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전략적 경쟁과
    한국의 전략적 선택-⑤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과 대만 문제
        2022년 02월 03일 10: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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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국제 정세와 한국 대선 : 미국의 전략적 경쟁과 한국의 전략적 선택”

    0 요약
    1. 미국의 초당적 대중국 정책: 원칙에 입각한 현실주의와 전략적 경쟁
    2. 조지프 나이의 ‘협력적 경쟁’
    3. 가치 경쟁의 시험대: 민주주의 정상회의
    4. 경제적 경쟁의 시험대: 트럼프의 무역전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5. 안보 경쟁의 시험대: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과 대만 문제
    6. 한국의 ‘안미경중론’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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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안보 경쟁의 시험대: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과 대만 문제

    2020년 보고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에서 중국이 가하는 안보 도전 중에서 첫 번째로 꼽은 도전은 중국이 “서해, 동·남중국해, 대만해협, 중-인도 국경지역에서 도발적이고 강압적인 군사, 준군사 활동을 벌임으로써 말과 반대되는 행동을 보이고 주변국들에 대한 약속을 어긴다”는 사실이다.

    보고서는 안보 분야의 도전에 직면하여 ’힘을 통한 평화 유지‘(preserve peace through strength)를 강조한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남중국해와 대만이 관심의 초점이 된다.

    먼저 남중국해를 보면, “미군은 남중국해를 포함해 국제법이 허용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항행권과 작전권을 계속 행사할 것이다. 우리는 지역 동맹국들과 동반자국들을 대변하고, 중국이 분쟁에서 군사, 준군사, 법집행부대를 이용해 우세를 차지하려고 강압하려는 시도에 맞서기 위한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이들에게 안보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8년 미군은 중국이 남중국해 인공구조물에 첨단 미사일을 배치했기 때문에 격년제로 열리는 환태평양 연합 훈련(림팩)에 중국군을 초청하는 것을 철회했다.”

    다음으로 대만의 경우를 보면, 미국은 “대만관계법과 3개의 미중 공동성명에 근거하여 우리의 ’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 대만과의 강력한 비공식(unofficial) 관계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 나아가 “1982년 각서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대만에 제공한 무기의 양과 질은 전적으로 중국의 위협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2019년 미국은 대만에 100억 달러 이상의 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승인했다”는 점도 명시했다.

    보고서는 중국과의 불필요한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미국은 전략적 의도를 전달하고, 위기를 예방하고 관리하며,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오산과 오해의 위험을 줄이고, 공통 이익 분야에서 협력하기 위해 중국과 국방 접촉과 교류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은 계획되지 않은 시나리오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긴장고조를 막기 위한 대응 채널을 포함하여 효과적인 위기 커뮤니케이션 메커니즘을 개발하기 위해 중국군과 협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왜 특히 남중국해와 대만에서 ’힘을 통한 평화유지‘를 강조하고 있는가. 그 역사적 맥락은 무엇이고, ’힘을 통한 평화유지‘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앞으로 살펴보겠다.

    1) 남중국해와 회색지대 전략

    보고서에서 언급한 중국의 “도발적이고 강압적인 군사, 준군사 활동”을 회색지대 전략(gray zone strategy)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회색지대 전략이란 무엇인가?(1)

    회색지대 전략은 “그 전략을 구사하는 국가가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안보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는” 전략행위이며, 그 본질은 정규군을 동원하지 않고 전면적인 전쟁행위에 이르지 않으면서 자신의 안보 이익을 달성하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래서 회색지대 전략의 특징으로는 ’의도의 모호성‘과 ’전략적 점진주의‘를 꼽을 수 있다. 회색지대 개념은 토마스 셸링이 1976년 저서 『무력과 영향력』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 후, 2010년 미국 국방부의 《4개년 국방검토보고서》(QDR)에서 다시 등장한 후, 2015년 즈음부터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2015년 마이클 마자르의 「회색지대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따르면, 회색지대 전략은 전쟁의 확대가능성을 낮추되 시기를 거듭할수록 매우 조직적이고 통합된 비군사적 방법을 꾸준히 사용하면서 해당 지역에서 이익을 궁극적으로 얻어내기 위한 전략이다. 그 특징은 ‘살라미 전술’ ‘기정사실화’ ‘대리전’이다. (살라미 전술이란 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에서 따온 말로, 하나의 과제를 여러 단계별로 세분화해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전술을 뜻한다)

    2017년 마이클 그린이 편집한 보고서 「아시아 해상에서 강압에 맞서기: 회색지대 억지의 이론과 실천」 역시 이와 유사한 개념을 제시한다.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하는 국가는 전쟁으로 인한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상대국과는 다른 이익을 추구하고, 모호한 의도를 가지고 점진적으로 상대국의 능력을 약화시켜 능력의 비대칭성을 극복한다.(2) 필자는 이 보고서를 중심으로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과 미국의 대응 계획을 살펴보겠다.

    이 보고서의 특징은 오바마 행정부 시기(2009.1.-2017.1)에 발생했던 중국의 회색지대 강압의 구체적 사례, 아홉 가지를 분석했다는 점에 있다. 이 글은 강압(coercion)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전쟁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민간인을 가장한 준군사조직(민병대)이나 법집행부대(해양경찰)를 활용하여 실질적 충돌 위협을 가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 사례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2009-2014 중국의 회색지대 강압, 구체적 사례

    (1) 2009년 3월 미국 해양관측선 임페커블에 대한 중국의 퇴거 요구

    남중국해의 하이난섬에서 120㎞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중국 트롤 어선 5척이 비(非)무장 선박인 미 해양관측선 임페커블(Impeccable)호에 8m 정도까지 접근해 떠날 것을 요구.

    (2) 2010년 9월 센카쿠 열도 어선 충돌

    2010년 9월, 일본 해안경비함이 센카쿠 열도 주변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인 선장을 체포하자 반발한 중국 정부가 석방을 요구하며 일본에 무역제재를 가한 사건. 9월 24일 일본은 중국인 선장을 석방.

    (3) 2012년 스카보로 암초 대치

    2012년 필리핀 군함이 스카보로 암초 주변에서 중국인 어민을 가로막은 후, 중국의 해안경비대가 도착하여, 2개월에 걸친 필리핀과 중국의 대치가 시작됨. 이때도 중국은 필리핀의 과일 수출에 대한 제재를 가함. 6월 15일 필리핀 함정은 철수했으나, 중국은 필리핀 어선의 진입을 막음으로써 중국이 사실상의 통제권을 행사하기 시작함.

    (4) 2012년 센카쿠 열도 국유화 위기

    2012년 9월 일본 정부는 센카쿠 열도의 섬 세 개를 국유화한다고 발표. 그에 따라 중국의 공군, 해군, 해안경비대의 활동이 급증. 중국 내 반일시위도 급증. 2013년 말 양국의 긴장은 완화되었으나,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해상활동 증가가 일상화됨.

    (5) 2013년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2013년 중국은 동중국해에서 처음으로 방공식별구역(ADIZ)을 선포.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은 다른 국가와 중첩되고, 방공식별구역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비상방위조치’를 취한다고 위협했기 때문에, 미국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사실을 비난. 미국, 일본, 한국은 모두 사전통보 없이 군용기를 동중국해 중국 방공식별구역을 통과시킴. 그 후 한국 역시 방공식별구역을 상당히 확장함.

    (6) 2014년 세컨드 토마스 암초

    2014년 3월, 중국의 순찰함이 스프래틀리 군도에 있는 세컨드 토마스 암초에 정박해 있는 시에라 마르레를 향하던 보급선을 가로막은 사건이 발생. 중국은 지속해서 필리핀 선박에 대한 감시활동을 전개하고 있음.

    (7) 2014년 중국-베트남 석유굴착장치 대치

    2014년 중국은 남중국해에 탐사용 석유굴착장치를 이동시켰는데, 이는 베트남이 이미 권리를 주장하는 오일 블록 내에 위치한 장소였음. 베트남은 굴착을 중단시키기 위해 즉각 해안경비대를 이동시켰고, 중국과 대치가 발생. 베트남에서 중국소유 공장에 대한 폭동이 발생. 중국은 7월 초에 굴착장치를 철수시킴.

    (8) 2014년 ‘탑건’ 사건

    2014년 8월 중국 하이난 성에 발진한 제트전투기가 남중국해에서 미군용기를 공격적으로 가로막는 사건이 발생. 미국은 공역에서 미군이 작전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한 반면, 중국은 중국 영역 가까이 접근하는 감시활동에 항의. 중국 관리는 유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

    (9) 2014년 이후, 스프래틀리 군도 간척, 인공섬 건설

    2013년 말 이후로 중국은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이미 점유하고 있던 7개 암초를 간척하고 인공섬을 건설하기 시작함. 필리핀과 미국은 중단을 요구. 베트남은 스프래틀리 군도에 주둔군을 배치. 중국은 민간시설이라고 주장. 2015년 10월, 미국은 항행의 자유 프로그램을 재개.

    보고서는 중국의 회색지대 강압이 경우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2009년 임페커블 사건이나 2014년 탑건 사건은 미국 함선과 군용기를 직접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때는 미국이 강경노선으로 대응하여 상황을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데 성공했다. 반면 2012년 스카보로 암초 대치나 스프래틀리 군도 인공섬 건설과 같은 경우는 중국이 ‘기정사실화’ 전략을 구사했고, 미국과 동맹국, 동반자국은 현상유지에 실패했다.

    대부분의 경우 미국의 정책결정자는 위기가 발생하면 깜짝 놀란 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패턴은 거대한 충돌을 피하기는 했으나, 중국의 행동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 중국이 기정사실화한 바를 다시 되돌리는 것은 훨씬 더 어렵기 때문에, 이제 미국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중국의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 즉,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에 대응하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 보고서는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을 네 가지 범주로 구분한다. 첫 번째는 ‘규칙과 규범에 대한 중국의 경쟁’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임페커블 사건(2009), 탑건 사건(2014)이다. 미국은 자국의 군함과 정찰기가 타국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서 군사정보를 수집하는 행위가 유엔해양법 56조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 수역이라는 말 자체가 함의하듯, 경제행위를 제외한 모든 행위에 대한 자유가 보장된다는 말이다. 반면 중국은 유엔해양법을 무시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는데, 바로 이런 행위가 규칙과 규범에 대한 경쟁인 셈이다.(3)

    두 번째는 ‘규칙과 규범에 대한 중국의 악용’(exploitation)인데, 현존하는 규칙과 규범을 이용하여 현상변경을 추구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동중국해에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사건이다.

    세 번째는 ‘물리적 통제에 대한 중국의 악용’이다. 중국이 이미 물리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수역이나 영토를 활용해서 구조물을 세운 스프래틀리 인공섬이나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이를 통해 영토분쟁이 있는 지역에 대한 물리적 통제를 기정사실화한다.

    네 번째는 타국의 ‘물리적 통제에 대한 중국의 경쟁’이다. 센카쿠 관련 사건이 가장 대표적인데, 이는 가장 리스크가 큰 범주에 속한다. 타국의 물리적 통제에 도전하는 것이므로, 충돌의 상호 상승작용이 빠르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네 가지 범주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물리적 통제 규칙과 규범
    경쟁 사례: 센카쿠 어선 사건(2010), 센카쿠 국유화 사건(2012) 사례: 임페커블 사건(2009), 탑건 사건(2014)
    악용 사례: 스프래틀리 인공섬(2013-), 중국·베트남 석유굴착 대치(2014) 사례: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2013)

    보고서는 이러한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행동을 억지(deterrence)하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던 이유가 있다면, 미국의 동맹국, 동반자국이 오히려 지나치게 공격적인 행동을 펼쳐서 미국을 원치 않는 군사적 분쟁에 끌어들일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동안, 중국은 이 기회를 활용해서 회색지대 전략으로 세력권을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더는 이러한 모호성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은 미리 계산된 방식에 따라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미국은 어떤 리스크도 감수하지 않으면서 중국의 행동을 억지하려 했기 때문에, 중국이 손쉽게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제 미국은 리스크가 수직적으로나, 수평적으로 확대(escalation)되는 상황을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수직적 확대는 무장 충돌, 대치의 강도가 상승하는 상황을 말한다. 반면, 수평적 확대는 경제제재, 무기나 기술의 수출금지, 에너지 공급의 활용, 해상차단, 적의 적에 대한 지원, 공격적인 사이버전쟁 등등이 포함된다.) 특히 미국이 리스크의 수직적 확대를 더 이상 회피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만약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인공구조물을 구축할 때, 미국이 관련 기업을 경제적으로 제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이 보고서 역시 중국에 대해 더 강력한 접근법을 구사한다고 하더라도, 중국과 전략적 관여(strategic engagement)를 지속한다는 약속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중국이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번영하고, 책임 있는 행위자로 부상한다면 이를 크게 환영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보고서가 권고하는 적절한 ‘맞춤형’ 대응방식은 다음 표로 정리할 수 있다. 중국의 팽창을 억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계산된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점에서 이를 ‘힘을 통한 평화 유지’라고 부를 수 있다.

    물리적 통제에 대한 경쟁 규칙과 규범에 대한 경쟁
    가능 시나리오: 센카쿠 열도에 대한 도전, 세컨드 토마스에 대한 봉쇄

    중국의 유망한 전략: 통제된 압력

    적절한 미국/동맹국의 대응: 동맹관계의 강화, 계산된 리스크의 수용

    가능 시나리오: 동·남중국해에서 위험한 방식의 공중, 해상 차단

    중국의 유망한 전략: 제한적 탐색

    적절한 미국의 대응: 미국의 대응행동을 분명히 선언, 계산된 리스크의 수용

    물리적 통제의 악용 규칙과 규범의 악용
    가능 시나리오: 스프래틀리군도의 군사기지화

    중국의 유망한 전략: 기정사실화

    적절한 미국/동맹국의 대응: 동맹관계의 강화, 중국에 제약을 가함

    가능한 시나리오: 남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

    중국의 유망한 전략: 최후통첩

    적절한 미국의 대응: 미국의 대응행동을 분명히 선언, 중국에 제약을 가함.

    한편 2016년 7월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는 중국의 남중국해 정책이 유엔해양법과 일치하는지를 묻는 2013년 필리핀의 제소에 대한 판정을 내렸다. 판정은 필리핀에 완전한 승리를 안겨주었다. △중국이 영유권의 근거로 삼는 남해구단선이 역사적, 법적 근거가 없다, △스프래틀리 군도의 해양 지형은 섬이 아닌 암초 또는 간조 노출지이므로, 남사군도 해역의 대부분은 공해다, △남사군도 해역에서 필리핀의 어로작업을 방해하는 것은 유엔해양법에 위배된다는 게 그 요지였다. 그 결과 미국이 주장한 ‘항행의 자유’가 국제법적 정당성을 확인했고, 중국이 남해구단선을 주장하며 인공섬을 건설하고 항해를 방해하는 행위는 불법으로 규정되었다. 하지만 중국은 구속력이 없는 PCA 판정을 무시할 것이라고 천명하면서, 남중국해 무력시위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미국은 협약에 담긴 심해저 개발 문제에 이견을 품고 현재까지 유엔해양법 협약 비준을 미루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유엔해양법을 공공연하게 논거로 삼기 곤란한 처지에 있고 ‘국제법’과 같은 추상적 표현을 쓴다.)

    2) 대만

    트럼프 행정부 때 뜨거운 주제가 북한이었다면,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대만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대만 침공설’마저 공공연하게 언론의 논제로 오르고 있다. 올해, 2021년 3월 9일, 필립 데이비드슨 인도태평양사령관은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규칙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질서에서 중국이 2050년까지 미국의 역할을 대체하려고 속도를 내고” 있으며, “대만은 그 시점 전까지 중국이 야심 차게 노리는 목표”라면서 그 위협은 “향후 6년 안에 분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중국이 6년 안에 대만을 침공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래서 3월 17일 어느 한 기자는 미국 오스틴 국방장관에게 ‘6년 내 대만 침공설’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물론 오스틴 장관은 “중국의 특정 타임라인에 대해 어떤 가설이나 추측에도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1) 미국과 대만 관계의 흐름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상하이 공동코뮤니케 이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 긍정적 관계를 맺는데 우선권을 두고,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타협을 하면서 미중관계를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대만 관련 행동은 회피하는 경향을 보였다.(4) 그렇지만 빌 클린턴 대통령은 그 이전 정부와 다른 조치를 취했는데, 1995년 리덩후이(국민당) 총통의 미국 방문을 위한 비자를 허용한 일이었다. 대만에 우호적인 미국 의회와 언론이 엄청난 압력을 가한 결과였는데, 이는 중국-대만 양안관계에 큰 긴장을 낳았다.(5) 그 후, 클린턴 정부는 긴장을 완화하고 군사적 대치를 피하기 위해 중국과 더 밀접한 관계를 맺는 관여정책으로 이동했고, 대만의 리덩후이 정부를 일종의 ‘말썽꾼’으로 보기 시작했다.

    특히 2000-2008년 대만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야당 민진당의 천수이볜이 총통으로 집권했다. 천 총통은 처음에 양안 문제에 온건한 입장을 취했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에 비해 대만에 더 우호적이었으나, 천 총통이 점점 더 미국의 지지를 활용하여 중국으로부터 분리를 추구한다고 보게 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 핵개발 문제도 다뤄야 했다. 그래서 점차 이전 정부가 취했던 입장, 즉 중국에 대해 긍정적 관여정책을 펼치는 입장으로 회귀했다. 그렇지만 이런 회귀는 매우 어려웠는데, 천 총통이 대만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주장하면서 거듭 중국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1995년부터 시작해, 조지 W. 부시 행정부 기간을 포함해 13년간 양안관계나 미국의 중국·대만 관계에서 혼란과 위기가 반복되었다. 2008년 대만에서 국민당의 마잉주가 압도적으로 총통으로 당선되면서 긴장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는 ‘통일반대, 독립반대, 무력사용 반대’라는 현상유지 성격의 ‘3불 정책’을 표방하면서 중국과 훨씬 더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큰 틀에서 보면, 마잉주의 정책은 1940년대 이후 대만 정부가 취한 대중국 경쟁·대결정책의 근본적 역전이었다. 퇴임을 앞둔 부시 행정부와 새로 취임한 오바마 행정부는 마잉주의 접근법을 강력히 지지했다. 마잉주의 접근법은 미국이 중국과 실용주의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폭을 확대했다. 지난 1995-2008년 양안관계의 긴장은 미국 정부 내에서 중국과 마찰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강화했다.

    요약하면, 2000년대 미국과 중국은 양국관계를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했다. 양 정부는 △긍정적 관여(engagement)를 통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밀접한 상호의존성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을 압박하면 양자 모두 상처를 입을 것이며, △양국은 양자관계 외에도 다른 여러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과 심각한 문제를 피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오바마 행정부 역시 취임 후 6년간(2009-2014)은 중국에 대해 직접적 비판을 가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2011년 이후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을 표명한 후에도 그러했다. 미국 정부 내에서 중국과 마찰을 피하려는 경향은 여전히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12년 시진핑 주석이 등장하면서 독단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취하면서 안보, 경제, 정치 이슈에서 전방위적으로 미중 간 갈등이 점차 고조되었다.(6) 이때 오바마 행정부는 매우 신중하고 투명한 외교정책을 보여주었는데, 중국에 대해서는 수사적 비판의 수위를 점진적으로 높이다가, 최후에야 어느 정도 심각한 행동을 취하는 패턴을 택했다. 이 시기에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과 발생하는 특정한 불화나 분쟁을 다른 쟁점이나 전반적 대중관계와 분리해서 다루고자 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을 자극하는 대만 정책의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2011년 이후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을 선언한 후, 일본, 필리핀, 베트남과 광범위한 협력에 나섰는데, 처음에는 대만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여러 질문이 제기되자 오바마 행정부는 대만이 재균형 정책에 포함된다고 언급했지만, 미국과 대만이 함께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그렇지만 2014년 이후로 오바마 대통령은 점점 더 중국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을 가했다. 2015년 9월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불편한 분위기가 확인되었지만, 시진핑 주석은 미국의 경고를 대체로 무시했다. 2016년 3월 시진핑 주석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여전히 ‘신형대국관계’를 주장했는데, 점점 더 많은 미국의 비판가들은 중국이 속과 겉이 다른 행동을 펼친다고 보기 시작했다. 이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무언가 말하기보다는, 직접적으로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지적소유권에 대한 사이버 절도를 억제하라고 중국에 더 강력한 압력을 가하고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중국이 동의하도록 압력을 가중했다. 또한 △남중국해에 더 적극적으로 미군을 배치하며, 미군 군사지도자들이 더 직설적 경고를 발표하고, △일본, 필리핀, 호주,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와 더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그리고 △2016년 3월, 중국 기업의 미국 정보기술 접근을 중단시키는 조치를 발표했다. (이는 중국기업 ZTE에 영향을 미쳤다. ZTE는 이란에 미국 기술을 이전하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이를 중단하기로 합의했지만, 그 후 비밀리에 다시 기술이전을 지속했다고 알려졌다.) 또한 △2016년 3월, 미국은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중국의 인권문제에 관해 전례가 없는 비판을 가했고, 일본, 호주와 유럽 9개국이 이를 지지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조치가 가한 영향은 첫인상에 비해 그리 크지 않았는데, 사이버 절도 문제에 관한 양자 대화가 개시되고, 중국이 북한에 대한 유엔제재 강화에 동의하고, ZTE 문제에 관한 비공개 협의가 진행되는 식으로 분위기가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16년 1월 대만에서 민진당 차이잉원이 압도적으로 총통에 당선되고 입법원에서도 승리를 거두면서, 대만 문제가 미중 간 민감한 문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차이잉원은 평화롭고,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며, 긍정적으로 교류하는 양안관계, 즉 현상유지를 모색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그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포함하고 있는) 대만 헌법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도, ‘하나의 중국’ 그 자체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는 일을 일관되게 거부했다. 또한 ‘탈중국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공개적인 독립선언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2020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차이잉원 등장 후, 양안관계의 긴장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중국은 대만을 위협하기 위해 대만해협의 군사력을 강화하고(중국 공군은 2017년 7월부터 12월까지 일곱 차례 대만 영공을 비행했다), 대만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자 시도했다. 또한 2019년에는 대만에 경제적 우대를 제공하는 26개 조치를 발표했는데, 중국이 대만의 기업가와 개인에게 여러 혜택을 부여한다는 것이었다.(7) 중국이 이러한 부정적, 긍정적 인센티브를 부여한 것은 민진당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명한 셈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2016년에 들어 남중국해 문제에 관해 그 이전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한 대응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대만 문제에 관한 한 양안 간 소통을 촉진하고 심각한 갈등을 회피하려는 노력을 배가했다. 전반적으로 평가해보면, 오바마 행정부는 미중관계를 가능한 한 부드럽게 이끌었다는 유산을 남기고자 노력했다.

    (2) 오바마 행정부 말기, 대만 정책 논쟁과 2016년 대통령선거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과 마찰을 피하는 방식으로 대만 문제를 다루자, 대만과의 관계 발전을 촉구하는 세 가지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공화당 의회 지도자, 공화당 경향의 싱크탱크·언론·이익집단뿐만 아니라 오바마 정부의 대만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 민주당과 진보파에 속하는 정치인, 싱크탱크·미디어·이익집단이 포함되었다.

    첫 번째 흐름은 중국 정책과 무관하게 대만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미국 정부가 차이잉원의 양안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식으로 대만의 국내정치에 간섭하는 것을 반대했다. 미국이 더 솔직하게 대만의 TPP 가입을 지지하고, 미국의 장관급 인사가 더 자주 대만에 방문하고, 미국의 첨단무기를 대만에 더 많이 판매하기를 원했다. 또한 미국 지도자가 중국이 주변국에 가하는 강압적 행동을 비난하듯이, 중국이 대만에 가하는 강압도 비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흐름은, 중국에 접해 있고, 중국이 말하는 ‘제1도련’의 중심부에 걸쳐 있는 대만의 전략적 위치를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중국의 팽창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대만의 위치가 매우 중요했다. 제1도련 주변에 감시센서를 설치하고, 대함미사일을 포함한 이동능력 보유 부대를 배치하고, 중국의 군함·잠수함의 접근을 막는 기뢰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대만 정부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세 번째 흐름은 시진핑의 강압적 팽창주의에 대응하면서, 그러한 행동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대만을 강력히 지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는 게 무료가 아니며 반생산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2016년 말 미국 대통령선거에서는 전반적인 아시아 정책이나 중국 정책이 거대한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2016년 대선은 중국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다만 대만 문제 그 자체는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하지 않았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중국과의 분쟁에서 더 강경한 정책을 구사하겠다고 강조했으나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힐러리를 보좌하는 제이크 설리번이 2016년 7월 대만 정책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정도였다. (설리번은 이제 바이든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 역시 선거운동 기간에는 대만 문제에 대해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2016년 7월 그의 정책자문을 맡은 피터 나바로 교수는 앞서 언급한 세 가지 흐름이 제시한 논거를 활용하여 대만을 더 강력히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의 백악관에서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을 맡았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된 후 예상치 못한 행보를 보였다. 2016년 12월, 당선인 트럼프가 차이잉원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을 공개했다. 2017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 총통과 다시 통화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북한 문제를 다룰 때 중국의 지원이 필요한 게 그 배경이었다. 그렇지만 6월,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이슈에 대한 중국의 지원에 실망을 표현하면서, 대만을 강력히 지원하며 대만에 14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판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3)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기조

    2021년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잠정 국가안보전략지침』 역시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를 언급한다. “우리는 글로벌 코먼스(인류가 공유하는 지구 환경)에 대한 접근권을 계속 방어할 것이며, 여기에는 국제법을 따르는 항행의 자유와 영공 통과의 권리(overflight right)가 포함된다. 우리는 우리의 동맹국을 방어하기 위해 외교적, 군사적 역량을 배치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주변국과 상업파트너가 강압이나 과도한 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정치적 선택을 내릴 권리를 방어하도록 그들을 지원할 것이다”라는 대목은 특히 남중국해 문제를 염두에 둔 것이다. 또한 대만 문제도 직접 언급하는데, “우리는 지도적 민주주의이자 핵심적인 경제, 안보 파트너로서 대만을 지원할 것이며, 이는 오랫동안에 걸친 미국의 약속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인식은 이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2021년 7월 11일, 국제상설재판소의 남중국해 판결 5주년에 즈음한 메시지를 발표했다. “규범에 기반한 해양질서가 남중국해보다 크게 위협받는 곳은 없다”면서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해상(영유권) 주장들과 관련해서 2020년 7월 13일의 정책을 재확인한다”고 말했다. 이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의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의 정책을 뜻한다.

    2021년 4월 10일 국무부는 대만과의 교류 확대를 위한 새로운 지침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그 내용은 미국 연방정부 건물에서 미국과 대만 실무자 수준의 회합을 인정한다는 것인데, 다른 나라라면 뉴스거리도 되지 않겠지만, 미국과 대만 관계의 공식화는 사실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그 직후, 4월 13일 백악관은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조지 부시 정부), 크리스 도드 전 상원의원(민주당),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국무부 부장관(오바마 정부)이 이끄는 비공식 대표단을 대만에 보냈다고 발표했다. 이날 대만 총통부의 접견실 분위기는 비공식 대표단이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였고, 차이 총통은 “대표단의 면면이 대만에 대한 미국의 초당적 지지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올해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이벤트는 11월 16일 바이든, 시진핑의 화상 정상회담이었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시행해 왔고,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대만의 현상변경엔 반대한다” “대만해협과 지역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대만 당국이 미국에 기대 독립을 도모하고, 미국 일부 인사가 대만으로 중국을 제어하려는 의도가 있다” “우리는 최대 성의와 최대 노력으로 평화통일을 원하지만 만일 대만독립 분열세력이 도발하고, 레드라인을 넘는다면 어쩔 수 없이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대응했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대만 총통부는 “미국 측이 대만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하고 양안의 현 상태를 바꾸거나 대만해협의 안정, 평화를 깨는 행위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주의한다”고 밝혔다. 대만 외교부도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관계법과 6개 보장에 따른 결의를 유지하며 대만에 대한 미국의 굳건한 지지를 재확인한 것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6가지 보장은 1982년 미국 정부가 밝힌 것으로, “미국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대만의 주권은 평화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말한 대목을 가리킨다.) 대만 측도 미중 정상회담을 자신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한 셈이다.

    그렇다면 시 주석이 말한 레드라인은 무엇일까. 중국이 설정한 무력침공의 일곱 가지는 조건은 △대만의 독립선언, △대만이 명백히 독립으로 기울어질 경우, △대만의 핵무기 보유, △대만의 내부 혼란, △양안 간 평화통일 대화의 연기, △외국군의 대만 내정 간섭, △외국군의 대만 주둔이다.(8) 이 중 현 국면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는 대만의 독립선언과 외국군(미군)의 대만 주둔일 것이다.

    차이잉원 총통이나 바이든 행정부가 당장 이 선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회색지대 전략으로 현상변경을 추구하는 것처럼, 미국은 대만에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한다는 공식방침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이 강압적 행동을 강행할 경우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이라는 정책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신호를 지속해서 보내고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4) 한국 정부와 대만 문제

    남중국해, 대만 문제는 한국 정부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2021년 5월 21일, 문재인,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에도 남중국해, 대만 문제가 직접 언급되었다. “우리는 남중국해 및 여타 지역에서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 및 항행상공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 존중을 유지하기로 약속하였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특히 대만 문제에 관해 강한 반응을 보였다. “대만 문제는 순수한 중국의 내정”이며, “어떤 외부세력의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관련 국가들은 대만 문제에서 언행을 신중해야 하며 불장난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한미관계 발전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돼야지 그 반대여서는 안 되며, 중국을 포함한 제3자의 이익을 해쳐서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즉, 한국이 신중하지 못한 불장난을 하고 있다는 강한 비난이었다.

    또한 12월 2일, 한미 국방장관이 참여하는 연례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서도 “대만해협에서의 평화,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확인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만 외교부는 공동성명에 “처음으로 대만해협이 언급된 것에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며 “5월 정상회의 공동성명 언급 뒤 다시 공개적으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에 관한 입장을 내놓은 것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또한 “대만은 미국, 한국 등 이념이 가까운 나라들과 협력을 심화해 민주, 자유, 인권 등 공동의 가치를 공동으로 수호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중국은 공식적 반응을 내놓지 않았는데, 중국 외교부는 연합뉴스의 서면질의에 대해, 12월 2일 서훈 국가안보실장, 양제츠 중국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 간 회담에서 중국이 “엄중한 우려를 표했다”고 밝혔다.(9) 이 회담은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6·25 전쟁 종전선언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얻기 위한 회담이었다. 한국 정부 측은 중국이 종전선언을 지지한다는 말이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할 용의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종합하면, 미국은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에서 과거 오바마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지를 분명히 표명하며 중국의 강압적 행동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뜻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의 동참을 요청하고 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중국의 ‘건설적’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미국의 요청에 가능한 한 수동적,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역시 문재인 정부의 이런 접근법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으므로, 한국이 미국 측의 요구에 동참하는 ‘불장난’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한 어조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접근법이 적절한가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과연 중국이 북한에 대해 얼마나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조차 아직 미지수로 남아 있다.

    5) 소결

    대만 문제에 관한 미중의 긴장이 고조될 때 어느 편을 들어야 하냐, 아니면 아무 편도 들지 말아야 하냐, 어떤 것이 한국에 이익이 되냐, 이런 식의 논쟁을 하기 전에, 사회운동은 대만 문제가 심각한 쟁점으로 떠오른 근원적 이유를 따져보아야 한다.

    먼저 대만에서 차이잉원이 2016년, 2020년에 선거 승리를 거두며 부상한 이유를 살펴보자. 2016년 선거에는 2014년에 벌어진 ‘해바라기 운동’이 강한 영향을 끼쳤다. 국민당 마잉주 총통은 2010년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맺었고 그해 대만 경제성장률은 10.6%로 급증했다. 그렇지만 대만기업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면서 대만경제의 공동화라는 문제가 부상하고 청년실업 문제가 나타났다. 그러다가 2014년 3월 17일 입법원 내정위원회에서 국민당이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을 30초 만에 통과시키자 국회의 불투명한 절차에 분노했다. 그에 따라 3월 18일부터 24일까지 24일간 입법원을 점거한 ‘해바라기’ 운동이 전개되었고, 여론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또한 2014년 9월부터 12월까지, 홍콩에서는 ‘우산혁명’이 전개되었다. 2017년에 치러질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주민투표로 치를 것을 요구했는데, 이때 경찰이 뿌리는 물대포나 최루가스를 막기 위해 우산을 쓰면서, ‘우산혁명’이라고 불렸다. 대만인들은 우산혁명이 받는 탄압을 보면서 중국의 통치방식에 강한 반감을 느꼈고, 대만인과 홍콩인의 정서가 강하게 공명하게 되었다. 이처럼 해바라기 운동을 거치며 많은 대만인들은 민진당이 집권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10)

    2020년 선거를 보면, 사실 2019년까지 차이잉원 총통은 양안관계 악화로 경제침체를 겪게 되었다는 야당의 비판에 직면해 인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2019년 홍콩에서 송환법 도입에 반대하는 시위가 다시 크게 일어나면서, 대만에서도 중국이 말하는 일국양제에 대한 반감이 점점 더 커졌다. 차이 총통은 “내가 이곳에 있는 한 대만의 주권을 지킬 것이고, 여러분은 대만이 또 다른 홍콩이 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 결과 차이 총통은 지지를 회복하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림 설명] 1996년에 발표된 대만인 정체성 조사결과에서는 ‘대만인과 중국인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49.3%로 가장 많았고 대만인 24.1%, 중국인 17.6%였다. 그러나 2019년에는 대만인이 58.5%로 가장 많았고 두 개의 정체성이 34.7%, 중국인이 3.3%로 나타났다. 결국 20여 년을 거치며 자신이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이라는 정체성이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11)

    다른 한편, 중국은 왜 대만 문제에 그렇게 강경하게 나오고 있나. 2016년 차이잉원 당선 후, 2017년 중국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100년의 국치‘를 끝낼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제시하면서 그 핵심과제 중 하나로 대만 문제의 해결을 명시했다. 중국의 대만정책은 ’평화발전‘에서 ’평화통일‘로 변화했고, 통일문제는 중차대한 당면과제가 되었다. 즉, 중국은 대만 문제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말아야 하며, 통일은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9년 시진핑 주석은 ’대만 동포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대만에서도 일국양제가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2018년에 중국 공산당이 국가주석 3연임을 금지한 헌법 규정을 삭제하면서 3연임을 막는 법적 장애물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 시진핑 주석이 장기집권을 도모하면서 그 필요성을 대만 문제의 해결, 즉 ’현세대 내에서‘ 대만과의 통일에서 찾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리해보면, 대만에서 전개된 민주화와 사회경제적 개혁 요구는 궁극적으로 대만이 주권적 실체로 남아 있어야만 계속 진전할 수 있다. 대만이 주권적 실체가 아니라면, 주권이 외부에 종속된다면 시민들의 변화 요구를 직접적으로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민주주의와 주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2014년, 2019년 홍콩 시위를 보며, 중국이 말하는 일국양제가 대만인이 기대하는 수준의 민주주의와 주권에 대한 요구를 반영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직접적인 대만 독립선언은 아니더라도, 주권적 실체로서 대만의 지위를 지키려는 사회 저변의 흐름은 앞으로도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홍콩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흐름을 지지한다고 할 때, 대만에서 주권적 실체를 지키며 지속해서 사회경제적 개혁을 추진하려는 사회운동의 흐름을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또한 만약 이러한 흐름에 중국이 군사적 위협을 가한다면, 그러한 위협을 강하게 비판하지 않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각주>

    1. 조용수, 「중국의 회색지대전략 메커니즘 분석을 통한 남중국해 및 동중국해 분쟁양상 비교」, 《해양안보》, 1(1), 2020.
    2. Michael Green et al., Countering Coercion in Maritime Asia: The Theory and Practice of Gray Zone Deterrence, Center for Strategic & International Studies, 2017.
    3. 이대우,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미중관계」, 《KINU 통일플러스》, 2016년 가을호. 이대우의 글 역시 중국이 유엔해양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미국의 군사력을 중국 본토에서 200해리 밖으로 몰아내려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는 대양해군을 지향하고 있는 중국 해군이 첫 번째 관문인 제1도련을 확실하게 돌파하기 위해서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자국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본다. 반면 미국은 타국의 EEZ에서 군사활동을 하지 못한다면 미국이 누리는 5대양에서의 제해권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므로 미국으로서도 결코 양보할 수 없다.
    4. Robert Sutter, American Policy Toward Taiwan-China Relations in the Twenties-First Century, Taiwan’s Political Re-Alignment and Diplomatic Challenges, Palgrave Macmillan, 2019.
    5. 중국은 리덩후이가 대만의 독립을 촉진할 것이라고 보았고, 1996년 3월의 총통선거까지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시위를 펼쳤다. 수차례 대만을 가로지르는 미사일을 쏘고 대만해협에서 실탄훈련을 했다. 또한 대만 건너편 푸젠성에서 대만 침공을 가정한 상륙훈련을 펼쳤다. 클린턴 정부는 1996년 3월 니미츠, 인디펜던스 두 항모전단을 대만 주변에 배치했고, 니미츠는 대만해협을 보란 듯이 가로질렀다. 중국은 이 사건을 겪으며 대만해협 사태를 가정하며 대규모 군사력 증강을 꾀했다. 미군이 개입을 포기하게 하거나, 필요하다면 미군의 개입을 격퇴하는 게 그 목표다. 미국 군사전략가 역시 이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고, 이제 중국과 미국은 각각 상대방을 염두에 둔 군사력 증강을 지속하고 있다.
    6.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시진핑의 중국은 2000년대 양국관계를 지배했던 실용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중국은 미국이 지지하는 주변국을 희생시키며 해상영역에 대한 강압적 통제를 밀어붙이고, 미국이 지지하는 현존 기구나 협약이나 합의를 잠식하는 다자 금융기관이나 경제협정을 개시했다. 또한 미국의 항의를 무시하면서 경제적 사이버 스파이 행위나 기업에 대한 공식적 간섭을 지속했다. 미국의 우려에 개의치 않고 인권을 억압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을 목표로 하는 광범위한 군사력 증강에 몰두했다. 그에 따라 오바마-시진핑 시대에 중국이 제시한 ‘신형 대국관계’(미국식 표현으로는 ‘new type of great power relationship’)는 점점 더 위기에 빠지게 된다.
    7. 이상만, 「미중 패권경쟁과 양안관계」, 『미중 전략적 경쟁』, 페이퍼로드, 2020.
    8. “미·일·대만 신3각 동맹론”, 《문화일보》, 2018년 7월 11일.
    9. “중국 종전선언 지지… 한미SCM 대만 언급엔 엄중 우려”, 《연합뉴스》, 2021년 12월 3일.
    10. 이링치우(대만인권연대 사무국장), “쯔위 덕 본 차이잉원, 대처 존경한다?” 《프레시안》, 2016년 2월 3일. 박민희, “차이잉원, 해바라기와 미국으로 하나의 중국 흔들다”, 《한겨레》, 2021년 2월 2일. 《한겨레》의 글은 “중국이 비판적인 목소리와 소수자를 탄압하고 경제·군사적 힘을 휘두르는 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대만 사회는 (차이잉원이 추진하는) 이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바라기 운동 이후 대만 사회의 도도한 변화를 중국은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고 결론을 맺는다. 해바라기 운동에 관한 더 자세한 연구는 다음을 참고하라. 김민환, 정현욱,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의 쟁점과 대만 사회 갈등구조 변화」, 《아태연구》, 21(3), 2014. 이광수, 「대만 사회운동에 관한 연구: 2014년 해바라기운동을 중심으로」, 《중국학논총》, 2015.
    11. 위홍위, 강준영, 「차이잉원 정부 집권 1기의 대만주체의식과 양안 현황」, 《대만연구》, 15-16호, 2020.
    필자소개
    사회진보연대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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