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상유지 정치, ‘공정한 전환’을 넘자
    [에정칼럼] 타이밍 중요···대선, 6월 지방선거도 중요
        2022년 02월 17일 09: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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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9월,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정 전후로 광역과 기초 지자체에서 관련 자치법규를 정비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올해 3월, 탄소중립기본법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선제적으로 탄소중립 관련 조례를 제정하는 모습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타이밍이 괜찮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자치입법권을 제대로 행사하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탄소중립 기본조례를 찾아보면, 기초 지자체 8곳과 광역 지자체 1곳이 나온다. <서울시 도봉구 탄소중립 기본 조례>, <논산시 기후변화 대응 조례>, <태안군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촉진에 관한 조례>, <대전시 서구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 조례>, <광명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ㆍ녹색성장 조례>, <서울시 서대문구 기후위기 대응 및 기금 설치·운용에 관한 탄소중립 기본 조례>, <대구광역시 북구 탄소중립 기본 조례>, <과천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기본조례>(입법예고), 그리고 <충청남도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 조례>가 있다.

    위원회, 기금, 예산 등 탄소중립 유관조례도 중요하다. <충청남도 정의로운 전환 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 <고양시 탄소중립 시민실천연대 구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 <대전광역시 대덕구 탄소인지예산제 운영 조례>, <대전시 대덕구 2050 탄소중립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과천시 탄소인지예산제 운영 조례>, <서울특별시 탄소중립을 위한 국제협력에 관한 조례>, <전라남도 기후대응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입법예고), <시흥시 탄소인지예산제 운영 조례> 등이 있다.

    이외에 <서울특별시 그린뉴딜 기본 조례>, <서울특별시 기후변화 대응에 관한 조례>(일부개정), <창원시 환경수도 탄소중립마을 만들기 조례>(일부개정), <경기도교육청 기후변화 대응 탄소중립 환경교육 진흥 조례>(전부개정), <인천광역시 서구 에너지 기본 조례>(일부개정)도 참조할 수 있다.

    9개 지자체의 탄소중립 기본조례는 기존 저탄소․녹색성장 기본조례나 기후변화대응 조례와의 관계 설정, 그리고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RLDC), 정의로운 전환, 시민․주민 권리, 위원회, 계획, 조직, 기금 등의 핵심 조항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이 나타난다. 그리고 최근 기후위기경기비상행동이 ‘시민안’으로 마련한 <경기도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환 기본 조례>과 <경기도 시․군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환 기본 조례>와 종합 비교하면, 9개 조례 모두 내용과 형식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 서대문구 조례에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서울 도봉구, 충남 태안군, 대구 북구 등의 조례는 방향성은커녕 기본조항이 누락된 부실 제정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정의로운 전환이 없다는 점이다.

    탄소중립기본법에 정의로운 전환 개념과 관련 대책이 포함되고,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 방안’(2021년 7월)과 ‘탄소중립 산업 대전환 비전과 전략’(2021년 12월)이 발표되면서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정부는 <탄소중립 산업전환 촉진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에는 정부 입장이 반영된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수진 의원 대표발의, 2021년 9월)에 이어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정의당이 공조한 일명 ‘정의로운 산업전환 노사공동결정 법안’인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 기본법안>(강은미 의원 대표발의, 2021년 12월)이 소관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다.

    탄소중립기본법에 의해 신설된 ‘기후대응기금’도 올해 처음으로 집행된다. 기금 사업의 선정 기준은 크게 네 가지다. △온실가스 감축(2050 탄소중립 달성 기여도; 온실가스 감축량 기준 적용), △저탄소 생태계 조성 배출권 유상할당 수입 등과의 연계(온실가스 다배출 산업․기업 등 지원 강화), △공정한 전환(저탄소 경제·사회로의 구조적 전환 과정에서 취약한 지역·계층을 위한 공정한 전환 지원사업 적극 발굴), △탄소중립 기반구축(녹색금융·R&D 등 탄소중립 기반조성 사업 및 신규사업 발굴에 집중).

    그러나 2022년 2조 4,594억원 규모의 기후대응기금은 기금 규모, 기금 용도의 적합성 및 타 회계 사업과의 구분, 기존 사업과 신규 사업의 비중, 성과 관리 여부 및 관련 체계 등 여러 면에서 쟁점이 상당하다.

    ‘공정한 전환’ 사업에 1,836억원이 책정됐는데 전체 기금의 7.5%에 불과하다. 이중 환경부 소관 507억원은 △지역 공정 전환(기후변화적응 및 국민실천, 탄소중립 그린도시), △적응 및 인식제고(환경교육강화, 친환경소비생활 및 저탄소생산기반 구축) 사업으로 편성됐다.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1,080억원은 저소득층에너지효율개선 사업이 중심이다. 이렇게 짜여진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기금 사업들이 질적으로 정의로운 전환에 해당하는지, 양적으로 충분한지 의문이다. 익숙한 기존 사업이나 접근 방식을 ‘공정한 전환’이란 이름으로 재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오래전부터 정의로운 전환을 실행해왔다고 자부해도 된다.

    반면 고용노동부 소관 기금 159억원은 △노동전환지원인프라(노동전환분석센터, 노동전환지원센터), △노동전환지원금, △사업전환고용안정협약지원금으로 구성되는데, 전체 기금의 0.6%에 불과한 수준이다. 기후대응기금 이외 별도 예산을 통해 몇몇 부처에서 ‘노동전환’이나 ‘휴먼뉴딜’ 관련 직무전환․전직훈련, 전직․재취업 서비스, 디지털 역량 강화, 지역 위기대응 등의 사업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기후대응기금과 해당 사업을 사실상 신규․추가적으로 조성하지 않고, 정의로운 전환의 규범(적극적 지향성이냐, 소극적 반응성이냐)과 범위(광의냐, 협의냐)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서 현상유지 정치와 행정편의 관행을 따른 결과, 공정한 전환은 나쁜 정의와 이상한 전환의 조합으로 포장된 그저 그런 브랜드가 돼버렸다.

    앞으로 탄소중립위원회 공정전환분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기후위기와 산업․노동 전환 연구회),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등이 어떤 역할을 할지 추적해야겠지만, 지역과 산업별 움직임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 울산자동차산업 노사정 미래포럼, 충남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노정협약, 금속노조-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 산업전환협약, 경남 정의로운 전환 기본 조례(안), 경기 정의로운 전환 플랫폼 구성(안) 등 최근의 변화가 주는 성과와 향후 과제를 탐색해야 한다.

    주요 국가 및 지역 차원에서 계획, 정책, 기금, 위원회, 기구, 협약, 법률 등 다양한 형태로 정의로운 전환이 공식화되고 있다. 독일과 캐나다의 탈석탄 과정과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독일에 비해 법제도 기반이 취약한 캐나다의 경우, 최근 정부 차원의 정의로운 전환 입법화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시민사회가 제안하는 요구사항과 예산계획이 어떻게 반영될지가 관건이다.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의 확대․강화를 위해서는 유럽연합이 그에 맞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유럽노총은 ‘지역별 정의로운 전환 계획’ 수립 과정에 노동조합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정의로운 전환 기금’의 이행조건, 단체협상 및 사회적 거버넌스 강화 방안 등을 보장하는 법제를 요구한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자문기구인 ‘정의로운 전환 위원회’ 2기가 출범했는데, 1기 위원회(2년 임기)의 최종 제안을 담당 부처가 공식 수용하면서 절차적 과정을 통해 정부 정책으로 구체화될 기반이 마련됐다. 독일이나 캐나다 정부가 초점을 두는 에너지 및 관련 노동 분야와 함께 장소 기반 지역사회와 소비자들, 그리고 농업 분야를 포함한 경제 전반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스페인 <기후변화․에너지전환법>은 프랑스의 에너지․기후 관련법만큼이나 여러 목표들이 정량적으로 설정되어 있고, 강행 규정을 세부적으로 담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 전략’과 ‘지역 정의로운 전환 협약’ 역시 법제화되어 있고, ‘정의로운 전환 기구’가 지원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스코틀랜드에 비해 제도화 수준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몇몇 협약 지역에서 탈석탄 정의로운 전환의 비전, 방법, 재원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기후정의진영의 끈질긴 운동으로 이루어낸, 취약지역사회 지원 쿼터 40%의 법 조항이 돋보이는 미국 뉴욕주는 ‘기후행동위원회’ 산하 ‘정의로운 전환 워킹그룹’과 ‘기후정의 워킹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각각 노동지원․전환과 취약지역사회 기준․선정 관련 연구조사 및 정책제안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 뉴욕주 시민사회는 화석연료 기업의 오염자 부담 원칙을 실현하고, 정의로운 전환과 지역사회 기후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후속 입법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연방 수준에서 추진되고 있는 <노동자단결권보호법> 제정운동은 노동전환과 노동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 캐나다, 스코틀랜드, 스페인, 미국 이외에도 아일랜드와 뉴질랜드의 모델과 해당 프로세스도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해외 모델과 사례는 그 자체로 고유한 배경과 맥락에서 형성된 것이고, 성과만큼이나 오류를 경험하고 또 한계를 노출하곤 한다. 한국은 이제 중앙이나 지역에서 전환 모델을 모색하는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권한과 자원을 보유한 정부가 선호하는 방향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지역별로, 산업별로 다양한 유형과 경로가 가능해야 한다. 3월 대선 못지않게 6월 지방선거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운동이나 사회운동이나 타이밍이 중요하다. 수년 전에 고안된 ‘정의로운 전환랩’ 같은 프로그램이 제때 실행됐더라면, 전환 역량은 더 쌓였을 것이다. 시민참여와 이익공유형 에너지 전환 실험에 더 일찍 관심을 갖고 노력을 했더라면, 상황은 좀 더 나아졌을 것이다. 타이밍 포착은 어렵다. 그렇다면 대세에 편승하는 것도 방법이다.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한 기본 조례> 제정운동도 괜찮다. 그러자면 이곳저곳 산재한 게이트키퍼들을 추월하는 저력을 발휘해야 한다. 또 늦기 전에.

    * <에너지정치칼럼> 연재 링크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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