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데탕트의 시대 저무는 전환의 시대
    [국방칼럼] 민주/독재 혹은 민주평화론/주권민주주의
        2022년 03월 15일 09: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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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전면전쟁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국가 간 무력분쟁이 없지 않았지만 주로 정부와 반군이 충돌하는 양상으로 전쟁이 전개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침공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결국 이번 침공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유럽 현대사의 분기점이 될 만큼 중요한 역사성을 갖고 있다.

    독일 숄츠 총리는 지금의 상황을 ‘자이텐벤데(Zeitenwende, 시대전환)’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전환을 뜻하는 ‘Die Wende’는 1989년 동독 공산당의 마지막 총서기인 에곤 크렌츠가 공식석상에서 사용한 말로 독일 역사에서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와 1990년 독일 통일에 이르는 시기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자이텐벤데’는 결국 세계가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시대전환의 분수령’에 처해 있으며, 이른바, 데탕트 시대가 저물고 있는 현실을 가리키고 있다. 1989년 미국 부시 전 대통령이 ‘유럽 전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만들자(A Europe Whole and Free)’는 선언을 발표한 이후 계속되어 온 유럽연합과 나토 확대의 역사가 마침내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맺게 된 현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이미 러시아와 중국은 독일이 말한 ‘시대전환’을 한발 앞서 선언했다. 러시아전문가인 리처드 사콰(켄트대)는 지난 2월 4일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일에 맞춰 발표된 러시아와 중국 간의 공동성명을 ‘획기적(landmark)’이자,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문서로 평가했다. 이 성명에서 러∙중은 인류사회가 대발전, 대변혁의 ‘새로운 시대(新时代)’에 접어들었음을 선언했다.

    공동성명에 따르면 ‘새로운 시대’의 국제관계는 다극화, 다자주의, 국제관계 민주화를 모토로 미국이 아닌 유엔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관계의 핵심 조정 역할을 하는 것이다. 리처드 사콰는 이를 서구 세계관과 국제관계가 근본적으로 도전 받는 신호로 여겼다. 칼럼니스트인 테드 스나이더 역시 러∙중이 서구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미국이 주도하지 않는 세계질서로의 변화를 앞장서서 제시한 것으로 분석한다. 공동성명이 미국의 올림픽 외교보이콧에 맞서, 그리고 우크라이나 침공에 앞서 발표된 것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러시아는 이제 미국이 펼쳐 놓은 바둑판(규칙기반 질서) 위의 바둑알이 되기를 거부하고, 직접 바둑을 두는 대국자의 자세로(규칙을 재해석하는 세계대국으로) 이번 전쟁에 임하고 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계획 – 작년 12월에 독일 타블로이드 신문 ‘빌트’가 보도한 내용이다. 2017년에 작성된 러시아육군 훈련계획이라고 한다(BILD).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전쟁을 ‘민주주의’와 ‘독재(autocracy)’의 싸움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취임 초 뮌헨안보회의 특별회의와 작년 12월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이르기까지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그의 일관된 소신이다. 그러나 러시아 침공이 ‘민주주의’와 ‘독재’의 싸움이라는 미국 입장은 정치수사에 불과하다. 현실에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레이트 같은 왕정국가가 예멘 내전에 개입하고 있는 현실을 방조하는 것처럼 독재와 싸우기 위해서 비민주국가와 협력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번 전쟁은 ‘민주’와 ‘독재’의 대결이 아니라 미국의 대외정책 이념기반인 ‘민주평화론’에 대한 러시아 ‘주권민주주의’의 도전이기도 한 것이다.

    민주평화론은 민주국가 사이에는 평화가 유지되어 왔다는 전제 하에 모든 국가가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전쟁이 사라지고, 갈등이 종식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에 기반한다. 그러나 불특정국가를 민주화시킴으로써 전쟁을 방지하겠다는 민주평화론과 자유주의 가치 확산이 미국의 안보를 증진시켜줄 것이라는 공격적 자유주의가 결합된 미국의 정책은 내정간섭과 일방주의, 미국예외주의로 비판 받아 왔으며, 미국의 잣대로 민주주의를 재단한다는 비난에 직면해 왔다. 예컨대 바이든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던 전력이 있으며, 빅토리아 눌랜드 국무부 정무차관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유럽 및 유라시아 담당 차관보로 재직하면서 우크라이나 마이단혁명에 깊숙이 개입하여 러시아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우크라이나 분할 계획- 러시아방송에서 이른바 애국주의자들이 주장했던 내용이다. 노보로시아(새로운 러시아)로 불리우는 동남부는 남부의 오데사(Одесса)와 헤르손(Херсон) 등 흑해 전역과 동부의 하르키우/하리코프(Харькоь), 도네츠크(Донецк) 등 전 지역을 러시아에 편입하고, 우크라이나(УКРАИНА)의 영토는 중부지역으로 축소된다. 리비브/리비우(ЛЬВОВ)를 비롯한 서부는 폴란드와의 완충지대로 생각하는 것 같다.

    러시아인들은 옐친 정권 시절 러시아가 미국에게 많은 간섭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이를 매우 굴욕스럽게 생각한다. ‘블라디스라프 수르코프(푸틴 대통령 전 고문)’가 제창한 주권민주주의는 러시아의 주권이 확립되어야 민주주의 정착이 가능하다는 가치체계로서 외부 간섭을 배격하고 러시아의 실정에 맞는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러시아가 민주주의인지 독재인지는 미국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인민이 판단하는 것이다.

    수르코프가 러시아 주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뽑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2004년 우크라이나 색깔혁명(오렌지 혁명)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서방의 지원 하에 2014년 마이단혁명(러시아는 쿠데타라고 부른다)이 일어난 우크라이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의 주권을 위협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러시아의 침공은 자위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러나 잉가르 솔티(독일 로자룩셈부르크재단)는 1999년 유고연방에 대한 나토의 폭격을 반대했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는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인민공화국의 승인은 코소보 독립에 비견되며, 나토 폭격을 정당화한 유고연방의 코소보 알바니아인 대량 학살 계획인 ‘말굽작전’이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디아스포라(나라밖 거주공동체)의 대량 학살을 운운하는 것 모두 근거가 부족했다는 점에서 이는 국제사회의 인도주의 개입 원칙인 ‘보호책임’을 남용한 것이다.

    러시아는 레닌에게 소련 해체 이후 옛 소비에트공화국 후신국가들과의 갈등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탄생한 ‘우크라이나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은 ‘레닌의 우크라이나’일 뿐이며, ‘레닌의 우크라이나’는 볼셰비키가 우크라이나를 인위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국가라고 인정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다. 푸틴은 2월 22일 연설에서 레닌과 볼셰비키가 잘못된 판단을 했고,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관대한 선물(щедрые подарки)’을 줌으로써 탄생하지 말았어야 할 우크라이나가 출현했다는 역사관을 드러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이 제국주의가 민족자결주의를 억누르지 못할 만큼 그 파고가 거셌다는 점에서 볼셰비키는 시대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려 한 것이었다. 빅토리아 스몰킨(웨슬리안대)은 소련이 공화국연방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독일제국이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등과 같은 해체의 전철을 밟지 않고, 제정러시아 영토를 많은 부분 흡수할 수 있었다고 반박한다.

    *레닌 동상의 상반된 모습- 2014년 돈바스 내전기에 찍힌 사진이다. 제정러시아문장이 새겨진 러시아국기를 두른 동상(왼쪽)과 우크라이나국기 색깔로 덧칠된 동상(오른쪽)은 각 지역을 상징한다. 오른쪽 레닌 동상은 탈공산화법에 의하여 철거되었을 것이다(사진작가 브랜던 호프먼).

    탈소비에트와 탈공산주의라는 급진개혁을 단행한 중동부유럽과 옛 소비에트공화국에서 스탈린주의와 공산주의는 파시즘이다. 이들은 스탈린체제를 불법점령 또는 식민지 시기로 간주한다(1930년대 우크라이나를 식민지로 인식하면서도 많은 희생 끝에 농업에서 공업국가로 변모한 사실을 두고 우크라이나 학계에는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반면 옐친 이후 러시아 급진개혁파는 애국주의를 수용하면서 탈소비에트 물결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푸틴의 역사관에 비추어 본다면 우크라이나는 이번 침공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된다. 하지만 러시아가 나라도 만들어주고, 영토도 넓혀주고, 산업화와 독립까지 시켜줬는데, 우크라이나가 배은망덕하게도 우리를 적대해 왔다는 사고체계는 제국주의시대 역사인식을 떠오르게 한다

    [① 러시아공산당은 두마(의회)에 도네츠크∙루한스크의 승인법안을 제출함으로써 푸틴의 정책을 지지한다. 러시아 지식인들은 공산애국주의 노선을 주도하는 당 지도부를 스탈린파로, 이 흐름에 반대하는 서구 신좌파 성향의 지역조직 활동가들을 레닌파로 부른다. ② 마이단혁명 후 우크라이나는 공산당 등 3개 좌파 정당의 등록을 취소했고, 2차 대전기의 우크라이나 파시스트들을 독립운동가로 격상시킴으로써 폴란드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소치알니 루크(사회운동)라는 신좌파 정치조직이 만들어졌으며, 이들은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간 충돌에 따른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분열에 반대한다].

    존 매케인이 과거 러시아를 주유소(gas station)에 비유한 것은 대단히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러시아는 GDP의 3분의 1 이상을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에 의존하고 있으며, 유럽시장을 두고 미국과 경쟁해 왔다. 2020년 기준으로 유럽 가스시장은 파이프라인이 74%, 액화천연가스(LNG)가 26%를 차지한다. 이 중 2021년 1분기 유럽시장의 LNG 공급 1위는 미국, 2위는 카타르, 3위가 러시아이다(파이프라인을 통한 가스 공급은 러시아가 1위, 노르웨이가 2위이다).

    러시아의 가스 지배력이 여전한 가운데 미국이 새로운 공급자로서 유럽시장에 등장한 것은 이번 전쟁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이다. 유럽에서 자국산 가스의 시장점유율이 확대될 경우 경제이익 증가에 그치지 않고, 유럽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이 함께 증대된다는 점에서 가스에너지는 미∙러의 정치무기이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릭 페리 에너지장관이 2019년 5월 미국산 LNG를 미국이 나치로부터 유럽을 해방시킨 지 75년 만에 유럽에 제공하는 ‘자유가스(freedom gas)’라고 일컬었던 것도 이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미∙러 대결은 미국산 셰일가스를 LNG 운반선으로 도입∙저장하는 LNG 터미널 구축과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파이프라인 건설 경쟁으로 점화되었다. 그 중심에는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고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인 ‘노드스트림2’ 문제가 있다. 이 사업을 두고 미국(건설중단)과 러시아(조기완공)의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독일은 전략적 자율성에 입각해서 노드스트림2에 대한 미국의 제재에 반발하면서도, 미국산 LNG 수입을 통해 러시아 천연가스의 유럽시장 지배력도 경계해 왔다. 러시아는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줄임으로써 유럽경제에 영향을 끼치던 간접적인 대응방식에서 직접적인 압박으로 방향전환을 했다.

    이반 마르코프(러시아 대안좌파 운영자)의 분석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태는 에너지안보 측면에서 볼 때 러시아가 위기 고조를 통해 유럽에서 노드스트림2 개통이 시급한 환경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다. 운반 과정에서 가스를 액화하고, 터미널에서 다시 ‘재기화’해야 하는 미국산 셰일가스는 러시아와의 가격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러시아의 의도는 노드스트림2 개통과 함께 미국업체가 경쟁할 수 없는 가격으로 유럽과 장기계약을 맺음으로써 미국의 LNG를 유럽에서 퇴출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년 12월 초 미∙러 정상 간의 전화통화 후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국무부 브리핑에 이어, 2월 초 바이든 대통령은 미∙독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노드스트림2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경쟁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결국 위기 악화만으로는 러시아의 전략을 달성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러시아는 세계 3위의 석유생산국이자 세계 2위 석유수출국으로 2019년 기준으로 한국, 미국을 포함한 48개국에 석유를 수출하고 있다. 러시아의 하루 수출물량인 700만 배럴(세계시장의 7%)의 대체물량을 확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국과 영국의 러시아 석유 및 가스 수입 금지조치의 파급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이 적대국인 베네주엘라에 접근하는 것은 자국의 석유 수입물량 중 러시아가 차지하는 3%를(하루 24만5천배럴) 대체하기 위한 시도이다. 미국은 베네주엘라에서 수입을 중단하기 직전인 2018년 12월 하루 약 20만 배럴을 수입한 바 있다. 발레리 안드리아노프(러시아정부 산하 금융대학)는 관계개선이나 투자 없이 단기적인 차원에서 베네주엘라가 중국에 공급하는 비공식물량을 자국으로 끌어오기 위한 미국의 행동으로 분석한다.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이 가속화될 수 있겠지만, 세계 1위 석유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 없이는 유가안정과 러시아에 타격을 줄 수 없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 이란과의 핵협상과 관련하여 바이든 행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2017년 1월 1일부터 석유생산량 감산을 통한 유가 방어 전략을(오페크 플러스) 주도하고 있다. 매년 9월마다 허리케인으로 인해 멕시코만의 석유∙가스 생산이 타격을 받는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노드스트림2에 대한 독일의 입장은 인증을 연기한(postponing certification) 것으로, 미국이 말한 cancel, end와는 의미가 다르다.

    석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전쟁의 여파로 밀 가격이 급등했다는 것이다. 식량위기는 각국의 정치안정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아랍의 봄과 이어진 내전은 밀 가격 급등과 관련이 있었다. 이미 이라크 남부에서는 식품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러시아는 2019년 기준 세계 1위(18.4%), 우크라이나는 세계 5위(7%) 밀 수출국이다. 양국 합산 수출시장 점유율은 현재 30%에 이른다. 양국은 밀뿐만 아니라 옥수수, 콩, 보리, 식용유 원료인 해바라기기름의 주요 수출국이다. 러시아는 칼륨비료와 질소비료의 세계적 생산국이지만 수출은 연초에 이미 중단됐다. 2020년 현재 우크라이나 밀 수출의 95%는 흑해를 통해 이루어졌다. 가장 중요한 곡물 수출 항구는 므콜라이우/미콜라이브와 오데사이다.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다국적 농산물유통기업들은 항구 폐쇄로 인해 우크라이나에서의 영업을 중단했다. 러시아가 므콜라이우/미콜라이브의 북쪽과 동쪽을 봉쇄함으로써 우크라이나의 온전한 수출항구는 오데사만 남았을 뿐이다. 러시아는 오데사를 포함한 흑해 주변을 완전히 장악해서 지중해 주변 국가에 대한 경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밀 수입 국가- 우크라이나 밀 수출의 50%가 중동과 북아프리카로 수출된다. 특히 이집트와 터키는 밀 수입의 70% 이상을 두 나라에 의존하고 있어, 이번 전쟁의 후폭풍에 대단히 취약한 나라들이다(독일 DW).

    러시아는 팔라듐(43%), 백금(10%), 니켈(8%), 알루미늄(6%), 구리(3%) 같은 비철금속자원의 전세계 주요 생산국이다. 이들 품목들은 저탄소경제 전환을 위한 첨단 제조업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원료들이다. 러시아는 항공기, 선박, 잠수함, 자동차와 인공관절, 임플란트 등에 사용되는 스폰지티타늄 전세계 3위 생산국(13%)이며, 원료인 티타늄정광을 러시아에 공급하는 주요 국가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이다. 러시아기업이 운영하는 알루미늄 원료인 알루미나 생산 공장도 우크라이나에 있다. 그동안 이들 품목들의 가격이 급상승했던 이유는 저탄소경제 전환 과정에서 수요가 폭발하여 시장에 재고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미국의 제재는 가격 급등에 기름을 붓고 있는데, 니켈 가격의 톤당 10만 달러 돌파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며 알루미늄, 팔라듐 등도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시장은 러시아가 일부 비철금속 품목의 수출 금지로 미국의 경제전쟁에 대항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석유 및 가스는 러시아의 돈줄이고, 곡물은 인도주의에 위배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비철금속의 공급 감소를 유발하여 세계공급망을 교란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렇게 하더라도 러시아 경제에 타격이 덜한 데다가, 수요∙공급 측면에서 볼 때 적은 물량을 가지고서도 세계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러시아 광물 세계 생산 점유율- 다이아몬드, 금, 백금계열 금속(PGM), 니켈의 생산량은 세계 3위 이내이며, 알루미늄과 철광석의 주요 공급국가이기도 하다(마이닝 테크놀로지).

    미국은 2014년 크림반도 병합을 기점으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최측근, 정치인, 고위 각료, 기업인과 대기업에 대해 제재를 가했고, 주요 금융기관과 에너지기업, 방위산업체의 금융거래 제한, 석유개발프로젝트 교역 및 투자 제한과 군수물자 전용 가능 제품의 대러시아 수출 제한 조치를 취했다. 따라서 그동안 러시아는 미국의 제재에 대한 자구책을 강구해 왔다. 예컨대 최근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 페이팔의 러시아 영업 중단 발표 조치가 있었지만, 대다수 러시아인들은 이미 러시아 자체 카드인 미르은행카드를 소지하고 있으며, 다른 대안으로 중국 카드가 존재한다.

    ‘국제은행 간 금융통신협회(SWIFT)’에서 러시아 7개 은행들을 배제함으로써 러시아의 외환(달러) 거래를 방해하려는 조치는 제재의 핵심이다. 워싱턴포스트가 ‘글로벌 뱅킹의 지메일’이라고 부른 ‘스위프트’는 은행도 아니고, 결제수단도 아니다. 전세계 은행을 연결하는 인터넷 금융메시징 전송시스템으로, 각각의 은행들이 은행 간 송금 요청(지침 포함)을 ‘스위프트’라는 메시징시스템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미국의 러시아 은행들에 대한 ‘스위프트’ 배제는 2014년 크림 병합 당시부터 제기되어 왔고, 이후 러시아와 갈등이 생길 때마다 논의돼왔던 단골소재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안전하고, 속도가 빠르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가장 우수한 금융메시징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은행들이 관성적으로 선호하는 것일 뿐 독점체제는 아니다.

    러시아중앙은행은 크림 병합 이후 자국 은행들이 ‘스위프트’에서 배제될 것에 대비해 ‘СПФС(SPFS)’라는 자체 금융메시징 전송시스템을 구축하여 운영 중에 있다(미국도 페드와이어라는 독자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독일과 스위스 일부 은행도 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 은행은 80개 금융기관이 가입한 중국의 위안화국제결제시스팀인 ‘CIPS’도 이용할 수 있으며 메신저서비스인 ‘왓츠앱’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제재의 가장 큰 허점은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인 스베르방크와 가즈프롬 금융 부문은 가스대금 송금만큼은 ‘스위프트’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스위프트’ 배제만으로는 러시아경제의 핵심인 가즈프롬이 가스대금을 지급받는 것에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제이피모건은 3월 3일 러시아경제가 1998년 금융위기에 필적하는 경제생산 감소를 겪을 것으로 전망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경제가 전면적인 위기 상황에 내몰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올가 치즈(토론토대)는 제재로 인해 파이(러시아경제) 크기가 줄어들어도, 파이는 여전히 매우 크다고 말했다.

    달러화는 각국 통화 중 국가 간 거래 규모가 가장 큰 통화이다. 따라서 특정 국가 은행의 ‘스위프트’ 배제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이 달러화 거래이기도 하다.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으며, 이들 국가들은 러시아와의 달러 결제가 방해 받을 경우 자국 화폐와 루블화 간의 직접 결제를 늘릴 것이다. 이란도 미국의 제재 이후 이를 우회하기 위해 한국에 원화 결제 계좌를 개설한 바 있다. 더타임오브인디아에 따르면 러∙인∙중은 코로나19 위기 직전까지 ‘스위프트’의 대안으로 브릭스플랫폼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발 더 나아가 파이낸셜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라나 포루하르는 이번 침공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시스템은 각각 달러와 위안화에 기반한 금융시스템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하나, 이런 급진적인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블룸버그 오피니언의 편집장인 로버트 버제스는 기축통화의 대안은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이며 달러의 지위는 여전히 견고하다고 반박했다.

    *외환보유고 달러 비중- 세계외환보유고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59%로 20.5%의 유로보다 훨씬 높다. 위안화는 3%에 미치지 못한다. 엔화가 5.83%이다(출처- IMF, 블룸버그).

    *스위프트 이용 달러 비중- 전 세계 거래의 40%가 달러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위안화는 3%에 불과하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위안화는 달러의 경쟁자가 아니다(스위프트, 블룸버그).

    현재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진격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패퇴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지는 못했으며, 러시아의 뜻대로 작전이 전개되고 있지는 않지만, 목표지점을 향한 러시아군의 전진은 계속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서구언론 보도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브리핑에 기반한다). 따라서 미국과 나토가 군사개입을 하지 않는 한 러시아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①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이 러시아로부터 자금 확보의 원천인 석유∙가스∙석탄을 구매하지 않거나 ② 조세피난처라고도 불리우는 역외금융센터(Offshore Financial Center)의 러시아 자산을 모두 동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사안 모두 유럽의 사활적인 이익이 걸려 있는 데다가(특히 ①은 전세계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사실상의 선전포고나 다름없기 때문에 실현가능성 여부는 불투명하다.

    *러시아 경상수지 흑자 추이- 빨간색으로 표시된 2022년 2월 러시아의 경상수지 흑자는 기록적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이 러시아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 유럽 수출이 이 흑자를 견인한다. (로빈 브룩스 국제금융협회(IIF) 수석이코노미스트).

    서구언론은 은연중에 푸틴이 전쟁의 수렁에 빠져 실각하게 되길 바라지만, 소비에트체제 해체의 혼란을 경험한 러시아인들은 강한 러시아를 원한다. 러시아인들의 이번 전쟁에 대한 지지도 생각보다 훨씬 크다. 그들은 급여와 연금이 지급 정지되고 단전, 단수 등이 빈번했던 체제전환의 과도기가 주었던 공포감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강한 러시아의 핵심은 바로 그러한 혼란상을 통제할 수 있는 강한 대통령과 강한 정부이다. 따라서 푸틴이 설사 실각한다 하더라도 러시아에는 제2의 푸틴이 등장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서구언론이 추앙하는 알렉세이 나발니 같은 인물이 자유주의자에서 애국주의자로 변신하여 서구에 맞설지도 모를 일이다.

    러시아는 북한이다. 러시아는 독일∙프랑스(중국)의 약속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자국 안전보장에 대한 확약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을 종료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아나톨 리벤(퀸시연구소)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미국이 먼저 중거리탄도미사일(INF)을 유럽에 배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러시아의 의구심을 해소시켜 줄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러시아 애국주의 간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미국이 ① 우크라이나를 설득하여 러시아어 사용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자치권 보장을 수용하도록 하고, ② 분쟁지역에는 중립국으로 구성된 유엔평화유지군을 파병하여 충돌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하며, ③ 과거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도 우크라이나가 번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이번 침공은 러시아가 미국의 제재가 확대될 것임을 감수하고 벌인 행동이라는 사실이다. 2014년부터 미국의 대러 제재는 이미 진행 중이었고, 작년 12월 초에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강력한 경제조치들로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을 통해 발표한 바 있다. 따라서 러시아의 이번 침공은 경제제재 확대로 인한 국가경제의 추락과 국민 고통을 각오하고 단행한 것이다.

    둘째는 러시아의 이번 침공이 고유가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2021년 들어 코로나 위기로 위축됐던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섬에 따라 에너지 수요와 가격이 동반 상승했고, 현재 석유시세는 10년만에 배럴당 100달러(WTI 서부텍사스유 기준)를 돌파한 상태이며 러시아의 손익분기점은 44달러에 불과하다. 침공이 고유가를 불러온 것이 아니라 고유가 기조 아래에서 전쟁이 발발하여 유가에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다(저유가였다면 과연 침공이 일어났을까?). 역사적으로도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2014년 크림 병합과 돈바스 내전은 모두 고유가 시기에 발발했다. 이 두 가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러시아의 이해가 관철되지 않는 한 전쟁의 조기종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러시아와 유가(WTI)-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대외군사개입은 고유가 시기에 이루어졌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국가예산은 무기와 의약품 구입에 집중되고 있다. 종전이 된다고 하더라도 주택 등 기반 시설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2022년 국가예산의 12%에 해당하는 62억 달러를 국가부채를 상환하는데 써야만 하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재건비용 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폴란드의 신좌파정당 라젬(함께)이 가장 먼저 주창한 우크라이나 국가부채 탕감은 이 나라 국민들에게 가장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 과연 제블린 대전차 미사일뿐인가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번 전쟁이 ‘우리 모두의 패배’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제레미 코빈이 말한 것처럼 평화를 위한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협상 결과가 양보로 비춰질 경우 젤린스키 정권은 존립기반을 상실할 것이며, 러시아인들에게 패배로 비춰질 경우 푸틴 역시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양측 모두 전쟁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 <국방칼럼> 연재 링크

    필자소개
    국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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