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정의당 대선,
    뼈아픈 반성과 성찰 필요
    [기고] '졌잘싸'가 아닌 필요한 것들
        2022년 03월 21일 10: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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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의 활동가모임 ‘전환’에서 2022년 대선에 대한 평가서를 기고 글로 보내왔다. 윤석열-이재명 진영의 대선 승패에 대한 평가와 이후 전망에 대한 글과 뉴스들은 넘치는데, 심상정 정의당 후보 측의 평가와 이후 전망과 계획에 대한 입장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좌파 성향의 활동가모임 ‘전환’의 평가 글이 지난 선거에서 남길 것들과 앞으로의 정의당 활동 전망과 방향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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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진보정치의 선거평가를 부정적으로 내리는 일은 참 쉽지 않다. 진보정치가 현실정치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조건에서 ‘졌잘싸’로 정신승리를 하거나, 아니면 공들여 숨은 성과를 찾아 그 의미를 애써 긍정적으로 평가라도 해야 또 다른 시작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뜩이나 힘든 여정에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은,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배려 또한 곳곳에 넘쳐난다. 그러니 진보정치가 당면한 어려운 조건에서 고투하며 선거를 치러 낸 집행부에 책임을 묻는 일은 거의 금기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선거 이후 날선 비판으로 책임 공방이 오가고 당이 전면적인 해체와 조정의 과정을 거치는 보수정당에 비해 민주주의와 소통을 훨씬 강조하는 진보정당에서 선거평가에 대해서만큼은 유독 그렇게 정적일 수가 없다.

    그래서 선거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이 그냥 묻히고 지나간다. 정책 어젠다와 슬로건은 적절했는지, 우리가 낸 후보가 정말 최선의 후보였는지, 선거운동 조직체계와 실행능력은 효과적이었는지, 선거운동의 기획과 전략은 제대로 맞았는지, 그래서 지지율을 넘어 결론적으로 성과로 남긴 것은 무엇이었는지, 이후 진보정치 혹은 당의 과제는 무엇이고 지금 당장 어떤 책임과 어떤 실천이 필요한지를 짚는 일이 치열하게 진행되지 못한다.

    심상정 후보의 선거 유세 모습

    정의당의 대선평가서를 제출한다. 전환(준)은 가뜩이나 모두들 힘들어 하고, 여기다가 지방선거를 또 치러야 하는 부담으로 후보들과 지역당부의 활동가들, 그리고 당원들 모두의 마음이 무거운 상태임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난 시기 진보정당의 선거평가에서 나타났던 관성을 넘어서기 위해 할 말하는 평가를 남기고자 한다. 함께 노력했지만 부족한 성과를 거둔 책임을 같이하며 당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모두의 활발한 토론을 위해 대선 평가를 공개적으로 제출하며 이후 소통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 평가서는 전환(준)의 최종적인 평가서는 아니다. 이후 전환(준)의 회원은 물론 정의당의 당원을 포함하여 진보정치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과 소통을 통해 더 풍부한 고민을 담고 이후 진보정치의 대안을 제시하는 평가서를 완결해 나갈 것이다.

    2.37%, 지지율 이상의 실패,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다. 어느 때보다도 전통적인 두 개의 보수정당의 강력한 구심력이 작동한 선거에서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득표 차이는 24만표, 0.73%포인트에 불과했다. 기득권 정당의 바깥에서 제3대안 세력이 되고자 했던 정의당은 이 팽팽한 구도에 균열을 내지 못했다. 심상정 후보는 2.37%, 80만표의 득표에 그치고 말았다. 가장 적은 표차가 보여주듯 양당구조가 선거과정을 압도하고 어느 때보다도 사표심리가 팽배한 가운데서 얻은 2.37%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여전히 그 와중의 선전이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명백하게 실패한 선거였다. 선거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할 선거이며 정의당으로서는 깊은 성찰과 함께 이후 새로운 진보정치를 위해 분명하게 당의 현재 상태를 돌아보고 과감한 전환을 시작해야 할 과제를 남긴 선거였다. 이 지지율은 2017년 19대 대선의 6.17%에는 1/3 가량이고, 2020년 총선 정당지지율 9.7%에는 1/4에도 못 미치는 선거였다. 아울러 이 수치는 민주노동당 이래 진보정당이 얻은 대통령 선거 득표율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 국민승리21 권영길 후보의 1.2%를 논외로 하면 2002년, 2007년, 2017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였다. 그 어느 선거인들 양당 구조가 없었으며 사표심리가 없었던가? 20-30대 여성 지지가 많았다고 하지만 이 또한 지난 선거 결과에 못 미친다. 여기에 또 다른 수사를 통해 실패 이상의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실패를 정직하게 마주하고 이 실패가 말하는 것을 고통스럽게 읽어내기 위한 노력이 가감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애써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야기들이 있기는 하다. 양당 구조의 틈바구니에서, 수구반동정치의 귀환을 막자는 이런 저런 압박 속에서, 진보정당의 존재감을 살렸다며 선거 완주를 평가하기도 한다. 완주함으로써 마침내 민주당 2중대 꼬리표를 떼고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자리를 잡은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다. 완주, 민주당의 2중대 탈피가 긍정적인 평가가 되는 것은 거꾸로 뒤집으면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의 존재감에 대한 의문이 상존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긍정평가의 대목이 아니라 오히려 반성의 지점이다.

    어려운 가운데서 당원들의 헌신과 열정을 확인한 선거였다는 평가가 있다. 당원들의 노력은 결코 폄훼되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이것이 선거평가의 대목이 될 수는 없다. 꼭 평가의 대목이 되고자 한다면 더 냉정하게 이번 선거에서 당의 조직력이 정말 최대한 가동되고 당원들의 참여가 이전보다 더 역동적이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개혁의 필요성이 대중적으로 확인되는 기회가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의당의 대선 평가의 대목이 아니라 선거의 과정과 결과에 따라 도출된 흐름이지 정의당이 이루어 낸 선거에서의 성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은 아닐 것이다.

    개표 당일 12억원 후원금과 선거 이후 입당자가 늘어난 것에 대해 긍정평가를 내리거나 과도하게 고무되는 모습 또한 지양해야 한다. 왜 이 후원금이 선거가 끝나서야 들어오게 되었는지, 왜 이렇게 하루 만에 쏟아질 정도의 후원이 정작 지지로 연결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오히려 당으로서는 아파해야 할 대목이다. 선거 이후 당원이 느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입당자가 12만이 넘고 그 대부분이 20-30대 여성들이라는 대목에서 페미니즘 정당임을 표방한 정의당이 왜 그들에게 정치적 대안이 되지 못했는지, 그 숫자 또한 실패를 딛고 일어설 만큼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겸손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냉정하게 2.37%는 지지율 이상의 실패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지금의 정의당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아니라 지난 시기 정의당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번 선거의 과정만으로 대선 평가를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지난 5년 동안 정의당의 활동에 대한 성적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보정당으로서 진보적 가치의 파수꾼으로서의 면모를 국민들에게 보여 주지 못했다. 진보적 의제를 사회적으로 이슈화하고 이를 사회운동과 소통하며 의회정치와 광장의 정치를 결합하는 진보정치의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로 인해 정의당은 지난 5년 동안 오히려 그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기 보다는 계급과 지역, 세대와 젠더 라는 진보정당의 지지기반을 속절없이 무너뜨렸다. 적은 의석수를 이야기하지만 의회 정치 또한 과거 진보정당이 보여주었던 작지만 강한 정당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런 문제들을 선거과정에서 극복하는 기획과 전략이 있어야 했지만 선거운동 자체도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전략적 의제 선정도 그 결정방식도 진보정당답지 못했다

    대선 선거운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선거에 대해 우리가 가장 자주 사용했던 말은 ‘비호감 대선’이라는 규정이었다. 극단적인 진영주의와 상대 후보에 대한 인격적 비난이 난무하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핵심 의제에 대한 입장이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서로를 구분하는 것은 대장동 몸통이 누구냐, 봐주기 수사의 진실은 무엇이냐는 것이거나, 후보와 가족들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폭로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정의당은 이들 윤리적인 공방의 바깥에서 진보정당다운 전략적 의제설정으로 양강 구도에 개입할 수 있어야 했다.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의 정책이자 의제로 국민들이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주4일제, 진보의 금기 깨기, 다당제 연합정치, 젠더정치, 그리고 시민의 삶이 선진국인 나라라는 슬로건 등이었다. 이 문제를 들여다보자.

    이번 선거 대표 정책이었던 주4일제는 일부 계층의 호응이 있긴 했지만 처음부터 내부에서 그 한계가 지적되었었다. 정의당은 6411 정신이나 지워진 존재들을 계속해서 호명했고, 정치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을 대변하겠다고 말했지만, 주4일제는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 대다수의 여성노동자에게는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가 아니었다. 불-기-차를 주요한 구호로 선정했던 정의당으로서는, 주4일제보다는, 불평등과 차별, 기후위기 등으로 사회적 조건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전국민 일자리 보장제와 같이 일자리를 위한 급진적 의제를 제출했어야 했다.

    당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후보의 잠적 이후 들고 나온 진보의 금기 깨기는 즉자적이었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진보의 금기깨기에 대해서는 깊은 토론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 정의당이 맞이했던 정치적 곤란함과 어려움은, 2010년 이래로 진보정치가 맺어왔던 야권연대 전략의 오류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조국장관 임명안에 대한 입장 문제에서 정점을 이룬 것이다. 다수 유권자들이 정권교체를 판단기준으로 삼았을 때, 심판 대상에 민주당의 하위 파트너 역할로 비췄던 정의당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보의 금기를 깨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진보정당의 이상과 비전을 올곧게 보여주는 전략이 필요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립국화 방안이나, 민주화와 선진화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6공화국 헌법체제를 생태·복지사회 건설을 중심으로 한 7공화국 헌법체제로 대전환하자거나, 탈핵사회·최저임금인상·강력한 탄소억제 정책 등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구성하겠다는 내용이 필요했다. 더구나 진보의 금기를 깨겠다며 제시한 연금개혁 방안과 직무급제 수용 등의 입장 발표는 관련 당사자들과의 광범위한 토론도 없이 이루어져 그 내용이 빈약했고 무게있는 정책적 의제가 되지도 못했다.

    슬로건 또한 진보정당답지 못했다. 선거 초반 ‘시민의 삶이 선진국인 나라’를 사용하다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여러 차례의 지적에 본선에서는 ‘일하는 시민의 대통령’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었지만 이러나저러나 이 슬로건은 시민에게도 노동자에게도 닿지 않는 구호였다. 19대 대선의 대표 슬로건이었던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변형한 것으로 보이는 이 슬로건은 ‘노동’을 ‘일하는 시민’으로 대체한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시민은 ‘봉건귀족’에 대항했던 계급이었으며, 봉건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시민’은 ‘모든 유권자’라는 의미 이상의 정치적 의미가 없다. 우리는 시민 중에서도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사회운동에 주목함으로서 현대 자본주의가 ‘자본’중심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며, ‘노동’ 중심 혹은 ‘노동이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대선의 슬로건이었던 ‘노동이 당당한 나라’의 의미를 순화시켜 ‘일하는 시민’을 등장시켜야 할 합리적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노동이 실종되었다고 평가 받는 이번 대선에서만큼은, 이런 지향을 더욱 강조했어야 했다. 어느새 1호 공약이 신노동법에서 주4일제로 바뀐 것은 이러한 경향의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진보정당에게 익숙치 않는 ‘선진국’이라는 용어를 슬로건에 넣은 것도 비판적 평가가 불가피하다. 여러 함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소위 ‘선진국’ 담론은 성장제일주의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삶의 질보다는 양적 성장에 주목하는 ‘선진국’ 담론은 진보정당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성장 담론에 영합한 전략이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렇게 보수세력들의 수사에 영합하는 선거 슬로건 전략은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아닌 정의당을 선택해야 할 차별점을 축소함으로서 양강 구도에서 정의당의 지지세력을 강하게 결집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런 오류는 또 하나 정의당이 줄곧 외쳤던 의제, ‘다당제 연합정치’에도 나타났다. 거대 기득권 정당을 중심으로 권력의 향방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정의당이 다당제에 의한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면 그 의미에 보다 충실해야 했다. 6공화국 양당제가 포괄하지 않았던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들, 여성노동자들, 성소수자들, 가난한 노인들, 장애인들, 기후위기의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다당제 민주주의’였다. 한마디로 다당제 주장은 새로운 사회세력이 정치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주류 교체 선언이어야 했다. 그러나 정의당은 다당제 그 자체의 의미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당제가 현실에서 작동되는 방식에 불과한 ‘연합정치’를 강조함으로서, 이 주장 전체의 진의를 적극적으로 왜곡시켰다. 누구와 연합정치를 할 것이냐는 여론의 질문은 결국 민주당과 손잡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결론을 부정하기 힘들게 했다.

    정의당의 젠더정치에 대한 평가도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선거 초반부터 심상정 후보의 핵심 지지층으로 확인해 왔던 20대 여성 지지층 다수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는데, 이것은 민주당과 정의당의 힘의 차이, 그리고 혐오 조장 문제로 생긴 반 윤석열 정서를 감안하더라도 뼈아픈 것이었다. 왜냐하면 정의당의 젠더정치가 민주당의 그것에 비해 대체불가능한 요소로 평가되기에는 부족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집중했어야 하는 젠더정치 의제는 더 다양한 곳에 존재했었다. 개선되지 않은 성별 임금격차의 문제, 일반적인 형태보다 더 유연한 여성노동 현실, 특히 코로나 시대에도 불구하고 비대면으로 전환될 수 없는 공적 돌봄노동의 사회화 문제는 그 자체로 중대한 젠더 이슈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조용한 학살로 불렸던 여성청년들의 급증하는 자살은 여성청년들의 높은 실업률이 한 원인이었지만, 정의당의 젠더정치는 이 문제에 대해서 무력했다. 젠더감수성과 노동감수성이, 젠더정치와 계급정치가 제대로 결합했다면, 성적 자기결정권 의제로만 집중된 정의당의 젠더정치가 더 다양해 지고 대체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되었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아쉽다.

    무엇보다도 지적되어야 할 지점은 이 모든 정책과 선거의 주요 전략이 조직적으로 결정되어 수행되지 않고 후보의 결단이나 외부의 반응에 즉자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선거라는 것이 후보의 의사가 매우 중요한 과정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런 정책이 전혀 조직적이지 않았고 그랬기에 보다 풍부한 진보적 의제들을 포괄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지적되어야 한다. 무엇을 핵심정책으로 삼을 것이냐 하는 것은 당 내부는 물론 당과 지지층 사이의 전략적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토론의 결과였어야 했다. 정의당은 이것을 트위터나 SNS반응으로 대체해 버렸다. 이로 인해 국민연금제도나 한국형 모병제에 대해 종래 당론이 선거과정에서 아무런 토론도 없이 변경되어 그동안 논의를 이어왔던 관련단체나 연구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연대전략의 오류는 심각한 문제였다

    시민사회단체는 어느 때보다도 민주당 줄서기에 앞장섰다. 역사의 퇴행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한국사회를 이야기하면서 촛불정신을 망각하고 개혁을 실종시켰고, 180석에 달하는 의석으로도 불평등과 기후위기, 차별을 오히려 심화시킨 민주당에 대해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치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그렇게 그나마 남아 있던 진보의 토대가 소리 없이 무너져 간 선거였다. 이런 과정에서 정의당이 악전고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연대의 가능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불.기.차를 이야기했다면 그에 걸맞는 연대 전략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했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정의당은 이번 선거에서도 종래 견지했던 중도확장 연대전략에 매달렸다. 안철수와의 3지대 연대 구상은 모두의 우려를 자아냈고 실제로 어떤 의미도 남기지 못했다. 녹색당과의 연대는 심상정 후보의 공들인 구상이었지만 SK 최태원 회장 면담과 발언으로 녹색당으로부터 ‘기후부정의 기업을 격려한 심상정을 반길 수 없다’ 라는 비판성명을 받기도 했다.

    대선 기간 동안 정의당이 정권교체 찬성·반대 프레임과는 다른 측면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낼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는 진보연대전략이었고 진보후보 단일화였다. 결과적으로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포함해서 전체 진보 후보들의 지지율을 모두 더해도 3%가 되지 못했다. 이것을 진보진영의 지리멸렬이라는 결과로만 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정의당을 포함한 전체 진보정치 세력과 사회운동의 생태계가 그 기반을 잃고 있으며, 진보정치 생태계를 다시 복원하지 않으면 정의당의 미래 또한 다시 설계하기 어렵다.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중심이 되어 서울에서 활동하는 진보정당과 사회운동단체들을 묶어서 ‘너머서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조직을 통해 서울의 여러 현안들 사이에서 진보진영의 목소리가 전달되고 있다.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진보정당의 후보들을 합의에 의해 진보단일후보로 인정하기로 했으며, 정의당 배복주 종로 보궐선거 후보자를 전체 진보진영 후보로 삼기도 했다. 대선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필요했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선거의 직접적인 득표 결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치의 미래를 고민해 볼 구심은 남길 수 있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조직노동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진보정치의 연대복원을 통한 장기전략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 의미에서 심상정 후보를 포함해서 정의당 대표단이 이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매우 아쉽다. 반기득권 정치동맹을 형성하겠다는 것은 여영국 집행부의 가장 중요한 약속이기도 했으나, 대선에서 진보정치의 연대전략에 소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약속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정의당의 연대전략은 방향도 모호하고 구체적인 실천도 없는 과정으로 일관했다.

    선거운동의 총괄기획과 전략도 없고 조직적이지 못한 선거였다

    헌신적인 당원들의 선거운동을 묶어 낼 선거 기획이 없었다. 전체 선거를 총괄하는 콘트롤타워가 없는 선거였다. 선거라는 것이 톱니바퀴 맞아 돌아가듯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일이 있다는 점을 십분 이해한다 하더라도 지역에서 올라오는 선거운동에 대한 제안과 요구를 수렴하는 일, 후보의 지역 유세 일정을 위한 소통이 실패함으로써 현장에서 뛰는 선거책임자들이 한숨을 짓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선거조직 전체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선거 기간 내내 계속되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은 후보의 칩거와 선대위 해체라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 초반 선대위의 비정상적인 구성, 선대위와 후보 중심 라인과의 소통문제가 계속 불거졌다. 결국 효과적인 선거운동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선대위와 소통조차 없이 후보가 칩거하기에 이르렀고, 선대위가 해산된 이후에야 후보가 복귀했다. 후보 복귀 이후 후보 중심의 선거대응팀 정도 수준으로 선거운동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의사결정의 효율성이 높아지긴 했지만 당내의 다양한 인적역량의 효과적인 활용이나 당 조직 전체를 가동하는 조직적인 선거운동은 취약해졌다. 중앙과 지역의 소통체계도 효과적으로 가동할 수 없었다. 이는 선거를 책임진 후보와 당 지도부 모두 당원에 대하여 깊은 책임감을 느껴야 할 일이다. 그저 하나의 해프닝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선거가 당의 조직체계를 강화하고 당원들의 참여를 자극하지 못했던 점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후보의 무단 칩거 또한 평가해야 할 대목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선대위와의 소통도 없었던 칩거였고 동시에 모든 당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일이었다. 당 밖에서는 사퇴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대표는 후보와 연락이 안 된다는 말로 사태를 더욱 키웠다. 지금도 그 칩거가 어떤 의미였는지, 어떤 과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 당원들에게 해명된 바가 없다. 당내 민주주의와 소통에 대해 후보와 당 지도부의 인식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만약 그것이 당의 느슨한 선거운동이나 당원들의 참여를 유발하고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한 후보의 전술적 판단이었다면 이는 주체로 세워야 할 당원을 대상화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무엇을 남긴 선거였는지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2.37% 이상의 실패였다. 진보정당의 선거평가는 지지율로만 평가될 수는 없다. 2.37%에 그쳤다 하더라도 이후 당의 성장을 위해 남은 것이 있다면 그 선거는 의미가 있는 선거로 평가될 수 있다. 그 평가의 항목은 대체적으로 선거를 통해 진보정당으로서 한국 사회의 새 지평을 열 의제를 제시했는지, 새로운 진보적 토대 혹은 지지기반을 구축했는지, 당 조직의 강화와 당원들의 참여를 만들어냈는지가 될 것이다. 냉정하게 당은 지지율의 급락도 급락이지만 이러한 성과들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진보정당으로서 분명한 면모를 드러내는 선거를 치러내지 못했다. 국민들에게 전혀 다른 정치세력으로서의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고 모두가 기억하는 의제를 던지고 이를 한국 사회의 이슈로 남기지도 못했다. 비호감선거, 양당구조 등에 불.기.차라는 정의당의 이슈가 묻혔다는 것으로 면죄부를 얻지는 못한다. 의제도 슬로건도 정의당의 지속가능한 활동목표가 될 수 없는 선거가 되었다. 사표론이 기승을 부린 것은 정의당이 분명한 진보정당, 민주당과 완전히 다른 정당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것도 한 원인이다.

    선거결과 당의 뚜렷한 지지기반이 부족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계급과 지역, 세대와 젠더 영역 모두에서 진보정당 정의당의 지지기반을 확인하지 못했다. 과거 진보정치의 주요기반이었던 영남권 노동벨트에서의 유의미한 득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제 1야당임을 확인했던 호남지역의 지역기반도 무너져 있다. 그나마 높은 지지율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청년세대와 여성의 지지도 예전 같지 못하다. 도약을 위한 지지기반을 만들지 못한 선거에 대해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당 조직의 강화와 당원 참여의 역동성이라는 성과도 얻지 못했다. 선거기간 내내 당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당원들은 지지율에 연연하지 말고 진보정당 정의당의 다른 모습, 다른 목소리를 내는 선거를 하자고 했다. 진보정당의 당원들은 지지율이 아니라 당의 다른 모습을 통해 자긍심과 이후에 대한 전망을 갖게 된다. 이를 통해 당 조직은 다음의 도약을 위해 정비되고 당원들의 참여가 확대되는 것이다. 당이 이번 선거에서 실패했다는 것은 지지율이 아니라 바로 진보정당이 선거에서 반드시 얻어야 할 이 성과를 챙기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다시 시작하기 위한 우리의 과제를 직시하자

    이제 뼈아픈 실패를 뒤로 하고 미래의 진보정치를 다시 설계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다시 노동과 정치와 지역을 만나게 하고, 근본적인 사회개혁의 비전을 설파하는 진보정치 역량을 만들기 위해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

    첫째, 미래의 진보정치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한다는 각오와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민승리21 건설로부터 시작한 진보정당 창당 운동은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로 작은 꽃을 피운 직후 속절없이 분열해 갔다. 2008년 이후 시작된 다원화된 진보정치의 기간동안 우여곡절 끝에 원내정당으로 생존해 온 정의당은 여전히 민주대연합론의 폐해를 실천적으로 극복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로 더욱 열성을 쏟는다면 새로운 진보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이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하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둘째, 진보정당의 전통적인 성장전략은 호남을 중심으로 한 지역기반, 부울경을 중심으로 한 계급기반, 청년을 중심으로 한 세대기반을 축으로 삼아 나아간다는 것이었다. 이런 류의 전통적인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며 더욱 세밀한 계획의 수립이 필요한 것인지, 전혀 새로운 지역과 계급, 세대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난 5년간 정의당을 포한한 전체 진보정치가 고민하지 못했다. 세간의 평가가 정의당에 요구하는 것들과 정의당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일치하는 한 가지 점이 있는데, 그것은 세대교체에 대한 요구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세대교체가 유의미한 변화로 이어진 것은 새로운 세대가 시대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을 때였다. 그런 의미에서 성공적인 세대교체에 이르기 위해서라도 정의당은 한국사회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진보정치에 대한 새로운 성장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셋째,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번 선거에서 가장 뼈아픈 패착이었던 것은 정의당이 진보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긍정적인 결론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의당과 녹색당, 진보당과 노동당 등 소위 진보4당과 노동운동 등 사회운동 세력이 공동의 힘으로 대선을 치르고 난 이후였다면 극단적인 불평등과 점증하는 기후위기 정세 속에서도,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돌파구를 만들어 낼 정치와 운동의 구심을 새롭게 만들어 보자는 논의로 이어갈 수 있었다. 아쉽게도 그렇게 되지 못했지만, 그 기회가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한 논의가 무조건 진보단일정당 통합론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이 동반하여 성장하지 않고서는 당면한 위기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인식에 공감한다면 진보-노동-녹색 사회세력의 공동집권전략 위원회, 혹은 공동의 사회비전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동인식과 공동실천의 단면적을 넓혀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당장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원과 지역조직을 진보정치의 굳건한 주춧돌, 원동력으로 다시 세워내야 한다. 지역조직은 당원들의 의지를 모아내는 결사체이며, 집권전략 실행의 기본단위이다. 당의 주요 사업은 언제나 지역조직 강화를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삼아야 하며, 이를 위한 권한과 자원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이러한 원칙을 다시 확인하며, 본격적인 지방선거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지역정치의 중요성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진보정치의 최소한의 기반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성실한 준비와 함께 정치개혁 논의에 대한 적극적이고 현명한 개입도 중요하다. 특히 지난 총선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기득권 정치세력의 선의에 기대하기 보다는 제대로 된 정치개혁을 강제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의 형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진보4당과 사회운동 세력과의 접점을 만들어 나가고 연대의 힘을 키우는 것에 지금 당장 나서야 한다. 앞서 제안한 공동집권전략위원회나 비전위원회의 시작이 지방선거 제도개선을 위한 연대체 제안일 수도 있다고 본다.

    다섯째, 악령처럼 진보정치에 들러붙어 있는 민주대연합 노선을 일소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윤석열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민주당에게 양보를 해야 한다는 류의 주장은 과거와 다르게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정의당 내부에서 제기된 적이 없다. 이런 주장은 대체로 민주당 지지자들의 것이었다. 이렇기 때문에 조직적인 차원에서 민주대연합 노선은 완전히 극복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극복된다는 것은 후보단일화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보정치가 제시하는 사회비전이 기득권정당이 그리는 그것과 양적인 차이에 불과할 때 언제든 더 큰 적폐를 상대하기 위해 정치적 결단이 불가피하다는 노선은 머리를 들어 올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정당의 사회개혁 노선을 계속해서 다듬고 개발해야 한다. 극단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기후위기의 심화, 차별과 배제의 정치를 넘어서고자 하는 진보정치의 독자적 비전을 마련하는 일에 더욱 나서야 한다.

    여섯째, 당 지도부와 각급당부의 분명한 책임의식이 요구된다. 그저 또 한 번 열심히 했으나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선거로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당 지도부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당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항간에서 제기되는 지도부 사퇴를 포함한 책임론은 선거의 결과나 과정으로 볼 때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일이다. 사퇴가 책임의 모든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점, 당면한 지방선거를 치러내야 하는 당의 현재 조건 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당 지도부는 선거결과를 받아 든 지금 보다 책임있는 당 운영과 당의 새로운 전환, 그리고 지방선거 대응을 위한 가시적인 조치들을 취해야 할 것이다. 보다 체계적인 선거운동을 위한 선거체제의 조기 수립, 지방선거 후보자들에 대한 지원확대 방안 마련, 당 지도체제의 전면적인 정비 등을 조속히 수행함으로써 당의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울러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인식하고 있는 정치개혁을 위한 투쟁을 당면과제로 삼아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수립하고 지방선거 전에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나가며

    당의 선거 실패에 대한 책임은 당 중앙과 지역 책임자들 일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은 어느 한 사람이 만들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당의 모든 성원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당의 새로운 전망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나가야 할 것이다. 전환(준)은 이후 대선 평가를 통해 정의당은 물론이고 진보정치 전체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당 내외의 정치그룹 및 정당들과 토론회를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정의당은 지금 당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물론이고 이후 윤석열 정부의 등장과 함께 나타날 다양한 정치적 변화를 전망하면서 이에 대응할 준비 또한 면밀하게 해나가야 한다. 선거는 필연적으로 정치지형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되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한 정치적 변화의 과정에서 정의당은 그 도전이 무엇이 되든 진보정당의 대표정당으로 시대적 사명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좌고우면하지 않고 진보정치의 올곧은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전환(준) 또한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반성과 함께 책임을 느끼며 지방선거에 전력을 다함은 물론 이후 진보정치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2022321일 전환()

    필자소개
    정의당 활동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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