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 노동자 차윤석, 은행 털다
    By tathata
        2007년 01월 10일 09: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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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은행 관계자 :   “상당히 무례하시군요. 도대체 뭘 집어가겠다는 거예요?”

    법원집행관 :  “돈이요. 강제집행이란 것이 원래 그렇습니다.”

    하나은행 관계자 : “저희 변호사에게 확인해보겠습니다. (전화를 걸어) 갑자기 집행관이라는 사람들이 와서는 돈을 막 가지고 간대요. 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요…영업에 방해도 되고, 정말 줘야 하는 겁니까?”

    집행관 : “판결주문대로 집행 나왔습니다. 위임받은 집행관은 집행함으로써 직무를 수행합니다. 집행금액을 채권자에게 전해줘야 합니다.”

    10일 오후 2시 하나은행 일산 후곡지점. 의정부 지방법원 고양지원의 집행관 3명이 은행에 갑자기 들이닥쳤다. 지난해 <레디앙> ‘희망시리즈’에 소개된 차윤석씨의 밀린 급여를 집행관이 직접 받아내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해 9월에 해고무효 가처분 소송에 승소한 데 이어, 12월에는 임금지급 가처분 소송에도 승소했다. 임금지급 가처분 소송에서 하나은행은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의 노무관리를 자문하는 법무법인 ‘지성’의 변호사 5명을 선임해 대응했으며, 차씨의 변호인으로는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참터’ 법률사무소의 강문대 변호사가 맡았다. 대형로펌의 변호사 다섯 명과의 싸움에서 강 변호사가 승소한 것.

       
    ▲ 법원 집행관(사진 왼쪽)이 강제집행을 하려하자 하나은행 관계자들이 반발하고 있는 모습.
     
     

    법원은 차 씨에게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지급하지 못한 급여를 지급할 것을 명령했으나, 하나은행은 지난 9일까지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레디앙>12월 27일자 기사 -“단독투쟁 하지만 단독평화는 없다” 참조)

    집행관의 갑작스런 방문에 놀란 하나은행 후곡지점 관계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일단 앉아서 애기 좀 합시다”며 집행관을 만류했고, 1시간 반 동안의 ‘실랑이’ 끝에 차 씨에게 6개월간 밀린 급여의 기본급인 1,200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했다. 이날 현장에는 차씨가 선임한 ‘증인’으로 민주노동당 고양시지역위원회 최인엽 당원과 배현철 당원이 나와 이 모든 상황을 지켜봤다.

    그는 지금까지 직접 금고 문을 열어 돈 다발을 가방에 넣은 상상을 했으나, 금고 접근까지는 하나은행이 허락하지 않았다. 돈을 가방에 넣은 차씨를 보고, 증인으로 온 최인엽 당원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전태일 열사 묘지 앞에서 다짐(?)

    최씨의 말에 따르면 고양시지역위원회는 지난 3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시무식을 열었는데, 차윤석씨는 나중에 혼자 전태일 열사의 묘지 앞에서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이 씌여진 종이를 불에 붙여 날려 보냈다고 한다. “그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급기야 이렇게 은행을 ‘털어서’ 급여를 챙겼다”는 것이 최인엽씨의 말.

    차씨가 강제집행을 결행하게 된 데에는 법원의 가처분 승소 판정도 있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가 첫 번째 부당해고를 당하고 노동부가 복직 판정을 내렸을 때, 하나은행은 그의 은행계좌로 밀린 급여를 입금했다.

    그러나 하나은행은 그가 하나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돈의 이자를 갚지 못하자 통장에서 곧바로 돈을 빼내갔다. 그는 “부당해고가 아니었으면 당연히 갚을 수 있는 돈이었다”며 “이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하나은행이 또다시 이자를 빼내가기 전에 먼저 강제집행으로 ‘선수’를 쳤던 것이다. 돈가방을 받아든 그는 “이 돈으로 올 겨울은 날 수 있겠다”고 말했다.

       
    ▲ 차윤석씨가 하나은행 일산 후곡지점으로부터 강제집행으로 받아낸 밀린 임금.
     

    지금까지 부당해고로 인해 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법원의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생활고에 시달려왔다. 그처럼 자신의 직장에 ‘쳐들어가’ 돈을 직접 챙겨오는 일은 극히 이례적인 사례. 이는 그의 직장이 현금을 쌓아놓고 일을 하는 은행이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체불임금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지만, 꼭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법원에 부당해고 가처분 신청을 하고 승소하게 되면, 곧바로 임금지급 가처분 신청을 합니다. 그것도 승소하게 되면 법원의 집행관에게 강제집행을 신청해서 직접 노동자가 돈을 가져오면 돼요.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을 노동자들이 알면 자신의 권리를 직접 찾을 수 있어요.”

    결혼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싸운다

    그러나, 강제집행이라는 극단처방이 그의 원직복직에 혹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하나은행노조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그는 오로지 ‘단독 투쟁’을 해야 하는 처지다. 그래서 그의 투쟁은 법적 대응이 주(主)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 하나은행은 그에게 사무지원부로의 복직시켜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여전히 이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 이에 대해 그는 개의치 않는 눈치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라며 “자세한 계획은 아직 밝히기 이르다”고 답했다. 

    “예전에 어음교환실에서 제가 과장으로 일할 때, 같은 부서의 직원이 퇴직하면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야근근무를 시키면서 시간외수당도 지급하지 않는 하나은행에는 두 번 다시 발을 들어놓지 않겠다’고. 그 당시에 곁에서 도와주지 못한 게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한번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의 60%밖에 지급받지 못한 결혼 적령기의 남자 직원과 같이 일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에게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결혼을 하고 싶어도 이 월급으로는 할 수가 없다’며 늘 똑같은 메뉴의 점심만 먹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싸움에 이겨서 그런 직원들이 더 이상 하나은행에는 없도록 할 것입니다. 시간외수당을 임금 소멸시효에 관계없이 전 직원에게 지급하고, 하나은행의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될 때까지 싸울 겁니다.”

    어찌 보면 무모하다 싶은 그의 도전이지만, 그는 그것이 옳은 일이라 믿기 때문에 싸우고 있었다.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지 않습니까"

    그는 요즘 민주노동당 고양시위원회에서 노동상담 활동을 당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생활정보지인 <벼룩시장>에는 두 달 전부터 고양시위원회가 주최하는 노동상담 광고가 무료로 나가고 있다. 공익성이 있는 광고라는 이유로 광고비를 일절 받지 않는다고 한다. 생활정보지를 택한 이유는 각종 중소영세 사업장에 취업하기를 희망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보는 신문이기 때문.

    “하루에 두 통 이상씩 노동상담 전화가 걸려와요. 해고나 임금체불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그건 이렇게 하면 됩니다’라고 조언해주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나중에는 스스로 포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권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히 지켜야 합니다.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지 않습니까.”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지 않은 현실에서 그는 ‘평등해지기 위해’ 하나은행이라는 골리앗과 노동법 하나만을 가지고 싸우고 있다. 그리고 노동법을 뛰어넘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

    기자는 또다시 물었다.
    “정말 하나은행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될 수 있을까요?”
    그는 짧게 답했다.
    “가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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