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는 괜찮은데 마케팅이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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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09일 08: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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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레디앙> 칼럼을 통해 주대환은 “기독교의 반만큼이라도 학습, 교육을 일상생활로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성공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또 신민영도 오래 전 칼럼에서 “교회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자는 말을 했다.

사실 나도 오래 전부터 해왔던 생각이다. 학교 다닐 때 술병을 옆에 두고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시를 읊고 있으면 기독교 동아리의 ‘처자’들이 어느 사이엔가 다가와서 전도지를 들이밀고는 했다. 구원을 말하는 그들에게 나는 모든 억압과 착취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며 민주노동당의 입당원서를 내밀고 싶었지만, 그들이 전도지를 들고 다니듯 입당원서를 들고 다니지 않았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길을 걷다 보면 붙잡고 예수 믿고 천국 가라는 아주머니들은 왜 그리 많은지,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앉아 있으면 전도 많이 해야 하늘나라 가서 상 받는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들이 왜 그리 많은지, 술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향해 확성기 소리를 높여, 이제 그만 회개하고 주님 곁으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아저씨들은 왜 그리 많은지.

철없던 시절 민노당에 제대로 엮였다

나는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활발한 활동이 조금은 무서웠지만 부럽기도 했다. 기독교의 반만큼이라도 민주노동당을 홍보하는 데 노력한다면 좀 더 빨리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문장에는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짓밟힌 사람들이 종교로부터 구원을 얻고자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영혼의 구원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본주의 체제에 짓밟혀 신음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탄압과 차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게 하지는 못한다. 사회적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구원해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이 사회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사회가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로 가득해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회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짓밟혀 신음하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교회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영화배우 문소리는 자신이 민주노동당에 엮였다고 말했다. 나도 민주노동당에 엮였다. 철없던 시절부터 ‘국민승리 21’이라는 희한한 이름을 가진 곳의 권영길이라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정치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해소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약간 철이 든 뒤에는 재벌과 학벌이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그러뜨리려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NL이 뭐고 PD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당내에 어떠한 정파들이 있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지만, 공화국의 이념을 실현할 ‘무상의료, 무상교육’이라는 구호에 끌려 지역에 있는 민주노동당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선거운동을 돕고 싶다고 했더니 우리는 돈 주면서 선거운동원 모집하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노동당 지지자인데 선거운동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반가워하며 위치를 설명해주었다. 막상 가보니 이전에 가보았던 다른 당 의원의 사무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사무실에서 라면 끓여먹으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좋아서, 이런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당원이 되었다.

   
  ▲ 닮은 듯 다른 기독교 청년학생의 노방전도 모습(사진 左)과 민주노동당 청년학생들의 선거유세 율동패 모습(사진 右)
 

나의 일상을 억압하는 민주노동당 배지

아무튼 나는 그날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역위원회 사무실에서 받아온 “사랑해요 민주노동당”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배지를 하루도 빠짐없이 가방에 달고 다녔다. 그 배지를 달고 다니면서부터 무법자였던 내 생활에 심각한 제약들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누가 가방에 달려있는 배지를 보고 민주노동당을 싸잡아 욕하기라도 할까봐 길에 침도 못 뱉고 무단횡단도 못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버스나 전철에서 노인 분들에게 꼬박꼬박 자리를 양보했다. 행여나 한 번 보시고 관심을 보여주실까 자리를 양보해드린 노인 분들의 눈앞으로 향하도록 배지를 들이댔다. 가끔 민주노동당 사람이냐며 물어보시는 분들께는 활짝 웃으며 자랑스럽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도 민주노동당 진군가와 2004년에 나온 선거 캠페인 송(부자에게 세금을,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발걸음으로)을 틀어놓고 벽에는 당에서 나온 한미FTA 반대 선전물을 부착해놓았다.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왜 한미FTA에 반대해야 하는지를 친절히 설명하며 입당을 권유하기도 했다.

생활 전반에 민주노동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이 자리 잡은 것이다. 한마디로 엮인 것이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물론 당내에서 독도에 군대를 파견하자는 둥의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당원인 것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정파 싸움으로 혼탁한 양상을 보이며 각종 사안에 있어 헛발질을 해댈 때에는 내가 민주노동당의 당원인 것이 너무나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은 당원을 편한케 하라

그런 면에서 민주노동당은 “당원을 좀더 편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과 “당원에게 당은 따뜻함과 편안함, 연대감과 자부심을 주어야 한다. 즉 내면적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주대환의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자발적인 열정을 가지고 있는 당원들은 굳이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대중들에게 민주노동당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며 생활 속의 진보를 실천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전도지를 들고 다니듯이 우리도 입당원서를 들고 다니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생활 속에서 만나는 대중들과 각종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끊임없이 터져 나올 그들의 불만에 대한 대안으로 민주노동당 입당을 권유하며 입당원서를 내밀자.

내 생각에 민주노동당은 콘텐츠는 좋은데 마케팅이 약하다. 노동자 대중의 정당답게 더욱 더 대중 속으로 파고들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보자. 민주노동당 홍보 컬러링을 만들어서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생활 속에서 편히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솔직히 조금 촌스러운 당가나 진군가 대신에 쉽고 발랄하게 각 연령층에 맞추어 새로운 감각으로 몇 곡을 만들어서 말이다.

또 그 노래들을 이제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거의 모든 대중이 애용하는 미니홈피나 블로그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떨까? 당장 2004년 총선에서 사용했던 캠페인 송들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진부한 틀을 벗어나 진보정당다운 기발하고 새로운 홍보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무리 홍보를 잘해서 당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더라도 막상 당에 발을 들여놓기가 어렵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운동권 사투리를 버려야 한다

모든 의견그룹들은 자신들만의 이익보다 당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어야만 한다. 정파들의 담합에 의한 세팅선거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뿌리 뽑아야만 한다. 반한나라당 연대 같은 하는 헛소리로 비판적 지지의 망령을 깨워내지 말자. 독도에 군대를 파견하자는 둥의 헛발질을 통해 표를 깎아먹고 다니지 말자. 대중적 상식에 부합하는 정당 운영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당의 주인은 평당원들이다. 당을 평당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NL이 어쩌고 PD가 어쩌고 사회주의가 어쩌고 사민주의가 어쩌고 하면서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운동권 사투리를 이제는 버려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은 ‘노동당’이라는 점에 있다.

굳이 특정한 이념에 대한 신념이 없더라도 이 땅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노동자 대중이라면, 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한다면, 또는 개발보다 좋은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또는 비정규직 철폐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기본이라 생각한다면, 또는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실현이 공화국의 이념의 실현이라 생각한다면, 누구나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되어 관용과 연대와 희망과 사랑을 이야기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어야만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에 맞게, 진정한 노동자 대중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자. 좀 더 편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대중들의 곁에 다가갈 수 있게 노력하자. 우리 좀 더 명랑하게 진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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