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헌제안 거부되면 다음 수순은 사퇴?
        2007년 01월 09일 01: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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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꺼내 들었다. 노 대통령은 9일 오전 대국민특별담화를 통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고 대선과 총선 시기를 일치시키는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향후 이 같은 내용의 개헌안을 자신이 직접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개헌의 내용으로 두 가지를 얘기했다. 먼저 5년 단임제인 현 대통령임기를 4년 연임으로 바꾸자고 했다. 독재정권의 장기집권을 막기 위해 87년 도입된 5년 단임제는 역사적 시효를 다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노 대통령은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비약적으로 제고됐고 국민의 민주적 역량이 성숙됐다"며 "장기집권의 우려가 사라졌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5년 단임제의 폐해도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의 국정수행이 다음 선거로 평가받지 못한다"며 "책임정치를 훼손한다"고 했다. 또 "미래과제가 일관성과 연속성을 가지고 추진되기 어렵다"며, 특히 "임기 후반기에 책임정치를 어렵게 만들어 국가적 위기를 심화시킨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대선과 총선의 임기를 맞춰야 한다고도 했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이 엇갈려 있으면서 정치적 대결과 갈등이 심화되고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유발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선거구제 개편 얘기는 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국민적 합의 수준이 높고 시급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 헌법의 많은 부분을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을 안다"면서 "이번에 개헌을 해놓지 않으면 개헌논의는 논의만 무성할 뿐 결실을 맺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임기를 줄이지 않고도 양대 선거 시기를 맞추려면 자신의 임기 중에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개헌의 발의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치권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를 미루다가 20년만에 찾아온 기회를 떠내려 보내는 것은 대통령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라며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개헌 발의권을 행사하고자 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이번 개헌 제안에 다른 정략적 의도는 없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번 개헌 제안은) 대선을 앞둔 어느 정치세력에게도 유리하거나 불리한 의제가 아니"라면서 "안정적 국정운영의 기반 만들자는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4년 연임제의 범위 안에서도 바람직한 개헌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개헌 문제에 대해 국민 여론과 여야 정치권의 의견 들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은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공론화 추이를 지켜본 뒤 적절한 시점에 개헌을 발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적극적인 동의하는 입장을 보였고 한나라당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민주노동당도 비판적인 논평을 내놨다.

    현행 헌법 128조에 따르면 개헌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 이번 개헌은 노 대통령의 임기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현 재적 의원 296명 가운데 198명이 찬성표를 던져야 국민투표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나라당이 반대 입장을 거둬들이지 않을 경우 이번 개헌안은 노대통령의 발의에서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의 반대는 충분히 예상된 것이었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의 다음 수순이 주목된다. 정치권 일각에선 지난해 노 대통령이 중도 하야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 주목한다. 대통령 임기 중단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한나라당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친노파로 분류되는 김형주 열린우리당 의원은 노 대통령의 다음 수순과 관련,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발언이 힌트가 될 것"이라며 "당장은 아니겠지만 정치권이 개헌에 대해 부정적으로 나오면 임기를 걸고 압박의 강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한나라당도 노 대통령의 제안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중도사퇴할 경우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고 각 정당은 대략 30일 이내에 대선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 두 유력주자가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 한나라당의 경우 조기 후보 선출이 내분의 기폭제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노 대통령의 압박을 한나라당이 마냥 모르쇠로만 일관할 수는 없을 거라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이미 지난해 말 노 대통령이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한 후 중도사퇴 가능성을 시사했을 때 노 대통령에 대한 공격의 톤을 급속히 낮춘 전례가 있다. 노 대통령이 정치판을 요동치게 만들 가능성에 대해 상당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 여당 의원은 이를 ‘학습효과’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한나라당 사람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시민단체 및 학계의 반응도 주목된다. 노 대통령이 개헌 제안을 하기에 앞서 이들과 일정한 교감을 나눴을 개연성도 있어 보인다. 최근 일부 언론은 개헌을 포함한 정치제도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여권의 정계개편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일단 노 대통령은 정치판을 뒤흔들 수 있는 초대형 이슈를 던짐으로써 정국의 중심에 서는 효과를 거뒀다. 앞으로 정치권의 반응과 그에 대한 대응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노 대통령의 정국주도권은 더욱 강화될 개연성이 크다. 그동안 소문과 추측으로만 존재하던 ‘대통령의 정치’가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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