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전략적 경쟁과
    한국의 전략적 선택-⑥
    [마지막] 한국의 ‘안미경중론’ 평가
        2022년 02월 05일 01:38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2022년 국제 정세와 한국 대선 : 미국의 전략적 경쟁과 한국의 전략적 선택”

    0 요약
    1. 미국의 초당적 대중국 정책: 원칙에 입각한 현실주의와 전략적 경쟁
    2. 조지프 나이의 ‘협력적 경쟁’
    3. 가치 경쟁의 시험대: 민주주의 정상회의
    4. 경제적 경쟁의 시험대: 트럼프의 무역전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5. 안보 경쟁의 시험대: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과 대만 문제
    6. 한국의 ‘안미경중론’ 평가
    ———————————-

    6. 한국의 ‘안미경중론’ 평가

    지금까지 ‘전략적 경쟁’이 제기된 배경과 구체적인 쟁점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언급된 쟁점, 현안은 거의 모든 게 한국 정부의 판단을 요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나 (이번 글에서 직접 다루지 않았지만) 2022년 베이징 올림픽 ‘외교 보이콧’ 문제, CPTPP 가입이나 WTO협상·WTO개혁 문제,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 등등. 이제 점점 더 많은 논자들이 현안 각각에 한국이 임기응변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되고, 한국 외교의 미래를 결정할 종합적인 판단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필자도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며, 사회운동이 국제정세의 변화를 정확히 읽어내고, 한국 정부가 취한 입장에 대해 적절한 평가를 내놓아야 한다고 본다.

    1)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

    필자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부터 2020년까지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을 맡은 문정인 교수의 주장이 대표적인 평가 대상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주장을 검토할 것이다. 그는 2021년 3월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 코로나19, 미·중 신냉전, 한국의 선택』이라는 책을 출판했다.(1) 그의 돌출적인 발언이 일으킨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동안 문 대통령의 특보를 맡았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의 사고를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한국 외교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중 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트럼프가 만들어놓은 신냉전의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아마 협력, 경쟁, 대결이라는 전략적 선택지가 혼재하면서 미중 관계의 불확실성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국이 택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을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① 미국과 같이 가야 한다는 ‘한미동맹 강화’, ② 중국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중국편승론’, ③ 독자적 핵보유 또는 중립화선언을 통한 ‘홀로서기’, ④ 미국과 중국 사이에 양자택일할 것이 아니라 두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는 ‘현상유지론’, 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진영외교의 굴레에서 벗어나자는 ‘초월적 외교’론. 그는 각각의 성격, 득실구조, 기회와 제약을 아래 표로 정리했다. 문정인 교수가 구별한 다섯 가지 전략적 선택을 좀 더 살펴보자.

    [표] 문정인 교수의 ‘한국의 전략적 선택’ 옵션

    (1) 홀로서기

    먼저 문정인 교수는 ‘홀로서기’에 대해 핵무장을 한 강한 한국이나 평화주의에 따라 중립화된 ‘통일’ 한반도는 민족주의적 정서를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실현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 의도가 노출되면 북한이나 이란처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받게 되어 무역, 금융, 투자가 막히고 수출경제가 멈춘다. 즉 한국 경제가 곧바로 파국의 경로로 접어든다. 또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국제사회가 중립화를 인정, 보장할 가능성도 없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문정인 교수의 진단은 일단 타당해 보인다.

    (2) 현상유지

    그렇다면 ‘현상유지’는 어떠한가. 일반 국민이나 중국 전문가는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른바 ‘안미경중’, 즉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라는 표현이 이를 대표한다. 문정인 교수는 안미경중론의 출발점이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말하면서 김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한다. “안보 면에서는 미국이 중요하고, 경제는 양쪽 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도랑에 든 송아지와 마찬가지입니다. 양쪽 언덕의 풀을 뜯어 먹거든요. 주변에 있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다 활용해야 해요. 그러니 어디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문 교수는 노무현, 박근혜 정부의 균형외교도 이 연장선 위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문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의 ‘논두렁론’은 미중 관계가 좋았을 때 주효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과 장쩌민 주석 간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중국은 한국이 현상유지 전략을 유지한다면 환영할 가능성이 높지만, 미국은 아주 명시적으로 중국과 ‘전략적 경쟁’을 선언했다는 사실을 없는 일처럼 외면할 수 없다.

    문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 시절, 2013년 바이든 부통령이 서울을 방문했던 때를 회고했다. 이때 바이든 부통령은 연세대 강연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계속 한국에 베팅할 것이다. 미국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 즉 박근혜 정부 시기에 이미 한국의 ‘균형외교’에 대한 미국의 강한 경고가 있었다는 뜻이다.

    문 교수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2015년 10월 한미 정상회담은 박근혜 정부의 균형외교가 시험대에 들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때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박 대통령 면전에서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 표명을 요구한 일이 있었는데, 외교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가 유일하게 강조한 것은 중국이 국제규범과 법을 준수하기를 원한다는 것이고, 중국이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한국이 이에 대한 목소리를 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언론은 미국이 한국에 ‘균형자’가 아닌 ‘동맹국’으로서 미국에 대한 더 분명한 지지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했다. 한편 이때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에 필요한 4개 핵심기술의 이전을 요청했는데, 이 역시 미국이 거절했다.(2) 즉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동맹국으로서 신뢰를 보여주지 않는데, 어떻게 핵심 군사기술을 이전할 수 있냐는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사실 김대중 정부의 균형외교란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의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조건에서 작동했다. 그렇지만 미국이 ‘낙관적’ 관여정책이 한계에 도달했고, 전략적 경쟁에 적극적으로 임한다고 선포한 조건에서 과거와 동일하게 작동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현상유지 전략을 앞으로도 고수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문정인 교수의 지적은 어쨌든 타당해 보인다.

    사실 거대전략(grand strategy)이란 그 정의상 지정학(geopolitics)과 지경학(geoeconomics)의 결합이고, 이는 경제안보와 국가안보는 분리할 수 없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지침과 궤를 같이 한다. 조지프 나이도 경쟁의 불가피성에서 이러한 측면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거대전략이란 관점에서 보면 ‘안미경중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다만 그러한 거대전략이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전면적으로 단절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재차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예를 들어 CPTPP에 미국과 중국이 함께 가입해 동아시아의 협력적 경제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규칙을 세우자는 피터슨연구소의 제안을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3) 중국 편승론

    문정인 교수는 미국이 과거 트럼프 행정부처럼 방위비 분담을 이유로 주한미군 감축, 철수 카드를 쓰거나 한반도로부터 이탈할 조짐이 보이면 예방외교 차원에서 중국 편승론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미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이탈할 징후가 없고 오히려 아시아-태평양에서 존재감을 더욱 높이려는 의지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 편승론은 실제적 의미가 없게 된다.

    문 교수가 이러한 가정을 해보는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는 2019년 12월 4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가 개최한 국제회의에서 “만약 북한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중국이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고 그 상태로 북한과 협상을 하는 방안은 어떻겠냐”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 핵에 대비해 중국에 한국 안보를 맡기자는 제안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JTBC는 문 교수가 중국에 핵우산을 제안하거나 요구한 게 아니라 순전히 ‘가상 시나리오’를 따져본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의문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는다.(3)

    문 교수의 다른 여러 발언을 함께 고려하고, 그가 공백으로 남겨둔 곳을 채워보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상태에서, 즉 일정 수준의 북한 핵동결·핵감축과 평화협정 체결이 교환되고, 그 후 △평화협정에 후속하여 주한미군이 철수한 다음에, △한국은 미국 대신 중국의 핵우산으로 안전을 보장받으면서 북한의 비핵화와 함께 즉 남북의 연합제 또는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추진한다, 그게 아니라면 △통일이 이뤄지면 핵을 보유한 통일한국이 되므로 중국의 핵우산에서도 벗어난다, 이런 식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야말로 뒤에서 나오는 한반도의 ‘핀란드화’(중국화)이거나, 북한에서 말하는 핵을 보유한 연합제·연방제 통일이 될 것이다. 정말로 이런 시나리오라면 이에 대한 엄밀한 분석과 비판이 필요할 것이지만, 문 교수가 최소한 이 책에서는 중국편승론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일단은 넘어가도록 한다.

    (4) 한미동맹 강화

    문 교수는 한미동맹이 강화되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억지에 크게 도움이 되며, 한반도가 중국에 예속되는 ‘핀란드화’를 막으며, 미국이 ‘경제적 공공재’를 제공하면 중국시장 철수에 따르는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며, 보편적 가치의 확산에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핀란드화가 함의하는 바는 한국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군사동맹에서 탈퇴하여 중국과 군사동맹을 맺으며, 중국의 대외·대내 정책에 반하는 행동을 피하는 길을 뜻한다. 핀란드는 서방 중심국과 멀리 떨어진 반면,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는데, 미국이 아시아에서 존재성을 계속 높여가고 있는 현재 상황과 유비하는 것은 부적절할 것이다.(4))

    그렇다면 그가 난점으로 꼽는 바는 무엇인가. 첫째, 남중국해나 대만해협에서 미중 군사분쟁이 발생하면 중립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이 다수다. 중국의 군사적 부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이 사실이나, 군사적 분쟁에서는 중립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한미동맹이 강화되면, 신냉전 구도가 고착될 것이다. 특히 중국-러시아-북한의 북방 3각 동맹 구도가 출현하며, 중국이 북한에 무기와 병참을 지원하고 북한 핵 보유를 용인할 것이다. 북한 핵 보유가 기정사실화되면 미국이 본토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한국을 방어하지 않을 것이다.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면 한국은 최악의 안보환경에 빠질 것이다. 셋째, 경제 분야의 손실이 클 것이다. 게다가 2030년 중국경제가 미국경제를 넘어서고 중국 중심의 지역 경제권이 활성화되었을 때 부메랑 효과가 매우 클 것이다.

    필자는 문 교수가 홀로서기, 현상유지, 중국편승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던 것은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타당하다고 말했는데, 한미동맹의 난점이라고 꼽은 논거는 좀 더 깊이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각에 대해서 검토해보자.

    첫째, 남중국해나 대만에서 군사분쟁이 발생할 경우, 중립적 자세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을 것이라고 예측으로부터, 이 문제에 관해 한국이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는 결론이 곧장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남중국해는 상설재판소의 판결이란 국제법이 엄존하고, 중국도 직접적인 군사력 투입이 아니라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므로, 중국에 국제법을 준수하라고 말한다고 당장 전면전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만 문제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대만과 미국도 중국이 제시한 ‘레드라인’(대만의 직접적인 독립선언, 외국군 주둔)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고, 이 선을 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대만해협에서 평화와 안정을 촉구하는 게 곧 대만해협 전쟁을 촉발하고, 나아가 한국이 참전하는 길로 가게 한다는 논리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공포 마케팅’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미국이 표방한 전략적 경쟁을 곧 신냉전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비약이다. 필자 역시 과거에 쓴 『일본 재무장의 새로운 단계』에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이 최소한 군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봉쇄’전략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현재 시점에서 볼 때 이 역시 과도한 평가였다고 판단한다. 당시에는 2010년 미국의 민간연구기관인 전략예산평가센터(CSBA)가 제시한 공해전 개념이 미중 간 전면전을 가정했고, 그런 전면전에서 미국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시나리오를 그려내고자 했기 때문에, 이를 ‘봉쇄’전략이라고 보았고, 그러한 시나리오가 내포한 위험성을 지적하고자 했다. 물론 미국의 군사전략에 이러한 요소가 엄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에서 의도하는 게 ‘신냉전’이나 봉쇄라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이번 글의 전반부에서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고자 했다. 즉 관여정책으로의 복귀를 위한 조건을 창출한다는 게 실제적 목표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했다.

    미국 역시 동아시아의 과도한 군사화를 피하고자 한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중국, 러시아와 함께 중거리 핵전력 협정(INF)을 중국, 러시아와 함께 다시 체결하기를 희망한다. (INF는 1987년 레이건-고르바초프가 체결한 조약으로 단거리, 중거리 핵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이동발사대를 금지하는 조약이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가 INF를 위반하고 유럽에 위협을 가하는 미사일을 개발, 배치했다면서 INF 탈퇴를 선언했다.) 특히 중국의 중거리 핵탄도미사일 개발, 배치는 동아시아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뇌관으로 작동한다. 과거 1970년대 말 소련이 서유럽을 향하는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자, 서유럽에서 대규모 평화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결과 미국과 러시아가 INF를 체결함으로써 핵경쟁이 완화되고 평화무드가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반핵평화운동의 관점에서 핵무기 경쟁을 제한하는 협정을 촉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한편, 문 교수는 한미동맹을 강화하다 보면, 결국 중국-러시아-북한 동맹이 강해져서 결국 미국이 한미동맹을 사실상 포기할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현재 미국 민주당-공화당 양당이 합의하는 미국의 전략이 트럼프 행정부 시절 동맹관계 약화를 가장 큰 실책으로 꼽으면서, 동맹국과 관계 강화를 가장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볼 때, 문 교수의 상황 인식 자체가 비현실적이란 느낌을 받는다.

    셋째, 중국이 2030년 미국 경제를 넘어선다는 전망 역시 비현실적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중국 경제를 분석하더라도 자본생산성 하락, 이윤율 저하 경향이 뚜렷하다. 중국 경제가 지닌 치명적인 결함이 점점 더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류 경제학자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모두 동의할 것이다. (이 글에서 중국 경제 문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오히려 중국 경제가 한계에 봉착하면서, 경제적 성과를 통해 내부 불만을 억제하려던 기존 노선도 위기에 처하게 되고, 그에 따라 공격적이고 팽창주의적 대외전략으로 내부 불만을 다스리려 한다는 게 더 정확한 현실에 가깝다.

    [그림] 중국의 이윤율 변화. 출처: 10장 중국의 경제위기: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

    종합하면, 문 교수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곧 신냉전과 동일시하고, 한미동맹 강화가 곧 최악의 안보상황과 경제 부메랑을 야기한다는 주장은 상당히 과장되거나 비약적인 논리 전개를 깔고 있다.

    5) 초월적 외교

    문 교수는 앞서 언급한 네 가지 선택지가 모두 실현 불가능하거나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초월적’ 전략을 제시한다. 곧, 미중 진영 외교란 틀에서 벗어나 다자협력과 지역통합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약소국도 편 가르기 진영 외교에서 탈피하여, 국제협력을 통해 새로운 규범, 규칙, 절차를 만들어 현안을 해결하고 위협을 종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면, 동북아 6자(남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안보정상회담을 제도화하고 다자안보협력을 추구하고, WTO 중심의 다자주의적 국제경제질서를 구축하는 데 한국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반면 중국을 겨냥한 민주주의 정상회의나 D10에 참여하는 데는 신중해야 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참여하는 G20에서 민주주의, 인권 문제를 토의해야 한다.

    그가 말하는 초월적 외교론의 맹점은 무엇인가. 첫째, 문 교수가 말하는 다자협력과 지역통합의 새로운 질서란 관여정책이 성공적으로 발전했을 경우 상정해볼 수 있는 미래다. 예를 들어 그는 6자 안보대화를 대안적 질서의 초석으로 제시하는데, 실제로 이와 같은 틀의 맹아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1993년부터 시작된 동북아시아 협력대화(NEACE)는 민간차원의 학술회의지만 관례적으로 정부 관료들도 참석해 의견을 교환하고 의중을 파악하는 자리로 활용했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을 말하면, 2005년 6자회담 9·18 공동성명은 “동북아에서 안보협력 증진을 위한 방안과 수단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고 명시해, 6자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북한을 포함하여 6자회담 참가국 간 다자안보대화가 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러한 틀이 발전하면 문 교수가 말하는 6자 정상회담의 정례화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이 6자회담에서 약속한 핵프로그램 검증을 거부하면서 6자회담이 막을 내리고, 6자 다자안보대화도 불가능해졌다. 만약 북한이 ‘규칙에 기반한 질서’, 즉 핵무기비확산조약(NPT)으로 복귀하고 미국의 관여정책이 재작동할 조건이 형성되면 다시 6자 안보대화의 틀을 그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단지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에도 해당하는데, 미국의 ‘낙관적 관여정책’이 계속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면 전략적 경쟁이라는 문제가 아예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 글 앞에서 내내 설명했다.

    둘째, 문정인 교수가 WTO 중심의 국제경제질서를 강조하는 것은 트럼프의 무역전쟁에 비추어 볼 때 정당한 주장이지만, 앞에서 자세히 설명했듯이 WTO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가 본격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이는 단지 미국뿐만 아니라 주요 무역국이 기대하는 바다. 다시 말해, WTO를 중심으로 국제경제질서를 재건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중국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이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 문 교수는 뚜렷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는다.

    셋째, 그는 민주주의나 인권 문제는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하는 G20 구조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올해 이탈리아에서 열린 G20에서 미 국무부는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발전시키기 위한 다자적 비전은 국제법과 민주주의, 인권 지원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 중국은 다자주의를 “일방주의를 포장하기 위한 것으로 삼아선 안 된다”며 미국을 겨냥한 목소리를 냈다. WTO 사례와 마찬가지로, G20이든 민주주의 정상회의든 어디이든 간에 한국이 중국의 민주주의, 인권 문제에 대해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이냐는 문제도 분명히 남아 있는데, 문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뚜렷한 말이 없다.

    2) 소결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 대북정책을 상징하는 인사가 내놓은 분석과 입장을 살펴보았다. 아직 언급하지 않은 가장 중대한 문제가 있는데 그가 초월적 외교를 실현하는 핵심 변수로 남북관계를 꼽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면 한미동맹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한미, 한중 간 균형외교를 전개할 수 있는 공간이 확대되고, 한국이 역량을 발휘하여 미중 협력 관계의 선순환 구도를 조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 5년을 되돌아볼 때, 이러한 접근법이야말로 가장 심각하고 치명적인 맹점을 드러낸다.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때 초월적 외교가 가능하다는 말은 얼핏 보면 타당한 것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폐기할 의사가 없다면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프로세스, 특히 하노이 노딜을 통해 확실히 증명되었다.

    그런 데다가 최근 문재인 정부의 흐름을 보면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추구하다 보니, 오히려 중국 쪽으로 휩쓸려 들어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단적으로, 종전선언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에 매달리다 보니,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은 가능한 한 피하려는 태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초월적 외교를 향한 길이 아니라 실천적으로는 ‘중국 편승론’으로 가는 지름길로 보인다. 문정인 교수가 말하는 초월적 외교는 규범, 규칙, 절차를 세우는 외교인데, 초월적 외교를 위해 규범, 규칙, 절차를 무시하는 중국의 행위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미국이 추진하는 전략적 경쟁이 오히려 규범, 규칙, 절차를 세우는 외교에 더 가깝고, 따라서 다자주의적 협력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관여정책이 작동하는 조건을 구축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고, 따라서 신냉전이 아니라 오히려 관여정책을 향해 열려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러한 과정의 여러 측면에 대해서는 사회운동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사회운동이 각국 정부가 민주주의를 개선하도록 촉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보호주의라는 반동적 물결에 비해 국제무역의 규칙을 새로 구성하기 위한 다자적 노력은 노동권을 중심에 둔 대안무역질서를 제기하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주변국을 군사적, 준군사적 수단으로 강압하는 행동은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문제제기 또는 침묵 중에서 어느 것이 홍콩이나 대만에서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개혁을 위한 사회저변의 흐름에 도움이 될 것이냐는 문제도 명확할 것이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 담긴 시론적인 성격을 띠고 있고, 미처 고려하지 못하거나 잘못 본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계기로 적극적인 의견개진과 토론을 기대한다. <끝>

    <각주>

    1. 문정인,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 코로나19, 미·중 신냉전, 한국의 선택』, 청림출판, 2021.
    2. “오바마 미중 선택 압박… 기로에 선 박 균형외교”, 《문화일보》, 2015년 10월 19일. “박근혜 방미, 오바마에게 뺨 맞고 온 셈이다”, 《프레시안》, 2015년 11월 6일.
    3. “팩트체크: 문정인 특보, 중국에 핵우산 요청했다?”, JTBC, 2019년 12월 5일.
    4. 핀란드화(Finlandization)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핀란드의 친소련 정책을 배경으로 하는 용어다. 1939년 소련군의 침공으로 ‘겨울전쟁’이 발발했으나,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거부로 영국과 프랑스는 핀란드에 대한 병력투입을 실현하지 못했다. 핀란드가 서방에 손을 내밀기에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결국 핀란드는 패전했고, 영토의 일부를 소련에 양도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련은 미국의 마샬플랜을 거부할 것을 핀란드에 요청했고, 핀란드는 이 요청을 수용했다. 1948년 핀란드는 소련과 우호협력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했는데, 핀란드는 침공을 받을 경우 소련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과, 소련을 위협하는 어느 국가도 자국의 영토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핀란드 케코넨 대통령은 1961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핀란드 패러독스’에 관해 “핀란드가 평화로운 이웃국가로 소련과 신뢰를 유지할수록 핀란드가 서방국가와 밀접하게 협력할 기회가 증대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시기 핀란드는 소련을 비판하는 일을 피했다. 1956년 헝가리 침공부터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까지 이를 비난하지 않았고,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단』의 번역본 출판도 거부되었다. (안상옥, 「핀란드 외교정책 변화: 러시아 의존성 약화를 중심으로」, 《유럽연구》, 35(4), 2017.) 그러면서도 핀란드는 서방과 밀접한 경제관계를 맺었는데, 굳이 표현하자면 ‘안보는 소련과, 경제는 서방과’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필자소개
    사회진보연대에서 활동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