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면죄부는 안돼,
    윤석열 비판은 정확해야
    [기고]문 5년, 윤 5년과 사회운동③
        2022년 03월 30일 09: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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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기고 글 <또 “윤석열 만납시다”? 대통령 중독에서 벗어나야>

    윤석열 당선자의 지지율이 시작부터 낮게 형성되고 있다. 70~80%대로 시작하는 이전 당선자들과 달리 윤 당선자 지지율은 40%대 중반이다. 압도적 여소야대에서 대통령 지지율까지 낮으면, 초장부터 정부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정부의 무능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그렇다 쳐도, 심각한 문제는 민주당이 예전 상태로 복권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여론 조작은 이번 대선에서도 확인했듯 상상 이상이다. 이재명의 대장동 게이트가 선거 막바지에는 윤석열 게이트로 뒤집혀 선전될 정도였다.

    사회운동은 윤석열 정부를 민주당과 다른 식으로 비판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 진보 감성에 기댄 보수 혐오는 알게 모르게 민주당을 정당화한다. 부지불식 간에 “그래도 민주당이 낫다”라는 정치적 귀결로 나아간다. 당장 6월 지방선거가 목전이다.

    진보 진영은 ‘검찰공화국’이란 프레임으로 윤 정부를 비판한다. 당선자가 검찰총장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한 데다, 선거에서도 법무부 장관 수사 지휘권 폐지, 독자적 예산 편성권, 수사권 일부 복구 등을 공약했으니 있을 법한 우려다. 하지만 검찰개혁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검찰공화국’이란 프레임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검찰공화국은 대통령이 검찰을 지휘하여 정적을 먼지털 듯 수사하고 사법적으로 척결한다는 의미다. 사법지배(juritocracy)의 극단적 사례이자 정치검찰의 ‘끝판왕’ 격이라 하겠다.

    그런데 윤 당선자의 공약이 과연 대통령의 검찰 지배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법무부의 수사 지휘권은 선진국에도 없는 경우가 많다. 존재하더라도 극도로 자제되는 규범 속에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이를 깨버렸다. 자제력이 사라지면 남는 방법은 법으로 강제하는 방법뿐이다. 막대를 반대로 구부릴 수밖에 없다. 예산 편성권 역시 우려가 있지만, 필요성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검찰청이 예산을 편성하면 국회에서 심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도 국세청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는 검찰에 대한 국회 감시가 강화되는 것이다. 몇 년 전 민주당이 주장한 정책이었다. 검찰의 직접 수사 확대 역시 논의가 필요한 내용이다. 지난 1년간 시행된 경찰 수사권 조정에 관한 평가가 그리 좋지 않다. 개선이 필요하는 게 중론이다.

    윤 후보자가 검찰총장 출신이란 점도 검찰공화국 프레임의 한 요소다. 그런데 앞서 본 그의 공약은 검찰을 대통령에게서 이전보다 더 멀리 때어놓는다. 그는 청와대와 검찰 사이 핫라인 역할을 했던 민정수석실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그의 검찰개혁은 여전히 한계적이긴 하다. 독립성이 중립성으로 나아가려면 검사들이 법치에 헌신하게끔 만드는 유인이 더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검찰공화국이 도래한다고 말할 순 없다.

    따져보면, 대통령의 검찰 지배로 문제를 일으킨 건 “민주적 통제”를 명분으로 집권 세력 수사를 집요하게 방해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었다. 친정부 검사를 요직에 배치했고, 장관은 수사 지휘권을 정부 관련 사건에서 남용했다. 고위공직자를 수사하라고 만든 공수처는 살아 있는 권력이 아니라 야권 후보를 무리하게 수사하다 망신을 당했다. 사법을 이용한 지배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었다. 검찰공화국이란 비난은 문재인 정부의 치부를 은폐하는 위장술에 불과하다.

    진보 진영이 윤 정부 비판의 레토릭으로 사용하는 ‘극우’라는 규정도 문제가 있다. ‘극’(extreme)이라는 규정이 붙은 좌‧우파는 특정 집단에 대한 배제를 명시적으로 밝힌다. 극좌파라 불리는 세력은 ‘계급적’ 배제를 명시적 강령으로 가진다. 부르주아 정당의 다원주의적 경쟁은 보장되지 않는다. 극우파의 경우 인종이나 민족, 또는 특정 사상 집단(빨갱이라 불리는 좌익)의 배제가 특징이다. 나치나 파시스트를 추종하는 세력부터 이민자의 시민권을 박탈하려는 인종주의 세력까지 다양하다. 이민자 배제 정책을 앞세운 미국의 트럼프, 러시아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정적을 제거한 푸틴이 최근 사례다. 극우파의 인종주의나 민족주의는 민주주의와 충돌한다. 시민 일부를 강제로 배제하려면 독재적(권위적) 권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윤 당선자는 어떤 점에서 극우적인가? 그가 어떤 인구 집단을 힘으로 배제하려 하는가? 나는 그런 정책이나 발언을 찾지 못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점이 부족하고, 반공주의적 색채도 다분하긴 하지만, 반대쪽을 쓸어버리겠다는 식의 이야기는 없었다. 윤 당선자가 여러 인터뷰에서 강조한 법의 지배와 다수 지배의 균형, 국가 개입의 자제, 자유시장의 강조, 집단주의 위협의 최소화 등은 ‘법치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20세기 후반의 우파 흐름이다. 보수적이긴 하지만 다양한 민주주의 조류의 한 종류일 뿐이다.

    역설적이지만 최근 한국 사회에서 극우적 분위기에 불을 붙인 건 문재인 지지자들이 벌인 ‘No 재팬’ 운동이었다. 민주당 정치인과 청와대 핵심 관료가 선동한 반일 민족주의는 한일 외교에 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매국노로 몰아붙여 조리돌렸고, 심지어 일제 차량을 파괴하거나 일본 관광객을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갔다. 더군다나 문 정부는 이런 선동을 하고도 위안부, 징용노동자 문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않았는데, 민족주의적 열광만 부추기며 실제 문제는 해결하지 않는 게 바로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극우 민족주의 운동의 특징이다. 보수 세력을 극우파로 덧칠해 비난할 것이 아니라 촛불 정부가 부추긴 극우적 운동부터 평가해봐야 한다.

    사회운동은 응당 윤석열 정부의 결함과 공백을 맹렬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선진국에서도 두드러지는 불평등한 사회고, 약육강식 경쟁과 승자독식으로 인해 경제 성장이 국민 다수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전통을 유지하려는 ‘보수’적 태도보다 자유와 평등을 위해 법과 규범을 뜯어고치는 ‘개혁’적 태도가 더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개혁의 필요성이 민주당의 복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민주당은 위선으로 국민적 개혁 열망을 소진했고, 문재인 정부는 민주주의를 타락시켰다. 이들이 한국 사회 변화의 장애물이다. 사회운동의 윤석열 정부 비판은 동시에 민주당 비판이어야 한다. 검찰공화국이니, 극우파니 하는 비판은 민주당에 대한 면죄부를 내재하며, 타당성도 없다.

    ***

    다음 기고 글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이다. 사회운동의 대안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다. 참고로 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제언이, 문재인‧민주당에 대해서는 비판이 최소한 몇 개월 동안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20년대 한국에서 사회운동이 재건되려면 진보의 결함을 은폐하는 보수에 대한 악마적 비난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 판단은 내가 속했던 사회진보연대와 무관하다. 나는 더 이상 그 단체의 회원이 아니다. 비판은 필자 개인에게 주시길 부탁드린다.

    필자소개
    연구 활동가, <대통령의 숙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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