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사회적 책임, 불법 면죄부로 전락
    By tathata
        2007년 01월 11일 08: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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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삼성은 보육원에 장학금을 전달하거나, 베트남의 청각 장애인에게 달팽이관 이식 수술비를 지원하고 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발행에 대한 편법 혐의가 불거지자, 8천억원을 사회에 헌납할 것을 밝히면서 ‘사회적 책임’을 거론했다. 그리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계열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 혐의가 제기되자, 사재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사회적 책임’을 말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은 무엇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비정규 노동’이라는 주제로 11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노동조합이 바라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첫 토론회다.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한국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삼성, 현대와 같은 대기업들이 편법이나 불법행위를 저질러 사회적 비판 여론이 빗발칠 때,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면죄부’의 일환으로 거액을 사회에 내놓으며 ‘사회적 책임’을 거론하는 것으로 활용된다.

    삼성은 무노조 경영으로 노동자의 최소한의 기본권조차 보장하지 않으면서, 기업 이미지 홍보를 위해 국내와 해외에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에 앞서 기업들이 기업 내에서만이라도 ‘불법파견’을 없애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선행돼야 돼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실질적인 힘은 노동조합으로부터 나오며, 산별노조는 중앙교섭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 화학섬유노조는 11일 국제화학에너지광산일반노련의 후원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비정규 노동’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은 프랑스계 다국적 기업인 라파즈가 한국에서 저지른 노동자 탄압 실태(<레디앙> 6월 21일자 기사 -‘세계적 다국적기업의 ‘야만적 착취’’ 참조)와 KTX여승무원에 대한 ‘불법파견’을 은폐하는 철도공사의 사례가 중심이 돼 이뤄졌다.

    발제자로 나선 이유민 노무사는 “한국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사회공헌과 혼동돼 사용되고 있다”며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기업 내에서는 노동기본권을 봉쇄하고, 외부적으로는 사회적 자선행위로 이미지를 제고하는 왜곡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라파즈가 국제화학에너지광산노련(ICEM)과 산별협약을 체결하는 등 해외에서는 비교적 ‘모범적인’ 모습을 보인데 반해, 노조가 약하고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불법파견 형식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를 고용하고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으로 월 200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을 강요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 노무사는 “라파즈는 국제화학노련의 산별협약은 물론, OECD 노동 가이드라인도 위반하고 있지만, 이 모두가 권고사항일 뿐이어서 강제할 아무런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채희진 화학섬유노조 라파즈한라시멘트 사내하청 우진산업 지회장도 “외환위기 때 한라시멘트를 인수한 라파즈는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정리해고 하고, 그 빈 자리를 비정규직을 채웠다”며 “프랑스 등 다른 선진국에서 라파즈는 선진기업일지 몰라도 강원도 땅에서는 악덕기업”이라고 비판했다.

       
    ▲ 토론회에 참석한 한 KTX여승무원들이 지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다.
     
     

    민세원 KTX승무지부장은 “철도공사가 사회적 책임을 지키기 위해서는 KTX승무원들을 직접고용해야 하지만, 철도공사는 시민사회의 견제와 비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살 권리를 짓밟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기에 앞서, 노동자에 대한 책임마저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한국에 있는 다국적 기업과 공기업의 현주소라는 말이다.

    홍진관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기업이 국내법은 물론 OECD와 ILO의 국제기준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경영자의 자율에 맡겨져 있을 때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제투쟁에 집중하는 기업별 노조보다는 기업의 틀을 뛰어넘는 산별노조가 ‘사회적 책임’을 의제로 산별교섭을 추진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희 이화대 교수(사회학)도 홍 국장의 지적에 적극 공감을 표시했다. 이 교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노동운동은 점차 어려운 처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며 “노동운동이 각국의 소비자운동과 결합하는 등 전 세계적 개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광표 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한국이지만 노동권과 인권은 경시되고 있다. 시민사회와 노조는 기업의 무한권력을 깨뜨리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며 “산별노조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단체협약안으로 끌고 들어와 사회적 의제화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부소장은 또 “한국의 다국적 기업이 제3세계 국가에서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노동부와 철도공사, 라파즈한라 측은 ‘내부 사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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