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내 드러낸 대통령…언론 '균형 추' 기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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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12일 09: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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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이 새해 초부터 ‘개헌’ 파도에 휩싸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9일 대통령 4년 연임제를 뼈대로 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한 이후 개헌은 정치권 안팎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12일자 주요 조간신문의 1면 머리를 장식한 것도 ‘개헌’ 문제였다.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중앙일보 등이 개헌과 관련된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간담회 발언을 1면 머리기사로 올렸다. 한겨레와 한국일보는 민간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머리기사로 처리했다.

    다음은 12일자 주요 조간신문 1면 머리기사

    경향신문 <"개헌 전제 땐 탈당 검토…임기단축 없다">
    국민일보 <"개헌 상관없이 임기단축 없다">
    동아일보 <"개헌안에 내 신임 걸지 않아 개헌 도움된다면 탈당 고려">
    서울신문 <"개헌에 도움되면 탈당 고려">
    세계일보 <"개헌 부결돼도 임기단축 안해">
    조선일보 <차가 죽인 도시, 차가 살린 도시>
    중앙일보 <"임기단축 안겠다">
    한 겨 레 <민간 분양원가 9월 공개>
    한국일보 <분양가 하락…공급은 차질 우려>

    주요 현안이 있을 때 언론의 시각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진보 개혁적 시각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언론이 있고 보수적인 시각으로 판단하는 언론도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언론의 시각이 한 쪽으로 쏠리는 느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한 지 3일 만에 보수 진보 성향의 언론 할 것 없이 부정적 기류가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진보 개혁적인 논조를 펴 왔던 경향신문은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시기적으로 정략적인 뉘앙스를 풍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번에는 한겨레가 움직였다. 한겨레는 12일자에 <개헌론, 여론지지 없으면 접는 게 순리다>라는 사설을 실었다.

    경향·한겨레, 개헌 제안 부정적 인식 드러내

    한겨레는 사설에서 "정치권의 합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여론이 충분하게 밑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고집스럽게 밀고 나갈 사안이 아니다"라며 "특히 부결이 예상되는데도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것은 부정적 여파만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 한겨레 1월12일자 사설  
     

    한겨레는 "노 대통령이 개헌론을 더는 밀어붙이지 않는 게 낫다고 본다. 정치는 현실이다. 아무리 뜻이 좋고 내용이 옳더라도 여론이 수용하지 않으면 접을 줄 아는 게 지도자의 덕목이자 용기"라고 개헌논의 철회를 주문했다.

    12일자 주요 조간신문 중 개헌논의 철회를 요구한 언론은 한겨레뿐만이 아니었다. 중앙일보는 <더 이상 개헌 문제로 국민 피곤케 말라>는 사설에서 "대통령이 아무 것이나 던져 놓으면 온 나라가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야 정상인가. 그러기에는 우리 국민이 너무 현명하다"며 "개헌 과제는 이미 노 대통령의 손을 떠났다. 정말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다음 대통령의 몫으로 넘겨주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국민 세계 중앙 한국 "대통령, 개헌 고집 말아야"

    국민일보는 <노 대통령 권한 남용하면 안된다>라는 사설에서 "왜 이렇게 고집불통인가…개헌을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저의가 의심스럽다"라며 "국리민복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개헌제안을 즉각 철회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 국민일보 2007년 1월12일자 사설.  
     

    세계일보도 <대통령은 개헌 제안 조속히 철회해야>라는 사설을 통해 "노 대통령은 국민 대다수의 뜻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개헌 제안을 철회해야 한다. 그것만이 혼란을 최소화하고 대통령으로서도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일보는 <개헌은 오기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설에서 "더욱 바라는 것은 노 대통령이 개헌 제안을 거두었으면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상황이 뚜렷해진 이상 이를 계속 고집하는 것은 오기 밖에 안된다"고 지적했다.

    동아 조선 ‘우회적 압박’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우회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압박했다. 조선일보는 <개헌이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를 이야기하라>는 사설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입에서 난데없는 개헌 이야기가 아니라 수학과 과학교육의 혁명이란 국가 백년대계에 관한 소신을 들을 기회는 영영 없는 것일까"라고 반문했다.

    동아일보는 <대통령, 개헌보다 ‘하이닉스 이천 투자’ 되게 해야>라는 사설에서 "노 대통령은 국민이 반대하는 개헌에 매달리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 시점에서 개헌보다 하이닉스 반도체의 이천 투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며 "개헌 논의로 국력을 허비할 게 아니라 하이닉스의 이천 투자 허용으로 진정한 개혁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세는 기울었으니 노무현 대통령이 뜻을 접으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상대적으로 왼쪽에 섰던 한겨레마저 개헌카드 철회를 주장하는 상황은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구상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개헌 사실상 물 건너갔다"

    조선일보는  3면 <"개헌 안돼도 돼…손해보는 장사 아니다">라는 기사에서 "노 대통령이 이번 개헌 문제에 걸고 있는 ‘정치적 하중’이 그리 무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고, 그간 노 대통령의 ‘올인’ 스타일과 다른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며 "현 상황에서 이 정도(탈당) 가지고 야당이나 여론을 견인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개헌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 2007년 1월12일자 3면.  
     

    그러나 개헌 논의가 중단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개헌 카드를 지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4면 <70% 역풍 맞서 개헌 불씨 살리기 한나라 ‘빅3’ 책임론 거론하기도>라는 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11일 기자회견을 관통한 주제어는 ‘개헌 역풍을 뚫어라’였다"며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노 대통령은 개헌안 발의까지 이어갈 생각이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중앙일보는 "청와대측은 중립내각 구성, 정치 불개입 선언 등의 카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여론의 향배다. 청와대가 가장 신경 쓰는 대목이다. 개헌론이 탄력을 받으려면 여론이라는 동력이 뒷받침 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대통령 개헌발의, 국회 찬반 진행될 가능성 높아"

    한겨레는 5면 <‘개헌 불지피기’ 안간힘>이라는 기사에서 "개헌과 임기단축을 연계하지 않겠다는 것은 대선 정국의 판을 흔드는 ‘꼼수’로 개헌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개헌론에 깔린 정치적 노림수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을 불식시킴으로써 국민 여론을 되돌려 보겠다는 시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대통령 개헌안 발의와 공고에 이어 국회에서 찬반을 묻는 의견 절차까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힘이 빠진 개헌의 탄력을 되살리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노 대통령이 탈당을 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것도 아니어서, 식어버린 여론의 반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뜻을 접지는 않겠지만 개헌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과 임기단축 가능성은 여전히 변수가 되고 있다. 경향신문은 5면 <야 압박용 준비된 카드 신당 흐름에도 ‘변수’>라는 기사에서 "노 대통령의 탈당 카드는 ‘개헌’ 제안의 진정성을 강조하고, 정치권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해석된다"며 "특히 부정적 국민 여론을 감안, 모두 ‘개헌논의 반대’ 진영에 선 야당을 분리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노 대통령 탈당, 임기단축 여전히 ‘변수’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임기단축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언론은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둘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동아일보는 3면 <"개헌 안한다"도 번복…"사퇴 안한다" 믿을 수 있나>라는 기사에서 "노 대통령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는 임기 중 사퇴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야권에서는 개헌한 국회 표결 전 하야 가능성이나 개헌안 부결 후 중·대선거구제와 연계하며 사퇴할 가능성 등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망했다.

    동아일보는 "노 대통령이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헌을 발의했다가 국회에서 부결되는 사태가 일어나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대통령은 레임덕(임기말 권력 누수현상)이 가속되는 등 최악의 상황에 빠질 것이다. 그럴 경우 이를 돌파할 카드로 임기단축을 꺼내지 말란 법이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2007년 1월12일자 4면.  
     

    서울신문은 3면 <‘개헌 역풍’ 탈당 카드로 맞대응>이라는 기사에서 "정치권, 특히 야권에서는 노 대통령의 임기 단축에 대한 쐐기박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개헌 제안이 정략적인 만큼 ‘사임카드’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 대통령, 국민상대 정치 성공할까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하고 있다. 성공여부의 관건은 ‘여론’이다. 그러나 여론을 이끌어가는 대다수 언론들이 개헌논의에 부정적 기류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한겨레와 경향신문까지 개헌논의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상황은 주목할 대목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구상은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부터 외면을 받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헌 찬반 여부와 관계없이 개헌과 관련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또 언론은 외면하고 있지만 여론이 노무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한겨레는 5면 기사에서 "개헌론 공론화 과정에서 여론이 역전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 말대로 개헌에 반대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면 개헌 반대세력이 명분을 잃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일보 장명수 이사 "개헌내용 진지한 논의 시작돼야"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개헌논의 철회를 주문했지만 장명수 이사의 시각은 달랐다. 장명수 이사는 <개헌, 진지하게 논의하자>는 제목의 칼럼에서 "국회에서 개헌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바른 선택을 하는 것만이 혼란을 줄일 수 있다"며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은 시대정신을 읽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상대방의 술수에 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한국일보 2007년 1월12일자 30면.  
     

    장명수 이사는 "개헌 논의는 이미 시작됐다. 이미 시작된 논의를 ‘노 대통령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싫다’거나 ‘시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외면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신문 강동형 지방자치부 부장도 ‘데스크 시각’이라는 칼럼을 통해 "개헌 내용과 개헌 시기는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내용에 대한 토론은 배제되고 시기만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개헌의 성패여부를 떠나 개헌 내용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시작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신문은 <개헌 발의 앞서 야당부터 설득하라>는 사설에서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야당 대선 주자가 앞서가는 국면을 흐트러뜨리고, 여당 내 통합신당 논의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개헌을 추진한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는 한 개헌은 성사되지 못한다"며 "일반 국정에 전념하면서 조용히 정치권 설득노력을 벌이고, 여의치 않으면 개헌 발의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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