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명여대 돈 벌어주는 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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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2월 04일 01: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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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수위가 ‘영어 공교육 완성 실천방안’을 내놨다. 우려해왔던 대로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기본적으로 인수위가 영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자체부터가 잘못 됐다. 아무리 공교육이란 단어를 내세워도 일반 국민들에겐 영어라는 말만 들리고 있다. 자고 나면 들리는 영어, 영어, 영어.

       
    ▲ 인수위원회 앞에서 이명박 당선자의 교육 정책에 항의하는 교사들. (사진=전교조)
     

    이것은 부모들에게 차기 정부에서는 영어가 상상 이상으로 중요해진다는 압박감으로 작용한다. 애가 탄 학부모들은 영어학원으로 내달릴 수밖에 없다. 사실상 인수위가 학부모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인수위가 정말로 교육적 염려를 하고 있다면, 인수위 발표로 인해 사교육 시장이 들썩일 때 교육정책 진행을 긴급히 멈췄어야 했다.

    인수위는 영어 전용 교사 2만 3,000명을 뽑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대상이 테솔(TESOL. 영어전문교사양성과정) 등 국내외 영어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나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다. 학생을 영어 사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교사가 되려는 사람들까지 사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것인가?

    중산층 유휴인력의 일자리

    임용고시라고까지 불리는 어려운 교직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돈으로 해결되는 영어사교육, 외국유학 등을 통해 손쉽게 교사가 되는 길을 열어주려는 셈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결국 테솔 과정을 운영하는 숙명여대 등 일부 사립대들의 이익 챙기기와 연결이 된다는 점이다.

    일조일석에 수만여 명의 교원을 확충하는 일은 졸속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교육적 효과가 있을 리 없다. 대신에 숙명여대 등 사립대들이 이익을 얻고, 미국에 다녀온 중상층 유휴인력이 일자리를 얻게 된다. 영어교육 강화라는 미명 하에 교육과 일부 집단의 이익이 교환되고 있다.

    게다가 확충되는 인력은 계약직이다. 학교 안으로 비정규직 교사들이 대대적으로 투입되는 것이다. 또, 인수위는 장기적으로 영어가 아닌 과목까지 영어로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영어 비정규직 교원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교원체제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어떤 과목의 교사가 필요하면 정규 교직과정을 강화해 인력을 수급하면 된다. 하지만 인수위는 온갖 명목의 영어 가능자를 비정규직으로 임시변통해 쓰려 한다. 수학교사가 필요하면 수학과 졸업자 중에서 아무나 면접으로 뽑아 쓰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다 수요가 떨어지면 언제든지 자를 수 있는 게 비정규직이다. 근본적으로 기업에서의 노동유연성 원리와 같다.

    사람을 한낱 소모품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게다가 교사의 교육적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기능적 수요만을 중시하는 ‘공장적’ 사고방식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고집하는 한 인수위는 공교육 운운할 자격이 없다.

    당장 2010년부터 초등학생들에게 주 3시간의 영어수업을 시킨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이제 영어수업 대비 사교육기관을 알아보러 다녀야 한다.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로 하는 수업은 날벼락 같을 것이다. 그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아이들은 영어 스트레스 속에서 영어에 주눅 든 국민으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인수위는 학급당 학생 수를 23명으로 줄인다고 한다. 하지만 교실을 대대적으로 늘린다는 확약은 아직 없다. 설사 정말로 23명이 된다 해도 회화교육이 그렇게 많은 인원으로 될 리가 없다.

    누군가는 사교육을 받을 것이고, 그 아이의 수준에 맞춰 수업이 진행되면 다른 아이들은 들러리를 서거나 덩달아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은 교육대로 안 되고 사교육비는 사교육비대로 늘어난다.

    가난한 아이들 효율적으로 배제

    인수위는 이런 경우에 대비해 수준별 맞춤 교육을 하겠다고 한다. 수준별 교육은 부족한 교원, 교실 인프라에서도 상위 학생들에게 수월성 교육을 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이다.

    그런데 영어상위 학생은 결국 사교육 훈련을 많이 받은 아이다. 그런 아이에게 국가교육 역량이 집중되게 된다. 결국 돈으로 된 교사가 돈을 많이 쓴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켜주는 시스템이 된다. 국가가 가난한 집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배제하는 것이다.

    한국 사교육의 근원은 상위 학교 진학시에 발생하는 입시경쟁이다. 수준별 교육은 이 경쟁을 동급생 단위로 낮춘다. 학교 진학 이전에 동급생들끼리 상위수준반 되기 경쟁을 벌여야 한다. 사교육비용을 가장 많이 쓴 학생을 기준으로 다른 아이들의 사교육비가 동반 상승할 것이다. 그래도 영어우열반이 인생우열반으로 진화하는 걸 막기 힘들 것이다.

    인수위는 두뇌 없는 앵무새 같다. 영어 공교육 강화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교육의 근원인 대학서열체제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인수위의 장담대로 모든 고등학교 졸업자가 영어회화를 하게 된다 해도, 서열체제에서 대학입시는 여전할 것이고 사교육비도 여전할 것이다. 게다가 영어 경쟁력은 궁극적으로 미국에 다녀오는 것이 가장 유리하기 때문에 입시에서 영어의 비중이 커질수록 조기유학 광풍도 커질 것이다.

    부자들이 영어실력을 돈으로 사 일류대를 독점하게 되면 대학서열체제가 더욱 심화돼 학벌사회의 폐단이 고착화된다. 그에 따라 학벌쟁취경쟁인 입시경쟁도 더욱 심해질 것이다. 결국 인수위의 정책은 한국 교육을 파괴하고, 부자들의 학벌권력 강화에만 이바지하게 된다. 국민세금 4조를 들여서.

    인수위는 영어 공교육 강화를 제2의 청계천이라고 한다. 21세기에 교육이 토목공사에 비견될 줄은 미처 몰랐다. 교육은 돌관(突貫) 작업하는 토목공사가 아니다. 교사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건축자재가 아니다.

    경부고속도로는 일단 지어놓고 수리하면서 썼지만 국가 공교육이 잘못 되면 수많은 아이들 인생이 빗나가고 부모들 가슴엔 아물지 않는 상처가 남는다. 정말 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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