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ICBM은 긴장고조의 전주곡
    [국방칼럼] 한반도와 세계적인 재군사화의 흐름
        2022년 04월 04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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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대륙간탄도탄(ICBM) 시험 발사를 재개했다. 지난 1월 20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김정은 총비서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위협”을 비판하며, “신뢰구축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곧이어 북한이 같은 달 30일에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인 ‘화성 12형(IRBM)’을 4년 4개월만에 검수발사하고, 정찰위성 개발을 명분으로 2월 27일과 3월 5일에 걸쳐 ‘화성 17형’ 개발시험을 단행함에 따라 북한의 ICBM 발사 재개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3월 16일 발사를 비공개한 북한은 3월 24일 ICBM을 발사한 사실을 다음날인 25일에 공식 확인함으로써 그동안 중지해왔던 ICBM 시험발사를 3년 11개월만에 단행하게 되었다.

    북한 ICBM 역사는 2017년 ‘3.18혁명’, ‘7.4혁명’과 ‘7.28의 기적적 승리’ 그리고 ‘11월 대사변’으로 집약된다. 북한은 2017년 3월 18일 신형 고출력 액체엔진 지상분출시험에 성공한 이후 4월 4일부터 네 차례 도전 끝에 5월 14일 괌과 사이판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 12형’ 시험발사에 성공하였다.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을 겨냥하여 ‘화성 14형’ 시험발사를 단행한 북한은 7월 28일 재차 성공함으로써,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사상 처음으로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후 8월과 9월 2차례에 걸쳐 ‘화성 12형’을 시험발사한 북한은 그해 11월 28일 미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 13,000Km의 ‘화성 15형’ 발사 성공과 함께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그들이 ‘특대사변’이라고 일컫는 2차례의 북미정상회담에 나섰다.

    *2019년 10월 북한 TV에서 방영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자력갱생위업을 주제로 한 기록영화 장면이다. 김정은의 주요 업적으로 핵무력 완성을 소개하고 있다. 3.18혁명과 7.4혁명이 중요하다(엔케이뉴스).

    북미 스톡홀름 실무협상이 결렬된 직후인 2019년 10월 9일 조선중앙방송이 자력갱생을 주제로 한 기록영화를 상영한 것은 북한의 선택이 조만간 바뀌게 될 것임을 강력하게 암시하는 것이었다. 2019년 12월 조선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강력한 정치외교적, 군사적 공세로 정면돌파전의 승리를 담보할 것이다.”라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채택하였다. 북미협상 기간 동안 핵무력 완성의 기념비적 성과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 왔던 노동신문도 2020년 7월 4일 ‘화성 14형’ 시험발사 3주년을 맞아 ‘7.4혁명’을 북한의 전략적 지위를 높인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높이 평가하고,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7.4혁명 정신으로 우리 식 사회주의의 전진 발전을 가속화”할 것을 촉구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1년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조성된 정세 속의 현실은 군력 강화에서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함으로써 완성된 핵무력의 ‘고도화사업’을 정당화했다. 북한의 ICBM 시험발사 재개는 북한이 미국의 제재를 극복하기 위해 자력갱생에 의한 정면돌파를 지속 중에 있고, 그에 따라 핵과 미사일의 지속적인 발전에 주력하는 군비증강노선에서 여전히 이탈할 생각이 없음을 보여준다.

    북한의 이번 ICBM 시험발사 재개는 2017년 ‘화염과 분노’ 국면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화성 17형’ 시험발사 성공에 의문부호가 제기됨에 따라, 이 논란으로 인해 6,248.5Km까지 고도 상승하여 비행한 북한 ICBM에 대한 신뢰성에 다소 금이 갔다. ‘화성 17형’의 가장 큰 특징은 현존하는 이동식발사차량(TEL)에 기반한 액체연료엔진 미사일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한다는 점이다. 이같은 이유로 서구언론들은 2020년 10월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 첫 모습을 드러냈던 이 미상의 미사일에 ‘괴물(Monster)’이라는 별칭을 붙여준 바 있다. 로이터통신 서울 주재 특파원인 조쉬 스미스 선임기자는 일본 정부 분석을 토대로 이번 북한 미사일의 실제 사정거리가 조선노동당 8차 대회에서 목표한 대로 적어도 15,000Km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그렇다면 이 미사일은 남미 일부와 남극 일부를 제외한 세계 전역을 사정권역으로 하게 되는 것이며, 북한은 이번 시험발사로 자국 ICBM이 미국 미니트맨 3(13,000~14,000Km), 중국 둥펑 5(12,000~15,000Km), 러시아 R36(10,200~16,000Km)에 버금가는 사거리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해낸 것이 된다.

    북한은 발사 다음 날인 25일에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약 12분 분량의 ‘화성 17형’ 시험발사에 관한 기념영상을 방영했다. 그런데 이 영상을 분석한 전문가들이 조선중앙방송이 공개한 영상에는 발사 당일 촬영한 영상과 다른 날짜에 촬영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장면들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0개 이상의 소형 지구관측위성을 운용하는 ‘Planet Labs PBC’로부터 제공받은 사진과 조선중앙방송 영상을 직접 비교 분석한 엔케이뉴스 콜린 쥐르크 수석분석기자에 따르면 북한이 공개한 영상에는 위성사진과 영상 간에 불일치되는 장면들과 영상 속에서도 서로 불일치되는 지점들이 여러 차례 나타난다.

    *3월 25일 방영한 북한의 기록영화에서 김정은이 전용 버스에서 미사일 시험발사를 현지지도하고 있다. 이 두 장면에서 버스 창 밖에 보이는 노란색 구조물들의 위치가 서로 다르고, 한 장면에는 바닥에 노란색 선이 그어져 있으나, 다른 장면에는 노란선이 없다. (엔케이뉴스 콜린 쥐르크)

    예컨대 태양고도와 방위각이 시시각각 변함에도 불구하고 오후 2시 30분 방위각(217°)에 걸쳐 있어야 할 TEL(이동식발사차량) 그림자가 오전 9시 30분 방위각(120°)에 걸쳐 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면, 우리는 3월 24일 오후 2시 34분에 실시된 ‘화성 17형’ 시험발사가 성공했다는 조선중앙통신 보도의 진실성에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북한의 행동을 일종의 기만이나 위장전술로 판단한 국방부는 ‘화성 17형’이 실제 시험발사된 것은 3월 16일 오전이었으며, 이 발사가 실패하자 3월 24일에는 ‘화성 15형 개량형’으로 다시 시험발사한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이 영상이 조작됐다고 해서 북한 미사일 개발능력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 북한은 이번에도 기술적 진보에 성공하여 더 이상 미사일 사거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북한이 내부 선전∙선동을 강화하기 위해 영화라는 매체수단에 관심을 쏟고 있고, 우리 국방부는 영상의 허점을 이용해 대북 심리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이 논란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북한의 ICBM 발사 시점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초강대국들이 세계전략을 전술적인 측면에서 재조정하는 와중이었다는 사실이다. 로버트 블랙윌과 리처드 폰테인 주니어는 블룸버그에 공동 기고한 글에서 미국이 외교와 군사력을 가장 필요한 곳인 인도∙태평양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유럽과 중동에서 더 이상의 심각한 위기가 없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① 미국의 지위가 글로벌 최강국인 이상 미국과 중국의 경쟁무대는 비단 인도∙태평양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② 현재 미국의 임박한 과제는 국가안보자원의 투입을 확대하고, 실제 투입에 있어서도 인도∙태평양, 유럽, 중동 이 세 축의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며, ③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미국의 ‘아시아 회귀(피벗)’ 전략이 당장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지만, 중국이 미국 안보의 가장 큰 도전국이며, 인도∙태평양 지역이 21세기 미국의 운명을 좌우할 지역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는 미국이 지금 당장 러시아를 압박하는 것이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며,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을 결집시키는 것이 중국에 대해서도 똑같은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다.

    반면에 스리랑카 전직 외교관인 다얀 자야틸레카는 러시아 싱크탱크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글로벌 패권을 재건하려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며, 그 결과 러시아가 약해진다면, 미국은 여세를 몰아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연계를 끊어 두 국가에 대해 전략적 우위에 서는 것을 바라고 있다고 말한 그는 러시아가 약해지면 중국의 입지도 약해지는 연쇄효과가 일어날 수밖에 없으므로, 중국과 러시아 양국에게 중∙소 분열의 전철을 밟지 말고, 동반자관계를 지속할 것을 조언했다. 이처럼 강대국들이 서로 칼을 겨누는 와중에 북한 문제가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로 부각되기는 쉽지 않다.

    세 번째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ICBM 발사 재개 시나리오는 국내외 일부 분석가들이 예견했던 사안이었으나, 이에 대한 한∙미 대응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틀에 박힌 대책의 재현이었다. 한∙미가 각각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한국군이 맞대응 차원에서 미사일을 쏘고, 미국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결의안을 제출하고, 미 재무부가 추가 제재 조치를 단행하는 등의 움직임들은 우리가 그동안 익히 봐왔던 상투적인 대북 대응 패턴에 불과하다.

    이것은 미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나타낸다. 최근 미 국무부 브리핑에서도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의 대화가 열려있다는 말만 반복해서 하고 있을 뿐, 의지를 담은 실질적인 조치는 일절 취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국가안보전략의 핵심인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ec)’도 북한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통합 억제’는 경제제재, 국제적 비난 또는 법적 처벌과 같은 비군사적 수단을 기존 억제전략의 핵심인 군사력 못지 않게 중요시한다. 현재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미국에서 북한이 잊힌 존재라는 것도 우려스럽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아시아안보담당 기자인 알라스테어 게일은 자사 신문이 북한의 ICBM 발사 재개를 20면에 게재한 것을 언급하며, 북한의 주요한 미사일 발사가 월스트리트저널 1면에 보도된 지 꽤 오래 되었다는 의미심장한 소감을 남겼다. 엔케이뉴스가 지난 3월 25일 미국의 상위 20개 뉴스사이트를 조사한 결과에도, 북한의 ICBM 발사 기사를 초기화면에 배치한 사이트는 8개에 불과했고, 이들마저도 관련 기사를 눈에 잘 띄는 화면 상단에는 배치하지 않았다. 현재 미국언론의 국제문제에 대한 주요한 관심은 온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쏠려 있기 때문에 북한의 행동이 미국언론의 주목을 받기가 어려운 환경이긴 하나, 포털사이트 검색 트렌드를 통해서도 확인돼듯이 2017년을 기점으로 미국인들의 북한에 대한 관심이 대폭 낮아진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5년간 미국의 ‘North Korea’ 검색어 추이를 조사해 보았다. 2017년 4월과 2017년 8월을 최고점으로 검색량은 완연한 하락세이다(구글검색트렌드).

    러시아와 중국은 계속해서 유엔안보리의 추가적인 대북 제재나 규탄 성명 채택에서 북한을 보호하고 있다. 북한은 현재 벨라루스, 시리아, 에리트레아와 더불어 러시아에 적대적인 유엔 결의안 채택에 반대표를 행사한 국가이다. 루디거 프랑크 비엔나대학 교수는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측면에서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러시아 침공 직후인 2월 26일 조선중앙통신은 “새로운 정세에서 조중 친선 협력 관계를 꾸준히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준비가 돼 있다”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서한 내용을 공개했다. 북한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미국이 동맹을 규합하는 것에 발맞춰 북방삼각관계도 복원될 기미가 보인다.

    2014년 대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았던 한국이 이번 제재에 동참한 것은 미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성과이다. 이 승리가 내심 ‘한∙미∙일 협력’으로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미국과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중국은 이례적으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의 취임 전 전화통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것은 미∙중이 현재 한국을 둘러싼 남방삼각관계의 복원과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러는 모두 한국을 미 동맹국들 중에서 ‘약한 고리(WEAK LINK)’로 인식하는 공통분모가 있다. 미국은 한국을 자국동맹체제의 ‘약한 고리’로, 중국은 한국을 미국의 중국포위망전략의 ‘약한 고리’로, 러시아는 한국을 미국의 대러연합전선의 ‘약한 고리’로 이해한다. 미국은 한국이 자국의 동맹이면서도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견해를 가져왔고, 중국과 러시아는 반대진영에 속해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적대적이지 않고, 실용적인 한국에 주목해 왔다. 예컨대 한국은 이념과 가치를 따지지 않는 자본의 논리에 충실함으로써 오늘의 번영을 가져왔고, 국가 최우선 과제인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일 뿐만 아니라 상대진영 국가들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점이 현재 한국이 처한 독특한 전략적, 경제적 상황을 만들어 냈다.

    미 의회 의원들은 중국과의 주도권 경쟁에서 한국이 협력자로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한국을 중국과의 경쟁에 끌어들일 수 있는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와 일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과 일본, 호주 등으로 하여금 미국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안보전략인 ‘통합억제’는 비군사적 수단과 더불어 동맹을 포함하여 안보이익을 공유하는 국가 간의 유연하고 자발적인 협력체계(파트너십) 구축과 협력을 강조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미국의 주요 관심사는 한∙일 관계의 개선이다. 미국의회조사처(CRS)의 한미관계보고서는 한∙일 관계가 증진될 경우, 미국에게 ① 동아시아지역 안정, ② 북한정책 조정, ③ 중국의 전략적 도전에 대한 대처라는 세 가지 측면의 이익을 안겨 줄 것으로 판단한다. 미 의원들은 한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면 2018년 이후 크게 악화된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데 힘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도 전망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5월 일본을 방문하여 쿼드 국가지도자들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며, 그 시기에 새 대통령이 취임할 예정인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한다는 기사를 이미 2월 2일에 내보낸 바 있다. 공교롭게도 2월 11일 바이든 행정부는 새로운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열 가지 핵심사업계획이 담겨 있다. 그중 하나가 한∙미∙일 3각 협력 확대, 특히 한국과 일본의 긴밀한 협력이다. 따라서 윤석열 차기 행정부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겠다는 것은 미국의 대중 포위망에 동참하기 위해 한∙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말과 같다.

    *중국 관련 핵심 이슈에 대한 동맹국들의 주요 입장을 2021년 1월에 정리한 도표이다. 미국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 한국이 특별히 눈에 띤다(브루킹스연구소 린지 포드/제임스 골드가이어).

    하지만 미∙중 경쟁에 따른 미국의 대중무역제한 조치로 인해 중국 경제와 높은 연관성을 가진 한국경제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미의회조사처도 인정하는 바이고, 2020년 한국의 미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637억 달러에 이르는 반면, 미국의 한국에 대한 FDI는 절반 수준인 339억 달러로 월등한 격차를 보이고 있는 데다가, 작년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해 한국기업들이 미국 첨단산업에 25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등 한국은 이미 다른 방식으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 기여해 왔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교안보분과 김성한 간사를 위시한 정책자문그룹은 이러한 사실들을 외면하고, 미국의 전략에 전적으로 동조할 목적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이른바 가치외교를 흉내내어, 이익외교는 후진적이고, 가치외교는 선진적이라는 기상천외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전략적 모호성’에 대한 대안으로 ‘전략적 선명성’을, 안미경중(安美經中)에 대한 대안으로 안미경미(安美經美)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미∙중을 적과 동지로 구분하는 이분법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의 논리가 이와 같이 상충되는 이유는 이 그룹이 한미동맹에 매우 충실한 집단이기도 하지만, 이들 또한 한국이 미국에 확연하게 기울어진 노선을 취할 경우, 한국이 입게 될 막대한 유무형의 손실을 상쇄시킬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비판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가치(정신승리)를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 설명 과정에서 1998년 10월 8일 발표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거론했던 이유는 이 선언에서 한∙일 양국이 서로를 “선린우호협력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교안보분과 김태효 위원의 주장대로라면 차기 행정부는 미국에 이어 일본을 긴밀한 안보협력파트너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김대중이 1971년 대통령선거 당시부터 주장한 ‘4대국 안전보장론’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하다. ‘4대국 안전보장론’은 1동맹(미)∙3우호(중∙일∙러) 개념으로써 주변국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수립함으로써 한반도문제를 풀어내려 했던 구상이다. ‘4대국 안전보장론’의 기본 취지를 외면하고, 오직 김대중∙오부치 선언만을 차용해서 미∙일에 밀착하는 논거로 이용하려는 차기 행정부 외교노선은 한반도를 북방삼각관계와 남방삼각관계의 대립과 갈등의 장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미국과 북한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촉진자이자, 중개자로서 한국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나, 아쉽게도 차기 행정부의 북한정책은 억제에 기반한 대북적대정책의 부활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안보는 ‘미국의 핵우산을 통한 확장억제의 지속’과 ‘한국의 재래식 전력 강화’라는 동맹체제에 입각해 한∙미의 역할분담이 이루어져 왔다. 확장억제는 미국이 적대국의 핵공격으로부터 동맹국까지 확장하여 보호하는 것을 말하지만, 동맹국들은 미국의 확장억제의 신뢰성에 대해 지속적인 의문을 제기해 오기도 했다. 문재인 행정부는 한미동맹에 기반한 자주국방의 추진과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병행함으로써 확장억제에 대한 불안감을 보완하려 했다. 이 정책의 문제점은 ① 북한과의 군비경쟁이 가속화됨으로써 안보딜레마가 일어났으며, ② 한국의 강화된 군사력이 미국의 이익에 복무할 위험성 또한 커졌고, ③ 미국의 제재에 막히는 순간 대화와 협력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석열 차기 행정부의 외교안보그룹은 핵공유를 통해 미국의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제고하려 한다. 이 방안의 문제점은 첫째, 핵무기는 문재인 행정부의 핵추진잠수함 도입이 미국에 의해 좌절되었듯이, 미국이 한국에 설정해 놓은 레드라인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비확산정책은 핵공유가 아니라 NPT체제 유지이며, 미국의 핵전략은 핵폭격기와 핵잠수함으로 상시 원거리타격이 가능한 3축체계가 핵심일 뿐, 적대국의 우선적인 타격목표로 전락해 작전의 위험부담만 줄 핵공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 자주국방과 마찬가지로 핵공유는 남북한 간의 핵군비경쟁으로 발전해 한반도를 새로운 차원의 안보딜레마에 처하게 할 것이다. 이미 북한은 2021년 초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를 통해 핵무기의 전술무기화를 위해 ‘신형전술로케트’와 ‘중장거리 순항미싸일’을 비롯한 첨단핵전술무기들을 개발했다고 밝혔고, 앞으로도 전술핵무기들을 더 발전시켜 개발할 것임을 공언한 바 있다. 만약 북한이 일곱 번째 핵실험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저위력 핵무기’가 될 공산이 크다.

    안키트 판다(카네기국제평화기금)는 전술핵무기가 위험한 이유로 남북한 재래식전력 격차가 상당하기 때문에 북한이 위기 발생 시 각 지역에 전술핵무기를 분산 배치한 후, 김정은 총비서의 명령 권한을 현장지휘관에게 위임하게 됨에 따라 핵사용 가능성이 증폭될 것을 꼽고 있다. 따라서 핵공유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소규모 충돌에도 북한이 핵을 사용케 할 유인이 될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나자 아베 신조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 일부도 ‘핵공유’를 들고 나왔다. 산케이신문과 후지티비의 공동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20.3%가 “핵공유를 위해 논의해야 한다”, 62.8%가 “핵공유는 해서는 안되지만 논의는 해야 한다”, 15%가 “논의해서는 안된다”고 응답했다. 응답 결과 자민당과 일본유신회 지지층은 상대적으로 우호적, 입헌민주당과 공명당 지지층은 비판적이며, 남성이 여성보다 우호적, 40대와 60대 남성이 보다 우호적, 30세 미만과 60대 여성에서 보다 비판적이었다(일본야후뉴스).

    미국이 3월 3일 LGM-30G형 미니트맨 3 ICBM의 시험발사를 연기한 것도 마찬가지로 러시아와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비행금지구역 지정에 설정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도 러시아의 핵전력 준비 태세 강화를 의식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북한이 모를 리 없다는 점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길은 더 험난해지게 되었다. 3월 23일자 아시아타임스가 ‘Ka Pa Sa’라는 이름의 북한∙미얀마 미사일기술협력의 실상을 보도한 기사는 제재로 북한의 생각을 바꾸게 한다는 것이 그저 희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미 미국의 제재 아래에서 터득한 북한의 생존방식은 이란∙러시아 등 많은 나라의 선례가 되고 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의 이번 ‘선제타격’을 떠오르게 하는 강경 발언은 ‘마커스 갈로스카스’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북한 담당 국가정보분석관(NIO)이 언급한 것처럼 ‘미친 놈’, ‘쓰레기’ 같은 북한의 격한 응답을 받는 것이 국방부장관 임기 동안의 최대 치적이 되는 한국의 웃픈 현실을 보여준다. 차기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국방부와 군의 관료적 행태로 이해되지만 이런 발언의 부담은 차기 행정부가 고스란히 떠안아야만 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북한 노동신문의 보도는 선거 결과만을 간략히 전했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기사와 크게 대비가 된다. 이는 북한이 윤석열 당선인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핵실험과 ICBM 시험 발사를 스스로 중지했고, 후속 절차를 미국과 협의하려 했으나 미국이 이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관점에서 북한은 ICBM 모라토리엄을 파기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중지했던 발사를 다시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전략국가의 지위를 확고히 차지하고 국제정치정세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김정은 총비서의 발언 명판이 미∙중∙러 정상들과의 회담 사진과 나란히 평양혁명박물관에 걸려 있을 정도로, 전략국가로서의 도약이 김정은 총비서 집권기 최대 성과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의 무관심한 태도를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북한의 ICBM 발사가 서막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그래서 타당하다. 세계적인 재군사화 흐름에서 한반도만 예외가 되기는 힘들다.

    * <국방칼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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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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