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변혁이 경제성장 토대다
        2007년 01월 12일 12: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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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들의 관심 속에 연재되던 이재영 기획위원의 ‘시민단체 정책비평’에 이어 올해부터 주요 언론의 사설, 칼럼 등 의견 기사를 중심으로, 이들 언론이 ‘살포’하는 메시지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댈 ‘칼럼 오브 칼럼’ 란이 신설됐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계속적인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신년, 일간지들의 화두는 대통령 선거이고, 그들이 내거는 시대 목표는 ‘경제성장’이다. 그 압축판이 1월 3일자 <동아일보> 사설 「경제성적 우등국은 우리와 달랐다」이다.

    “얼마 전까지 ‘유럽의 환자’였던 독일이 지금은 유럽의 경제성장을 선도하고 있다. … 메르켈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 공공부문 민영화, 기업규제 완화로 ‘독일병’ 치유에 나선 결과 경제성장률은 2005년 0.9%에서 작년 2.5%(잠정치)로 크게 높아졌다.

    … 베트남은 작년 외국인 투자와 수출 호조로 8.2% 성장을 기록했다. …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은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2000년 이후 10% 안팎의 고속 성장을 누렸다. 개방을 통해 5년간 유치한 외국인투자가 281억 달러다. …

       
      ▲ 베트남 하노이의 스쿠터 행렬
     

    독일의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 완화, 베트남과 인도, 카자흐스탄의 적극적 투자 유치 노력은 ‘한국병’에도 맞춤 처방전이다. 배울 것은 배우고 실천해야 살아남는다.”

    과연 한국은 저성장 중인가? 한 나라의 성장률을 그 나라의 경제 규모와 떼어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한국이 5%의 저성장(?) 중이라지만, 한국 GDP의 5%는 400억 달러인데, 이는 베트남 GDP의 8.2%인 42억 달러의 열 배, 카자흐스탄 GDP의 10%인 56억 달러의 일곱 배에 해당한다. 즉, 한국과 베트남, 카자흐스탄의 성장 추세가 지금과 같이 계속된다면 경제 규모 격차가 더 커질 정도로 한국은 고성장(?)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동아일보>의 주장처럼 한국은 외자 유치에 비적극적인가? 한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는 지난 5년 동안 400억 달러에 달한다. 즉, 베트남이나 카자흐스탄보다 더 많은 외자를 유치하고 있는 것이고, 이 신문의 논리대로라면 한국의 적극적 외자 유치가 고성장 배경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가, 메르켈의 보수적 정책 덕분에 독일 경제가 부활하고 있다고 주장하려면, 콜 정권 당시의 저성장과 마이너스 성장에 대해서도 해명해야 하고, 메르켈 정권이 독일 정치사상 최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도 되짚어 보아야 한다.

    또 메르켈 정권이, 부가가치세율을 인하하고 있는 한국과는 정반대로 부가가치세율을 무려 19%로 올린 것이 ‘기업 규제 완화’인지도 설명해주어야 한다. 골드만삭스의 추계에 따르자면, 한국 경제의 성장세는 경제 규모와 1인당 소득 모두에서 2020년에는 프랑스를, 2040년에는 독일을 추월하게 한다.

       
      ▲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
     

    이러한 사실들은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가 성장률에 있지 않고, 어떤 성장을 이룰 것인가,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사회 통합과 지속 성장에 적합한 전략이나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점임을 보여 준다.

    “민주 변혁의 정치 패러다임을 한 단계 높여 개인소득 2만 달러 시대에 걸맞은 선진과 통합의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한다. …… 여야 대선주자들은 이런 시대 흐름에 맞춰 이념 과잉의 정치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1월 3일자 <서울신문> 사설, 「대선주자들 긍정의 힘으로 겨뤄라」

    “정치논리에 의한 경제정책은 때의 구분 없이 항상 경계해야 할 대상 …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경제가 정치판에 휘둘려 중심을 잃게 되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 집값 급락이나 부동산 대출에 따른 가계 부실 가능성 등 예고된 위험요인을 잘 관리해 위험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해야겠지만, 이 과정에서 역시 경제나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을 이유로 정치논리가 개입돼서는 안 된다.” 1월 3일자 <경향신문> 사설, 「정치 바람 차단이 경제의 최우선 과제다」

    개혁적이라 세칭되는 신문들 역시 ‘경제는 경제, 정치는 정치’라는 식의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성장이나 선진화는 과연 정치로부터 독립된 경제 영역만의 문제인가?

    세계 최부국인 미국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막대한 물량 공세를 펼치며 정치적 경제적으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된 힘은 어디서 나왔는가? 미국의 선진국 진입은 동북부의 제조업으로부터 나왔고, 그러한 산업 기반은 내전을 거치며 자본과 노동력을 집중시킨 결과다. 노무현 정권이나 여러 언론이 자주 인용하는 네덜란드의 무역과 금융산업이 성장한 배경은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을 통해 확립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수출대체 산업 육성이나 전두환 정권의 중화학공업 집중 역시 정치적 결정과 다양한 사회정책에 힘입은 것이다. 4.19와 5.16, 1987년 항쟁 후에 신산업이 발생하고 한국 경제를 주도했다. 지금 한국 경제의 정체는 사회정치적 변혁의 부재로 인한 경제 토대의 고착화로부터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경제를 변화시키고 싶은가? 그렇다면 정치를 변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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