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도 얘기 안해준 스웨덴 좌파 음악
    2007년 01월 06일 08: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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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해병대를 전역한 척 오난Chuck Onan은 조국인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엘리트 부대인 장거리정찰대LRRP 대원으로 베트남에서 복무한 그는 대신 스웨덴으로 가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스웨덴의 사민당 정권은 그를 정치적 난민으로 받아들였고 스웨덴어 교육과 함께 정착지원을 제공했다.

척 오난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전쟁을 벌이는 동안 탈영하거나 징집을 피해 스웨덴과 캐나다, 프랑스로 망명한 미국인은 3만명에 달한다.

사민당 소속의 총리 올로프 팔메는 1972년 유명한 크리스마스 연설에서 닉슨정권의 하노이폭격을 맹비난했다. 이 연설로 야기된 스웨덴과 미국의 외교 갈등은 1974년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 <포린 어페어즈> 같은 보수적인 저널에는 스웨덴을 ‘사회주의 국가Socialist State’라고 지칭한 대목이 자주 눈에 보인다.

물론 스웨덴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사민당이 정권을 장기독점하긴 했지만 때때로 우파정권이 들어서기도 하는 나라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기업도 있고 또 무시무시한 조직률을 자랑하는 노조도 있다. 다만 좀 특별한 나라인 것은 사실이다.

영국인들이 독일에 한번 갔다 오면 자기네의 낮은 복지수준을 보고 삶의 의욕을 잃는데, 정작 독일인들은 스웨덴에 한번 갔다 오면 "독일은 참 지옥 같은 나라야"하고 한탄을 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유럽 안에서도 진보적인 사회문화를 일군 나라가 스웨덴(과 주변의 북유럽 국가들)이다.

북유럽이 얼마나 살만한 동네인지는 지난 수년간 박노자 교수가 생생하게 전해준 ‘염장성’ 현장보고를 통해 익숙하게 들은 만큼 여기서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신 박노자 교수는 이야기한 적이 없는 60~70년대 스웨덴 좌익들의 음악을 앞으로 한달간 소개할 계획이다.

스웨덴의 음악하면 제일 쉽게 연상되는 거야 물론 스웨덴의 국민밴드이자 한 시대를 상징했던 ‘아바ABBA’의 주옥같은 멜로디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스웨덴에는 아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 * *

   
"Antiimperialistiske songar"
Freedom singers
1970년

Side A
1 Wall Street
2 Å Sentab å ja
3 Visan om Gunnar Myrdal
4 Vårt Sagoland
5 Rövarvisan
6 Vi sår vårt ris
7 Visan om Ho Chi Minh

Side B
1 Befria Södern
2 Bläckfisken
3 Hur ser friheten ut?
4 Visa om Olof Palme
5 Kafferepet
6 En liten quisling
7 Richard Dollarhjärta
8 CIA-visan

 

스웨덴의 포크 그룹인 프리덤 싱어즈The Freedom Singers는 두 장의 음반을 남겼다. 첫 번째 것은 1968년에 “68”이라는 단순한 제목으로 발표됐고,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 된 앨범이 오늘 소개할 “반제국주의의 노래Antiimperialistiska Sånger”이다. 이 앨범은 1970년에 발표됐다.

프리덤 싱어즈는 단일한 밴드가 아니라 스톡홀름과 예텐보리 두 도시에 기반한 음악인들이 느슨하게 결합해 있는 형태였다고 한다. 아마도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던 음악인들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구성했던 그룹이 아닌가 이해한다.

정치적인 목적이란 베트남민족해방전선, 즉 NLF와의 연대다. 프리덤 싱어즈는 60년대 후반 스웨덴에서 활발하게 전개됐던 베트남연대운동(FNL-rörelsen)의 일원이었다.

투쟁하는 베트남 인민들에 대한 지원과 연대는 60년대 각국 좌익들의 공통된 주제였지만 스웨덴에서는 특별하다 싶을 정도로 베트남연대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앞서 이야기한 망명이나 올로프 팔메의 연설등도 모두 대중적인 연대운동이 정치권에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프리덤 싱어즈가 불렀던 노래들도 모두 ‘베트남’을 주제로 한 것들이다.사실 프리덤 싱어즈는 1962년 미국에서 결성된 포크 그룹의 이름이다. 흑인민권운동단체의 전국순회에 동행하면서 노래로 운동을 대변했던 유명한 팀이다.

멀리 떨어진 스웨덴이지만 포크와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원조’ 프리덤 싱어즈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다. 음악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계몽을 실천한다는 의미에서 의식적으로 프리덤 싱어즈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그룹을 구성했던 이들의 명단이나 이력은 알 수가 없다. 다만 “반제국주의의 노래”에서 청아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여성 메인 보컬은 마리에 셀란네르Marie Selander이다.

프리덤 싱어즈 이전부터 가수로 활동했고 이후에도 음악활동을 계속한 셀란네르는 70년대 바라빈테르Vargavinter라는 밴드를 통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84년 밴드가 해산한 후에는 공부를 시작해 대학교수가 됐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반제국주의의 노래”에 실려 있는 곡들은 모두 베트남의 투쟁을 직접적으로 노래하거나 아니면 미국을 조롱하는 것들이다. ‘호치민의 노래Visan om Ho Chi Minh’, ‘남부를 해방시켜라Befria Södern’ 같은 곡들은 제목만으로 내용이 짐작이 간다. ‘월 스트리트Wall Street’는 펜타곤과 자본의 결합을 풍자한 곡이고 ‘CIA발라드CIA-visan’도 풍자의 대상이 쉽게 짐작이 간다.

   
▲ 마리에 셀란네르Marie Selander
 

눈에 띠는 것은 스웨덴 정치인들의 이름이 들어간 두곡 ‘군나르 뮈르달의 노래Visan om Gunnar Myrdal’와 ‘올로프 팔메의 노래Visa om Olof Palme’이다. 뮈르달은 사민당의 경제정책을 정립한 이론가고 팔메는 사민당의 지도자다.

스웨덴뿐만 아니라 세계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긴 거목들이다. 우리 현실에서는 그저 부럽기만 한 진보적인 정치인들인데 정작 같은 스웨덴사람인 프리덤 싱어즈에게는 베트남에 대한 입장과 행동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 * *

이 앨범의 곡들은 전형적인 모던포크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프리덤 싱어즈’라는 이름뿐만 아니라 60년대 미국 포크부흥운동의 형식까지 고스란히 빌려온 셈이다. 덕분에 언어의 장벽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공감대가 형성된다.

모던포크의 장점은 그 보편성에 있다. 각 나라의 진짜 포크, 즉 민속요와 융합하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지만 모던포크의 보편성은 기타와 화음만으로 이루어진 음악이 60년대 전 세계로 퍼져 나간 이유를 설명해준다.

“반제국주의 노래”를 들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악은 서울대학교 노래동아리 ‘메아리’의 1979년도 공연 복각음반이었다. 메아리의 공연은 군가를 연상시키는 노동가요와 북한식 노래들이 도입되기 이전 모던포크의 문법에 충실한 노래들을 들려준다.

하지만 프리덤 싱어즈나 메아리나 지금은 모두 과거의 유산이 됐다. 차이가 있다면 한쪽은 운동 자체가 시들해지면 함께 힘을 잃은 반면, 다른 한쪽은 포크가 민중의 삶을 흉내내는 지식인의 형식미학이라는 자기비판 속에서 포기를 강요당했다는 점이다.

우리의 민중가요는 음악이면서 동시에 음악을 부차적인 것으로 돌리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너무 단순화시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김광석이 노래모임 ‘새벽’을 떠나야 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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