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장관인가, 전경련 법무이사인가
        2007년 01월 05일 01: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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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호 법무장관이 요즘 들어 부쩍 경제신문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재계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현직 장관으로도 꼽히고 있다.

    김 장관은 4일 대한상의 주최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기업의 창업을 어렵게 하는 여러 규제를 폐지하고 무분별하게 기업들을 사냥하듯 소송을 남발하는 것에서 보호하기 위해 상법 등 관련 법률의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금 5억원 이상 기업에 의무적으로 3인 이상의 이사를 선임토록 한 상법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재계 요청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김성호 법무부 장관
     

    김 장관은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서도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국민의 바람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경제가 활성화돼야 하고 그 토대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구축돼야 한다"며 "기업가 정신을 계속 살려 나가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법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경제의 발목을 잡는 법이나 규제, 기업들이 불편을 느끼는 제도나 관행을 발굴해 개선해나가겠다”고도 했다.

    김 장관의 발언에 화답이라도 하듯 울산지검은 4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와 부산지방노동청 울산지청이 지난 2004년 고발한 현대지동차의 불법파견 사건에 대해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지난 연말 분식회계를 자진고백하는 기업에 대해 선처를 약속하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재벌총수들에 대한 사면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김 장관은 전경련이 △이중대표소송제 △회사기회의 유용 금지 △집행임원제도 △이사의 자기거래 승인대상 확대 등 입법예고돼 있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자 상법 개정안을 다소 연기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장관은 오는 11일 전경련 경제정책위원회와 기업정책위원회 연석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재경부 장관, 공정거래위원장 등 경제부처 수장이 전경련 회의에 초청된 적은 많지만 법무장관이 전경련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김 장관은 기업들을 위해서는 법률을 고쳐서라도 도움을 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서민, 노동자들에게는 헌법과 현행 법률의 철저한 집행을 강조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월세 인상률을 연 5% 이내로 제한하자"는 열린우리당의 방안에 대해 위헌소지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한미FTA 반대시위 참여자에 대해 ‘불법시위 불관용원칙’을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 장관은 지난 8월 취임 이후 재경부 관료를 정책보좌관으로 임명하는 파격을 선보이고 기업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된다는 소신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김 장관의 친기업 행보로 인해 전임 천정배 장관 시절에 추진됐던 이자제한법 부활에 제동이 걸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분식회계 선처나 재벌총수 사면이 법무장관 입에서 나올 얘기냐”며 “김성호 장관은 법무장관인지, 재벌 법무이사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도 “법체계를 자의적으로 운용하고 적용하면서 사실상 돈 가진 범죄자들에 대해 법률 자문역을 자임하고 있는 장관은 법무부 장관직에 적절치 않다”며 “그렇게 법질서 문란행위를 유지하려 한다면 당장 그만두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김성호 장관 임명 당시부터 이미 검찰개혁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과제는 물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지금 그런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어쩌면 김 장관은 검찰개혁이 아니라 친시장, 친기업 개혁이라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김 장관의 행보에 대한 청와대, 열린우리당, 재계, 조중동 사이의 경계선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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