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당과 구 민노당, 누가 이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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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2월 08일 09: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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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4일 심상정 비대위의 사퇴와 5일 노회찬 의원의 사실상 탈당 선언으로 8년 전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자주파만의 반쪽 정당이 될 전망이다. 사실상 대외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심상정, 노회찬 두 사람이 탈당한다면 민주노동당은 당장 대중들에게 친숙한 얼굴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총선은 두 달 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다. 말 그대로 위기다.

    6년 전 네덜란드와 2008년 한국

       
      ▲핌 포르타운.
     

    지금 정국을 멀리 유럽 땅 네덜란드에서 지켜보며, 필자는 6년 전 네덜란드를 휩쓸었던 정치권 태풍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보통 한국 언론에는 신인 우익 정치인의 암살사건으로 알려진 그 사건 말이다. 죽은 정치인은 핌 포르타운(Pim Fortuyn)이다.

    2002년 초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네덜란드의 사회적 합의모델에 기반한 좌우동반 모델은 이미 한계에 와 있었다. 네덜란드 국민들은 도대체 노동당이 좌파인지, 자유당이 우파인지 구분을 못할 지경이었다.

    오랜 좌우 연정 속에서 좌파는 우경화되었고 우파는 좌경화 되었다. 모두 중도를 지향한 것이다. 그리고 주요 정당들이 막후 합의에 의해 서로 이익을 챙기는 정치행태가 계속되어 이념은 실종되고 이익만 남게 되었다.

    한국과 비교하면 서로 별 차이도 없는 보수정당들이 지역에 기반하거나 신자유주의 세력이 스스로를 진보라고 부르며 명목상 차별화에만 치중해 국민 대중들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는 상황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1998년부터 네덜란드에서 ‘살기 좋은 네덜란드를 만들자’는 일반 시민들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날로 심각해지는 범죄와 축구 팬들의 난동 같은 무질서가 판치는데 정치권은 ‘부드러운 대응’ 같이 한 물 간 대책으로 일관하던 당시 상황에서 정치권 밖에서 신당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핌 포프타운과 홍세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정치권의 부패가 만연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에 기반한 민주노동당이 정치개혁과 민생문제 해결을 내걸고 진보정치의 새 영역을 열었던 상황과 비슷하다.

    살기 좋은 네덜란드를 만들자는 이 운동은 ‘살기 좋은 네덜란드’라는 정당을 만들고 대표로 유명한 우익 칼럼리스트 핌 포르타운을 당 대표로 영입한다. 한국으로 치면 홍세화 선생과 비교할 수 있다. 물론 정치색은 반대지만 말이다. 핌 포르타운은 언론을 사로잡았다.

    그는 네덜란드의 기성 정당들을 사회적 합의라는 틀에 안주하며 아무런 문제도 해결 못하는 무능한 집단이라고 성토하고, 자신은 네덜란드를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그가 당 대표 수락 연설 마무리 발언에서 했던 말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At Your Service(국민의 부름에 따르겠습니다)’라는 말은 기존 네덜란드 정당질서를 깨부순 의미가 있다. 즉 정당이 정책을 제시하고 유권자에게 표를 얻는 정당중심 제도에서,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듣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정치하는 국민중심 제도로 전환시킨 것이다.

    한국에서 민주노동당이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고 국민들에게 말을 걸며 먹고 사는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제기하며 관심을 끈 것, 그리고 당원들의 당비로 운영되는 진성당원 중심 정당을 표방한 것과 비슷하다.

    그는 또 자신은 총선 후면 총리가 되어 있을 거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후’ 하고 웃었다. 정치가 장난인가? 정계진출 하자마자 총리라니? 하지만 총리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진 이 사람에게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살기 좋은 네덜란드’의 분열과 민노당의 분당

       
      ▲주간지 표지 모델이 된 핌.
     

    핌 포르타운은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같은 대도시에서 떼를 지어 길거리를 배회하며 문제아로 찍힌 아랍계 이민 2세들을 공격했다.

    그들 때문에 선량한 시민들이 무서워서 길거리를 마음대로 못다닌다는 말을 하고, 자신은 공공질서를 바로 잡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랍문화는 원래 폭력적이고, 서구문화에 비해서 열등하다는 발언을 했다.

    보통 네덜란드인들은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정치인으로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2차대전 때 유대인 학살의 경험으로 유럽에서는 인종차별이 금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곧 다른 정당들은 그의 발언을 문제삼아 인종주의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살기좋은 네덜란드’는 당 대표인 그에게 사태의 수습을 요구하였다. 해명을 하든 사과를 하든 다른 당들의 공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발언을 완강하게 지켰다. 그리고 내가 싫으면 나는 당을 떠나겠다고 하며 당 대표 자리를 내놓고 자기 지지자들을 이끌고 신당을 차렸다. "At Your Service를 외치며 신선하게 등장한 세력이 둘로 갈라져 버린 것이다.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이 부결되고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눈앞에 온 상황과 비슷하다. 두개의 진보정당 시대가 온 것이다. 사회당과 초록당도 물론 있지만 그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대중의 눈에 보면 두개다.

    그럼 그 후 총선에서 살기 좋은 네덜란드당과 핌 포르타운당 중 누가 승리했을까? 그것은 핌 포르타운당이었다. 조직은 살기 좋은 당이 더 우세했다. 그러나 핌 포르타운은 담론 정치에서 훨씬 앞서갔다.

    핌 포르타운당의 승리

    그는 언론을 누비며 네덜란드 정치의 해묵은 과제였던 난민 신청자 문제, 도시의 빈민가 문제, 범죄 문제, 아랍계 이민 2세 문제 등에 대해서 우파적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의 발언에 대해 기존 정치권은 한도를 넘었다고 비난했지만 대중 사이에서는 그나마 정치권에서 대중들과 말이 통하는 정치인은 그가 한 사람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는 총선 직전 실시된 3월 지방자치 선거에서 로테르담 시의회의 제 1당이 되었다. 그리고 시정부의 여당이 되었다. 2차대전 이후 노동당 깃발이 한번도 내려진 적이 없는 노동당의 아성, 부두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의 전통이 강한 좌파 도시를 장악한 것이다.

    5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 신인들이 그의 진영에 가담하기 시작했고, 그의 당은 여론조사에서 계속 승승장구를 하여 5월 총선 열흘 전에는 여론 조사 1위 자리를 탈환하는 기염을 토한다. ‘총리가 되겠다’는 말이 씨가 되어, 말 그대로 총리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선거 9일 전 그는 한 청년의 ‘총알 세례’를 받고 죽는다. 그리고 그의 정치실험은 결국 실패한다. 그러나 아직도 네덜란드에서 그의 이름은 유령처럼 떠돌고, 우파 정치인들은 6년이 지난 지금도 제 2의 핌 포르타운이 되고자 그를 흉내 내고 있다.

    다시 한국 정치상황으로 돌아와 보자. 민주노동당 잔류파와 신당 창당파 중 누가 이길까? 필자는 네덜란드 핌 포르타운의 태풍을 지켜보며 시대의 과제를 주도해 가는 능력과 대중과 소통할 줄 아는 능력의 중요성을 보았다. 핌 포르타운은 제도정치의 꽉 끼워진 틀을 깼고 대중들에게 어렵지 않게 다가갔다.

       
      ▲우파 정치인 핌은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 노동당 아성인 암스테르담에서도 승리를 거머쥐었다.
     

    결국 진보정치의 대표자 역시 시대의 과제를 주도해가는 능력과 대중들에게 말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세력이 될 것이다. 이제 불안한 동거의 시대는 끝났다. 평등파는 그 동안 당 내 소수파로서 못했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자주파도 대중적인 인물이 없어 못했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누가 얼마나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냐는 것이다.

    전화위복의 기회

    민주노동당의 분열로 지지자 일부는 실망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사태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민주노동당이 보여주지 못한 진보정치의 참모습을 보여줄 기회는 지금이 제일 좋다. 왜냐면 지금은 여론의 관심이 민주노동당으로 와 있다.

    범여권의 내분보다 민주노동당의 내분이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번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 다니는 교회 앞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에 나선 활동가들이 추운 겨울 알몸으로 십자기를 지고 시위한 것 같은 상징적인 행동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만약 그날 1백명 안팎의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교회 앞에서 시위를 했다면 어땠을까? 남의 교회 와서 방해 놓는다며 욕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2000년 전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십자기를 지고, 과연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면서 박성수 회장을 비롯한 비정규직에 무관심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려주었다.

    피켓과 구호, 유인물과 거리시위로 대표되는 시위의 정형은 이제 언론 눈에는 식상하다. ‘또 시위군!’하고 잠깐 쳐다보다가 자리를 뜨는 게 시민들의 반응이다. 관성에 따른 운동은 이제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이제 정당이 준비한 정책을 들고 나와 한 표를 호소하는 정치는 식상하다. "국민의 부름에 따르겠습니다"를 외치며 진보정치를 되살려야 한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2월 3일 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 다수는 비대위의 혁신안을 거부했다. 이는 대선평가에 대해서 지난 4년 간의 실패의 결과라는 평가를 거부하고 실망스러운 결과라는 말로 대충 넘어가는 ‘용기’를 보여줬다.

    대선 결과가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뭐가 잘못되었을까 진단을 내리기로 한 것이었는데 평가도 실망스러웠다는 건 하나 마나한 얘기다. 대선 결과가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실망스러웠다는 말인가?

    변화를 보지 못하는 정당은 진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한국사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식민지나 분단, 국가보안법이나 반공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게 지금의 모습이다. 변화하는 현실을 포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우리가 맨땅에 헤딩할 필요는 없다.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고 물으며 먹고 사는 문제를 한국 정치의 주요 쟁점으로 다시 떠올린 성과는 지켜나가야 한다. 경제민주화운동본부의 민생의제 발굴 경험은 하나도 버리지 말고 다 이어 받아야 한다. 학교 급식운동의 경험은 새 진보정당의 거름이 될 것이다.

    사실 다시 골방으로 들어가서 뭔가 만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잘못된 것을 깨끗이 버리면 모양이 만들어진다. 새 진보정당은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민주노동당 호의 선원들은 침몰하는 배를 살릴 심상정 선장을 쫓아냈다.

    이제 선장은 배에 머물 필요가 없어졌다. 배에 남아있겠다고 고집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자. 빨리 구명선을 띠우고 배에서 탈출해야 한다. 물론 같이 갈 사람은 남겨 놓지 말고 챙겨야 할 것이다.

    총선 대응 방안

    이제 글을 마치려 한다. 6년 전 네덜란드가 보여준 핌 포르타운의 교훈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낡은 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정당 중심이 아니라 유권자 중심의 정치시대가 왔다는 것, 다른 정당은 얘기할 수 없는 의제를 제시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또 로테르담 시의회 장악으로 교두보를 마련하고 단숨에 전국 정당으로 성장한 모습에서 우리는 선택의 중요성을 본다.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이 이번 총선에 여러 지역구에서 출마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중앙의 여론전에 집중하면서 핵심 지역 중심으로 역량을 집중하여 총력을 기울이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지금은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다. 발바닥에 땀나게 새로운 진보정치를 외칠 때이다. 아직 나는 시대는 진보정당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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