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개헌 발의되면 어떻게 하지?
        2007년 01월 10일 04: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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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응 전략의 얼개가 드러나고 있다. 일단 한나라당은 “일체 응하지 않겠다”며 공식적으로 개헌 논의 거부 입장을 밝혔다. 

    겉으론 ‘무대응’이지만 노 대통령의 전략적 의도를 부각시키는 한편 집안 단속의 의미도 있는 계산된 ‘대응’이라는 분석이다. 더불어 노 대통령의 개헌 발의 후 논쟁에 대비한 한나라당의 이후 전략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1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지금은 개헌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며 “일체 개헌 논의에 응하지 않겠다”고 전날 최고중진연석회의 ‘무대응’ 결정을 거듭 천명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도 “노무현 대통령은 개헌을 이야기할 적임자도 아니고 개헌할 시기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 정략적 의도 부각하는 무시 전략

       
      ▲ 한나라당 강재섭(오른쪽)대표 등 지도부가 노무현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1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노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에 한나라당은 ‘반대’가 아니라 ‘무대응’ 입장이다. 찬반을 표명하는 것도 노 대통령의 개헌 의도에 말릴 수 있다는 경계다. 안상수 법사위원장은 이를 보다 노골적으로 ‘무시’ 전략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무시’ 전략의 한편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담긴 정략적인 의도를 집중 공략하는 모양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대선에서 ‘판흔들기를 통한 국면전환 노림수’라고 규정하고 있다.

    강재섭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가슴 속에는 오로지 대선과 집권 연장 음모밖에 없다”며 “국민은 고통스러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실정을 임기 탓, 헌법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노 대통령이 개헌을 발의하겠다는 것은 대선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며 “노 대통령이 자기 임기마저도 정치 무기화할 가능성 농후해졌다”고 지적했다. 

    안상수 의원은 “개헌 정국이 되면 야당이 내놓은 모든 민생 정책이 사라져 노 대통령이 의도한 대로 말려들게 된다”며 “원포인트라고 하지만 헌법 개헌의 물꼬를 터주는 순간 영토 조항, 남북연합 통일헌법 등 국가 정체성까지 건드리는 문제가 거론되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쿠데타적, 반민주적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국민적 합의 없는 대통령 개헌 제안에 대해 무시 전략으로 나가고 개헌안을 발의하면 부결시키면 그뿐”이라며 “말려들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전체 의원 명의의 결의문에서 “노 대통령의 개헌 논의 주장은 국정실패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고 정국 주도권 장악 및 재집권을 위한 국면전환용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며 “국론분열과 국정혼란만 초래하는 정략적 개헌 제안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내 개헌 논의에 ‘가이드라인’ 의미도

    한나라당 지도부의 ‘무대응’ 입장은 집안 단속의 의미도 크다. 당내 일부 의원이나 세력의 ‘섣부른’ 대응에 대한 당 지도부의 ‘가이드라인’인 셈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한나라당은 전날 최고중진연석회의를 통해 개별 의원의 개헌 관련 언론 인터뷰와 방송 출연 등을 일제히 금지했다. 이날 의총에서도 토론 없이 결의문 채택을 강행하려다 일부 의원들의 문제제기로 비공개 토론을 진행했다.

    강재섭 대표는 “대권주자들이 (개헌에 대해) 산발적으로 견해를 이야기하다보면 당이 마치 혼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 제일 먼저 통화하니 모두 생각이 같았다”며 “그건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 개헌은 반대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은 똑같은 이야기인데, 조금 맛을 살리기 위해 다른 말이 들어가게 되면 듣는 사람은 한나라당에 큰 분열 있나 오해할 가능성 있다”며 “한나라당은 메시지가 분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재철 홍보기획위원장은 언론 인터뷰나 방송 출연 금지 결정의 배경과 관련 “한나라당이 빠지면 여당 혼자 (개헌 찬성을) 하기가 쉽지 않아진다”며 “또 한나라당이 빠진 자리를 학자들이 대신할 경우 (개헌 논의가) 전체적으로 식어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의 이같은 결정은 사실상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원희룡, 고진화 의원을 비롯해 당내 소장 개혁파 등 일부 세력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사전에 막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당장 이날 의원총회에서 원희룡, 고진화, 남경필 의원 등이 당의 이러한 방침에 비판적 의견을 제시했다. 또한 당의 금지 방침에도 불구, 원 의원과 고 의원은 이날 오전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개헌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원희룡 의원은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설사 꼼수나 정략적인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익을 최우선 기준으로 놓고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정도로 가면 풀릴 문제”라며 “이걸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제기하니까 안 된다는 (식으로) 우리가 똑같이 정략적인 차원으로 대응하는 게 아닌가”라고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노 대통령의 꼼수라고 해서 우리가 논의를 원천봉쇄하는 것이 결국은 개헌논의가 더욱 정략적으로 흐르게 되는 그런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진화 의원도 SBS 라디오 <김신명숙의 SBS전망대>에서 ‘2단계 개헌’을 주장하며 “1단계 (원포인트) 개헌에 대해 지금 여야가 합의를 하고, 2단계는 다음 정권에서 분명한 일정과 실천 로드맵을 넣어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 의원은 이날 의총에서 당 지도부가 방송 출연 금지를 결정하고 의원 토론을 생략하려 한 것과 관련 “민방위 교육장이냐”, “독재당인가”라며 비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날 의총 비공개 토론에서도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담긴 정략적인 의도는 인정하지만 “개헌 제안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대응 다음은 대선주자 개헌 공약?

    이에 김형오 원내대표는 일부 의원들의 주장에 대해 “큰 차이가 없고, 타이밍의 문제”라며 “한나라당은 상황에 맞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당에서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가겠다”고 정리했다.

    이와 관련 당의 한 주요 관계자는 “당이 개헌 논의에 일체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계속 대응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며 “일주일 정도는 노 대통령에 대한 비난으로 가겠지만 다음 상황이 되면 또 변화에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원희룡 의원이 노 대통령이 개헌을 발의해 국회로 넘어올 경우 현실적으로 “논의할 수 밖에 없다”고 한 주장과 맞닿아 있다.

    한나라당의 향후 전략으로는 우선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국회에서 ‘조기 부결’시켜 개헌 논의를 차단하는 방법이 거론된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안상수 의원이 “부결시키면 그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 정치 상황에 밝은 당의 관계자는 “제1당인 여당이 있는데 상임위를 거치고 공청회도 열면 국회 논의는 지난해질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보다 현실적인 방안으로 한나라당이 차기 정부 개헌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이를 이른바 빅3 등 대선주자들이 대선 공약으로 수용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이미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은 개헌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차기 정부에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대선주자들이 임기를 일정 양보하는 식으로 차기 정부 개헌 공약을 내세운다면, 노 대통령이 선점한 개헌 이슈를 오히려 한나라당이 공세적으로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소장파의 대안 마련 주장도 포괄할 수 있는 방안이다.

    물론 대선주자들이 이를 수용할지 여부가 관건이다. 한 대선주자 캠프의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개헌은 누구든 촉발하는 쪽이 (정략적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며 “개별 주자가 개헌을 공약하기보다 당이 국민 합의를 거쳐 차기 대통령의 과제, 아젠다로 개헌을 공약하면 후보들이 이를 받는 형식을 더 선호한다”고 말해 가능성이 적지 않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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