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율···
    [기고] '어떤' 고등교육이 필요할까?
        2022년 03월 01일 01: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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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 꼭 가야 할까? 당위적으로 생각하면 공부가 적성에 맞으면 가고, 그렇지 않으면 갈 필요가 없다. 우리 사회의 경우 2021년부터 전 학년에 걸쳐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실시되어, 사실상 중등교육이 의무화된 상태다. 이 상황에서 고등학교만 나와도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면 굳이 대학에 가기 위해 적성에 맞지 않은 공부를 할 이유가 없다. 대학에 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복하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 당위적으로 우리는 이런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론 선택을 가로막는 강력한 장애물이 존재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하면 곧바로 학력 간 임금 격차라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만약 그 격차가 예상보다 커 분을 삭일 수 없다면,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 아마도 이런 현실적 고민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다행히도 우리나라의 학력 간 임금 격차는 뚜렷하게 감소하고 있다. OECD「Education at a Glance」에 따르면 성인(25-64세) 고등학교 졸업자의 임금을 100으로 할 경우 일반대 졸업자의 2007년 상대임금이 177이었다면, 2011년엔 164, 2015년엔 145, 2019년엔 136으로 그 격차가 확연히 줄고 있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핀란드(2018년 기준 120)보다는 여전히 높지만, 2019년 기준 미국(163), 독일(161), 영국(143), 프랑스(2017년 기준 141)보다 더 낮다. 물론 그럼에도 학력 간 임금격차가 여전히 상당하기 때문에 이를 부당하다고 주장할 여지가 존재하지만, 추세적으로 그 격차가 줄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이제 우리 사회도 대학에 가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강박은 벗어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고등교육의 필요성이 낮아질 것 같지 않다. 흔히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의 경우 고등학교만 나와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대학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덧붙여 과도하게 대학에 진학하는 우리나라가 문제라고 말하며, 청소년의 행복한 삶을 방해하는 원흉으로 간주하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이 말은 먼 과거엔 옳았을 수 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OECD 주요 국가의 성인(25-64세) 고등교육 이수율을 살펴보면 2020년 기준 캐나다(60.0%)가 우리나라(50.7%)보다 압도적으로 높으며, 일본(2019년 기준 52.7%), 룩셈부르크(51.3%) 같은 나라들도 우리보다 더 높다. 미국(50.1%), 영국(49.4%), 호주(49.3%) 같은 국가들은 우리보다 낮지만, 차이가 미미하다. 더구나 복지 강국으로 흔히 언급되는 북유럽의 핀란드(47.9%), 노르웨이(45.3%), 스웨덴(44.6%) 같은 나라들조차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오스트리아(34.2%)나 독일(31.3%)처럼 우리보다 한참 낮은 나라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보다 잘 사는 OECD 주요 국가에서 뚜렷하게 관측되는 공통 현상은 고등교육 이수율의 가파른 상승추세다. 이른바 고등교육의 보편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1998년 20.1%에 불과하던 OECD 평균이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여 2020년엔 39.0%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율은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단, 우리가 알던 상식은 청년(25-34세)층에 국한된 고등교육 이수율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청년층 고등교육 이수율은 69.8%를 차지하여, 25-64세 기준 압도적 1위인 캐나다(64.4%)보다 더 높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청년층 고등교육 이수율은 2016년(69.9%)을 정점으로 정체되어 있다.

    반면, 다른 나라들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를 제외한 다른 주요 국가들에선 상승추세가 뚜렷하게 관측된다. 이를 반영하듯 1998년 23.6%에 불과했던 OECD 평균이 가파르게 증가하여 2020년엔 45.5%에 이르고 있다. 이 추세라면 가까운 미래에 다른 주요 나라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수준에 이를지도 모른다.

    OECD 주요 국가의 가파른 상승 추세는 고령(55-64세)층에서도 뚜렷하게 관측된다. 고령층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2020년 기준 캐나다(50.0%)가 선두에 있으며, 일본(2019년 기준 44.5%), 미국(44.3%), 핀란드(42.9%) 역시 매우 높은 수준에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25.1%)는 오스트리아(25.4%)와 함께 가장 낮은 수준에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청년층 고등교육 이수율이 가장 높기 때문에 세대가 교체되면 자연스럽게 가장 높은 그룹에 있게 될 것이긴 하다.

    그러면 왜 우리보다 잘사는 OECD 주요 국가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연령층에 관계없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을까? 기술의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중등 이후 교육뿐만 아니라 이를 넘어 평생학습을 위한 고등교육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능을 통해 익힌 숙련은 기술의 변화와 함께 탈숙련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선 어떤 형태로든 재교육을 통해 재숙련화를 성취해야 하는데, 기술의 변화가 완만하던 1990년대 이전까진 노사협상을 통한 기능 중심의 재숙련화가 가능했다. 그렇지만 기술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이를 쫓아가지 못한 사업체가 문을 닫는 재구조화가 일상화되면서 경쟁력 있는 일자리에 복귀시키기 위한 재교육의 중심이 고등교육으로 이동한 것이다. 말하자면, 기술 고도화에 상응하는 역량개발과 훈련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증대되면서 중등 이후 교육과 재교육을 위한 고등교육 수요가 폭발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고등교육은 누구나 거쳐 갈 수 있는 보편적 과정으로 전화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런 역사적 경험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동안 우리 사회의 고등교육에 대한 논의는 과도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층에 집중되었다. 이를 벗어난 성인층에 대한 논의는 주변화되고, 청년층의 입시에 대한 담론이 주류를 형성하면서 입시의 공정성이나 과도한 대학 진학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더구나 막대한 교육비에도 졸업 후 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노동시장 상황까지 맞물리자 고등교육은 행복한 삶과 선택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간주되고 있다.

    고등교육의 보편화가 진행중인 주요 선진국의 추세와 달리, 대학의 팽창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나쁜 선입견은 이런 상황의 산물이라 판단된다. 그럼에도 기술 고도화와 이에 따라 산업이 재편되는 세계적 추세를 우리 사회가 비켜 갈 순 없다. 산업 재편에 따라 분야별 조정은 불가피하겠지만 기술 고도화에 따른 고등교육의 필요성은 여전히 중요하며, 기술 고도화에 따른 산업의 재구조화뿐만 아니라 에너지전환에 따른 재구조화 역시 당장 마주해야 할 현실이다. 말하자면 기술변화가 야기한 탈숙련화에 대응하기 위한 고등교육을 언제든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재숙련화를 통해 경쟁력 있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감안하면 지속가능한 행복한 삶을 위해선 고등교육 보편화와 이를 위한 대학 팽창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전화시키기 위한 능동적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율에서 알 수 있듯이 청년층의 고등교육은 보편화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2017년 기준 GDP 대비 공교육비가 0.6%에 불과하여 OECD 평균인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고등교육 보편화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야기한 결과라고 판단된다. 부정적 여론이 지배적인 상황에선 어떤 정치세력도 고등교육을 위한 공적지원에 적극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고, 언제든 고등교육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좋든 싫든 변화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 <노동자도 알아야 할 산업과 경제 이야기> 칼럼 링크

    필자소개
    동아대학교 법학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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