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화는 됐지만, 계급투쟁은 못했다"
    By tathata
        2007년 01월 08일 02: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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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시청 앞 광장을 검게 물들인 넥타이 부대들은 이제 4년마다 젊은이들과 함께 붉은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기 위해 거리로 나온다.

    넥타이를 풀고 최루탄과 돌멩이를 던지는 대학생들과 함께 ‘호헌철폐, 독재타도, 직선제 쟁취’를 외친 그들은 이제 쉽게 넥타이를 풀지 않는다.

    넥타이 부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그 운동의 성공을 ‘확신’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여겨진다. 87년 넥타이들은 대학생들과 함께 어깨를 겨누며 거리를 활보했다. 그들에게는 사회를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으며,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넥타이 부대는 87년에 이어 97년 노동법 개정저지 투쟁 때 다시 한 번 총파업의 열기를 불살랐으며, 98년 외환위기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구조조정의 목줄이 조여 올 것이라는 두려움에 넥타이를 풀기를 두려워한다. 있을 때 많이 벌어야 하고, 잘리지 않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과거를 돌아보면 “그 땐 그랬지”라는 말이 맴돌 뿐이다. 87년 거리를 자욱하게 물들였던 화염병의 맵고 지독한 내음은 ‘지금과는 동떨어진’ 향수가 됐다.

    "87년은 민주화 운동이었을 뿐"

    다음달이면 정년을 맞아 30년 가까이 다니던 서울보증보험(구 대한보증보험) 생활을 마감하는 김국진 (55)씨는 “87년은 민주화 운동이었지, 계급투쟁운동은 아니었다”며 그 때를 조용히 회상했다. 그는 당시 한국노총 금융노동조합연맹 대한보증보험(현 서울보증보험)노조 위원장에 재직하면서, 87년 거리 시위를 주도했다.

    한국노총이 ‘4.13 호헌 지지성명’을 발표했을 당시, 13개 보험노조를 규합해서 비판 성명을 발표했으며, 87년 6월 학생들이 시청 앞 광장에 운집했을 때 동료 직원들에게 “광장으로 가자”며 선동했다.

    “시대의 천운이 있었다고 할까요. 당시 써머타임(여름철 표준시보다 1시간 시계를 앞당겨 놓는 것)이 행해지고 있었는데, 퇴근시간이 돼도 해는 쨍쨍하게 떠 있어서 마치고 딱히 할 일이 없었어요. 게다가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있어서, 국제적으로 관심이 한국에 집중되고 있던 터라 우리가 거리로 나가더라도 설마 경찰이나 군인들이 심하게 하겠나하는 일종의 안도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다시 쿠데타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않아야 한다. 그래서 ‘나가자’고 소리쳤죠.”

    그렇게 거리로 쏟아져 나온 넥타이 부대들은 넥타이를 풀고 대학생들과 함께 경찰을 향해 때로 투석전을 벌이기도 했다.

    “대단했어요. 80년대면 우리도 대학교에서 운동의 열기를 누구든 몸소 느껴본 세대지 않습니까. 그래서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는 모습을 보니 뜨거운 뭔가가 솟구치지 않겠어요. 게다가 금융권 회사들은 모두 명동, 을지로, 시청 앞에 모여 있잖아요. 그래서 더 쉬웠던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한미FTA 반대집회, 노동법 반대집회가 대부분 시청 앞에서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왜 넥타이 부대들은 나오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85년을 전후해서 보험업계에 노조 결성 바람이 불었다. 연월차 축소와 임금동결, 근로조건 후퇴에 반대하며 현대화재해상노조, 쌍용화재 동양화재 범한화재노조 등이 생겨났다. 그리고 87년 3월 범한화재 쟁의부장 이상재 씨가 부당해고를 당했고, 전국 금융노련 산하 보험 은행 제2금융권노조 30여개 조합간부와 조합원 2백여명은 금융노조 사무실에서 7일간 철야농성을 벌였다. 금융노련 최초의 연대투쟁이었다.

    경찰이 금융노련 사무실 입구를 봉쇄하자,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은 트렁크를 이용해 사무실에 들어가 물품을 날랐다. 그리고 투쟁은 승리로 끝이 났다. 당시에는 자주적인 노조를 결성해야 한다는 단단한 희망이 있었다.

    금융노련 최초의 연대투쟁 일으키다

    “지금은 어림도 없죠. 쟁의부장이 한 명 해고된다고 해서 그렇게 모여서 싸우나요. 그 때였으니까 가능했죠.”

    넥타이 부대들이 거리로 쏟아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80년대 후반 노조의 힘이 과거에 비해 강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함께 싸우면 이긴다’는 자신감을 터득했던 것이다.

    그리고 딱 10년 뒤, 아이엠에프가 몰려왔다. 망하지 않을 것 같은 은행들이 문을 닫았다. 구조조정과 대량해고라는 쓰나미가 몰려왔다. 97년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을 위해 민주노총은 말 그대로 ‘총파업’을 벌였지만 막아내지 못했고, 외환위기의 직격탄은 가장 먼저 금융권으로 몰아닥쳤다. 그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고용형태인 비정규직이 생겨났다.

    대형은행들이 해외 자본에 매각됐으며, 지역의 중소영세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감당하지 못해 하나둘 쓰러져 갔다. 이제 파업을 하면 회사도 망한다는 위기감이 먼저 생긴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투쟁의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회사도 망하지 않아야 일터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됐죠. 민영화가 곧 경쟁력이며, 신자유주의로 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뀌면서 노조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 왔습니다.

    외환위기 사태가 차츰 가라앉으면서 금융권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게 됐어요. 정리해고의 불안감이 내면화되면서 사무직들도 ‘일단 먼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죠.”

    "지금은 노조활동도 보장받고, 누가 뭐라 할수 없다"

    그는 97년 노동법 개정 당시 민주노총이 ‘정리해고’를 수용했던 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일자리를 나누거나,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식으로 ‘방어’를 할 수 있었는데, 총파업을 하고도 정리해고 법안을 막아내지 못했다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차, 기아차노조의 취업비리가 터지고,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남발’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불신의 늪에서 찬밥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행히 지금은 과거에 비해 노조활동도 보장받고, 직장 내 민주주의도 자리를 잡았으며, 쟁의권도 노조의 투표절차에 의해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노조 활동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현재의 노조운동 상황을 진단했다.

    대학생들과 시민들, 넥타이 부대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메웠던 시청 앞 광장은 이제 월드컵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붉은 악마’로 대체됐다. 그 때 그는 “우리 민족의 정열, 역동성을 느꼈다”며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2003년 대통령 탄핵이 일어났을 때는 “5, 6공 때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절차적 민주주의마저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며 고조된 목소리로 말했다.

    정년을 2개월 앞둔 그는 이제 조용히,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민주노총의 사무금융연맹 결성을 주도할 정도로 어느 누구보다 정열적으로 싸우고 투쟁했다. 하지만 지금은 “투쟁보다 평화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평화를 더 원한다”고 말했다.

    "작은 것부터. 내면의 평화를 찾고 싶다"

    “작은 것에서부터 단계별로 평화가 이뤄지면 좋겠다. 계층, 계급, 국가간의 투쟁도 중요하지만, 서로간의 상생할 수 있는 평화로운 방법을 찾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퇴직 이후에는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국선도 수련에 전념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90년대 투쟁을 하면서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시는 등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는 그는 “이제 나 자신을 돌보면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평화’를 강조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본 그는 많이 지친 듯 보였다. 그에게 87년을 추억하는 것은 아주 오랜 기억처럼 여겨져, 필름을 재생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그래서 그의 말은 시간에 따라 차례대로 정연하게 서술되기 보다는, 툭 툭 끊어져 장면과 장면을 연상하는 것이 많았다.

    “87년은 민주화 운동이었지, 계급투쟁 운동은 아니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지금 계급투쟁운동에 다시 말하는 것은 수고로운 일처럼 여겨졌다. 그동안 돌보지 못한 가족들과 주변을 돌보고 수련에 전념하고 싶다며 그는 남은 인생 계획을 말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혹은, 이제 50대 중반에 정년퇴직을 맞는 87년 세대들이 지쳐있다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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