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주의 보수연합의 반민중적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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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11일 08: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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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정권이 대연정론에 이어 새해 벽두 다시 대통령 4년 연임 개헌을 제기하며 정국을 미묘한 상황에 빠뜨리고 있다. 4년 연임의 ‘원 포인트 개헌’이라니 별 어려움도 없을 듯한데, 대선과 정계개편을 앞둔 상황이니 만큼 집권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수구정치세력들의 반응은 매우 민감하다.

    무엇보다 거기에는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강한 의구심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지난 ‘탄핵정국의 부메랑’이 가져다 준 학습효과를 잊지 못하는 수구정치세력들은 사실상 집권을 앞에 두고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 마당에, ‘다 된 밥에 코 빠뜨린다’고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니 신중하다 못해 아예 개헌 제안 자체를 무시해버리는 듯한 인상이다.

       
     
     

    대통령이 밝힌 개헌 이유 타당한가

    개헌이 발의되어 국민투표에 회부되려면 국회 재적의원 2/3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이처럼 제1야당이 제안 자체를 무시,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그 실현가능성은 매우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정권은 이번 제안에 다른 정치적 의도는 없으며 오히려 차기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개헌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개헌의 이유로 첫째, 5년 단임제는 독재를 방지하기 위한 과거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책임정치와 원활한 국정을 수행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 둘째,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가 간격을 두고 번갈아 실시됨으로써 막대한 비용과 에너지의 낭비가 발생한다는 점,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2007년인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즉 이 시기를 놓치면 앞으로 대선과 총선이 다시 만나는 20년 후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사유가 없는 한 대통령으로서의 개헌발의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그 소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의 반응은 이와 사뭇 다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법,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의 국정난맥과 정치빈곤의 상황이 무엇 때문에 비롯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등 날카로운 정치적 감각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권력과의 투쟁과 복종, 저항과 순응의 과정을 거치며 채득한 경험의 산물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중은 이번 제안의 정략적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그것이 향후 자신들의 삶의 진전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방향타가 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 듯하다.

    노대통령 개헌 제안의 본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우려스러운 것은 대중의 그러한 날카로움이 경험에 의거하고 있다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문제의 본질을 선명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노무현 정권이 역설하는 ‘원 포인트 개헌’의 근거들을 검토하는 것은 이번 제안을 관통하는 본질을 이해하고 나아가 한국정치가 직면하고 있는 핵심문제가 무엇인지 재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결코 무의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선 이 지점에서 노무현정권의 제안에 대한 반응들과 관련하여 한 가지 주목하고픈 사실은 진보, 개혁적이라는 언론과 전문가들조차도 이번 제안의 근거보다는 그 제안 시기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이들의 분석과 논평의 초점도 노무현대통령의 실추된 정치력 회복과 대선국면에서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노림수, 그 어떤 음모의 존재 여부에 맞추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개헌 자체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과 합의를 말하기에 앞서 그 제안의 근거가 과연 타당한지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번 제안의 실체가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그 근거가 타당하다면, 비록 노무현정권이 제안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제안 시기와 무관하게 개헌을 적극 추진해 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제안의 첫 번째 근거로 제시된 것이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책임 있고 원활한 국정수행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주장인데, 이 주장 자체에 관한 여론의 동향은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문제를 근본적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말 5년 단임제가 그렇게 문제가 되는가. 역대 정권들이 5년의 단임정권들이었기에 책임 있고 원활한 국정운영을 수행할 수 없었는가. 한편에서는 다원적 정당정치를 신봉한다는 사람들조차 단임제가 장기적인 국가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기도 한다.

    정말 단임제가 문제인가

    하지만 이러한 발상이야말로 정당정치의 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을 범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비록 단임제라고 하더라도 집권정당의 새로운 후보가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어 정책의 지속성, 일관성을 유지해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 노무현 정권과 집권 열린우리당이 재집권을 꿈꾸지 못할 정도로 대중의 신임과 지지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결국 핵심은 ‘노무현 정권과 집권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대중의 신뢰를 받는 책임정치를 하고 있는가’의 문제인데도, 이것을 단임제의 문제로 치환시키는 것은 정당정치를 특정 집권자의 연임 여부의 문제로 전락시키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책임을 회피해보려는 반(反)정당정치적 행태로밖에 볼 수 없다.

    말로는 지역주의, 보스정치를 극복하고 민주적 정당정치를 구현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그것을 부정하는 구시대적 발상과 행태를 그대로 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당정치 모독’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닌데, 걸핏하면 불거지는 ‘대통령 탈당논란’과 그것의 현실화 또한 이러한 발상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100년 정당’을 자임하며 만들어진 집권 열린우리당이 대중의 조롱을 받으며 한 기수도 채우지 못한 채 공중분해 직전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일 국정의 책임성 제고와 원활한 운영이 대통령 연임제의 도입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당선만 되면 죽을 때가지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의 경우, ‘식물국회’라는 말이 상징하듯 책임정치의 빈곤이 항상 문제가 되어 여론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우선 그 이유를 대중에게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87체제 한계는 단임제가 아니라 보수독점 타협체제

    다른 한편 이번 제안의 근거로 ‘87년 체제’의 한계가 지적되기도 한다. 그 핵심 내용인즉 5년 단임제가 과거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산물, 즉 민주화이행기의 결과물이기에 ‘민주화 이행’을 넘어 ‘공고화’가 이루어진 지금 그것이 오히려 국정수행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87년 체제’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과 단임제가 그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지 다시 한번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근인은 단임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87년 체제’가 공개적 독재체제인 박정희체제와 신군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수구정치세력, 자유주의정치세력이 주도하여 형성된 ‘타협체제’로서, 이른바 ‘6.29협약’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대통령 단임제도 그들의 주도하여 만든 이 협약의 목록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87년 체제’에 내장되어 있는 정작 중요한 한계는 단임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협약이 반독재운동, 혹은 반파시스트운동을 함께 한 진보적인 사회정치세력들의 요구를 철저히 배제한 보수독점의 체제라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단임제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장애를 해소, 극복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우선 여전히 정당구조의 민주적 대표성을 제약하고 있는 취약한 법‧제도적 현실,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심화로 분절‧파편화된 사회관계 속에서 필연화될 수밖에 없는 대중의 다양한 요구가 제도정치의 협의목록에서 배제, 억압되고 있는 현실 그 자체가 문제시되어야 한다.

    이 문제들이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연임제로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으리라 보는 것은 실제 다양한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중정치’를 외면해 온 수구, 보수정치세력들의 조야한 정치적 발상을 다시 한 번 더 확인시켜 주는 것일 뿐이다.

       
      ▲ 87년 6월 항쟁당시 대통령직선제를 요구하는 거리의 시민들
     

    편의적이고 기계적인 집권세력의 발상법

    더욱 아연실색케 하는 것은 지금 ‘원 포인트 개헌’을 한 후 시민사회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담아내는 개헌을 차후에 다시 하자는 또 다른 발상인데, 이것은 수구정치세력이 집권을 기정사실화할 만큼 우경화된 사회정치지형을 고려할 때, 그 실효성 여부를 떠나 개헌에 관한 이들의 발상이 얼마나 편의적인이고 기계적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대선과 총선이 번갈아 실시되어 국력이 낭비된다는 주장인데, 이것 또한 납득할만한 근거로 제기하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 빈곤하다. 이러한 발상은 민주주의를 비용과 기술의 문제로 축소시키고자 하는 보수정치학의 오랜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막대한 비용과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은 잇따른 선거 때문이라기보다 보수독점의 정치가 배태한 일상화된 대중배제의 엘리트 정치와 관료정치의 결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애써 먼데서 찾을 것도 없다. 노무현정권이 집권 열린우리당과 충분한 사전논의조차 없이 독선적으로 발표된 대연정 제안, 다수 대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밀어붙이고 있는 한미 FTA 협상 등은 ‘국론 분열과 에너지 낭비’의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엄격히 따져볼 때, 다수 대중은 총선과 대선이 시기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불편해 하지도 않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책임정치가 실종되고 정치의 위기 발생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따라서 지금 꼭 개헌을 해야 한다는 노무현 정권의 논리는 절대절명의 과제가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하나의 주관적 가설에 불과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대중의 지지 속에 잘 나가고 있었다면, 과연 그 경우에도 이런 방식으로 개헌문제를 제기했을까.

    비장미 지나치면 희극배우 된다

    바로 이런 반론들은 설사 대통령연임제의 ‘원 포인트 개헌’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책임 있고 원활한 국정수행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수구정치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주권을 위임받은 지유주의 집권정당과 정권이 대중을 소외시키고 있는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여론과 무관하게 개헌발의권을 행사할 것임을 강변하고 있다. 여론이 개헌발의권을 포기해야 할 의미 있는 반대 이유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설득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살펴본 바대로 그가 제시한 개헌의 근거가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은 최소한 그 유보 조건이 될 수 있는 만큼 그렇게 ‘비장한 태도’로 개헌정국에 임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비장미가 지나치면, 웃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상황, 그래서 그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희극배우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87년 체제’ 그 자체의 체현자인 노무현정권이 대선을 앞두고 꺼내서 사용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개혁카드’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대통령 연임제’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 ‘정치적 고충과 답답함’을 이해 못하는바 아니다. 백보 양보하여 그것을 통해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민주화실험을 마무리하는 정권’으로서 ‘87년 체제’를 그들 나름의 민주주의로 완성시키고자 하는 ‘진정성’에 대해 굳이 왈가왈부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여론과, 그 실현 가능성 여부와 관계없이 개헌을 발의하여 논의를 추진하겠다면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데, 그것은 수구정치세력이 우려하듯 혹시 이번 제안이 자신들의 집권가능성을 불투명하게 만들 수도 있는 어떤 정치적 술수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개헌 제안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이유

    그 이유는 이러한 시도가 신자유주의 글로벌시대가 양산하고 있는 비대칭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관계들로부터 발생하는 적대와 갈등을 대선국면 속에서 형해화시키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보수대연합’의 세몰이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불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개헌논의가 한편으로 혼돈의 상황에 처해 있는 자유주의 정치세력들과 집권의 꿈에 부풀어 있는 수구정치세력들의 양강 구도를 지역주의를 매개로 고착, 심화시키면서 대중에 대한 그들의 정치적 구심력을 강화시키는 계기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 진보정치세력들과 대중이 전면에 나서 투쟁하고 있는 한미FTA 반대투쟁, 개정노사관계 로드맵의 문제점 등을 고스란히 집어삼키는 또 다른 블랙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와중에서 진보정치의 가능성은 더욱 약화되고 대중의 고통스런 삶은 나아지기보다 확대재생산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양식 있는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연임제 개헌발의의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노무현 정권이, 나아가 ‘87년 체제’의 내용적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역사적 성격과 위상을 이미 상실한 노무현정권이 대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개헌발의를 감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의 배후에는 그들의 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바로 이러한 객관적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개헌논쟁은 격화되면 될수록 그들 수구 및 자유주의 보수정치세력, 특히 노무현 정권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꽃놀이 패’이다.

    이처럼 본말전도와 좌충우돌이 혼재되어 있는 이번 개헌 제안, 그 내용 없는 근거에 대해 재삼 숙고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상황을 진보정치세력들은 어떠한 카드로 돌파할 것인가. 진보정치세력이 이러한 ‘신자유주의 보수연합’이 추구하는 ‘원 포인트 세몰이 정치전략’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대중에 접근하여 그들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는 대안과 의제, 투쟁전략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의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과제로 다가오는 것도 이러한 현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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