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범과 쥐꼬리망초의 이름 유래기
    [푸른솔의 식물생태] 욕망의 과잉과 민속의 왜곡    
        2022년 02월 14일 09: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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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을 시작하며

    진범 <Aconitum pseudolaeve  Nakai>은 미나리아재비과 투구꽃속의 여러해살이 풀로 전국의 높은 산지에서  줄기는 곧추서거나 비스듬히 자라는데 길이 80~200cm에 이른다. 쥐꼬리망초<Justicia procumbens  L.>는 쥐꼬리망초과 쥐꼬리망초속의 한해살이 풀로 경기도 이남의 산기슭이나 밭둑 등에서 높이 30cm 내외로 자란다.

    사진1. 진범 Aconitum pseudolaeve Nakai

    사진2. 쥐꼬리망초 Justicia procumbens  L.

    두 식물은 우리의 역사와 민속에서 식물분류학이 도입되어 자리를 잡던 짧은 시기에 서로 관련이 있었던 적이 있었고, 식물 이름에는 그러한 역사가 반영되어 있다. 진범에 대해 우리의 전통적 명칭으로 망초(網草)라는 이름이 오랫동안 사용되었기 때문에 진범은 곧 망초이었다. 쥐꼬리망초는 망초로 오해되었지만 꽃차례가 쥐꼬리를 닮은, 실제로는 망초가 아닌 가짜 망초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와 민속과는 정반대되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한국식물분류학회지라는 꽤 정평있는 학회지에 생명시스템학과 교수를 비롯하여 일문학자, 중문학자와 민속학자들의 공동 논문으로 발표되었는데 일본의 민속을 마치 우리의 민속인 양 둔갑시키는 결과의 논문임에도 불구하고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등재되어 지금도 공중에 그대로 읽히고 있다. 그 핵심적 내용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식물명 진범은 진교의 이체자명을 잘못 읽은 것으로, 중국 고전과 우리나라 고전에 나오는 진교와는 무관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많은 식물학 문헌에서 진범이라는 식물명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국명 역시 학명과 마찬가지로 국명 역시 “명칭 사용의 안정성”을 고려하여 진범이라는 국명을 사용할 것으로 제안한다…(중략)…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진교라고 불렀던 식물은 진범이라고 부르는  Aconitum pseudolaeve 일 가능성보다는 쥐꼬리망초  Justicia procumbens 일 가능성이 더 많아 보인다.” – 신현철 외, 『다 시 진교(秦艽)를 찾아서』, 한국식물분류학회지 제47권4호(2017), 328쪽 이하[이하 “검토 논문 “] 참조

    취지인즉, 진범이라는 식물명은 중국에서 유래한 약재명 秦艽(진교)를 잘못 표기한 秦芃(진봉)을 잘못 읽어 형성된 말인데, 우리의 고전에서는 나오는 秦艽(진교)는 현재 진범이라 불리우는  A. pseudolaeve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쥐꼬리망초(J. procumbens )라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말을 정상적으로 이해하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위 요약된 주장 자체에서 이미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진범이라는 이름이  진교라는 중국 약재명을 잘못 읽은 것에서 비롯되었다면, 그것이 오해 또는 오류이든지 그 자체가 우리의 역사와 민속에서는  중국의 약재명 秦艽(진교)를 진범(A. pseudolaeve )으로 인식하고 이해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문장에 다시 우리나라 고전에서 진범이 진교와 무관하다니? 어쨌든 얼핏 보아도 황당한 이러한 주장이 왜 등장했으며 어떤 결과를 낳는 것인지를 살펴보면서 위 두 식물을 둘러싼 우리의 옛 민속을 알아보기로 한다.

    [2] 진범의 이름 유래기

    1. 중국의 옛 문헌에 나타나는 ‘秦艽 ‘(진교)와 기원식물 그리고 왜곡

    (1) 중국 문헌에 나타나는 秦艽‘(진교)

    약재명으로서 秦艽(진교)는 중국의 고대 본초학서인 『신농본초경 』(神農本草經)에서 유래한다. 『신농본초경 』은  “色如黃土 羅紋交糾左右旋轉“[(뿌리)색은 황토색이고 비단 무늬처럼 서로 꼬여 있고 좌우가 돌아 구르는 모양이다]고 기록한 이래로 여러 본초학 문헌에서 유사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송나라 때의 소송(蘇頌, 1020~1101) 등이 편찬한 『본초도경』(本草圖經, 1061)은 “今河陝州郡多有之 其根土黃色而相交糾 長一尺以來 粗細不等 枝幹高五六寸 葉婆娑 連莖梗俱靑色 如萵苣葉 六月中開花紫色 似葛花 當月結子“[지금은 황하의 섬주(陝州) 지역에 있는 군(郡)에 많이 있다. 뿌리는 황토색이면서 서로 꼬여 있고, 길이는 1척 이상이며, 거칠고 고운 것이 균등하지 않다. 가지와 줄기는 5-6촌 정도이다. 잎은 하늘하늘하고 줄기가 이어져 모두 푸른색이어서 상추잎과 같다. 6월 중에 자색 꽃이 피는데 칡꽃과 유사하며 그 달에 씨가 맺힌다]라고 기록했다.

    명나라 때의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이 저술한 『본초강목』(本草綱目, 1596)은 “秦艽出秦中 以根作羅紋交糾者佳 故名秦艽“[진교는 진(秦; 현재의 산시성 일대) 땅에서 나고 뿌리가 비단 무늬처럼 서로 꼬여 있는 것이 좋으므로 진교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진교는 중국의 옛 문헌에서 ‘秦膠'(진교),  ‘秦爪'(진조), ‘秦糺'(진규), ‘秦 糾'(진규) 등으로 쓰여졌고, 때로 와전되어 종종 ”秦芃'(진봉)으로도 표기되었다. 청나라의 오기준((吳其濬, 1789~1847)이 편찬한 『식물명실도고』(植物名實圖考, 1848)에 기록된 진교에 대한 도해(圖解)는 아래와 같다.

    사진3. 오기준, 『식물명실도고』, 산초(山草) 권지7(1848) 중  진교의 도해

    (2) 중국의 秦艽(진교)의 기원식물에 대한 이해

    옛 문헌의 진교가 어떤 식물을 일컫었던 것인지에 대해 현재 중국의 중요 본초학 관련 서적과 식물학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 『중화인민공화국 약전(藥典)』(2015, ChP) : [진교(秦艽),Qinjiao 친쟈오] 용담과(龍膽科) 식물 진교(秦艽. Gentiana macrophylla ), 마화교(麻花艽. Gentiana straminea ), 조경진교(粗莖秦艽. Gentiana crassicaulis ) 또는 소진교(小秦艽. Gentiana dahurica )의 뿌리를 말린 것

    – 『중화본초』(1999) : [秦艽] 용담과 식물 秦艽(진교, G. macrophylla ), 粗茎秦艽 (조경진교, G. crassicaulis ), 麻花艽(마화교, G. straminea ), 达乌里秦艽(달오리진교, G. dahurica )의 뿌리

    – 『중약대사전』(1977) : [진교 秦艽] 용담과 식물 大葉龍膽 (대엽용담, G. macrophylla ), 粗 莖 龍膽 (서장용담, G. crassicaulis ), 西藏 龍膽 (서장용담, G. tibetica )의 뿌리

    – 『중국식물지』(중문판) : 秦艽 Gentiana macrophylla Pall. ; 秦艽(本草纲目), 秦乣(唐本草),秦爪, 秦胶(本草纲目),大叶龙胆(中国北部植物图志),大叶秦艽,萝卜艽, 左秦艽, 西秦艽.[* 주의 : 식물명은 저술된 시기별로 차이가 있어 같은 종에 대해서도  다르게 기재되었음]

    참고<1> 약전(藥典)이란 의료에 사용되는 중요한 의약품에 대하여 제법(製 法 ) ·성상(性 狀 ) ·성능 ·품질 및 저장방법의 적정을 기하기 위하여 정해진 기준서를 말한다. 각국의 정부 또는 공기관이 주관하여 제정하는데 중국의 최근 약전은 2015년에 고시되었다. 중화본초(中華本草)는 중국의 국가중의관리국에서 1999년 편찬한 국책도서로서 전체 9권에 걸쳐 총 8,980종류의 약물을 담고 있다. 중약대사전(中藥大辭典)은 중국 상해출판사에서 20여년간의 작업을 거쳐 1977년 간행한 본초학서로서 식물약 4773종류, 동물약 740종류, 광물약 82종류 및 가공품 172종류를 담고 있다.

    사진4. 흔히 ‘큰잎용담’으로 불리우는 중국명 진교(G. macrophylla )의 모습[중국식물지의 사진 참조]

    중국식물지에 秦艽(진교 )로 기재된  G. macrophylla (중국명으로 ‘진교’라고 하지만 이하 편의를 위하여 “큰잎용담“)는 높이 30~60cm 정도로 자라는 것, 잎이 크고 긴 것, 뿌리가 노란색으로 꼬여 있는 것, 꽃이 자주색으로 피는 것 그리고 7~10월경에 꽃이 피고 열매가 성숙하는 것, 중국 중부지방을 포함하여 광역 분포하는 등에서 중국의 옛 문헌에 기록된 秦艽(진교)의 모습과 대체로 비슷하다. 한편, 중국식물지는 식물분류학(taxonomy)에 따른 식물생태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秦艽(진교)를 큰잎용담(G. macrophylla )이라는 하나의 종(species)의 명칭(이름)으로 사용하지만, 약재를 다루는 본초학서인 『중화인민공화국 약전』, 『중화본초』 및 『중약대사전』은 큰잎용담과  그와 비슷한 약성을 가진 같은 속(genus)의 몇 종의 식물을 포함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3) 중국의  秦艽(진교)의 기원식물에 대한 왜곡

    그런데 앞서 언급한 문제의 “검토 논문”은 중국에서 진교의 기원식물이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진교를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종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중국식물지에서는 진교를 큰잎용담, 즉  Gentiana macrophylla로 간주했으나(Flora of China in English, 2017), Li et al.(2003)은 소박골 즉, Justicia gendarussa 로 간주하고 있다…(중략)…중국 고전에 나오는 진교의 설명은 큰잎용담보다는 소박골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뿌리가 엉켜 그물처럼 자란다는 특징은 큰잎용담에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Li et al.(2003)이 “모든 가능성을 고려할 때(in all probability)” 진교는 소박골이라고 결론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 위 논문, 331쪽 참조.

    “검토 논문”의 이러한 주장은 이해하기 위하여  중국명 小驳骨(소박골, 일본명: キダチキツネノマゴ, Justicia gendarussa, 이하 논의의 편의를 위해  “소박골 “이라 함)에 대해 먼저 간단히 살펴 보면 아래와 같다.

    사진5. 소박골(일본명 : 키다치키츠네노마고)의 세밀화(중국식물지 참조)

    중국명 소박골은 같은 속의 J. ventricosa 를 속칭으로 大 驳骨[대박골, 중국의 현재 추천명은 黑叶小驳骨(흑엽소박골 )]이라고 하는 것에 대비하여 식물체가 상대적으로 작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소박골은 쥐꼬리망초과 쥐꼬리망초속에 속하는 상록성 관목(또는 여러해살이 풀)으로 높이 1m 내외로 자라며, 꽃은 1~3월에 흰색 또는 분홍색으로 핀다. 인도와 동남아가 원산이며 중국의 남부에서 화훼 또는 약용 목적으로 재배한다. 이 식물은 명나라 때 왕상진(王象晋,1561~1653)이 편찬한 화훼식물에 관한 문헌인『군방보 』(群芳譜)에 상록성으로 자란다고 하여 ‘四季花'(사계화)라고 기록된 식물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 중국에서는 뿌리가 아닌 줄기잎과 지상부 전체(全株)를 ‘驳骨丹'(박골단)이라 하여 다친 뼈를 치료(속칭으로 ‘접골초’)하는 데 약용한다. – 이에 대해서는 국가중의약관리국, 『중화본초』, 상해과학기술출판사(1999) 제7권, 6,466쪽 참조.

    소박골은 상록성 목본 식물로 생긴 모습도 개화기도 다르며 중국의 옛 문헌에 적시된 지역에 자생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약재 식물로 별도로 이용되고 있는데 어떻게 이 식물이 중국에서 진교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일까? 소박골이 진교로 간주되고 있다고 하는 주장에는 일종의 속임수(!)로 내용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 보이는 여러 장치들이 있다. 그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만 추려서 살펴보자.

    ▶ 먼저 중국에서 소박골을 진교로 간주하고 있다는 근거로 제시한 Li et al.(2003)은 중국 문헌이 아니다. Li et al.(2003)은 『Chinese Medicinal Herbs』(2003)라는 영문판 서적으로  P. Smith와 G. A. stuart라는 미국인이 중국 명나라 때 이시진이 저술한 『본초강목』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여 영어로 옮기고 간단한 해설을 단 것인데 미국에서 출판된 것이다. 즉, 이 책에서 진교를 소박골로 간주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인의 견해일 뿐 중국에서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인이 정말로 그런 견해를 가졌는지? 만일 가졌다면 어떤 영향을 받은 것인지에 대해서 더 살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위 “검토 논문”은 이에 대한 어떠한 고찰도 없이 중국에서 그렇게 간주하고 있다고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주장한다.

    ▶ “검토 논문”은 중국의 옛 문헌에 진교에 대해  “뿌리가 엉켜 그물처럼 자란다는 특징“이 있다고  했으므로, 현재 중국식물지에서 진규로 보는  큰잎용담(G. macrophylla )은  “뿌리가 그물처럼 자라지 않고 곧게 자란 원뿌리에 잔뿌리가 달리“므로  큰잎용담을 진교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검토 논문”은 옛 본초학 문헌이 결코 과학으로서의 식물분류학에 따른 기재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옛 문헌과 현재의 식물분류학의 기준을 동일시하여  현재의 식물분류학에 비슷한 것이 보이면 바로 그 문장을 식물분류학에 따른 형태를 기록한 것처럼 해석을 하는 오류를 범한다 . 그 러나 중국의 옛 문헌은 진교에 대해 뿌리가 엉켜 그물처럼 자란다고 특징짓지 않았다.

    예컨대 ,『본초강목』은  “根作羅紋交糾者佳 故名秦艽“[뿌리가  비단 무늬처럼 서로 꼬여 있는 것이 좋으므로 ‘진교’라 한다]라고 기록하였고 달리 ‘秦膠'(진교), ‘秦糺'(진규), ‘秦 糾'(진규)라고도 한다고 기록하였다. ‘交'(교)는 교차한다는 뜻이고, ‘糾'(규)와 ‘糺'(규)는 서로 꼬여 있는 모양을 말하며, ‘膠'(교)는 풀처럼 달라 붙어 있다는 의미이다. 중국의 옛 문헌 어디에도 현재의 식물분류학에서  말하는  원뿌리와 곁뿌리가 구별되지 않는  수염뿌리(鬚根, fibrous root)의 개념으로 진교를 설명한 곳이 없다. 앞서 살펴본 청나라 때의 『식물명실도고』의 도해에 여러 개의 원뿌리가 서로 꼬여 있는 모습이 그려진 것에서도 이는 분명하다. 중국의 옛 문헌은  뿌리가 꼬여 있는 것이 약성이 보다 좋다고 말한 것 뿐이다. 『신농본초경』이나 『본초강목』에서 ‘羅紋'(나문=비단 무늬 )이라고 한 것도 씨줄과 날줄이  서로 교차하는 모양을  말한 것이므로  이것 역시 수염뿌리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뿌리가 꼬여 있는 모양을  말한 것 뿐이다.  중국의 옛  문헌의 실제 기록과 다르게 그 내용을 교묘히 비튼 다음 큰잎용담에는 그런 모습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 나아가 “검토 논문”에는 더욱 황당무계한 주장이 있다. “검토 논문”은 소박골의 형태를 설명하면서 다른 내용에 대해서는 모두 중국식물지(영문판)을 인용하였는데 유독 뿌리의 모양에 대해서는  “소박골은 뿌리가 서로 엉겨 그물처럼 자라며(Sonal and Maitreyi, 2011)“라고 하면서 「Sonal and Maitreyi, 2011」라는 별도의 논문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Sonal and Maitreyi, 2011」라는 논문은 Patel Sonal과 Zaveri Maitreyi라는 인도 본초학자가, 줄기잎과 전초를 약재로 사용하는 중국과 달리, 뿌리의 약성을 실험하고 그 결과를 보고한 논문(이하 “인도 본초학 논문 “)이다.

    사진6. 소박골의  뿌리 외형과 절단면을 현미경으로 촬영한 모습(위 「인도 본초학 논문」, 3쪽과 4쪽)

    그런데 인도 본초학 논문에는 “Indodermis: A distinct, single layer of endodermis separates the cortical region from the vascular region and there is a reticulate parenchymatous cell which is lignified“(내피: 뚜 렷한 단일층의 내피는 피질 영역과 관속 영역을 분리하며, 목질화된 그물 모양의 유세포가 있다)라는 문구는 있어도 그 어디에도 뿌리가 서로 엉켜 그물처럼 자란다는 언급은 없다. 뿌리를 잘라서 살피면 그 안의 세포가 그물 모양을 이룬다고만 되어 있을 뿐이다. 이 인도 본초학 논문은 친절하게도 뿌리의 모양과 자른 단면의 세포 모양까지 사진을 찍어 설명하고 있다(사진6 참조). 도대체 저 사진의 어디를 보 면 뿌리가 그물 모양으로 자라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수염뿌리(fibrous root)가 아닐 뿐만 아니라 뿌리 사이의 꼬임도 발견하기 어렵다. 의도적(!)으로 소박골(J. gendarussa)의 뿌리가 옛 본초학서에 기록된 진교와 유사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없는 내용을 마치 있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고 볼 수밖에 없게 한다. 그렇지 않은가?

    ▶ 게다가 “검토 논문”은 「Li et al., 2003」이라는 미국 문헌에서 『본초강목』에 나오는 진교를 소박골로 간주했다고 하면서 “모든 가능성을 고려할 때(in all probability) 진교는 소박골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언급된 이 미국 문헌을 살펴보니 이 인용 또한 황당하기가 그지없다. 해당 문헌의 225쪽은 “JUSTICIA GENDARUSSA,- 秦艽(chin-chiao). This identification is exceedingly doubtful. The Plant described in the Pentsao is in all probability one of the Acanthaceae “[번역 : Justicia gendarussa – 秦艽(진교). 이 동정은 대단히 의심스럽다. 본초강목에 기록된 식물은 아마도 쥐꼬리망초과 식물의 하나로 보인다.]라고 적고 있을 뿐이었다.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서 진교는 소박골이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진교는 소박골이라고 하지만 매우 의심스럽고 아마도(!) 쥐꼬리망초과의 식물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취지의 글이다. 해당 문장에서 대단히 의심스럽다는 말은 빼 버리고, 가정적으로 추정할 때 사용하는 ‘in all probability’를 ‘모든 가능성을 고려할 때’라는 식으로 문맥에 전혀 맞지 않게 번역을 하여 마치 해당 문헌이 확신에 찬 결론을 내린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그나마도 앞서 살핀 것처럼 중국 내부의 인식이 아니라 미국에서 영어로 발표된 미국인들의 주장일 뿐이다.

    (4) 소결론

    중국의 옛 문헌과 현재 중국에서 이해하는 식물학과 본초학에 따르면 옛 문헌상의 진교는 중국에 자생하는 큰잎용담(G. marcophylla ) 또는 그 근연종을 뜻하며, 소박골(J. gendarussa )을 옛 문헌의 진교로 이해할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검토 논문”에서 제기한 주요한 근거는 대개는 사실이 아니며, 유일하게 사실에 기반한 것은 최근에 『본초강목』을 해석하는 미국에서 미국인에 의해 출판된 책 하나에서 매우 모호하게 소박골을 지칭했을 지도 모른다고 추정하는 견해를 제시했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앞서 살펴 보았듯이 쥐꼬리망초속의 소박골이라는 식물은 중국에서도 자생하는 종이 아니며 그나마 중국 남부 지역에 치우쳐 분포한다. 소박골은 한반도의 환경에 자라기 어렵고 과거에도 그 현재에도 재배조차 확인되지도 않는 식물이다. 물론 우리의 옛 문헌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식물이다. 중국 문헌의 진교에 대한 “검토 논문”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옛 문헌의 진교와 관련이 있지 않다. 그런데도 검토 논문이 중국의 옛 문헌의 진교에 대한 왜곡을 감내하면서까지 굳이 쥐꼬리망초속의 식물인 소박골이 진교라 고 주장하는 이유는 우리의 옛 문헌상의 진교를 소박골과 같은 속의 쥐꼬리망초(J. procumbens )라고 주장하기 위한 전초 작업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얼마나 황망한 일인가?

    1. 우리의 옛 문헌에 나타나는 ‘秦艽 ‘(진교)와 기원식물 그리고 왜곡

    (1) 우리의 문헌에 나타나는 秦艽‘(진교)

    오래전부터 진교는 약재로서 우리에게 인식되었는데, 중요한 내용을 명칭 위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향약채취월령』(1431) : 秦艽 同網草
    – 『향약집성방』(1433) : 秦艽 網草
    – 『세종실록지리지』(1454) : 秦芁 蓁芃
    – 『촌가구급방』(1538) : 秦芃 網草 그물플
    – 『동의보감』(1613) : 秦艽  망초불휘  * 주의 : 판본에 따라서는 ‘秦 芃’으로 표기
    – 『의림촬요』(1635) : 秦艽
    – 『산림경제』(1715) : 秦芃
    – 『광제비급』(1790) : 秦芃
    – 『광재물보』(19세기 초) : 秦艽 망초 又진쥬풀 秦 糾  秦爪 秦膠
    – 『물명고』(1820년대) : 秦艽 망초 秦 糾  秦瓜
    – 『의종손익』(1868) : 秦艽
    – 『의휘』(18 71) : 秦艽  망초불휘
    – 『의방합편』(19세기) : 秦芃 망초

    우리의 옛 문헌에서 명칭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중국의 옛 문헌에서 사용하지 않는 한자명 ‘網草'(망초)와 이에 대한 한글 명칭으로 ‘망초’와 ‘그물플'(그물풀)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 식물에 대한 이용이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었고 널리 인식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 외에 중국과 마찬가지로-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한자 秦艽(진교)을 잘못 기록한 ‘秦芁'(진교), ‘蓁芃'(진봉)과 ‘秦芃'(진봉)과 같은 표현들이 다수 등장한다는 점이다.

    (2) 우리의 秦艽(진교)의 기원식물에 대한 조사와 결과

    중국에서 생약명 秦艽(진교)로 보아 사용하는 여러 종의 식물 큰잎용담(=진교, G. macrophylla ), 마화교(麻花艽. G. straminea ), 조경진교(粗莖秦艽. G. crassicaulis ), 달오리진교(达乌里秦艽 . G. dahurica ) 또는 서장진교(西藏 秦艽 , G. tibetica )는 국내에 자생하지 않으며 달리 옛부터 이를 재배하여 왔다는  기록이나 흔적도 발견되지 않는다. 국가표준식물록에 우리말로 G. dahurica 를 ‘다우리아용담’이라 하고  G. tibetica 를 ‘티베트용담’이라 하여 재배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최근이다.

    그런데 『향약채취월령』(1431)의 跋(발문)은  “殿下於是 命集賢殿直提學 臣 兪孝通 及典醫監 臣 臣盧重禮副正 臣 朴允德  徧考土産藥材凡數百餘種  首注鄕名  次以味若性  春秋採取之早晩  陰陽乾暴之善惡  悉據本草諸書  搜剔無遺  修成鄕藥採取月令一篇 精加校正 印出頒行“[전하(세종)께서 이 때에 집현전 직제학 유효통 및 전의감 정 노중례, 부정 박윤덕에게 명하여 우리 땅에서 나는 약재 수백여종을 두루 살피고, 먼저 향명을 달고 다음으로 약의 성미ㆍ채취 시기ㆍ건조 요령을 모두 본초 서적들에 근거하여 남김 없이 찾아 마침내 『향약채취월령』 1편을 만들고 자세히 교정하고 인쇄하여 반포하게 하시었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향약채취월령 』에 기록된 식물은 우리나라에 분포(자생 또는 재배)하는 식물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종실록지리지 』(1454)는 秦芁(진교=秦艽)가 경기도, 경상도와 황해도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분포하는 것으로 기록하였다. 당시 진교라고 인식했던 식물이 한반도의 곳곳에 분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7. 허준, 『동의보감』(1613), 탕액편 중 초부(下) ‘진교’ 관련 부분(국립중앙도서관 보관본)

    1613년에 간행된 『동의보감』 탕액편은 진교를 ‘秦 芃'(진봉)으로 기록하면서 우리말 명칭을 ‘망초불휘’로 기록하였다. 그런데 『동의보감』 탕액편은  자생하거나 또는  국내에서 재배가 되지 않아 중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약재에 대해서는 중국 수입약재라는 뜻으로 ‘唐'(당)이라는 표시를 표제의 상단부에 기록했다. 위 <사진7>에서 진교(진봉), 백합, 지모와 백지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약재이고, 패모는 중국에서 수입되는 약재(唐)라는 뜻이다. 즉, 『동의보감』에 따르면 진교(진봉)는 당시 중국에서 수입하는 약재가 아니라 국내에서 생산되는 약재이었다.

    이상을 요약하면, 우리의 옛 문헌의 기록을 살펴 볼 때 중국에서 전래된 진교라는 식물명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한반도에서 분포하는 별도의 식물을 약재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향약집성방』(1433)은 서문에서 “各醫之診病用藥 皆隨氣施巧 初非拘以一法 盖百里不同俗 千里不同風“(각각  의사들이 병을 진찰하고 약을 쓰는 것은 모두 기질을 따라 적당한 치료를 베풀어 처음부터 하나의 방법에 구애받지 않았으니 대개 백리마다 습속이 같지 않고 천리마다 풍속이 같지 않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우리의 옛 문헌 중에서 『향약집성방』(1433)과 『동의보감』(1613)의 진교의 식물적  형태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있으나, 이 내용들은 모두 중국 문헌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어서  당시 우리가 사용하였던 식물을 이해하는데 간접적 참고 자료로서 의미는 있지만 이로부터 직접적인 결론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과 다른 우리가 사용하던 진교라는 식물에 대한 설명이 기록된 것은 1820년대에 실학자 유희(柳 僖, 1773~1837)가 저술한 『물명고』이다.

    사진8. 유희, 『물명고(物名考)』, 1820년대 저술 추정(서울대규장각 보관 가람문고본), 草 16쪽.

    『물명고』(1820년대)는 ‘秦艽'(진교)라는 표제로  “葉如石龍芮而極大 六月花如葛花 根相交糾如網巾 망초 秦 糾  秦瓜仝“[잎은 개구리자리와 비슷하지만 매우 크다. 음력 6월 에 피는 꽃은 칡꽃과 비슷하다. 뿌리는 서로 교차하고 꼬여 망건처럼 생겼다. ‘망초’라고 한다. 달리 秦糾(진규)와  秦瓜(진과)라고도 한다.] 『물명고』』의 진교에 대한 기록 중  잎의 형태에 대한 설명은 중국과 우리의 다른  옛  문헌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꽃의 모양을 칡꽃에 비교한 것은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다. 뿌리가 서로 교차하고 꼬여 있다는 것은 중국의 문헌의 기록과 비슷하지만  그 형태를 망건에 비유한 것은  『물명고』의 독특한 내용이다. 더욱이 현재의 미나리아재비과 식물인 백두옹(현재의 할미꽃속 식물), 모간(현재의 미나리아재비속 식물), 초오두/오두/백부자(현재의 투구꽃속 식물)를 배열하면서 그와 함께 진교를 기록한 것도 『물명고』만의 독특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명고』에 기록된 이 내용만으로 진교 어떤 식물인지는 알기가 어렵다. 유희 선생이 살펴본 표본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그 형태적 기재 내용이 현재의 식물학에 따른 기재문의 내용과 동일하지 않다. 잎, 꽃과 뿌리 모두에 당시 주위에서 흔하게 보는 식물 또는 사물에 빗대어 표현한 것인데, 그 비유가 어떤 특징에 기인한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9. 정태현·도봉섭·이덕봉·이휘재, 『조선식물향명집』, 조선박물연구회(1937), 64쪽 참조.

    그런데 현재 우리가 흔히 옛 문헌의 진교를 진범(A. pseudolaeve )으로 이해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우리나라의 초기 식물학을 연구한 조선박물연구회의 식물부에 소속된 정태현·도봉섭·이덕봉·이휘재 4인이 1937년에 공저한 『조선식물향명집』에 따른 것이다. 『조선식물향명집』은 사정요지에서 당시 식물학에 따라 종을 분류한 후 그에 대한 조선명을 정하는 원칙에 대해 “과거 십수년간 조선 각지에서 실지 조사 수집한 향명을 주로 하고 종래 문헌에 기재된 것을 참고로 하여” 정하였다고 하였다. 즉, 이에 따르면 A. pseudolaeve 을 한자로 ‘秦芃'(진봉)이라 하고 그것을 ‘진범’ 또는 ‘오옥도기’라고 부르는 것이 1937년 당시 조선의 일반적인 인식에 따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약재 식물이었던 진교를 당시 우리나라에서 정말로 진범(A. pseudolaeve )으로 인식하였는지에 대해서 『조선식물향명집』의 제1저자이었던 정태현(1882~1971) 박사가 실제 전국 각지를 조사하고 남겨 놓은 기록이 있다.

    사진10. 林泰治·정태현, 『조선산 야생약용식물』, 조선총독부임업시험장(1936), 94쪽

    정태현 박사가 조사 연구하여 하야시 야스하루(林泰治)와 공동으로 발표한 『조선산 야생 약용식물 』(1936)에 따르면, 당시 약재 거래의 중심지이었던 경성(서울), 대구, 대전 및 평양의 약재 시장을 조사한 결과 당시 중요 약재 시장에서는 秦艽(진교)를  진범(A. pseudolaeve )으로 보아 거래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 진교=진범이고, “價格及需要量  1斤 に 大邱にて 25錢 大田にて15錢 平壤 にて20錢 需要多 からす“[가격 및 수요량  1근(斤)에 대구에서  25전, 대전에서 15전, 평양에서 20전. 수요  많음]이라고 기록했다. 『조선산 야생 약용식물 』(1936)은 옛 문헌을 단순히 해석하여 각 약재명이 어떤 식물인지를 살핀 것이 아니라, 당시 실제로 약재시장에서 거래되었던 실제 상황을 살폈던 것이므로 민속적 이용 상황에 대해 당시에 남겨진 과학적 조사기록이기도 하였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별도로 조사하여 기록한 문헌이 또 있는데 조선의 식물과  본초를 함께 연구했던 일본인 이시도야 츠토무(石戸谷勉, 1891~1958)는 대전 , 대구 및 경정지방의 약재시장(약령시)에서 실제로 유통되는 한약재를 대조하여 기록한 바 있다. 이 문헌은 이시도야 츠토무 (石戸谷勉,),『조선한방약료식물조사서』, 조선총독부(1917), 32~33쪽인데, 역시 당시 조선에서 약재시장을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秦芃(진봉)이라고 부르며, 『동의보감』에서 ‘망초’라고 불렀던 식물은 현재의 진범(A. pseudolaeve )이라는 것을 기록했다.

    이와 같이 식물학에 따른 한반도 분포 식물명을 조선인들이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한 식물분류명집인 『조선식물향명집』의 기록은 단순히 누구의 기록을 베끼거나, 문헌의 기록을 단순 해석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민속과 문화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약재 식물을 조사한 결과물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에 근거하여 1820년대에 저술된 『물명고』의 진교에 대한 기록을 다시 살펴보면 진교라는 식물이 바로 현재의 진범(A. pseudolaeve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옛 문헌상의 식물 형태에 대한 기록은 현재의 식물학에 따른 형태분석의 내용과 상당히 차이가 있으며, 현재의 식물학의 이해 방식을 그대로 대비하여 옛 문헌을 살필 경우 잘못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 잎의 모양

    사진11. 개구리자리와 진범의 잎 비교

    『물명고』는 진교의 잎이 石龍芮(석용예, 개구리자리: Ranunculus sceleratus )와 같지만 매우 큰 것으로 기록했다. 둘의 잎은 표면에 윤기가 있어 맨들거리고 깊 이 파여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개구리자리는 잎이 3개의 열편으로 규칙성을 가지는 반면에 진범은 잎이 5~7개(위쪽 줄기잎은 3개)의 열편으로 갈라져 있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식물학에 따른 형태적 특징으로 둘은 같다고 할 수 없지만 옛 사람들은 잎의 윤기와 잎이 깊게 갈라지는 모습만으로 둘의 잎이 ‘같다(如)’고 보았다.

    ○ 꽃의 모양

    사진12. 진범과 칡의 꽃 비교

    『물명고』는 진교의 꽃이 음력 6월에 개화하며서 葛花(갈화, 칡: Pueraria lobata)와 같다고 했다. 두 식물의 꽃은 개화시기가 비슷하고 덩굴져 자라고 자주색의 꽃이 총상화서로 핀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칡은 개별 꽃이 나비 모양이고 홍자색이 나는 반면에 진범은 개별꽃이 투구 모양이고 자주색으로 핀다는 점에서 식물분류학적 형태 분석에서는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이 둘을 ‘같다(如)’라고 보았다.

    ○ 뿌리의 모양

    사진13. 진범과 투구꽃/백부자의 뿌리 비교

    『물명고』는 진교의 뿌리에 대해 서로 꼬여 있고 망건(網巾)과 같다고 하여 ‘망초'(網草)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여기서 망건과 같다고 한 것이 어떤 모습을 의미하는지 쉽지 않은데, 이를 추정해 볼 수 있는 단서가 『물명고』에 있다. 『물명고』는 같은 투구꽃속(Aconitum )의 식물인 초오두[투구꽃(A. jaluense )과 그 근연종]와 백부자(A. coreanum )을 함께 기록했는데, 초오두를 우리말로 송곳의 한 종류인 ‘바곳’이라고 하였고 백부자를 우리말로 ‘힌바곳’이라 한다고 기록하였다. 투구꽃(초오두 또는 초오)의 뿌리는 전년도 뿌리가 검고 그 해에 새로 자라는 뿌리가 마치 새끼처럼 붙어 자라는데 붙어서 자란다는 뜻으로 附子(부자)라 하기도 하며 영양분을 축척하여 덩어리를 이루고 그 끝에서 급격하게 뾰족해진다. 그 모습을 송곳의 종류에 비유하여 ‘바곳’이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백부자의 뿌리는 투구꽃의 뿌리 중 붙어 있는 새 뿌리의 모습과 비슷하면서 보다 흰색이 강하다. 그래서 한자로는 白附子(백부자)라 하며 우리말로는 ‘힌바곳'(흰바곳)이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

    투구꽃과 백부자의 뿌리의 모습에 비교하면, 진범의 뿌리는 원 뿌리가 여러 개가 자라면서 그 원뿌리가 서로 꼬이기도 하는데 상대적으로 덩어리 모양이 덜하며, 뿌리가 가늘고 끝이 급격하게 뾰족해지지 않은 채 마치 망건이 양쪽에 머리에 묶을 때 사용하는 실을 꼬아 만든 당줄 같은 같은 잔뿌리들이 있다. 이렇게 살피면 진범의 뿌리를 망건과 같다고 하고 그래서 ‘망초’라고 한 이유를 추론할 수 있게 된다.

    참고<2> 『물명고』에 기록된 오두(烏頭)는 중국에 분포하는 烏頭 (오두, 아코니툼 카르미카일리: Aconitum carmichaelii)라는 식물을 뜻하는 것으로, 국내에 분포하는 식물이 아니다. 『동의보감』은 오두를 중국(唐)에서 수입하는 약재로 기록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물명고』에 기록된 진교에 대한 설명은 현재의 식물학적인 형태 기술과는 차이가 있으며, 진범(A. pseudolaeve )의 모습을 옛 사람들이 당시의 인식과 관념에 근거하여 설명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물명고』는 1613년에 간행된 『동의보감』 탕액편의 식물을 비교 고찰하여 그 내용을 반영하였는데, 『동의보감』에 기록된 것이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는 경우 번루와 호장근 등의 사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비판적 내용을 기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물명고』는 진교에 대해서 『동의보감』의 진교(진봉)와 차이가 있는 것으로 기록하지 않았고 ‘망초’라는 한글 명칭을 그대로 이어 받아 기록했는데,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동의보감』의  인식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추정케 한다.

    따라서 중국에서 전래된  秦艽(진교)라는 식물명에 대해 중국에서는 대체로 큰잎용담(G. macrophylla )과 그 근연종의 식물로 인식하고 있으나,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진범(A. pseudolaeve, 또는 그와 유사한 흰진범)으로 인식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현재 한의학에서 우리의 옛 민속을 반영하여 진범과 그 근연종인 흰진범을 우리의 진교라는 뜻의 韓 秦艽(한진교)라고 하면서 여전히 약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안덕균, 『본초도감』, 교학사((2014), 329쪽 참조.

    (3) 우리의 옛 문헌상의 秦艽(진교)의 기록에 대한 왜곡

    문제의 “검토 논문”은 중국의 옛 문헌에 기록된 秦艽(진교)를 실제 기록된 내용을 왜곡하면서까지 소박골을 일컫었던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점은 앞서 살펴 보았다. “검토 논문”은 우리의 옛 문헌의 기록과 기원식물과 관련해서도 본초학에 대한 무지와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매우 황당하고 괴기하게 보이는 주장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내용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 점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검토 논문”은 『동의보감』등 기록된 ‘無毒'(무독)이라는 표현을 근거로 미나리아재비과의 투구꽃속(Aconitum ) 식물로 독성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진범은 진교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본초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한 것이다. 『동의보감』에는 중국의 것을 그대로 옮겨 오는 과정에서 분포지가 다르거나 중국과는 다른 약재를 사용함으로써 실제와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그리고 본초학에서는 독성 약재를 사용할 때에는 수량을 조절하거나 독성을 상쇄할 수 있는 다른 약재를 함께 사용하는 配伍制毒(배오제독)의 방법이 있다. 『동의보감』의 「外形篇 」(외형편)과 「內景篇 」(내경편)은 수십 곳에서 진교로 약재로 제조하거나 개별 병증에 대한 치료제로 사용하는 방법을 기술하고 있는데, 진교를 단독으로 약재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으며, 여러 약재와 함께 곳곳에서 사용량을 정하고 있다. 독성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동의보감』의 「탕액편」의 진교에 대한 설명에서 ‘無毒'(무독)이라고 기록하였다고 하여  진범(A. pseudolaeve )이  아니라는 근거는 될 수 없는 것이다.

    ▶ “검토 논문”은 『물명고』(1820년대)의 진교 부분에 기록된  “葉如石龍芮而極大“(잎은 개구리자리와 비슷하지마 매우 크다)라는 내용에 대해 중국 당나라 때의 소경(蘇敬, ?~?) 등이 편찬한 『신수본초』(‘당본초’라고도 함, 659년)를 언급하며  “『신수본초』에는 ‘개구리자리 무리의 뿌리는 진교와 비슷하게 가늘다 (石龍芮輩, 根如秦艽而細)’라고 되어 있고, 『본초강목』에도 이러한 설명이 되풀이되어 있었다. 『신수 본초』에 개구리자리 즉 석용예의 뿌리가 진교와 비슷하다고 되어 있는 부분을 유희가 진교의 잎과 개구리자리의 잎과 비슷한 것으로 받아 들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내용은 참으로 괴기스럽고 황망하기조차 한 것인데, 『신수본초 』에는 그런 내용으로 기록된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신수본초 』와 그 내용을 다시 기록한 『본초강목』은  “牛扁  此藥似堇草石龍芮輩 根如秦艽而細 生平澤下地“(우편 , 이 약은 근초나 개구리자리 등과 유사하며 뿌리는 진교와 같으면서  가늘고, 평지의 호숫가나 낮은 습지에서 난다)라고 되어 있다. 우편(牛扁)이라는 약재가 근초나 개구리자리와 비슷하고, 우편의 뿌리가 진교와 비슷하면서 가늘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개구리자리의 뿌리가 진교와 비슷하다고 한 것이 아니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물명고 』의 진교의 잎(葉)에 대한 설명은 다른 문헌에는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유희 선생이 당시 진교라고 불리우는 실제 식물을 관찰하여 별도로 기록했다고 여겨지는 부분이다. 그 내용이 진범(A. pseudolaeve )의 잎과 유사하게 해석될 수 밖에 없으니 , 그 내용을 제거하기 위하여 『신수본초 』와 『본초강목』의 내용을 왜곡하고 나아가 유희 선생이 잎과 뿌리과 관한 기록을 구별조차 하지 못하는 문외한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해석할 수 없는 것은 『신수본초 』와 『본초강목』이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물명고』에는 진교의 뿌리를 별도로 설명하였고, <사진8>에서 보이듯이  진교와 별도로 ‘毛茛'(모간; 현재의 미나리아재비)과 ‘石龍芮'(석용예; 현재의 개구리자리)를 설명 하면서 개구 리자리(石龍芮)의 잎에 대해 “葉光滑稍圓 “(잎은 윤기가 있고 매끄러우며 끝이 둥글다)라고 하여 그 내용을 따로  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미 정한 식물과 다른 내용이 나와서 설명이 어려워지면 거의 습관으로  여겨질 정도로 인용 자체를 왜곡하고, 원글의 저자를  바보로 만드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학문의 범주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논문이 식물학계에서 정평있는 학술지에 게재될 수 있다는 이 현실은 또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 “검토 논문”은  “쥐꼬리망초는 소박골과 같은 속에 속하는 식물로, 소박골과 비슷하게 (1) 뿌리가 두 갈래로 가느다랗게 갈라져(Jayaweera, 2006) 그물처럼 엉켜 있어 망초(網草)라고 부를 수 있으며 “라고 주장하고 있다. 『Jayaweera, 2006』라고 인용된 문헌은 『Medicinal Plants (Indigenous and Exotic) Used in Ceylon Part I』이라는 스리랑카의 민속식물에 다룬 책이다. 이  책의  19쪽에 기록된 쥐꼬리망초(J. procumbens ) 부분을 찾아 보니, 역시나 짐작대로(!) “뿌리가 두 갈래로 가느다랗게 갈라져”라는 문구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Diffuse, perennial herb with slender, divaricate branches rooting at lower nodes“(퍼져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로 가늘고 분지하는 줄기가 있고  아래쪽  마디에서 뿌리가 내린다)고  되어 있을 뿐이었다. 원문에는  없는  주어 “뿌리”가  새로 만들어져 추가되어 줄기에 대한 설명이 뿌리에 대한 것으로 바꾸어졌다 . 국내에서도 넓게 분포하는 쥐꼬리망초의 식물 형태에 설명하기 위해  스리랑카의 민속식물에 관한 자료까지 찾아 인용하는  것도  매우 기이하지만, 그 내용마저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정말 이 혀를 내두를 만한 이  능력(?)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감탄이 절로 생기게 한다. 심지어 이 책의 18쪽에는 쥐꼬리망초의 세밀화 사진을 게재하고 있는데 우리의 쥐꼬리망초와 별  차이가 없다. 그 어디에 그물처럼 엉켜서 자라는 뿌리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

    ▶ “검토 논문”은 우리의 옛 문헌의 진교가 쥐꼬리망초로 추정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쥐꼬리망초가  “약재로 사용되어 중국 고전에서 설명한 진교와 비슷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들고  있다 . 최근에 이르러 쥐꼬리망초가 爵狀(작상)이라는 생약명으로 약용하는 것은 맞지만 약성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서  약재로 사용하는 부위가 진교와 다르다. 쥐꼬리망초의 약재 사용 부위는 뿌리가 아닌 지상부 또는 전초이다.- 이에 대해서는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중 ‘쥐꼬리망초’ 부분; 안덕균, 『본초도감』, 교학사(2004), 139쪽,  한의학대사전편찬위원회, 『한의학대사전』, 정담(2018), 1381쪽 등 참조.

    ▶ 더하여 “검토 논문”은  “『물명고』에 나열된 식물들을 검토하면, 유희는 이름이 비슷하거나 형태적으로 비슷한 종류들을 한 무리로 묶어서 나열했다. 아마도 이러한 순서대로 나열되었기 때문에, Mori(1922)와 Chung et al.(1937)이 진교를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Aconitum pseudolaeve 로 간주했고, 그러면서 진교  秦艽를 진봉 秦芃을 진범으로 잘못 읽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표기가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사실을 두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추정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학문적 의미에서 추정이라고 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합리성과 개연성을 갖춘 것이어야만 한다. 소설처럼 구상한 것을 과학 논문에 추정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다.

    모리 다메조(Mori T.)의 『조선식물명휘』 서두의 범례(凡例)에는 조선명 특히 약재식물에 대해서는 이시도야 츠토무의 조선의 한약 식물에 대한 연구를 참고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정태현 외 3인의 『조선식물향명집』은 역시 사정요지에서 실제 조선에서 사용하는 명칭을 찾아 정하는 것으로 원칙으로 삼았고 이를 위해 당시 주요 약재시장을 조사하여 『조선산 야생약용식물』에 기록하고 이를 반영하였다. “검토 논문”의 주장은 합리성이라고는 없는 추론이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물명고』는 비슷한 종류의 식물을 묶어서 나열했을 뿐만 아니라  秦艽(진교)를 우리말로 ‘망초’라 하였고, 爵狀(작상)을 우리말로 향유(노약이)를 닮았다는 뜻에서 ‘돌노약이’이라고 하여 완전히 다른 식물로 기록했다. 그런데 『물명고』를 어떻게 잘(!) 읽으면 진교=망초=작상=돌노약이라고  읽을 수 있는가? 참으로 괴이하고 괴이하다.

    참고<3> 1820년대에 유희  선생에 의해 저술된 『물명고』는 식물에 관한 우리의 옛 기록 중 중국과 우리의 그 이전 기록을 검토하여 식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 고찰하면서 다른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 우리말 이름까지 기록한 매우 의미있는 문헌 이다. 그러나 『물명고』는 정식으로 간행되지 못하였고, 필사본으로 유통되었던 관계로 식물학이 전래되어 정착되던  시기에 이에 대한 내용은 반영되지 못하였다. 『조선식물명휘』(1922)와 『조선식물향명집』(1937)의 참고 문헌에도 『물명고』는 발견되지 않고, 『물명고』에  기록된 여러 우리 명칭(예컨대 ‘돌노약이’ 등)이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였다. 안타까운 역사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조선식물명휘』와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이 『물명고』를 잘못 읽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가?

    (4) 소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의 옛 민속을 조사한 자료가 알려 주는 바에 따르면 중국과 달리 진교를 진범(A. pseudolaeve ) 또는 그 근연종으로 이해하고 사용하였던 점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秦艽(진교)를 이 秦芃(진봉)으로 기록하고 그것을 다시 ‘진범’이라고 불렀던 것 자체가 문화와 역사가 연속되고 있음을 설명해 준다. “검토 논문”은 마치 아무런 이유 없이 모리 다메조라는 일본인 식물 학자가 秦艽(진교)를 투구꽃속(Aconitum ) 식물에  대한 명칭으로 기록한 것이 현재로 이어지는 것처럼 설명한다. 그러나  이 땅에서 함께 살아 왔던 토착식물을 진교로 이해하고  약재로 사용한 역사는 문헌으로 확인되는 것만으로도 『향약채취월령』이 저술되었던 143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한 식물을 아무리나라를 빼앗겨 국권을 상실했다고 하더라도 일본인의 저술 몇 권만으로  민족 전체가 그것에 아무런 저항없이 수용하여 전통적 인식과 문화를 하루 아침에 바꾸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발상이 오히려 괴상스러운 것이다.

    그러한 자신들의 관념과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생식물인 쥐꼬리망초를 논하며서 스리랑카의 민속 식물에 대한 자료까지 찾아 없는 내용을 마치 있는 것으로까지 만들어 민속 식물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바꾸치기까지하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이조차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지만, 그 바꾸치기한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경악스러워진다.

    [3] 쥐꼬리망초의 이름 유래기

    1. 2가지 서로 다른 기록

    “검토 논문”에서 주장하고 있듯이, 일본인 식물학자 모리 다메조(森爲三, 1884~1962)가 저술한 『조선식물명휘』(1922), 321쪽에서 쥐꼬리망초(J. procumbens, 일본명 : 키츠네노마고, キツネノマゴ]에 대한 조선명으로 ‘爵狀 , 鼠尾紅, 망초’를 기록하였고, 아마추어 식물연구가인 일본인 무라다 시케마루(村田懋麿, ?~1943)가 저술한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1932), 5 90쪽에 서 쥐꼬리망초 에 대한 조선명으로 ‘蓁艽, 蓁糾, 蓁瓜, 망초’를 기록한 것은 맞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우리의 옛 문헌에서 秦艽(진교)=망초이었으므로 이들 문헌이 쥐꼬리망초를 秦艽(진교) 또는 그 일종으 로 본 것도 맞 다. “검토 논문”이 옛 문헌의 진교는 쥐꼬리망초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고 진범은 우리의 고전에 나오는 진교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일본인들의 문헌과 같은 견해를 취하는 것에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정태현 박사가 저술한 『조선산 야생약용식물』(1936), 251쪽은 한반도 자생식물 중 일본과 중국에는 약용식물로 이용하지만 조선에서는 약용하지 않는 여러 식물을 조사하여 기록했는데 그 중에 “キツネノマゴ, 爵狀”이 포함되어 있다. 즉, 쥐꼬리망초는 당시 조선에서는 약재로 사용하지 않는 식물이었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이며, 쥐꼬리망초를 진교 또는 진교의 일종으로 인식하는 문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1. 진교와 망초

    사진14. 오 노란잔(小野蘭山), 『본초강목계몽』(1803), 권지9 중 ‘秦艽’ 부분[일본 국회도서관 보관본]

    앞에서 살핀 것처럼 진교의 우리말 이름을 ‘망초’라 하고 그에 대한 한자를 網草(망초)로 한 것은 중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우리의 독자적인 문화이었다. 그런데 진교에 대한 다른 이름으로 ‘網草'(망초)를 기록한 것은 일본에서도 발견된다. 일본의 본초학자 오노란잔(小野蘭山, 1729~1810)이 구술하여 저술된 『본초강목계몽』(1803)에서 진교에 대한 별칭(一名)으로  “網草 村家方“(망초 촌가방)을 기록한 것이다. 이때 村家方(촌가방)은  1538년에 저술된 우리의 문헌인 『촌가구급방』을 말한다. 우리의 문헌의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도 진교를 ‘網草'(망초)로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

    사진15. 고이즈미 에이지로 (小泉榮次郞), 『화한약고』, 조향옥서점(1893)의 진교 부 분[일본 국회도서관 보관본]

    사진16. 마츠무라 진조(松村任三), 『개정 식물명휘』, 동경 환선주식회사(1916), 191쪽

    한편 1893년에 일본인 본초학자이었던 고이즈미 에이지로(小泉榮次郞)가 저술한 『화한약고』(和漢藥考)는 옛 본초학의 식물명에 대해 종을 식별하고 학명을 병기하였다. 이 책은 일본에서 약재로 사용하는 진교를  쥐꼬리망초과의 식물인 소박골(J. gendarussa )로 보았다. 그런데 이  책은 진교와 관련하여 일본인들의 인식을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논의가 확장되었던 것은, 다른 이름(異名)으로 우리가  사용하던 명칭 ‘網草'(망초)를 기록한 것에 덧붙여 소박골(J. gendarussa )이라는 식물에 대해  “享保年中  朝鮮種 ヲ 我國 ニ 傳植 シ“(1716~1735년 사이에 조선에 분포하는 종을 일본에 전하여 식재함)라고 하여, 한반도에는 전혀 자생하지도 재배하지도 않는 소박골이 조선에서 일본에 전래된 것으로 잘못 기록하였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오류로  인하여 마치  진교로 이해되는 기원식물이 한반도(조선)에 분포한다는 생각이 일본인들 사이에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16년에 동경제대의 식물학 교수이었던 마츠무라 진조 (松村任三, 1856~1928 )가 학명을 기본으로 하고 각 학명에 대한  일본명과 한자명을 정리한 『식물명휘』를 보완한 개정판을 발간했는데, 여기에 소박골을 진교로 기록함으로써 일본에서는 진교를 소박골로 이해하는 것이 거의 확정적인 견해가 되었다. 마츠무라 진조의  문헌은 한반도에 도래하여 식물을 조사하고 연구한 여러 일본 식물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모리 다메조의 『조선식물명휘』도 일본명(화명)과 한자명(한명)은 이 책을 따랐다 .

    이런 와중에 조선총독부는 1920년에 10여년 넘게 작업을 해오던 원래 예정하였던 편찬 작업에서 조선어 해설본의 발간을 중단하고, 일본어로만 된 해설본 『조선어사전』을 발간하였다. 여기에 기록된 진규와 관련된 항목은 다음의 4가지이었다.

    – 망초 (草) [名] [植] 山谷 に 生する一種の草 莖の長さ五六寸, 葉は萵苣に類す, 六月の頃紫色の花を開き實を結ぶ(蓁 艽· 蓁糾,·蓁瓜), 303쪽
    蓁艽  [名] [植] 「망초」にじ., 793쪽
    – 蓁糾  [名] [植] 「망초」にじ., 793쪽
    – 蓁瓜  [名] [植] 「망초」にじ., 793쪽

    『조선어사전』의 위 기록은 특정한 종을 지칭한 것은 아니었고, 옛 문헌에 나오는 기록을 옮겨 온 것에 불과하였으나, 각 단어들을 일본어로만 해설하다 보니 『조선어사전』은 원래 집필  과정에서 조선인 연구자들을  참가시킬 때 했던 논의와 달리  조선어에 능통하지 못한 일본인을 위한 학습서의 용도가 주된 것이 되어 버렸다. 그곳에 기록된 ‘망초’는 자연스럽게 일본식으로 소박골(J. gendarussa) 또는 이와 유사한 쥐꼬리망초(J. procumbens )를 일컫는 것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었다 .

    모리 다메조의 『조선식물명휘』(1922) 역시 서두의 凡例(범례)에서 일본명과 한자명은 마츠무라 진조의 『식물명휘』에 따른다고 하였고, 『조선식물명휘』의 발간 자체가 조선총독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으므로, 『조선어사전』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도 하였다. 『조선식물명휘』에서 조선명으로 기록된 ‘爵狀, 鼠尾紅’라는 명칭은 마츠무라 진조의  『개정 식물명휘』(1916)와 정확히 일치하고, ‘망초’라는 명칭은 『조선어사전』의 일본식 이해와 연관되어 기록된 내용이다. “검토  논문”에서, 『동의보감』 등 옛 문헌에서 진교와 망초라는 하나의 식물을 가리키고 있었던 식물명이 서로 다른 식물에 붙인 것이라 는 주장의  실 내막은 일본인들의 일본적 인식 방법이 관철된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저술한 한반도 분포 식물에 대한 문헌은 매 사안마다 일본 본국의 문헌과 대조하면서 면밀히 재검토하면서 읽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의 것으로 우리의 것으로 치환하게 된다.

    사진17. 무라다 시케마루 ,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 동경 목백서원(1932), 590쪽

    한편, “검토 논문”은 일본인 무라다 시케마루의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1932)에 기록된 조선명에 대해 『본초강목』에 나오는 일부 내용을 인용한 것으로 해설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내용은 모두 『조선어사전』의 기록을 일본식으로 해석하여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말미에 ‘朝辭'(조사)라고 기록한 것이 바로 『조선어사전』을 뜻하는 것이다. –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 서두의 ‘凡例'(범례) 참조. 그 외에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에는-예컨대, 厚朴(후박)과 같이-조선어사전』에 기록된 식물 명칭을 일본식으로 이해하고 해설한 곳이 곳곳에 함정처럼 존재한다.

    당시의 이러한 상황은 우리의 전통적 인식과 일본적 인식이 충돌하면서 혼란이 불가피하게 발생하였는데, 조선인이 약재 식물을 식물학에 따라 해설하고자 하였던 한도준·김수만, 『기본화학 선한약물학』 행림서원(1931), 226쪽에서 [秦芃 망초뿌리]라는 표제하에 “爵狀科에 속한 Jastica Jengarussa, Boxb [Justicia gendarussa Roxb.의 오기로 보임]의 根이라 하나 未詳하며“라고 기록한 것은 당시의 혼란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1. 쥐꼬리망초의 이름 유래기

    사진18. 정태현·도봉섭·이덕봉·이휘재, 『조선식물향명집』, 조선박물연구회(1937), 149쪽 참조.

    정태현 박사가 저술한 『조선산 야생약용식물』(1936), 251쪽에서 쥐꼬리망초는 당시 조선에서는 약재로 사용하지 않는 식물이었다고 기록한 것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쥐꼬리망초에 대한 한자 명칭은 爵狀(작상)이었는데, 이 식물명은 사물의 명칭을 해설한 물명 사전류의 서적인 『재물보』(1798), 『광재물보』(19세기초)와 『물명고』(11820년대)에 기록되었다. 그 외 달리 우리의 옛 한의학서 에서는 이 명칭이 발견되지 않는다.  즉,『조선산 야생약용식물』(1936)에 기록된 바와 같이 옛적에는 爵狀(작상)을 약 재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 문헌을 통해 확인된다.

    유희 선생이 저술한 『물명고』에는 爵狀(작상)이라는  표제로 香薷(향유)와 붙여  “生原野 與 香 薷一樣 但芽不紫葉無香 돌노약이 香蘇 爵麻 仝“(넓은 들판에서 자란다 향유의 더불어 같은 모양이지만 다만 싹은 자주색 잎이 아니며 향이  없다. ‘돌노약이’이라 하고, 향소 또는 작마라고도 한다)라고 기록하였다. 현재의 쥐꼬리망초를 일컫는 것인데, 진교와는 완전히 별도의 식물로 기록된 것이어서 이를 진교(망초)로 볼 여지도 없다. 또한  진교와 작상을 혼용했다거나 오인했다는 어떠한 기록도 발견하기 어렵다.

    그런데 『조선식물향명집』은 科(과)의 명칭에서 爵狀(작상)을 쥐꼬리망초와 같은 것으로 취급하면서도 조선명을 ‘쥐꼬리망초’라고 기록하였다. 『조선식물향명집』 이전의 우리의 그 어떤 문헌에도 爵狀(작상)을 진교(망초)로 취급하지는 않았다. 옛적에 爵狀(작상)은  약재로 사용한 식물이 아니었으므로 이를 망초(網草)로 부를 이유도 없으며 그러한 명칭이 방언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

    『조선식물향명집』에는 이와 유사한 상황 에서 새로이 만들어진 이름이 있다. 약재명 海東皮(해동피)를 우리나라에서는 음나무(Kalopanax  septemlobus )로 이해하고 약재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海東皮(해동피)를 돈나무(Pittosporum tobira )로 이해하고 사용하자 섬에서 자라는 음나무이자 가짜인 음나무라는 뜻으로 Pittosporum tobira 를  ‘섬음나무’라고 칭 하였다. 그마저도 이후 제주 방언이 확인되자 『조선삼림식물도설』(1943)에서 이름을 현재의 ‘돈나무’로 개칭하였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쥐꼬리망초는 우리의  선조와 조선의 민중이 이해하고 사용하는 망초(網草)가 아닌 식물이었고 『물명고』(1820년대)는 향유(노약이/노야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돌노약이’이라고 칭하였던 식물이었다. 이삭모양의 꽃차례는 쥐꼬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일본의 문화가  급속히 유입되어 해당 종의 식물을 망초라고 지칭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쥐꼬리망초이다. 꽃차례가 쥐꼬리를 닮은 진짜가 아닌 가짜의 망초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쥐꼬리망초 는 꽃차례가 쥐꼬리를 닮았지만  우리의 망초가 아닌 것이 다.

    1. 소결론

    진교라는 명칭은 중국에서 유래하였으나 중국에서는 대체로 큰잎용담(G. macrophylla )과 그 근연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진범(A. pseudolaeve )과 그 근연종으로, 일본에서는 대체로 소박골(J. gendarussa )와 그 근연종(?)으로 하여 서로 다르게 이해되고 이용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향약집성방』(1433)의 표현을 빌자면 대개 백리마다 습속이 같지 않고 천리마다 풍속이 같지 않았던 시대이었다. 정보는 부족하고 실체는 불명확하지만 남아 있는 조사 기록과 민속 그리고 그에 근거한 옛 문헌은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옛 약재 진교를 소박골(J. gendarussa )의 학명과 직접 대응한 최초의 문헌은 일본의 『화한약고』(1893)로 보인다. 그외 달리 원래 진교라는 명칭이 기원한 중국이나 우리의 기록에서 진교를 소박골로 대응시킨 것을 발견하기 어렵다 .

    이제 돌아가 물어보자. 『본초강목』에 기록된 진교가 소박골이라고 미루어 짐작하여 기록한 『Chinese Medicinal Herbs』(2003)라는 미국 문헌의 기록은 어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겠는가? 소박골과 근연종인 쥐꼬리망초를 진교(=망초)로 기록한 『조선식물명휘』와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의 기록은 일본의 것이겠는가? 우리의 것이겠는가?  그리고 물어보자. 이제와 우리 옛 문헌에 기록된 진교는 진범과 관계가 없고  쥐꼬리망초일 가능성이 높다고 펼치는  주장은 일본의 것이겠는가? 우리의 것이겠는가?

    [4] 글을 마치며

    식물학을 다루는 교수 등이 공동으로 작성한 논문은 기존에 우리의 전통과 민속으로  알고 있던 진범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진범’이라는 이름이 중국에서 유래한 진교가 변하여 형성된 것이고, 그것이 옛 한약재 진교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 인식임에도 불구하고 진교와 진범은 진교와 무관한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말한다. 쥐꼬리망초가 진교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 인식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주장의 이면에는 앞서 살펴 보았듯이 존재하는 자료를 무시하고, 사실을 과장하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하고, 심지어 우리의 옛 문헌에 대한 폄훼도 서슴치 않는 행위로 보이는 것들이 깔려 있다. 이러한 일들이 생긴 것이 학문적 충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학자들의 권위를 내세우며  우매한 대중을 가르쳐야 한다는 일종의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는 알 기 어렵다.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주관에 따른 욕망의 과잉은 사실에 대한 설명이나 대상에 대한 합리적 이해가 아니라 자신이 품고 있는 욕망만 을 정당화하는 일에 몰두하게 한다. 학문에서 금기시는 조작과 왜곡도 쉽게 수반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한 실수이거나  학문적 게으름에서 생긴 일이라고 변론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결과가 강점과 국권 찬탈이 낳은 아픈 역사 속에서도 지켜온  우리의 전통과 민속적 이해를 국권이 회복된 지 80여년이 지나는 이 시점에서도 우리의 것을 왜곡하여 식민의 시대에 식민지  지배인들의 인식으로 돌려 놓은 것이라면 실수와 게으름으로 핑계되어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죄악이다.

    옛 문헌과 남아 있는 각종 민속적 자료에 근거하여 다시금 확인하자면, 진범이라는 식물명은 중국에서 유래한 진교를 우리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인식한 결과로 만들어진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낳은 산물이다. 쥐꼬리망초는 일본인들이 말하는 망초(진교)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서 말하는 망초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이 주관적 욕망을 너머에 있는 우리의 민속적 실체이다.

    * <푸른솔의 식물생태> 이야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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