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세인 초고속 사형집행의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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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04일 10: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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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담 후세인이 처형됐다. 전세계는 그가 처형됐다는 소식을 듣고서 논란에 휩싸였다. 이라크에서는 사담의 처형소식이 알려지면서 전세가 더욱 가열됐고 하루 동안에만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담을 초고속적으로 처형한 이유는 대략 하나로 모아지고 있다. 미국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사실 사담처럼 미국과 밀접하게 유착돼 성장한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사담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도 미국 때문이었고 그를 이라크의 지도자로 만든 것도 미국이었다. 미국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이용해먹었고 나중에는 배신한 그를 처형했다. 사담의 일생은 한편의 공포영화를 보는 것 같다.

    사담의 일생은 한편의 ‘공포영화’

       
      ▲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재직 시절
     

    미국이 사담을 선택한 것은 1959년경이었다. 냉전시대였던 당시에는 미국과 소련의 양자구도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였다. 당시 이라크에서는 왕정이 폐지되고 선거를 통해 카심 대통령을 선출됐다. 카심 대통령은 서서히 미국과 서방세계로부터 멀어지면서 소련으로 밀착되기 시작했다.

    무기도 소련으로부터 사들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라크의 석유에서 엄청난 이익을 올리고 있던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은 그를 축출하기 위한 작전에 들어갔다. 여기에 사담이 등장한다. 사담은 카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한 6인조를 조직하면서 CIA의 작전에 깊숙이 개입하게 됐다.

    미국중앙정보국(CIA)은 암살계획에서부터 비용과 무기 등 모든 지원까지 도맡았다. 사담과 그의 일원들은 CIA의 계획을 실행하는 행동대원들이었다. 이들 6인조는 카심 대통령에 대한 암살기도를 수행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사담은 그 뒤 CIA의 도움으로 다른 아랍국가로 망명했다.

    1963년, 이라크에서는 CIA의 지원하에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카심 대통령이 살해되고 바쓰당이 집권했다. 외국에 망명해있던 사담은 이라크로 귀국하면서 집권당의 바쓰당의 지도자로 등장했고 CIA로부터 건네 받은 이라크 좌파들에 대한 명단을 이용해 이들을 학살하는 일을 수행했다.

    또한 그는 1980년에 호메이니혁명으로 인해 축출된 미국의 요구대로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계속된 이란-이라크전에서 양측은 모두 각각 1백만 명의 목숨을 잃었다. 이란-이라크전을 살펴본다면 미국의 역할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사담정권에 8년 간 생화학무기와 세균과 독가스를 제조할 수 있는 재료들을 공급했다. 생화학무기들을 사담은 이란을 상대로 사용하면서 당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또한 1988년에는 쿠르드지역인 할라비야에 화학가스를 살포해 수천 명의 쿠르드민족을 학살하기도 했다.

    이들 화학무기는 미국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미국정부는 수백억불의 자금까지도 지원했고, 전쟁기간 중에는 이란군의 움직임을 관측한 CIA의 위성정보자료를 이라크측과 공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전 미국방부장관인 럼스펠드의 위선적인 활동이었다. 지난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뒤에는 1983년 12월에 그가 사담과 만나 악수를 나누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세상에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럼스펠드와 사담이 처음 만난 것은 1983년이었다. 럼스펠드는 당시 레이건정부의 특사로 이라크를 방문해 사담을 처음 만났고 그 뒤에도 계속 사담을 만나 미국의 지원을 중개하는 브로커역할을 했다. 럼스펠드는 과거에는 사담과 절친한 친구로 지내다 나중에는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을 체포한 전형적인 위선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뿐 아니었다. 사담은 미국을 방문하고 엄청난 금액을 기부하기까지 했다. 1980년, 미국을 방문한 사담은 당시 미국의 교회가 진 빚 17만 달러를 대신 갚아줄 정도로 관대했다 한다. 그의 기부행위가 알려지면서 디트로이트시에서는 그에게 디트로이트의 명예시민증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미국의 친구였던 사담이 왜 미국의 적으로 돌변했고, 왜 미국은 사담을 제거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란-이라크전에서 보인 미국의 이중적인 태도가 사담을 미국에게서 돌아서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미국은 이란-이라크전 기간 중 이라크를 지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비밀리에 ‘미국의 적국’인 이란에도 무기를 판매했다. 이란에 무기를 판 돈은 다시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정부를 뒤엎기 위한 콘트라반군의 활동비용으로 보내졌다.

    당시 레이건 정부의 불법적인 콘트라반군에 대한 지원은 미의회를 발칵 뒤집어놓았고 이는 ‘이란-콘트라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사담 후세인이 미국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도 이 사건이 세상에 밝혀진 시점이다.

    전쟁 중 적국을 지원한 위선적인 미국의 태도로 인해 사담은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면서 사담은 결국 미국을 등지고 말았다. 사담에게 배신당한 미국은 복수의 칼날을 갈았고 이는 부시일가에 의한 두 차례의 걸프전으로 이어졌다.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과 비밀경찰이었던 바르잔 아브라함 알-티크리티. 재판 중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부를 향해 폭언을 퍼붓고 있다  
     

    이라크 국민들은 사담 후세인이라는 지도자로 인해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려왔고 사담이 죽고 난 지금도 전쟁이 끝날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사담을 서둘러 처형한 이유는 어쨌든 이라크전의 전황과 많은 관련이 있고 미국의 정치상황과도 맞물려있다. 지난 의회선거에서 패배한 부시정권은 이라크에서 발을 빼기 위한 준비단계에 들어갔다. 사담 후세인의 처형도 미국으로서는 이라크를 떠나기 전에 수행해야만 하는 중요한 과제였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미국은 사담 후세인이 반인류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면 당연히 헤이그의 국제전범재판소에서 공개재판을 통해 그를 재판했어야 했다. 미국은 세르비아의 전 대통령인 밀로셰비치를 비롯한 발칸전 관련자들을 전범으로 몰아 헤이그로 송치하기 위해 갖은 작전을 벌였던 일이 있다.

    그렇지만 사담에 대해서는 상이하게 다른 잣대가 적용됐다. 이 때문에 사담의 입이 두려워 미군병사들이 둘러싼 이라크의 법정에서 형식적 재판을 진행한 뒤 그를 서둘러 처형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사담의 처형에는 어떤 동정도 있을 수 없다. 그는 이라크 국민들과 쿠르드민족 수백만명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수십 년 동안 이라크국민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사담은 미국을 배경으로 권력에 올라 미국의 배신으로 인해 미국에 등을 돌렸고 나중에는 미국에 의해 처형됐다. 그렇다고 사담을 처형한 미국의 손을 절대로 들어줄 수는 없다. 미국도 똑같이 손에 피를 묻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수십만명의 이라크국민들이 미국의 이라크침공으로 인해 죽어갔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이라크전을 개시해 수많은 인명을 죽음으로 내몬 부시대통령과 럼스펠드 전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미국정부의 인사들도 당연히 사담 후세인처럼 반인류적인 범죄를 저지른 전범들이다. 이들도 모두 국제전범제판소의 법정에 서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 때에야 미국도 사담의 처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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