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식은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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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06일 10: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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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마디로 가장 한국적인 음식문화를 표현하면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어머니 손맛’이 아닐까 싶다. 컵과 스푼으로 계량되어진 서양의 조리법과는 달리 한국음식은 어머니의 손끝 감각에 의존해 갖은 양념한 뒤, 대부분 어머니의 손에 의해 조물조물 무쳐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머니 손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음식은 아무래도 ‘나물’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김치나 고추장보다는 ‘나물’을 먼저 꼽는다. 날로 먹거나, 삶고, 데치고, 찌고, 볶아 먹는 등 그 조리방법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먹을 수 있는 나물의 종류만 해도 상상을 뛰어 넘게 많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계에서 이런 음식 문화를 가진 곳이 한국 말고 또 있을까?

    대충 우리가 먹는 나물을 꼽아 보자면, 흔히 들에서 볼 수 있는 냉이, 달래, 쑥, 망초, 씀바귀, 꼬들빼기, 미나리, 질경이, 민들레, 원추리 등이 있고, 산으로 조금 들어서면 고사리, 머위, 미역취, 두릅, 잔대, 밀대, 삽주 등이 있고, 좀 더 깊이 산속으로 들어가면 얼레지, 참나물, 고비, 더덕, 도라지, 모싯대, 곰취, 버들취, 단풍취, 참취, 참두릅 등 우리 입맛을 당기는 종류들이 있다. 보통 우리가 먹을 수 있는 풀이 800여 가지가 넘는다 하니 그 수를 다 헤아리려면 입만 아플 것이다.

    새롭게 쓰여지는 가난의 역사

    본래 이런 나물이 많이 나는 산속은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다. 경작할 만한 평지도 변변히 없을뿐더러 있다한들 땅이 비옥하지 못해 경작물이 제대로 성장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속에 있는 온갖 풀이 우리 식탁에 올라오게 된 배경은 평야지대보다는 산악 지형을 가진 지정학적인 요인과 계급사회의 가혹한 착취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홍수와 가뭄과 같은 기후적인 이유도 있을 터지만, 이유야 어떠하든 나물의 역사는 마땅히 먹을 것이 없어 들녘을 해매다 지천으로 널린 풀을 뜯어 먹던 가난의 역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 연세 드신 분들한테 보릿고개 시절 소나무 껍질까지 먹었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는데 과연 우리 조상이 안 먹어 본 것이 있을까?

    이렇게 우리 역사에 의해 만들어진 ‘나물’ 문화는 최근 채식문화와 더불어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육식으로 산성화된 현대인들의 체질을 개선해 알카리성으로 만들어서 노화 방지는 물론 장기의 기능을 강화해주기 위해서다. 어쨌거나 이렇게 나물이 건강식품으로 재조명 받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페미니즘은 채식과 깊은 관계 

    그런데 채식은 본디 ‘건강식품’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정치적인 면이 많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 채식을 하다 죽었다는 백이, 숙제의 이야기만 봐도 그렇다. 주나라 무왕의 통치에 반기를 들어 주나라의 땅에 난 것을 먹지 않았다 하니 백이와 숙제는 요즘말로 정치범이었던 셈이다.

    내가 아는 한 선생은 ‘산’은 세상의 온갖 핍박과 박해를 피해 쫓겨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고향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말한 이유 중 하나는 땅 한 평도 없어 끼니조차 때우지 못해 쫓겨난 사람들에게 산은 그 어느 누구에도 소유되지 않는 먹거리인 ‘나물’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산은 먹을 것과 숨을 곳을 주기 때문에 빨치산처럼 세상을 변혁하기 위한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빨치산을 그렸다하여 필화 사건을 겪은 신동엽의 ‘진달래 산천’의 한 구절은 이를 시적으로 표현해준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산에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이 널리도록…"

    그러나 의식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채식과 가장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페미니즘이다. 옛날 육식은 권력을 가진 자의 음식이다. 지배계급은 온갖 종류의 고기 요리를 독점했으며, 반면에 노동자들은 탄수화물이나 질 낮은 단백질을 소비했다.

    그러나 육식의 문화는 계급관계를 명확히 보여주기도 하지만 가부장제에 따른 구분도 명확히 한다. 즉 가부장제도 하의 2류 시민인 여성들은 고기보다는 곡식이나 2류 식품인 채소, 과일을 주로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를 위해 ‘고기’를 사고, ‘노동’하는 남자는 고기를 ‘요리’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정작 고기를 ‘먹는’ 것으로부터는 배제되거나 터부시 된다. 이러한 고기를 둘러싼 분절의 이유는 대다수 문화에서 고기를 수중에 넣는 쪽은 남성이기 때문이다. 고기는 가치 있는 경제 상품이었기 때문에 남성들은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관계는 육식=우월성=남성성을 채식=열등성=여성성이라는 관념을 형성하게 되고 인식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노동하는 남자가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고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통념이다.

    가부장제 문화는 고기가 남자의 힘을 세게 만든다는, 그래서 남성적인 특질들은 이런 남자다운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형성된다는 믿음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실험은 채식주의자들이 지구력에 있어서 육식자들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이 밝혔다.(캐럴 J. 아담스, ‘육식의 성정치’)

    하여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상황에서 육식의 이러한 성역할은 그다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채식주의 페미니스트는 이러한 남성 중심의 육식문화 또는 가부장문화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채식이라는 실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즉 ‘육식은 습관이며, 관성은 변화에 저항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다양한 ‘나물’ 문화는 강한 가부장제도의 산물일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현재에 있어서는 ‘남성중심’의 사회를 전복할 수 있는 일종의 ‘어머니의 손 맛’으로 작용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여튼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이야기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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