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 관심 가져야 되는 이유 정말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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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11일 03: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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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진 변호사의 ‘남미보다 조봉암 농지 개혁에서 배워라’ 란 글을 읽고 몇 가지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어 글을 올린다.

그는 “유럽의 모델을 보다 더 많이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적, 정치적 상황은 확연히 다르지만 경제수준이나 규모가 유럽에 거의 비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몇몇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구가하고 잇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위의 시각은 경제, 산업의 시각에서 우리의 참고모델을 찾자는 문제의식에 다름 아니다.

진보진영, 대안적 비전 산업전략에 과도하게 치중

우선 현재의 진보진영의 대안 연구 중에도 우리의 대안적 비전을 의제로 제시하는 가운데 지나치게 산업전략에 치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알게 모르게 어떤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역사적, 정치적으로 유럽은 우리와 확연히 다르게 보수의 힘에 비해 진보세력의 정치적 우위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진보란 무엇인가 ? 일부 소수의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인간적인 삶을 살게 하자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이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게 살아왔다.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누릴 수 잇는 사회적 공공성의 정책은 유럽에서는 일인당 GDP가 우리보다 훨씬 낮은 국면에서도 실천되어 왔다.

물론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면 영국의 대처를 거론하고 ‘사회복지병’을 들먹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스페인만 하더라도 80년대 초반 집권했을 때 전체 국민의 거의 대다수가 열정적으로 ‘스페인 사회노동당’을 지지했었다. 집권 후 좌파적 시각의 정치, 사회, 문화 개혁을 실천하고 있을 때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일간지 ‘엘 빠이스’는 진보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얼마 전 스페인의 아스나르 보수 정권은 부시의 이라크 전쟁도 적극 지지했고 그로 인해 테러까지 당한 후에야 다시 스페인국민들은 ‘스페인 사회노동당’을 선택했다. 그러나 ‘엘 빠이스’ 지는 신자유주의 지지 경향으로 변신했다고 한다.

정치경제, 이데올로기 지형 남미와 유사

이런 저간의 사정을 보면, 역사가 단순하게 기계적인 흐름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럽의 현대사에서 전임 정권에 대한 심판 성격의 총선에서 진보세력이 패배하고 다시 보수적 정치세력이 집권하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지만 정권교체가 있더라도 정치, 경제, 사회 정책의 궤도는 큰 차이가 없이 굴러간다. 그것은 이미 집권당이나 야당이나 유럽의 정치 지형에서는 기본적인 공감대(사회적 공공성 중시) 위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경제, 산업의 거시적 수준은 너무 높다 하지만, 열린우리당보다 더 보수적인 한나라당이 다시 집권한다면 남북 관계, 정치, 경제, 사회의 의제들은 엄청나게 요동치지 않겠는가?

우리와 비슷하다는 브라질도 지난번 대선에서 룰라가 지고 신자유주의를 대변하는 세력이 집권했다면 브라질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중남미 전반의 좌파 부상의 정치 지형에 아주 큰 영향력을 주었을 것이다.

거칠게 이야기해서 정치,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구조의 시각에서 우리는 남미와 더 닮았다. 그리고 사회적 양극화가 격심해지면서 빠른 속도로 더욱 닮아가고 있다. 물론 이때 이야기하는 남미는 베네수엘라가 아니라 멕시코의 경우일 것이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한미 FTA가 체결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두고 우리 모두 괴로워하고 있지 않은가?

   
  ▲ 우고 차베스(오른쪽)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왼쪽) 브라질 대통령이 브라질 건설회사가 건설한 베네수엘라 오리노코 강의 다리 준공식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남미 진보정치세력 형성과정에서 배워야

그런데 남미는 최근 오랫동안의 사회적 양극화와 종속적 대외정책의 흐름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들은 거의 지옥 수준의 질곡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고 있는데 이미 우리보다 먼저, 그리고 오랫동안 체험해온 그 지옥으로 뛰쳐나오려고 하는 국면에서 어떻게 남미에 관심을 가지지 않겠는가?

남미의 모델을 기계적으로 똑같이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베네수엘라의 원유 자원을 모방하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가? 그러나 진보적 정치세력의 형성과정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황무지와 비슷한 우리의 정치지형을 뒤엎을 수 있는 전략적 방법론은 공부할 수 있지 않은가?

나라를 이끌어 나가려는 정치적 이념, 정책적 프로그램의 안정성이란 시각에서 우리는 유럽과 비교가 되지 않고 오히려 남미로부터 참고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현시점의 남미뿐 아니라 19세기 중반의 남미 역사로부터도 배울 것이 많다고 본다.

최근 사학법 재개정을 위해 보수 기독교계의 ‘목사님’들이 아주 이미지가 이상할 정도의 시위를 하는 장면을 인터넷에서 보았지만,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여 사회 전반의 보수화를 온존시키려는 비이성적 흐름은, 현재의 남미가 아니라 과거의 남미와 비슷하다.

거의 유일하게 현재도 그런 나라가 남미에 있는데 바로 멕시코가 그렇다. 최근의 부정선거 시비를 법률적 도구를 통해 이겨내고 집권한 깔데론 정부의 바로 뒤에는 아주 보수적인 가톨릭 교회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죽도록 일 안 해도 즐겁게 살 수 있는 사회

우리와 스페인이 서로 비슷하다고 김변호사는 지적하고 있지만 기계적인 수준에서 경제 통계 규모만 비교하면 비슷한 수준에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회적 공공성 정책의 철학적 바탕 즉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진보의 우위적 힘은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스페인에 대해 더욱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군사 쿠데타를 통해 파시즘 체제를 확립했던 나라가 스페인이다. 그런데 82년부터 좌파정부에 의해 시작된 민주주의 정치 실천을 통해 오늘날 스페인은 경제 수준도 높고 사회적 공공성의 수준도 높고 자유권적 민주주의 수준도 높은 나라를 만들어냈다.

실제로 좌파 정부가 집권하게 된 것은 스페인 내전이 좌파의 패배로 끝난 지 약 50년만의 일이었다. 필자가 부러운 것은 일을 죽어라고 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결을 즐기는 사회 문화적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필자는 스페인 좌파가 집권을 시작할 당시 스페인에서 유학을 했기 때문에 그 당시 사회분위기를 기억한다. 펠리페 곤살레스 좌파 정권은 무엇보다 지방자치를 과감하게 실천했고 공무원의 경직된 관료주의를 깨트리기 위한 행정개혁을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스페인 사회의 보수화를 떠받치고 있었던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을 줄이는 개혁을 했다. 낙태를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켰을 때 일부 보수적 가톨릭 세력이 거리 시위를 벌였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위선적, 도덕주의적인 사회 문화 분위기를 바꿔 자유로운 개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포르노 영화관을 전면 개방했다. 프랑코 체제하에서는 거리에 침만 뱉어도 잡아갔다고 한다. 어디와 많이 비슷한 파시즘 문화를 흔들어 놓은 것이다.

개혁과 포르노 영화관 개방

스페인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프랑코 장군의 쿠데타 이후 3년의 내전을 치른 뒤 1939년부터 1975년에 프랑코가 자연사할 때까지 파시즘 체제하에 살았다. 물론 프랑코 체제도 후기에 갈수록 유연화되었다고 하지만.

스페인의 민주화에서 주목할 지점은 1976년에 집권한 합리적 보수의 아돌포 수아레스 정권이다. 이 정권은 스페인 민주화의 초석을 놓은 과도정권으로 평가된다. 이 당시 극우 및 극좌세력을 배제하고 화합과 포용의 대화를 추진한 공로 때문이다.

대화의 상대역이 바로 좌파세력인 ‘스페인 사회노동당’이었다. 사실 우리 역사에서는 김대중 정권시절에 이런 과도적 사명을 가지는 합리적 보수 정권을 기대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IMF폭탄 이후 너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고 본다.

현재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상지대 홍성태 교수가 지적한 ‘기형국가’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담론을 깊이 탐구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지 못하고 있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즉, 경제는 아무리 문제가 많다고 해도 그 덩치와 효율성 면에서 선진국 초입 수준이 아니라 이미 선진국 수준이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우리가 노대통령의 기가 막힌 어법 때문에도 황당해하는 것은 사회 지도 그룹의 역사인식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편향성과 그로 인한 빈곤한 사회 정책, 문화정책이 보여주듯이 고민의 수준이 너무 낮고 천박하기 때문이지 않은가?

낮고 천박한 고민의 수준

최근 홍세화 선생의 ‘새해의 소박한 바람’이란 글을 읽었다. 거기에 보면 스페인의 사회적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와 같은 수준 높음을 단지 경제, 산업적 모델의 문제의식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다고 보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미국식 실증주의 문화의 영향을 받아 경제 따로 정치, 문화 따로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러시아의 문학 이론가 바흐찐이 강조햇듯이 모든 언어 담론이 전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이라면 경제 우선의 시각은 바로 우리가 익숙한 정치 모델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바로 거기서 빠져 나오고 싶어 대안을 이야기하는데 다시 그 모델에 무의식적으로 가까이 가면서 대안을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경제 발전에만 몰두할 때는 그런 문제에 대한 고민을 미뤄 왔을 수 있지만 이제는 기형적 사회의 모습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의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고 나니 새로운 대안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대안적 모델을 다시 경제, 산업의 시각에서만 평가하면 어떻게 하나?

대안적 비전이란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총체적 철학이 없으면 나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미 모델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차베스 혁명에 관심을 가진다고 우리도 그대로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남미 모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차베스가 카라카스에서 태어난 시몬 볼리바르를 혁명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의 이념을 ‘내발적’ 변화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모델의 이미지도 베네수엘라의 독립 영웅을 강조한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도 사회주의인 것은 당연하므로 맑스를 내세워야 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대안적 비전의 철학과 방법론이 가지는 ‘내발적’ 경로에서 온 것이다

김변호사는 차베스는 민주주의자인가?라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를 대세로 받아들이는 자유민주주의자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라도 어떤 성격을 가졌는가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추상적 성격의 담론보다는 베네수엘라 정부의 구체적인 사회적 공공성 정책과 사회 연대의 철학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볼리바리안 혁명보다 조봉암의 농지개혁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동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필자도 여러 차례 차베스 혁명에 대해 글을 써온 것이다. 베네수엘라가 자신의 역사 속에서 선각자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발굴하듯이 우리도 우리의 역사 속에 생생히 존재했던 죽산 조봉암의 진보적 정치, 경제의 가치관을 오늘날 강조하자는 의도에서였다.

느닷없이 조봉암을 강조하는 전략으로는 그것이 먹혀 들지 않기 때문이다. 대안적 비전을 찾고 있는 시점에 베네수엘라가 ‘내발적’ 경로를 통해 실천하고 있는 혁명과정에 대한 관심을 대중적으로 증폭시킴으로써 우리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정치적 자산에 대해 다시 비상한 인식을 하자는 이야기다.

남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혹시라도 유럽, 우리나라, 남미 하는 식으로 경제적 성과를 기준으로 줄을 세우는 발상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유럽과 남미를 확연히 구별하는 시각도 잘못된 것이다. 남미는 우선 유럽어를 사용한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였을 때 일본어를 쓰도록 강요당한 적이 있다. 그 후 아직까지도 일본문화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같은 유럽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얼마큼 중요한가 하면 남미의 현대소설의 최고 시장은 유럽이었다. 그리고 유럽의 최신 철학 및 사회과학 서적도 우리보다 훨씬 빨리 번역되어서 남미 출판 시장에 나온다.

더이상 미국의 뒷마당이 아닌 중남미

실제 정치 지형에서 일어나는 인권유린의 상황에서도 유럽의 진보진영과의 연대에서 나오는 저항은 아주 강하다. 2001년부터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 시에서 시작된 반신자유주의 대안적 토론의 마당인 ‘세계 사회포럼’에도 유럽의 진보 세력이 적극 참여한다. 이미 미국의 ‘뒷마당’이란 오명도 점점 사라지고 있어 유럽과의 연대는 앞으로 더욱 발전될 전망이다.

사실 유럽은 남미에 대해 역사적 빚이 많다. 500년의 식민 지배 시기에 스페인은 노골적으로 남미의 ‘열려진 정맥’으로부터 남미의 피와 땀을 거두어갔다. 그 후 독립 후에도 이번에는 영국 제국주의가 지속적으로 남미를 착취했다.

문화적 측면을 보면 기존의 봉건적 사회질서가 근대 이후 기득권층의 탐욕을 뒷받침하는 체제로 온존되게 한 것은 스페인의 책임이다. 대표적인 예가 500년간 가난한 사람들이 문맹으로 방치된 것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시작한지 2년만에 문맹을 없앤 베네수엘라 혁명이 주목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차베스는 1998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되고 1999년부터 추진하여 1999년 11월 17일 새로운 헌법을 제정, 그 해 12월 15일 국민투표를 거쳐 신헌법을 공포했다. 새로운 정치체제가 열린 것이다. 그로 인해 2000년 7월 30일에 다시 대통령선거를 실시하여 두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임기 6년을 마치고 2006년 12월 3일의 대선 승리로 말미암아 차베스는 3선을 통과한 것이다. 모두 민주적 과정을 거친 것이다.

김 변호사는 “2000년경 차베스는 노동조합의 선거를 국가가 감시한다는 내용의 국민투표까지 실시한 바 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는 부결되기는 하였으나…”라고 한다 어떤 근거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국민소환에 의해 차베스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국민투표는 2004년 8월 15일에 있었고 차베스는 승리하였다.

차베스의 가장 큰 적, 민영 TV와 노동조합

신 헌법 제 72조에 보면 “국민투표로 선출된 모든 공직과 사법부는 소환이 가능하다. 공직에 선발된 후 임기가 절반이 지나면 선거권자의 20% 이상이 그 임기를 소환할 국민투표의 거행을 청원할 수 있다. 등록된 선거권자의 25% 또는 그 이상의 선거권자가 투표에 참여하고 그 공직자를 선출한 선거권자의 숫자와 같거나 그 이상의 숫자가 소환에 찬성하는 것으로 투표한다면 그의 임기는 소환된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즉시 헌법과 법률에 정한 바에 따라 결원을 보충할 절차가 취해질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2004년의 국민투표도 미셀 발리보에 의하면 “혁명을 싫어하는 세력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든 선출직 공직에 대한 국민소환을 인정하고 있는 헌법을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소환을 위한 국민투표의 청원을 위한 지지자들의 서명을 위조하였다”고 한다. 반 차베스 진영의 서명 위조와 여러 가지 음모에 대해서는 객관적 자료가 많지만 생략한다.

합법적 과정을 통해 집권한 차베스가 과격한 내용(?)의 신헌법을 만들게 되자 당연히 기득권층은 이에 반발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계속해서 차베스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가장 큰 우군은 둘이었다.

하나는 민영 텔레비전 매체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노동운동 조직이기를 포기한 국영석유회사 노조를 주도한 전국 노조 (CTV)의 지도부였다. 반 차베스 세력이 일으킨 2002년 4월의 실패한 쿠테타의 주동자는 한 사람은 상공회의소 의장이었던 뻬드로 까르모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전국 노조(CTV)의 의장인 까를로스 오르테가였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전략상의 이분법이 아니다. 유럽 모델이냐 남미 모델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둘 다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중요한 것은 철학적 선택이다. 다시 말해 관용, 연대, 포용의 길을 갈 것이냐 아니면 이기주의, 차별, 배제의 길을 갈 것이냐에 있다. 이미 어느 길을 택해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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