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교육 1세대’가 전교조 새위원장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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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05일 12: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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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정진화 선생님. 전교조 위원장으로 당선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프레시안>에 실린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고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러나 여전히 가슴 설레는 단어, ‘참교육’이라는 세 글자에 마음이 움직여 이렇게 편지를 띄우게 되었습니다.

    전교조 혹은 참교육에 대한 회상

    먼저 짧게 저를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현재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제 소속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제가 왜 ‘참교육’이라는 세 글자에 가슴이 설레는지를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소위 말하는 ‘참교육 1세대’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전교조가 창립되던 89년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당시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그해, 전교조가 창립될 때 우연찮게 구입하게 된 ‘참교육’이라는 글자가 쓰여진 큼지막한 뺏지를 가슴에 달고 교실 맨 앞에서 수업을 듣곤 했습니다.

    당시 저는 교육운동이라는 단어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참교육에 대한 지지자로서 그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행동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참교육 운동’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었고 급기야 4월 19일이 되거나 11월 3일 학생의 날이 되면 고등학교 교실을 밤에 몰래 들어가 유인물을 뿌리기도 하였습니다. 걸리면 끝장이라는 마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던 것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였던 저는 자연스레 80년대 후반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함께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비판적인 생각은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저는 결국 대학입시를 단념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며 노동현장에 들어갈 결심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졸업하자마자 구로공단이 취업을 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때 그 꿈을 간직하며 현재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하고 있답니다.

    돌이켜보면, ‘참교육’이라는 세 글자는 오늘 현재까지의 저를 규정하는데 참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노동조합’ 이전에 존재하였던 ‘참교육’

    89년 당시 많은 중, 고등학생들은 전교조 선생님들을 지키기 위해, 종이비행기로, 학교 교문 앞으로, 때로는 거리로 나갔습니다. 당시 학생들이 ‘제적’을 감수하고서라도 선생님 지키기 투쟁을 한 이유는 자명합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전교조의 ‘참교육’ 이라는 간명한 구호의 힘이기도 했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경험적으로 ‘촌지를 받지 않는 선생님’, ‘체벌을 하지 않는 선생님’, 국어시간에 시(詩)는 입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던 선생님, 수업이 모두 파한 이후 항상 남아서 학생들과 함께 교실청소를 하던 선생님들… 이렇듯 평소 자신이 가장 존경할만한 실천을 하던 분들이 바로 전교조 결성의 맨 앞에 섰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당시 중고등학생들에게 참교육은 ‘구호’ 이전에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전교조가 합법화되고 세월이 한참 지난 최근 저는 학창시절 우리가 AIDS(걸리면 죽는다)라고 부르던 폭력교사가 현재 전교조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전교조의 변화(?)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저로서는 충격적인 사실인 셈입니다. 

    ‘교육3주체론’에 입각해서 생각하는 교원평가제 문제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시 중, 고등학생을 비롯 국민들이 전교조를 지지했던 이유는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더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 그 역(逆)의 관계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교육부에 의해 교원평가제 문제가 처음 나왔을 때, 우리가 체험한 많고 많은 AIDS(폭력) 교사들이 연상되었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습니다.

    전교조가 출범한 이후 89년, 90년에 많이 들었던 것 중에 ‘교육 3주체론’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요즘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용의 요지는 정진화 선생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학생, 교사, 학부모를 교육 3주체로 보는 논리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 3주체 중에서도 ‘교육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학생’이라고 저는 듣고 배웠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저는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교육부의 교원평가제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모릅니다. 다만 제가 알고 있는 ‘참교육’과 교육3주체론, 그리고 교육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입각해서 생각해볼 때, 교사는 정부나 교육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에게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교조가 그러한 대안적 입장을 공론화해줄 것을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과문해서일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직 그런 견해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전교조 위기의 본질, 혹은 진보운동 위기의 본질

    흔히들 이야기하듯 분명 현재 전교조는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물론 이는 전교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민주노총에게도 해당하는 문제이며, 민주노동당에게도 해당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러한 위기의 본질이 대중동원력의 위기도 아니고, 조직률의 위기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단언컨대 “진정성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전교조가 학생과 학부모들을 위한 ‘참교육’ 운동 조직인지, 학생과 학부모들은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진화 선생님도 말씀하셨듯이 조중동류의 보수언론들은 예나 지금이나 전교조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입니다. 그러나 이제 심지어 전교조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저 같은 사람조차도 그러한 의구심은 충분히 ‘근거 있는’ 의구심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편입니다.(물론 그것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게도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다시 듣고 싶은 노래 – ‘참교육의 함성으로’

    89년, 90년 우리들은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 부수고”로 시작하고,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 만만세”로 끝나는 ‘참교육의 함성으로’라는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노랫말처럼 가슴 벅찬 마음으로 말입니다.

    전교조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저 노랫말에 나와 있는 것처럼, 다시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몸소 실천할 때 모두가 만만세를 외쳐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말해, 학생과 학부모의 지지를 받고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 사업을 획기적으로 전개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과거 89년 학생들과 학부모의 지지 원인이 참교육은 ‘구호’이기 이전에 ‘경험’이었던 것처럼, 위기를 돌파하는 해법도 참교육을 구호가 아닌 경험으로 입증할 때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전교조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위한 참교육 실천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그에 대해 자원과 인력을 배치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유치원과 (특히 초등)학교 현장에 아토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 최순영 의원이 발의한 ‘학교보건법’(아토피 예방법)같은 사안에 대해서 지역사회에서 학교현장에서 학생 및 학부모들과의 접촉면을 확보하면서 대대적인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지역에 존재하는 녹색어머니회, 학교운영위원회, 지역내 어머니단체들과 네트워크를 가동하면서 스쿨 존 운동과 학교급식에서 유기농(또는 우리농산물) 사용하는 것을 단협으로 추진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현재 그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는 논술시험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으로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그야말로) ‘비판적 사고력’ 그 자체를 기를 수 있는 매개로 학교내 논술지원 시스템을 적극 주도하고, 더 나아가서 전교조 자체가 사교육에 대한 접근권이 취약한 <저소득층 학생 무료 논술지원을 위한 교사단> 같은 것을 꾸려 무료로 논술지원 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현재 수준급 논술 학원 선생님들 중에도 ‘뜻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그분들과 연대하여 공동팀을 꾸리는 것도 검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교육 회복 – ‘어떤’ 공교육인지에 대해 스스로 대답해야

    오늘날, 노동조합이라는 존재조건만으로 정당성을 획득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전교조인지 대한 질문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공교육 강화라는 슬로건만으로는 ‘맞는’ 소리일 수는 있지만,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공명(共鳴)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의 장인 학교 현장에서 가해지는 일상적인 체벌만 봐도, 공교육 그 자체로 정당성을 획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어떤’ 공교육인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입증할때만 공교육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일 공교육이라는 제도가 ‘참교육’이라는 내용성을 담보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단지 재정의 일부를 국가에 의존하는 ‘재정지원제도’에 입각한 하나의 분류법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한국의 공교육은 사교육과의 ‘경쟁’ 관계를 노출되었으며, 교육비 지출의 대비에서 알 수 있듯 공교육은 사교육에게 ‘패배’를 거듭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글을 맺으며 –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

    당시 저희들이 보던 필독서 중에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줄여 ‘스비까’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아마도 정진화 선생님도 읽어보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떼지어 다니는 비둘기를 평화의 새라고 말하지만, 비둘기는 모이가 오면 서로 쟁탈전을 벌이며 그것을 빼앗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그러나 까치는 당장 눈앞에 몇 마리밖에 보이지 않지만, 아기 까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미 까치는 온몸으로 울부짖고, 그 울음소리를 듣고 평소에는 그렇게 귀하던 까치들이 새까맣게 떼를 지어 나타나 사람의 위협으로부터 아기 까치를 구해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하여 김진경 선생님은 학생들이, 그리고 우리 자신이 ‘까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 상황이 역전된 듯 합니다. 오히려 이제 국민들은 안타깝게도 전교조를, 민주노총을, 민주노동당을 ‘스스로를 까치라고 우겨대는 비둘기’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믿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 자신이 ‘까치’임을 입증할 수 있는 진정성과 자기변혁의 용기가 남아있음을 말입니다.

    그리하여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오늘 현재의 제 삶을 규정하고 있는 나침반이 되어 주었던 것처럼, 가슴 설레는 세 글자 참.교.육. 이라는 것이 오늘 현재 이 땅을 살아가는 힘없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그리하여 희망이라는 단어를 갈망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들의 목마름을 적셔줄 수 있는 단비가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믿고 싶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지만 저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백무산 시인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가슴이 붉어지지 않으면’, 그리하여 우리 스스로 ‘봄’이 되지 않는다면, 세상은 봄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봄’이 되어, 그리하여 세상을 온통 봄으로 물들이는 전교조와 우리 자신이 되길 염원하며 글을 맺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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