 여전히 시퍼런 날을 세워야 한다. ‘차라리 장렬한 최후를 맞으라’는 비아냥이 퍼진다. 그러나 장렬한 최후란 우리에게 없다. 한겨레는 아직 욕 먹을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겨레 정체성을 흔드는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경영진의 무리한 광고압박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며,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

-우리는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회사쪽에서 밝힌 광고게재 규정의 조속한 명문화를 요구한다.
-우리는 금속노조와 독자들에 대해 지면을 통한 회사의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
-우리는 편집국-광고국-판매국이 동일한 가치를 공유해야 하며, 경영전략 역시 그와 함께 가야 함을 요구한다. 그 가치는 연대의 다른 이름이며, 지워지지 않는 진보의 낙인이다.

고나무 김남일 김일주 박종식 박현정 박현철 서규석 신의상 유선희 유신재 윤지혜 이란 이상준 이영준 이정국 이정아 이정애 임인택 전진식 정성훈 정인택 조기원 최은주 최현준 하수정 하어영 홍종길 황예랑

200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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