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전경환'의 제5공화국과 민주노동당
    2007년 01월 05일 04: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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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경남 합천을 방문한 기자는 합천군민의 두 얼굴(?)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서울 출신인 기자는 큰 목소리로 싸움을 걸듯 인터뷰에 답하는 그들의 걸걸한 어투에 마치 혼나는 기분으로 취재에 응했다.

   
 
 

‘리틀 전경환’이 다스리는 곳

하지만, 이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적응이 됐다 싶었을 무렵, 그들은 인터뷰 후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한결같이 "찍히면 (군수에게) 죽는다"면서 36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기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취재했던 기사는 ‘가명’과 ‘무명’의 ‘관계자’로 가득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새해 벽두부터 논란거리가 된 ‘일해’ 공원 명칭 변경은 심의조 합천 군수의 독단이 빚어낸 결과였다.  합천에서 만난 군민들은 "터무니없다, 남세스럽다, 시기상조다" 등의 불만을 기다렸다는 듯 쏟아내며 반대 의견을 쏟아냈다. 그러나 취재 후 ‘이름’을 물어보면 "큰일 난다"면서 모두 손사레를 치며 줄걸음을 재촉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 박정희, 두 번째로 존경하는 인물 전두환, 전경환의 분신, 불사조의 화신. 2004 년 공직 비리 혐의로 전국 방송에(KBS2 다큐 스페셜, 나는 왕이로 소이다) 화려하게 데뷔,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로 풀려나 재선에 성공한 경남 합천 심의조(68, 한나라당) 군수는 합천 군민들에게 ‘리틀 전경환’으로 불린다.

군민들은 말 한마디, 이상한 소문 하나가 잘못 퍼져 혹 심 군수에게 찍히면 "군수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자신을 죽여 놓을 것"이라며 "그동안 그 잘난 KBS도, 강성이었던 공무원노조도, 대한민국 검찰도 심 군수와 싸워 단 한번도 이겨 본 적이 없다"라고 속사정을 털어놨다.

그리하여 군수의 독단은 ‘지역 유지의 여론을 지역 민심’으로 포장해 버렸고, 그 결과 합천군민들은 전국적으로 눈총을 받고 있다. 합천에서 삶을 일구는 군민들에게 인생에서 최고로 높은 기관은 합천 군청이며, 또 최고로 잘 보여야 할 사람은 심의조 합천 군수이다.

어느 한 군민은 "가끔은 속이 터질 만큼 갑갑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 타지 사람들이야 떠나버리면 그만이지만,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군수에게 찍히면 ‘그냥’ 끝이다"(목에 손으로 칼을 긋는 행동을 보이며)라며 "기자가 내 인생을 책임 질 건가? 나는 합천에서 어떻게 하든 살아남아야 한다"라고 씁쓸히 말했다.

또 합천의 한 이장은 "심 군수가 전두환 밑에서 온갖 나쁜 것만 다 골라 배웠다. 여기 합천은 여전히 전두환이 지배한다"라며 "현재 합천에서 심 군수에게 대항할 만한 존재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3.1 운동의 발원지 합천

   
  ▲ 새천년생명의숲 공원에는 3.1운동의 의로움과 혼령을 기념하는 탑이 세워져 있다. 과연 이런 곳에 어떻게 ‘일해’라는 아호를 붙일 수 있을까?  
 

그러나 합천이 처음부터 ‘보수적인 곳’은 아니었다. 전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합천은 경남에서도 유명한 ‘야성’의 고장이었다. 철통같은 박정희 시절에도 민주당 이상신 의원이 3선을 했으며, 의협심과 희생정신의 의미를 담은 까치를 군조로 가지고 있는 합천은 3.1 운동 때에도 발원지 역할을 맡아 저항이 가장 격렬했던 부락이었다.

그 결과 가장 많은 군민들이 일본으로 강제 징집 당했고, 그 사람들이 일본에서 경남도민회를 만들어 현 새천년 생명공원숲에 1억2,000여만 원을 들여 나무를 기증했다. 또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시대 때 벼슬을 열두 번씩이나 거절한 남명 조식 선생의 기개와 그의 수제자 내암 정인홍의 강직함을 만날 수 있는 부락이었다.

역사의 반전인 것일까. 일제 시대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했던 부락이었건만, 동시에 권력을 쥐기 위해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전두환이란 인물이 배출된 고장이 돼버렸다.   일제에게 짓밟히며 강제 징집당한 부락민들이 그 희생정신으로 나무를 심어준 공원에,  3.1 운동의 의로움과 혼령을 기념하는 탑이 늠름하게 세워져 있는 공원에 심 군수는 광주 학살의 원흉인 아호를 버젓이 붙이겠다고 독단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합천에서도 미세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20.6%로 열린우리당 13%를 훨씬 앞질렀다.  또 심 군수의 충복이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떨어지고 새로운 무소속이 두 명 당선됐다. 군 의원의 분포 또한  한나라당이 점령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열린우리당 1, 민주노동당 1, 무소속 2, 한나라당 7명이 당선돼 표면적으론 변화가 나타난 셈이다.

속 깊은 곳에서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

실제로 일해 명칭 변경을 저지하기 위해 합천 군청 앞에서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민주노동당 합천군위원회 최현석씨는 "처음 시작 할 때는 솔직히 전 대통령이 고향 사람이어서 내심 기대를 안했는데, 이젠 지역민들의 호응이 너무 뜨거워 당황스러울 정도이다. 가벼운 격려부터 시작해, 지나가다가 차를 세우고 경적을 울려주고, 또 어떤 분은 밥을 사먹으라고 돈을 주고 가신 적도 있다"라며 “농촌의 정서상 어렵겠지만, 현재 군민들의 마음 속 반대 여론이 실제 행동으로도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민주노동당 합천군위원회 강선희(39) 위원장은 "어린 여자인 내가 당선된 것만 봐도 무조건 보수적이라고만은 할 수없다. 농촌의 정서상 겉으로 표현을 하진 못하지만 선거를 치르며 느낀 건 합천 군민들이 가슴 속 깊이 무언가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지역 군민들이 함께 스스로 힘을 모아 일해 명칭 변경을 저지하는데 성공하게 된다면 지역 자치 역랑 및 민주주의 발전에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며, 지금이 바로 그 기로에 서 있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합천에서 한때 군 농협지부장을 했던 외지 인사가 떠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합천에 가장 필요한 건 열린 대화와 개방된 토론의 장"이라고.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제 5공화국 속에 사는 합천 군민들이지만, ‘일해 공원 명칭 변경 사건’을 계기로 ‘리틀 전경환’의 독단을 짊어진 채 십자가에 박히는 대신, 미래로 나아가는 선택하길 고대해 본다.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합천 군민의 선택과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 기념탑에 새겨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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