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은 이미 언제나 불평등했나니
    [책소개] 『틈새시간』(사라 샤르마(지은이)/ 앨피)
        2022년 04월 09일 08: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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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시간, 사무직 노동자의 시간, 택시기사의 시간…

    불평등한 사회적 경험을 포착할 궁극적인 정치적 관계이자 렌즈로서의 시간성temporality 개념을 발전시킨 시간정치 연구서. 여성의 시간, 사무직 노동자의 시간, 배달기사의 시간 …

    우리는 특정 정체성과 시간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받아들이지만, 개인과 시간의 관계를 구조적 차이의 한 형태로 인식하면 그로 인한 차이와 불평등을 인종·계급·젠더·섹슈얼리티·능력 등의 분리된 개별 정체성 범주로 환원하는 시각을 거부하게 된다. 시간성은 언제나 이미 불균등하다. 시간을 특정 유형의 기능이나 속성으로 균일하게 취급할 때 탈정치화될 위험이 있다. 타자를 시간 안팎에 배치하는 것은 백인, 자본주의, 가부장제, 식민주의의 시간질서를 유지하는 사회통제 형식이다. 시간을 사람, 사물, 매체, 역사적 시기의 부록으로 취급하면, 시간질서의 배후에 있는 복잡성을 직시하지 못하게 된다. 이 책에서 주장하듯이, 시간성은 어떤 역사적 시기의 일반적인 감각이 아니라 특수한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구조화된 특수한 시간 경험이다.

    워라벨, 느림, 가속 … 새로운 불평등의 도래

    “나는 대중적으로든 학문적으로든 속도문화와 시간의 가속에 매달리는 현상을 우려하면서 이 책을 썼다. 민주주의적인 삶에 빠른 자본주의와 디지털 속도가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는 뻔한 비판은 아고라, 놀이공원, 공항 등 바로 그 민주적이고 시민적인 삶의 공간들에 만연해 있는, 깊숙하게 구조화된 시간정치를 제대로 해명해 주지 못한다. 사회적 구조는 다양하면서도 차별적이고 관계적인, 상호 결합된 시간성과 노동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시간 층위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사회적 불평등은 속도의 향상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속도라는 담론이 지닌 힘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속도는 어디에나 똑같이 나타나는 문화적 사실이 아니라 어떤 템포이며, 어떤 지배적 리듬이고,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한 다수적이고 관계적인 시간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인구들은 시간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앞에 놓인 희미한 시간질서를 마주하게 된다.”

    명령을 거부하고, 바깥에 존재하고, 투쟁하고, 즐겁게 피해 나갈
    시간성의 회복을 위해

    비판적 시간 연구의 과제는 어디서나 똑같은 시간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회통제의 새로운 크로노미터(정밀시계)들을 찾아내고 견제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기술, 정치체제 등의 다양한 권력구조가 사람들이 살아갈 방법을 알려 주는 크로노미터로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따져 보는 것이다. 우리는 본질적이고 생물학적인 여성의 시간이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 노동을 깎아내리면서도 상찬하는 가부장제의 시간 논리에 주목해야 한다. 시간의 회복은 이성애중심적이고 백인중심적이며 생산성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적 권력 체제의 명령을 거부하기 위한 것이다. 시간의 회복은 시간을 되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지배적 시간질서의 바깥에 존재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시간의 회복은 새로운 시간질서를 만들어 내거나 새로운 보편적 시간 체제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사회통제의 크로노미터들을 계속 확인하고, 그것들이 잘 작동하는 이유를 탐사하고, 그에 맞서 투쟁하거나, 즐겁게 피해 나갈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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