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파괴와 인권파괴의 연계,
    이 야누스의 비극은 어떻게 일어나나?
    [책소개]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조효제/ 창비)
        2022년 04월 02일 09: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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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가 들끓고 있다. 한쪽에 기후-생태 위기가 있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불평등-인권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팎으로 맞물린 환경위기와 인권위기의 연계성을 탐색하고 이 악순환을 끊어낼 사회-생태 전환의 길을 제시하는 인권학자 조효제의 신간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가 출간되었다.

    우리는 인권과 환경을 서로 다른 영역의 문제로 다루는 칸막이식 사고방식에 익숙하다. 하지만 인류의 풍족한 삶을 위한 지구행성의 총체적 파괴(에코사이드)는 자연의 역습으로 인한 인간 말살(제노사이드)을 낳고 있다. 저자는 이제 환경과 인권의 심층적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구행성의 정의’라는 큰 틀에서 인권·사회 정의, 기후·환경·생태 정의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작 『탄소 사회의 종말』(2020)이 인권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분석했다면 이번에 선보이는 신간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는 한발 더 나아가 기후-생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전환의 아이디어를 종합적으로 제시한다.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 인권 개념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제안은 특히 이목을 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서 인간의 권리를 과감하게 축소하되 비인간 존재까지 포괄하도록 자연의 권리는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금의 위기 해소는 개별 제도를 손보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불가능하고, 사회경제 시스템의 대전환과 이후의 전망을 일관된 서사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안도 덧붙인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대전환의 결단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생태-사회 전환뿐이다. 사회·인권·정의 담론과 생태·환경·녹색 담론을 연결할 든든한 가교가 되어줄 이 책은 환경과 인권 문제를 함께 놓고 고민하는 독자들을 거대한 대화의 장으로 초대할 것이다.

    환경파괴와 인권파괴의 연계,
    이 야누스의 비극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지구행성 전체는 하나의 단위로 작동되고 있기에 국경선에 한정해서는 환경위기나 인권침해의 문제를 온전히 돌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환경파괴와 인권파괴는 한 몸에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처럼 서로 연계된 비극으로 나타난다. 1장에서는 역사적 이해와 세계적인 조망 속에서 환경-인권 위기의 사례를 소개한다. 발전지향적인 기업활동과 경제활동은 언제 어디에서 환경-인권 파괴를 일으킬지 예측할 수 없는 시한폭탄이다. 1991년 구미의 한 공장에서 몰래 배출한 페놀 원액이 수백만 주민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사태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전쟁은 또 어떤가.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이 전개한 ‘초토화작전’은 적을 절멸시키기 위해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환경파괴도 불사했다.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쉽게 ‘환경전쟁’ ‘환경폭력’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환경악화가 공동체의 회복을 방해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며, 이것이 촉발한 새로운 갈등과 폭력이 또다시 대규모의 인명 손실을 낳는 연쇄반응에 주목한다. 위기가 벌어질 때마다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은 여성과 어린이, 난민 등 사회적 사각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세계시민의 힘으로 에코사이드에 강력한 제동을 걸자

    저자는 어렸을 때 우연히 접한 사진 한 장의 기억을 떠올린다. 미군의 공중폭격을 피해 비명을 지르며 알몸으로 뛰어가는 베트남 소녀의 사진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저자는 이 사진이 환경파괴와 인권파괴를 함께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논쟁은 미군의 고엽제 살포로 인해 극심한 환경파괴와 인명피해를 동시에 겪은 베트남전쟁에서 촉발됐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베트남전쟁을 경유해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논쟁의 역사적 전개를 풀어내고 오늘날 두 개념이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 소개한다.

    확장된 개념의 에코사이드는 자연파괴를 넘어 자연의 다양성을 없애는 행위고, 확장된 개념의 제노사이드는 인간학살을 넘어 인간집단의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일소하는 행위다. 이렇게 인간과 비인간의 다양성을 말끔히 정리하여 일원성의 세상을 건설하려는 시도가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연계’ 현상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이 폭력적 연계 현상이 인권운동·연구, 환경운동·연구를 한자리에서 논의할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고 말한다.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범죄를 제대로 금지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분야를 막론하고 함께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저자는 에코사이드를 국제 범죄로 격상하려는 시도와, 환경을 파괴한 기업 또는 정부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처벌하려는 움직임을 자세히 소개한다. 에코사이드 방지를 위해 세계시민들이 힘을 모아 기업과 정부를 감시한다면 단단히 결속된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이중 범죄’의 매듭을 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도 전한다.

    도래한 인류세, 자연에게 권리를 주자

    산업문명이 익숙한 우리는 이런 생각에 젖어 있다. “자연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인간부터 살고 봐야지.” 과연 그럴까? 저자는 우리가 인류세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인간이 극단적으로 환경에 개입한 결과 기록적 폭염이나 폭우, 코로나19 팬데믹 등 자연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3장에서 저자는 자연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가 칼로 자르듯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 인류세의 특징이라고 설명하며, 우리 시대의 인권을 새롭게 상상하고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의 권리가 존중될 때 인권도 보호될 수 있고, 인권을 지켜야만 자연의 권리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인권문제와 환경문제가 동시에 발생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건강한 환경을 누릴 인간의 권리, 즉 ‘건강한 환경권’이 인권의 핵심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꼬집는다. 이제는 환경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권리체계, 즉 ‘자연의 권리’ 개념을 구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가?” “미래세대와 자연을 위해 자기 욕구를 어떻게 절제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인권의 자기 제한 문제가 인류세의 힘든 도전이 되리라 예상한다. 하지만 당면한 위기 해소가 시급한 만큼, 인권 개념의 재조정 및 비인간 생명체에게 법인격을 부여하는 ‘자연의 권리’ 확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이 논의를 통해 인간과 자연이 ‘생명’으로 연결된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일깨워야 한다는 것이 3장의 결론이다.

    남은 선택은 사회-생태 전환뿐, 공존을 위한 지도를 그리는 법

    그렇다면 인간과 자연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4장은 생명의 공존을 위해 현재의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대전환하기 위한 복안을 담고 있다. 한계에 부딪힌 사회경제 시스템의 물질대사 방식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대안 시스템으로 나아가려는 사회-생태 전환은 아직 인류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어떤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고 우리 세대에서 완수할 수도 없는 기획이다. 저자는 사회-생태 전환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활성화해 시민들의 활발한 대화를 촉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전환의 방향으로 첫걸음을 떼는 것이 현세대가 미래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유산이라는 생각에서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 저자가 제시한 전환의 스케치북을 펼쳐보자. 여기에는 석장의 그림이 들어 있다. 구조와 패러다임을 다루는 ‘전환의 거시적 방향성’, 제도와 정책을 다루는 ‘전환의 중간 범위’, 개인과 집단의 역할을 다루는 ‘전환의 미시적 실천’이 그것이다. 저자는 인권사회학의 관점에서 각 단계마다 인권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전환을 위해 어떤 가치관이 필요한지 언급한다. 기존의 관점을 바꾸어 충족의 경제와 공존의 세상을 지향하자고 마음을 모은다면 사회-생태 전환의 길로 충분히 나아갈 수 있음을 설득하고자 했다. 광범위한 여론의 압력으로 압핀의 머리를 힘 있게 눌러줄 때, 뾰족한 압핀의 침이 기존의 패러다임과 제도를 정확히 찔러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는 인권을 말할 때 자연을 배제하고, 자연을 말할 때 인간을 뒤에 놓게 되는 익숙한 딜레마를 명쾌하게 해소하는 책이다. 인권연구에 평생을 몰두한 저자는 침착하고 설득력 있는 어조로 우리가 소수자에게 관심을 가질 때 환경위기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평등과 다양성을 추구해야만 자연의 권리를 존중하는 마음도 가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인권은 자연 착취로 얻어낸 성장의 풍요가 아니라 멈추어 주변을 돌아보는 시민의 힘, 그리고 ‘자연에게도 권리가 있다면…’ 하고 끊임없이 가정 이후의 세계를 그려보는 시민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다. 그 힘으로 환경위기에 맞서자는 저자 조효제의 세심하고도 결연한 메시지는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환경위기 앞에서 갈 길을 잃은 독자들에게 그 어떤 연설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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