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간판' 때문에 싸우는 것 아니다"
        2007년 01월 03일 08: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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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 학생 운동의 근거지 가운데 한 곳이었던 고대에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 곳엔 ‘다양한 현실’이 존재했고, 그 사이에는 쉬이 교차하지 못하는 ‘다른’ 관점들과 ‘차이’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지난 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고대 본관 앞에선 출교 조치 철회 천막 농성을 벌인지 어느 덧 256일을 넘어서고 있는 장기 투쟁 학생들이 새해맞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려운 싸움이 될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천막에서 해를 넘길 줄은 미처 계산하지 못했다.

    투쟁 초기엔 모두들 마음 고생이 심해 음식을 먹지도 못한 채 정신적 홍역을 앓았다. 하지만 학생들은 투쟁의 결과에 자신감을 피력하며 지금의 과정들이 서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일까. 다른 학생들의 시선은 투쟁하는 학생들과 ‘차이’ 가 있었다.  미리 출교 학생들을 섭외하고 취재를 했던 이틀간 30 여명의 일반 고대 학생들을 캠퍼스 곳곳에서 만난 결과, 그들은 같은 공간 속 다른 현실을 살고 있었다.

       
      ▲ 출교조치무효 천막 농성 260여일을 맞이하고 있는 출교생들은 삭발에서 자라난 머리카락 만큼이나 천막에서 오히려 더 단단하게 성장했다.  
     

    "출교생, 삼성 이건희 사건에 대한 보복 조치”

    현재 출교생 7인은 지난 해 6월 학교 측에 ‘출교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맞서 학교도 지난 12월 ‘천막철거소송’을 제기해 오는 1월 18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앞서 이들은 지난 해 4월 본교로 편입된 2년 과정의 보건과학대 재학생들에게 총학생회장 선거 투표권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학교가 이를 거부하자 보직 교수들을 17시간 동안 억류 했다는 ‘혐의’로 출교 조치 당했다.

    그러나 학생 측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정평의 김승교 변호사는 "4월 5일의 대치 상황이 본 사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사실 그 속내는 삼성 이건희의 철학 박사 수여식 집회 사건에 있다"라며 "동일 행위에는 똑같은 처벌이 내려져야 하는데, 정작 첨예한 대립 관계로 마찰을 빚었던 이해 당사자들인 보건대 학생들과 더 심한 행위를 했던 학생들은 가벼운 징계로 끝났다"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또 "아무리 학생들이 과했다고 하더라도 출교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중징계이자 재단이 학생에게 가한 보복 조치이다"면서 "이에 앞서 사실 관계만 따져봐도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의견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당연한 권리인데, 이를 교수들이 경청조차 하지 않은 점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현재 학생들은 출교 조치 당한 후 단 한번도 학교와 대화를 해 본적이 없다. 수차례 부모님과 함께 메일 등을 통해 공식, 비공식적으로 요청했으나 학교는 이를 일방적으로 무시했다.

    한 학기를 남기고 출교당한 강영만(26, 컴퓨터 교육학과)씨는 "방송국, 신문사, 학생들을 전부 불러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학교와 토론을 벌일 자신이 있다. 학교는 당당하지 못해 우리의 공개 대화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그는 출교 사태의 본질에 대해 "출교생 7인 중 5인은 ‘다함께(반전, 반자본주의 운동 단체)’ 회원이고, 또 지난 번 삼성 이건희 집회를 기획한 사람들로서 이미 4월 대치에 앞서 여러 번 학생 자치를 주도해 학교와 맞서 이겼던 사람들"이라며 "우리를 표적으로 한 보복 조치"라고 주장했다.

    피디가 꿈이라는 김지윤(24, 사회학과)씨는 "교수 감금이라는 표면적 현상만 보지 말고 사건의 발생 전후 맥락을 살펴봤으면 좋겠다. 원인에 대한 제공과 해결의 실마리는 무조건 의견 접수를 피하기만 한 교수님이 가지고 있다"라며 "우리는 단순히 학교로 돌아가 고대 학생이라는 간판을 되찾고 싶은 것이 아니다. 학생 자치에 대한 탄압, 비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 등의 문제를 바로 잡고 그 결과 승리의 일환으로 다시 학교에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교, 법정에서 보자"

    이들을 지지하는 연대도 적지 않았다. 출교생들이 겨울나기를 하는 비용은 학생, 각종 시민 단체 및 후원자들의 모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또 고대 사범대 교수 20인, 고대에서 강의했던 영국 교수, 작가들, 민주화를 위한 교수모임, 교수노조 등에서도 출교 반대 성명이 잇따랐다.

       
      ▲ 천막안에서 대자보를 만드는 출교생들
     

    민교협의 김세균  교수(서울대 정치학)는 "작년 성명서를 통해 밝혔듯, 학생들이 지나치게 행동한 면이 있더라도 결국 학교 측이 학내 구조조정 및 통폐합 등 여러 산업적 이해관계가 얽혀 효율성 이외 다른 가치들을 무시하며 생긴 결과"이라며 "출교는 교육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징계 조치와 거리가 멀다. 신임 총장이 새로 온만큼 이번 문제를 잘 해결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완강했다. 그간 재판장의 권고로 학생들의 변호사 측에서 여러 번 조정 및 합의 신청을 냈으나 학교 측은 이를 모두 거절했다. 재판과 관련해 출교 학생들과 문서 공방만을 벌였던 고대 측은 "전혀 상황이 달라진 것이 없다. 1월 18일 법정에서 재판이 열리니 소송 결과를 지켜 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학교 측은 "아직 공식적으로 대화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새해가 돼 담당자가 모두 바뀌면서 현재 이 문제에 대해 답해 줄 사람이 없다"라며 재판 외에 다른 가능성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고대 민주화운동 동우회 박민서 간사는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교수님들이 그 어떤 대화조차 하지 않고 학생들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외면했던 행동은 떳떳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고대 교수님들도 출교 조치에 대해 적잖이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이 많다. 출교는 학생자치를 탄압하기 위한 비민주적이고 비교육적인 감정적 징벌 초지 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일반 학생들 "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12월 3일 이필상 차기 총장이 내정되면서 고대 신문사는 새 총장에 대한 기대와 학교의 발전 방향에 대해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등록금 부담 완화’에 대해 본교생 73.0%가 중요하다, 77.5% 가 시급하다고 답해 두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출교자 문제 해결’의 경우 본교생 37.6%가 시급하다고 답해 시급성 부문에서 4위를 차지했으나, 중요성 부문에서는 13위에 그쳤다. 이렇듯 출교생들을 바라보는 일반 학생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학교 이미지가 나빠진다며 인터뷰를 꺼려했던 김모씨(26)는 " 시간이 지나면서 출교생들은 학생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이젠 더 이상 주 대화나 의제에 오르지도 않는다"면서 "우리와는 다른 곳에 관심이 있고 또 다른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솔직히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또 이영신(25)씨도 "학교나 학생이나 똑같이 잘못했다. 우리 같은 일반 학생들은 사건의 본질을 따지기 보다는 빨리 해결이 돼서 학교 이미지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뿐 더 이상 일반적 관심 대상이 아니다"면서 "학생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호불호를 떠나 그들이 다른 기호를 가진, 그냥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에 출교생 주병준(24, 지리교육과)씨는 "학생들의 차가운 시선을 안다"고 했다. 학생 운동을 하기 전 2년간 고시 공부를 했던 주씨는 "차가운 시선에 가슴이 아픈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도 계속 고시를 공부했다면 아마 100% 우리를 지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담담히 토로했다.

    "차가운 시선 가슴 아프지만 이해한다"

    이어 그는 "경제의 양극화만큼이나 의식도 양극화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또 행동으로 실천하는 지금의 내가 행복하다"면서 "단순히 학교 복귀를 원했더라면 사과를 했을 것이다. 우리가 학생 운동의 상징으로서 ‘방파제’ 역할을 하는만큼 더 열심히 책임감을 가지고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출교생을 보는 시선이 1(호의): 8(중간) : 1(안티)이라고 체감한다는 조정식 (24, 법학)씨는 "사람들이 싸우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라 원칙 없이 잘못 싸우는 걸 싫어한다"라며 "비운동권 바람이 부는 게 아니라 좌파가 예전만큼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학생운동에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적당히 타협하는 모습에 실망을 하고 또 그 결과 바뀌지 않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대안을 찾지 못한 것일 뿐"이라며 "이런 때 일수록 보다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싸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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