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윤석열 만납시다”?
    대통령 중독에서 벗어나야
    [기고]문 5년, 윤 5년과 사회운동②
        2022년 03월 22일 03: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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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취임 전 청와대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건물로 이전하겠다는 윤석열 당선자와 안보 공백과 준비 부족으로 인해 취임 전 이전은 불가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형국이다. 여론은 윤 당선자에게 유리한 것 같지 않다.

    여야의 정치적 이해득실과 별개로 사회운동이 주목할 건 이번 논란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집무실 이전의 근거인 ‘제왕적 대통령제’ 말이다. 이번 논란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이 새 정부의 상징처럼 각인됐다. 사회운동은 이번 기회에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핵심 의제로 부상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의 대통령제가 가진 문제점은 무엇보다 대통령이 가진 권력이 입법부나 지방정부와 비교해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제와 비교해 보자. 미국의 대통령은 법률을 제출할 수도 없고, 예산안을 만들 수도 없다. 심지어 천 명이 넘는 각료가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임명될 수 있다. 더군다나 주(州, state) 정부는 연방정부에 권한을 이양한 것 외에는 모든 권한을 갖는다. 반면 한국의 대통령은 법률과 예산안을 제출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극소수 인사만 국회에서 동의를 받는다. 지방정부의 권한도 대통령에게 이양받은 일부 행정권뿐이다. 사실 한국의 대통령제는 미국과 이름만 같을 뿐 실제는 성격이 반대다.

    한국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점에서 부작용이 크다.

    첫째, 부패와 권력 남용이다. 굳이 어렵게 증명할 필요도 없다. 지금까지 온전한 대통령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퇴임 후 어쩔지 모르겠다. 월성1호기 폐쇄, 울산 선거 개입 등은 대통령 권력 남용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다.

    둘째, 경제‧사회 제도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을 가지고 세상만사에 관여하고, 국민도 그런 잣대로 대통령을 평가한다. 제도적 해결 방식, 숙의를 통해 규범을 만드는 해결 방식은 좀처럼 선택되지 않는다. 대통령에게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게 편해서다. 다만 이런 식 문제 해결은 한계가 명확하다. 5년 임기에 세상만사에 손을 대니 미봉책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대통령을 포획할만한 힘을 가진 집단, 즉 여론을 주도하는 세력, 이권을 공유하는 네트워크가 제왕적 권력 사용의 우선권을 가질 수 있다. 대통령의 ‘인격적’ 권력은 엘리트 친화적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2020년대 한국의 질곡이기도 하다. 나는 졸저 <대통령의 숙제>에서 이 문제를 분석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라스 노스의 실증 분석에 따르면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경제가 잘 나갈 때는 성장률에 차이가 별로 없다. 하지만 경제가 침체할 때는 사정이 다르다. 후진국은 침체의 수렁이 깊지만, 선진국은 얕다. 후진국이 결과적으로 크게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장의 성과를 침체 시기에 모두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의 실패로 경제가 침체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건 바로 정부다.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지속적 경제 성장에 핵심 변수란 것이다. 노스는 정부 위기관리 능력의 핵심이 ‘비인격적’ 제도라고 주장한다. 다차원적으로 설계된 제도가 공정하게 작동하면, 위기의 원인이 빠르게 파악되고 효과적으로 개선된다. 반면 제도가 부실하면 엘리트들이 제 사익만 추구하다 정부가 오작동한다. 시장의 실패가 정부의 실패로 확대돼 수습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제도 발전과 친화적이지 않다. 제왕적 권력을 이용한 미봉책이 선호되고, 소수의 엘리트가 제왕적 권력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부패와 권력 남용, 특권층의 지대 추구 등은 정부 실패를 키운다. 한국은 지금까지 그럭저럭 경제 성장에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사정이 다르다. 경제적 수준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고, 저성장 고령화 같은 장기 대책이 필요한 문제들이 사회에 들이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바로 반면교사다. 문 정부는 ‘선의’를 표방하며 제왕적 권력을 맘껏 휘둘렀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했듯 문 정부의 경제 점수는 낙제에 가깝다. 대통령과 그 주변의 판단에 의존해 정부가 ‘인격적’으로 행동한 결과다.

    사회운동은 문 정부가 제왕적 권력에 취해 실패하도록 만든 공조자였다. 촛불집회 때부터 사회운동의 대표 요구였던 ‘적폐청산’을 평가해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다. 제도적 개선은 찾아보기 힘들다. 민주노총은 거의 모든 집회에서 “대통령 만납시다”, “대통령이 해결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남은 성과는 모호하다. 최저임금의 경우 롤러코스터 인상 끝에 이전 정부보다 못한 결과로 이어졌고, 심지어 효과를 두고도 사회적 합의를 만들만한 객관적 조사조차 없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공공부문에서만, 그것도 심각한 노노 갈등 후유증을 남기고 엉거주춤 봉합되었다. 노동조합의 초기업적 교섭 같은 보편적 노동조건을 마련할 제도는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누가 되는 상관없는 비인격적 해결책은 남지 않았다. 노동운동은 대통령 인격만 쳐다보는 처량한 신세다.

    사회운동은 대통령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라고 청원하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요구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규탄하다가, 나중에는 (주로 보수 정부를 상대로) “심판하자”, “퇴진하라”라고 외치는 패턴은 지양되어야 한다. 법을 만들고, 규범을 세우고, 이해관계자들이 숙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절실한 때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하는 것이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지난 3월 21일 민주노총은 대선 후 첫 기자회견을 인수위원회 앞에서 개최하고 “윤석열 당선인, 민주노총 위원장과 만납시다”라고 외쳤다. 그야말로 관성이다. 소수 여당의 보수 대통령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건 아닐 것이다. 반노동, 극우, 신자유주의 등의 규정을 정권에 붙이기 전 예열 작업일 것이다. 나는 다음 글에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진보 진영의 관성적 규정이 타당한지 살펴볼 예정이다.

    글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지적해두겠다. 윤석열 당선자는 제왕적 권력을 경계한다며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은 소통과 큰 관련이 없다. 앞서 봤듯 입법부, 지방정부, 사회적 기구 등에 비해 대통령이 정부 권력 배분에서 너무 많은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제왕적 권력의 원천이다. 국민과의 소통 강화는 문 정부의 청원 게시판에서 확인했듯 도리어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사용될 수 있다. 윤 당선자의 첫 행보는 방향이 틀린 것 같다. 당선자의 소통은 국회로 먼저 향해야 한다.

    <문재인 5년이 가르쳐주는 윤석열 5년간의 사회운동 과제> 연재 순서

    1. ‘촛불 정신’에서 빠져나와야 제대로 된 정부 비판도 가능하다.
    2. 사회운동은 왜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요구해야 하는가?
    3. “신자유주의 반대” 뒤에 숨어서는 윤석열 식 노동개혁에 맞서기 어렵다.
    4. 저성장, 불평등, 평화위기 속 민주주의에 관해 새롭게 생각해보기
    필자소개
    연구 활동가, <대통령의 숙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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