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평등의 원칙을 모욕하지 말라"
    2007년 01월 02일 06: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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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소리> 12월 31일자는 민주노동당노조 준비위원회가 당사 이전과 관련하여 제기한 제안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실었다. 놀라운 것은 이 기사가 일방적이고 편파적일 뿐 아니라 기사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도 갖추지 않은 채로 오로지 정책연구원과 상근자 노조 준비위원회를 상처내기 위한 목적에만 충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황의 진위를 조목조목 짚기보다는 정책위의 이기심에 초점을 맞추어 당내 계파간 갈등을 부추기기 위한 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이 기사가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확장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론을 제기한다.

공간 배치의 비민주성과 보수성

우선 이 기사가 얘기하고 있는 노조 준비위원회의 제안의 기원부터 설명하겠다.

당사 이전 직후, 발생한 수많은 문제점들에 대해 당사 상근자들 상당수가 불만을 표하게 되면서, 지도부에 대한 불신만 증폭시킬 것이 아니라 이 기회를 당이 보다 민주적으로 개혁을 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고 우리의 환경을 스스로 개혁하고자, 상근자들의 뜻을 모아 지도부에 전달할 필요성을 느꼈으며, 여기에 1층 사무총국 상근자도 적극 동의하였다.

이에 12월 21일 한 상근자에 의해 처음 작성된 제안서는 정책위의 대부분 당직자와 일부 사무총국 당직자의 동의와 추가 제안을 담아 지도부에게 제출되었고, 그 과정에서 노조 준비위원회는 1월 6일 출범 이후, 노조가 끌어안고 갈 사업으로 이 사안을 받기로 하면서, 노조 준비위 명의의 ‘신당사 공간을 둘러싼 갈등 해결을 위한 제안’이 12월 28일 당사에 게시되었다.

참고로 노조 준비위원회는 4인의 정책위, 2인의 사무총국, 1인의 의정지원단 당직자로 구성되어 있다. 다수이기는 하나 <민중의 소리>가 말한 것처럼 “정책위가 거의 다”라고 치부될 수는 없다.

이 제안의 핵심은 권력구조를 공간구성으로 정확히 반영해 낸 현 공간 배치의 반민주성, 보수성에 대한 지적과 시정의 요구이다.

당사 이전의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당세 하락이다. 그것이 경제적 상황 악화로 이어졌고, 싼 임대료를 찾아 이전을 해야 했던 현재적 상황에 대한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 “여의도에 있을 때는 그럴듯한데 여기는 주변에 소규모 금속 공장들만 즐비하니까 폼이 안나서 그런 것 아니냐고 비꼬았다”는 한 4층 당직자의 발언을 기사화 한 <민중의 소리>의 논리는 우리가 감히 “진보”라는 이름을 걸고 함께 나아가는 동지인지를 의심하게 하는 수준이다.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추락한 당의 위상을 함께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도부를 포함한 당직자가 마음을 함께 나누는 자세가 요구되며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당사 첫 주, 당초 실현 불가능하게 짜여진 공간계획 때문에, 많은 상근자들이 책상을 들고 오르락내리락 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대표실, 최고의원실, 대변인실을 비롯, 지방자치위원회, 성수수자위원회의 자리가 며칠 사이에 뒤 바뀌었고, 민원실 공간이 없어서 숙직실로 마련된 공간을 민원실로 급조해서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공간을 제대로 배정받지 못한 한 핵심당직자는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야 말로 뒤죽박죽 우왕좌왕 그대로였다.

이전하기 전, 신당사의 사무공간 배치 설계도를 요구했던 것은 정책위 뿐 아니라 사무총국도 마찬가지였다. 당지도부는 이에 대해 함구로 일관하며, 이사 이틀 전에야 공간배치도를 공개하였다. 민주적이지 못했다면 효과적이기라고 해야 했다. 지도부는 이번 이사에서 두 가지를 모두 놓침으로써, 당직자들에게 깊은 불신과 불만을 낳았다.

문제 방치만 해온 지도부에 제동

지금까지 중앙당 지도부가 보여준 문제해결 방식은 오로지 ‘방치’였다. 온갖 불만들이 싸여 눈덩이가 되고, 그것이 현저한 지지율 하락으로, 기부금 하락으로 가시화 되도, 아무일도 안 일어난 듯, 모든 일이 잘 되고 있는 듯 어떠한 변화도, 반성도, 개혁도 꾀하지 않았다. 이에 분노하고 반발하는 당직자들이 이젠 더 이상 우리를 찌그러뜨리며 살지 않겠다고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전 당사에는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있는 당직자들의 자리가 창가 쪽에, 가끔씩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도부, 회의실 등이 그늘 쪽에 배치되어 있었고, 공간 분리도 반투명한 벽으로 되어 있어 소통의 원활화와 일조권의 공유를 위한 일말의 노력이 있었다. 새로운 당사의 배치는 바로 정반대로 되어있다. 정확한 퇴보이다.

당의 공간/도시 담당 정책연구원이 제안서에 서명하면서 덧붙인 글을 인용하자면 “공간은 삶의 방식을 담는 그릇이다. 우리가 일하는 공간의 생김새는 우리가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역으로 공간의 구성과 모양이 우리 삶의 방식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우리가 일하는 공간을 민주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치, 보다 창의적이고 소통하기 쉬운 공간으로 바꾸려는 노력조차 하는 않는다면 현재 지지율 2.2%인 민주노동당의 미래는 궁금해 할 필요도 없다. 지도부가 조금만 일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고, 진보적인 자세가 그들에게 갖춰져 있었다면 “폭력적인 공간 배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기사가 제안하는 논점은 뭔가? 아무 문제도 없다는 건가? 문제가 있어도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또 그냥 덮고 넘어가잔 건가? 그도 아니면 정책위는 나쁘다고 그냥 한 번 더 소리쳐보고 싶은 건가?

노골적 편 가르기를 시도하는 기사

이 기사의 하일라이트는 정책위와 사무총국간의 편가르기를 무리하게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2층 당직자들의 다수가 1층의 공간구성이 더 열악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에 사무총장의 공간도 공동공간화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일부 연구원들은 1층 상근자들의 사무공간부터 ‘인간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서명에서 적고 있다.

이 제안서의 어디에 정책연구원들의 자신의 공간만을 위한 이기심이 피력되어 있지 않고, 어떤 연구원도 그렇게 사고하지 않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갑자기 노회찬 전 사무총장이 정책연구원들을 대규모로 채용해서 당이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와 서민의 정당’이자 ‘정책 정당’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삼아왔다.

의원은 9명이지만, 모든 정책을 미리 준비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정책정당의 기본자세로, 최소 1-2명의 정책연구원이 분야별로 필요했다. 노회찬 한 사람이 세불리기를 위해 사람을 끌어들였다는 방식의 이 논조는 정책 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는 처사다.

그나마 2년반 전 40명이 넘던 정책연구원의 수는 2007년 현재 32명으로 축소되었다. 사람이 떠나도 다시 채우지 않는 소위 정책정당 수뇌부의 방치주의 때문이다. 정책연구원의 숫자를 2년 전 버전으로 기억하고 기사를 쓰는 것은 언론으로서 대단히 불성실한 태도다.

그리고 거두절미하고 지역위원회를 거론한다. 지역위원회에서도 이사를 한번 한다면, 상근자들의 의견과 합의를 모아서 할 것이며, 가능한 한 일하기 편하고 쾌적한 환경으로 그 공간을 꾸미려고 하지 않겠는가?

만일 지역위원장이 단독으로 이사를 결정하고 공간을 배치하고, 더욱이 자신의 자리만을 넓고 환하게 배치했다면 이를 묵묵히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상존하는 문제를 꿀꺽 입으로 삼키며, 어떤 진보의 길이 개척되길 바라는가?

‘까페’ 제안에 대해

새로운 당사 주변에는 찾아온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각방을 쓰는 지도부들 뿐 아니라, 모든 당직자들에게는 맞이해야 할 손님이 있고, 같이 논의하고 토론해야 할 동지들이 있다. 이 까페는 당직자들의 창의적인 휴식은 물론, 소규모 회합을 위한 공동 접견실의 개념으로 구상된 공간이다.

이전 당사에는 ‘휴게실’이라는 이름의 담배방이 있었다. ‘까페’는 이전 당사에 있던 당직자 휴게실의 새로운 개념에 대한 제안이었고, 공간이 협소한 걸 익히 알고 있었기에 죽어있던 공간인 1층과 2층 사이에 난 내부계단을 막아 공간을 새로 만들어 자리에 설치될 것으로 계획되었다.

물론 이 제안은 사무총국을 통해 사무총장에게 보고되고 동의됐으며, 예산까지 논의한 바 있다. 그러나, 엉터리로 구획된 공간계획은 여러 사람이 공들여 구상해 놓은 이 계획을 하루 아침에 아무 설명 없이 없었던 일로 만들었다.

지도자의 말을 묵묵히 따르는 것만이 미덕인가?

이사 첫날 정책위의장은 너무 과도하게 햇빛이 사무실로 들어온다면서 블라인드를 설치해줄 것을 요구했다. 반면 햇빛과 무관한 서향의 창문만을 공유하는 2층 나머지 공간의 당직자들은 발이 시려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과연 배부른 소리를 하는 자가 누구인가? “정책위가 쓰는 2층은 창문이라도 있지, 1층은 아예 없다?”고 했다는 이 처절한 인용구를 보면서, <민중의 소리>의 의식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노동당노조 준비위의 제안은 모든 당직자가 처한 힘겨운 근무환경을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함께 개선하자는 것이다. 각층은 현재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적의 민주적인 공간배치를 위해 노력할 수 있고, 전체적으로 좁아진 공간 문제에서 해결점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혼자서 큰 방을 쓰고 있는 사람들의 공간을 공동공간화 하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가 되어야 한다.

만일 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좁은 공간을 감수하는 것이고, 우리가 감히 진보라는 이름을 걸고,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임을 자처한다면, 일하는 사람들을 중심에 둔 공간배치를 요구하고 쟁취해 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비단 정당의 당사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모든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향유해야 하는 권리인 것이다.

당사에 붙어있는 공간관련 대자보 옆에는 누군가가 이름없이 붙여놓은 체 게바라의 일화가 담겨 있다.

"식량이 부족해 배가 고플수록 분배에 더욱 세심해져야 한다.
오늘, 얼마 전 들어온 취사병이 모든 대원들의 접시에 삶은 고깃덩어리 두점과 말랑한 감자
세 개씩을 담아주었다. 그런데 내 접시에는 고맙게도 하나씩을 더 얹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취사병에게 접시를 던지며 호통쳤다. 이 아부꾼아, 지금 여기서 당장 나가!
그는 단 한사람의 호감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평등을 모독했다."
체 게바라, 대장의접시, 문화산책, 2002

아무리 가야할 길이 멀고, 현실이 험악하더라도, 우리 스스로가 평등의 원칙을 모욕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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