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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는 어른을 구원한다
    [그림책 이야기] 『다음 달에는』(전미화(지은이)/ 사계절)
        2022년 04월 08일 10: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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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바이트

    저는 문학을 공부하려고 대학에 갔습니다. 하지만 대학교 합격자 발표가 난 다음 날, 저는 어머니를 따라 아르바이트를 소개받으러 갔습니다. 엄마는 제가 대학에 합격할 것을 알고 미리 과외 자리를 구해 놓은 것입니다. 제가 가르칠 학생은 저와 동갑인 여학생이었습니다. 일찌감치 재수를 준비하면서 저를 과외 선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과외 아르바이트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거의 직업이 되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이라 휴강도 많았지만, 밤늦게까지 이어진 아르바이트 때문에 수업을 빼먹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학비도 벌고 집에 생활비도 보태야 해서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사는 게 뭐지? 내가 이러려고 대학에 왔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더 이상 과외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과외가 끊어지자 저는 학교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는 버스비에 쓸 동전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 정도로 가난한 줄은 몰랐습니다.

    그림책 『다음 달에는』

    한밤중에 아빠가 일어나 짐을 쌌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이불은 집에 두고 침낭을 챙겼습니다. 도대체 깜깜한 한밤중에 주인공 꼬마를 데리고 아빠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한밤중에 아빠는 꼬마를 데리고 이사를 갔습니다. 그것도 어느 공사장 앞에 서 있는 봉고차로 말입니다. 아빠는 내일부터 공사장으로 일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밤이라 자야 하는데 꼬마는 잠이 하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옆에 누운 아빠는 훌쩍훌쩍 계속 울었습니다.

    아빠는 꼬마에게 당분간은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꼬마는 봉고차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러다 친구들이 지나가면 얼른 고개를 숙이고 숨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빠가 반찬통에 음식을 담아왔습니다. 꼬마는 비빔밥이 싫었지만, 아빠 얼굴을 보고 참았습니다.

    아빠는 밤마다 꼬마에게 약속했습니다.

    “다음 달에는 학교에 갈 수 있어.”

    하지만 다음 달이 되면 학교에 가는 날은 또 다음 달이 되었습니다. 과연 꼬마는 다음 달에는 학교에 갈 수 있을까요?

    가난 다음은?

    가난에도 레벨이 있습니다. 흔히 빚이 없는 가난한 사람과 빚이 있는 가난한 사람으로 나뉜다. 예컨대 시골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해도 굶지 않습니다. 자연이 먹여주기 때문입니다. 자연이 쌀도 주고 밤도 주고 고구마도 줍니다. 물론 대부분은 이웃집에서 줍니다.

    하지만 빚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시골에 살든 도시에 살든 빚이 있으면 쫓기기 시작하고 최악의 경우 도망까지 치게 됩니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해서 도망치는 것입니다. 자연은 사람에게 무엇이든 공짜로 내어줍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에게 원금에 이자까지 붙여서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다음 달에는』의 주인공 가족은 빚 때문에 야반도주를 합니다. 그리고 공사장 앞에 세워진 봉고차에서 삽니다. 공중화장실에서 씻고 가끔 목욕탕에 갑니다. 주인공 꼬마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아빠는 늘 빚쟁이를 피해 다닙니다. 그야말로 빛나는 자본주의의 빚내는 현실입니다.

    나를 구원한 예술

    학교에 갈 버스비가 없어서 방바닥을 긁던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였습니다. 저는 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러 대학에 왔는데, 날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수업도 못 들어가고 책도 못 읽으니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사느니 안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인간의 대지』가 저를 구원했습니다. 우리는 책을 보고 쓰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온 것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책은 사랑의 기록일 뿐이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을 구원한다!

    아빠는 밤마다 약속합니다.

    “다음 달에는 학교에 갈 수 있어.”

    만약 아빠에게 주인공 꼬마가 없었다면 아빠는 다음 달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아빠에게 주인공 꼬마는, 도망을 가더라도 지켜야 하는 삶의 목적입니다. 어쩌면 빚을 내야 했던 이유였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본문에 나오지 않는 엄마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가족의 병원비를 위해 빚을 내야 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요!

    중요한 것은 어린이에게 자본주의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인공 꼬마에게 학교는, 집은, 비싸고 맛있는 음식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꼬마한테는 오직 아빠가 중요합니다. 울지 않는 아빠, 활짝 웃는 아빠, 함께 있는 아빠가 중요합니다. 어린이는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 이루리의 <그림책 이야기>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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