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화 시대가 막 내리는 신호
        2007년 01월 05일 07: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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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야 대권 주자들에게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을 물으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답이 있다. ‘경제’와 ‘국민통합’이다.

    ‘경제’와 ‘통합’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이유 

    일반 여론도 다르지 않다. 얼마 전 KSOI가 정치 분야 오피니언 리더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25%는 ‘경제문제’가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남북관계 및 대북문제'(11%), ‘양극화 및 빈부격차 문제'(11%), ‘사회국민통합문제'(10%) 등의 순서였다. 

    시중 여론이 ‘경제’와 ‘국민통합’을 시대정신으로 꼽는 건 그만큼 경제가 어렵고 사회의 반목과 불신이 위험수위에 다다랐다는 증거다. 각자 먹고 살기도 힘든데 더불어 살 여건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건 사회가 총체적 위기에 빠져들었다는 신호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다는 얘기다.

    ‘경제’와 ‘국민통합’ 가운데 보다 징후적인 것은 ‘국민통합’의 요구다. ‘국민통합’은 정치와 경제에 동시에 걸쳐 있는 문제다.

    민주정부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커지는 이유

    최근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노무현 시대에서 민주화는 완성됐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노무현 대통령은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노대통령은 민주화를 완성하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선거제도를 포함한 정치제도 개선이다.

    이런 맥락이다. 민주정부 1기인 김영삼 정권은 하나회를 숙정하면서 군정의 싹을 잘랐다. 민주정부 2기인 김대중 정권은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영남에 기반을 둔 수구정치세력의 정권 독점을 종식했다. 민주정부 3기인 노무현 정권은 주류세력 교체를 시도했다.

    민주정부 1기에서 3기로 갈수록 정권에 대한 사회적 반발력의 강도는 세졌다. 김영삼 정권은 한 줌의 정치군인들만 상대하면 됐지만 김대중 정권은 영남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샀다.

    노무현 정권은 구주류 전체의 거부감을 불렀다. 노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도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 정권에서 정치권이 극단적인 대립상을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통합’의 방법, ‘중선거구’ vs ‘정당명부비례대표’

    정치적 통합의 요구는 이런 현실적 배경을 깔고 있다. 지금의 소모적인 정쟁이 더 이상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적어도 당위의 수준에서는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야 대권 후보들은 ‘통합’을 말하면서도 뾰족한 통합의 방법론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중도’를 지향해야 한다거나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는 식의 뜬구름 잡는 얘기 뿐이다.

    ‘통합’의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쪽은 차라리 노대통령이다. 노대통령은 선거구제를 포함한 정치제도 개편을 통해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정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역대 민주정부가 이룬 형식적 민주주의의 성과를 제도적으로 안정화시키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그 성과라는 건 주류 세력의 교체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노대통령이 제시한 중대선거구제는 여기에 정확히 대응하는 제도다. 노대통령은 구주류와 신주류의 과점체제를 제도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은 주류세력 전체의 정치적 독과점을 깰 수 있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통합’을 위한 제도적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회적 ‘통합’의 방법, 신자유주의를 보는 두 개의 시각

    정치적 대립 못지않게 계층간 분단도 심각하다.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의 분열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주로 신자유주의 정책과 관련된 것으로 지적된다.

    김영삼 정권의 OECD 가입, 김대중 정권의 IMF 프로그램 수용, 노무현 정권의 한미FTA 추진 등에서 보듯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곧 신자유주의가 패권화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경제 문제가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태도와 관련해선 정치권 내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한다. 먼저 신자유주의의 가속 페달을 밟아 ‘선진화’로 내달려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실용파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이들 가운데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실용파는 현 정부가 취하고 있는 일부 시장개입적 정책(종부세 등)도 마저 폐기함으로써 신자유주의 노선의 순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리적으론 정부 개입 축소, 기업 규제 완화, 시장 원리를 강조하는 이들은 대체로 한미FTA를 찬성하는 입장과 겹친다. 이명박 전 시장, 박근혜 전 대표, 손학규 전 지사, 고건 전 총리 등은 이같은 총론을 공유하면서 각론에서 조금씩 입장을 달리한다.

    이들의 맞은 편엔 공공영역 확대와 시장에 대한 적절한 개입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반대론자들이 있다.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내 일부 개혁파가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대체로 한미FTA를 반대하는 입장과 겹친다.

    물론 이들이 균일하진 않다. 민주노동당은 김근태 의장을 비롯한 여당 개혁파의 신자유주의 비판을 ‘립서비스’ 이상으로 보지 않고 있다. 지난 정기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의 처리를 주도한 것도 여당 개혁파였다.

    포스트 민주화는 어떤 형태로 올까

    ‘국민통합’의 시대정신에는 민주정부 집권 3기까지에 대한 총체적 평가가 녹아 있다. 그리고 이는 민주화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로 보인다. 

    포스트 민주화의 시대는 어떤 형태로 오게 될까. 신자유주의가 한층 강화되는 가운데 보수 과점의 정치체제가 이를 뒷받침하는 형태로 올 수도 있다. 아니면 모든 정당이 국민적 지지에 비례하는 정치적 지분을 보장받는 가운데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어장치가 일정하게 작동하는 형태로 올 수도 있다.

    혹은 그 사이에 있는 다른 어떤 형태가 될 지 모른다. 어느 경우건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각 정파간 세력관계에 정확히 비례하는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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