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제타격 논란과
    북·미 사이의 동상이몽
    [국방칼럼] 군비경쟁, ‘강대강’ 흐름
        2022년 01월 26일 09: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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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조선중앙통신은 조선노동당 제8기 제6차 정치국 회의에서 그동안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할 것을 지시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20일 밝혔다.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이란 그동안 ‘레드라인’으로 일컬어져왔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탄 발사 실험을 말한다. 이로써 올해 들어 지금까지 북한이 단행한 다섯 차례의 미사일 발사는 서막에 불과했고, 한반도는 이제 긴장감이 감도는 서사의 세계로 재진입하는 문턱에 서있게 되었다.

    우리 국민들은 북한의 이 같은 행동에서 더 이상 생소함이 아니라, 마치 결말이 뻔한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익숙함을 느낄 것이다. 일부 국내외 언론은 이러한 관성에 기대어 북한의 최근 행태를 과장 섞인 행동을 뜻하는 ‘허세(bluffing)’와 협박이나 절박감을 나타내는 ‘벼랑끝 전술’의 일환으로 분석하는데, 이러한 해석에 친숙해지면 북한이 결정한 사항의 의미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게 된다.

    북한의 조치는 2019년 12월 개최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제시한 ‘정면돌파전’에서 출발한다. ‘정면돌파전’은 미국의 제재와 압박이라는 난관을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으로 극복하자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정치∙외교적으로는 공세적인 조치들을 취하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공세는 북한이 즐겨 쓰는 표현인 ‘선결적’이고 ‘주동적’으로 정세를 주도해 나가겠다는 것이며, 국방력 강화는 전략무기개발사업을 말한다.

    2021년 1월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에서 진행된 ‘사업총화보고’에는 국방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적 과업으로 ‘핵기술 고도화’, ‘초대형 핵탄두 생산 지속’ 등이 등장했고, 1만5천Km 사정권 안의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명중률 제고와 핵 선제 및 보복타격능력을 고도화하기 위한 목표가 제시되었다. 따라서 북한은 현재 느닷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2019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미국과의 협상 결렬에 대비하여 제시해놨던 이른바 ‘새로운 길’을 따라 정해진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사진 : 북한이 17일 발사한 미사일 실험을 티비화면을 통해 공개한 장면이다. 북한관영매체들이 미사일 발사의 선전∙선동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미지 연출에 적잖이 신경을 쓰고 있다.(출처-미국 NKNEWS)

    미국은 북한이 2018년 4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중지하는 결정서를 채택한 이후, 북한의 위협이 자국을 겨냥하는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것에 만족해 하는 입장을 취해 왔다. 북한의 중∙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용인하는 듯했던 미국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전력 강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현재 미국의 행태를 보면 북핵 문제가 악화될 경우 자신들에게 직접 위협이 되는 전략무기 해소에만 우선적인 관심을 쏟는 이기적인 자세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국 정부가 만약 이 같은 상황이 도래할 경우에 대비한 대처방안이 준비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북한은 8차 당대회의 사업총화보고에서 자국의 ‘핵무력 건설’을 ‘강행돌파전’에 비유했는데, 그들의 성과는 중국과 러시아가 2016년 3월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북한결의안 제2270호에 동참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대외적으로 우호국들의 강력한 반대조차 무릅쓴 결과였다. 하지만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과거와 같이 북한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볼 수 없는 이면에는 국제현안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이 자리하고 있다.

    우크라니아와 대만 위기에 미국의 관리능력 시험대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 결속을 통해 미∙중 경쟁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오커스협정 체결 과정에서 연이어 동맹국들을 배려하지 않음으로써 동맹 내부의 균열을 스스로 자초했다. 아프가니스탄 철수 후에도 어떤 명목으로든 기존 행정부가 존속했다면 그러한 파장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도 있었으나, 철군과 동시에 이루어진 탈레반의 복귀로 인해 국제질서 수호자로서 미국의 역할에 의문을 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러시아는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 사태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해당 국가들이 자국 세력권 안에 있음을 분명히 했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저지하여 이 지역이 반러 진영에 편입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현재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예컨대 후루카와 에이지(니혼게이자이신문)는 특집기사에서 우크라이나와 대만은 대칭관계이기 때문에 중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디언 라크만(파이낸셜타임스)도 작년 4월 칼럼에서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와 대만 위기를 동시에 다뤄야 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이렇듯 중국을 비롯한 세계가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데다가, 우크라이나 위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세계질서가 다극 체제로 전환하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2015년 민스크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지속된 군비경쟁이 이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는 사실이다. 이 갈등은 ’9.19남북군사합의’ 이후에도 남북 간에 계속된 군비경쟁을 떠오르게 한다. 따라서 한반도에 가장 좋은 상황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평화적으로 마무리되고, 당사자들 간에 신뢰가 조성되어 군비통제단계에 진입하는 것이지만, 현재의 군비경쟁기조를 강대국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소국, 중견국들이 이 흐름을 되돌린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다.

    과거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중거리핵전력(INF) 조약과 이란 핵합의(JCPOA)를 탈퇴하고, 미육군 차세대 장거리 정밀타격 미사일(PrSM)과 저위력(low-yield) 핵무기를 개발하는 등 지속적으로 ‘핵무기비확산조약(이하 NPT체제)’을 스스로 훼손하였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채택한 2018핵태세검토보고서(NPR)는 핵사용의 범주를 비핵공격까지 확장하였고, 그 핵심인 저위력 핵무기는 핵무기의 치명적인 단점인 방사능 낙진과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목적으로 개발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핵무기의 실전 사용 가능성을 높혀준다.

    조비연(한국국방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미국 연구진은 북한 내 다섯 곳의 목표물을 파괴하기 위해 저위력 핵무기인 ‘B61-12’ 20발을 투하했을 때 100명 미만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B61-12’는 북한의 지하시설물을 파괴하기 위한 ‘핵 벙커버스터’이자 ‘지하관통폭탄’(earth penetrator)으로써 우리 군이 보유하고 있는 F-35A, F-15K, KF-16에 모두 장착이 가능하다. 부품수급 문제로 실전배치가 연기되었지만, 한국의 핵공유론자들을 들뜨게 할 만한 무기체계인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엔 상임이사국(P5)과 아시아의 나머지 핵보유국(인도, 파키스탄 등) 모두 핵전력 증강에 골몰하고 있다는 사실은 NPT체제의 한계를 드러낸다. 핵무기 비확산, 핵보유국 군축, 그리고 ‘평화적 핵 이용’이라는 NPT체제가 추구하는 목표는 복합적이다. 이러한 다양한 목표를 관철하는 과정에서 회원국들 간의 우선순위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비핵국’(NNWS, Non-Nuclear-Weapon State) 일부가 주도하여 유엔에서 ‘핵무기금지조약’(TPNW, 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을 통과시킴으로써 NPT체제 아래에서 각종 기득권을 누리는 ‘P5’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연초 ‘P5’는 ‘핵전쟁 예방 및 군비경쟁 방지 공동성명’을 발표함으로써 비핵국들의 불만을 달래려고 했지만, 핵무기 사용이라는 위험을 감소하는 데 초점을 맞춤으로써 비핵국들이 주장하는 핵군축을 위한 실질 조치를 회피하는 자세를 취했다.

    미국의 대북 정책 목표는 CVID

    지난 1월 12일 미 국무부의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 위기와 기근,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미사일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정책 재검토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북한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답변했다. 정례브리핑에서 나온 그의 발언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생각을 바꾸면서까지 대화에 참여할 생각은 없다. ② 북한이 변해야 외교와 대화가 성립하는데, 북한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③ 북한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제재를 하는 것이며, 북한이 대화에 응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미국의 북한정책은 ‘변하지 않는다(remains unchanged)’고 말했다. 이것은 제재 일변도의 북한정책에 변화가 없음을 시사한다. 미국은 20일 발표한 ‘NPT체제에 관한 미일공동성명’에서 지난 5일 발표한 유엔안보리 6개국 공동성명보다 더 높은 수위로 ‘CVID’를 강력히(strongly) 요구했다. 그런데 21일 발표한 미일 정상의 화상회담에서는 한∙미∙일 공조를 의식해 ‘CVID’가 아니라 ‘한반도의 비핵화’로 표현했다. 미국은 지금 ‘CVID’에 입각한 북한정책을 추진하면서도 한국 앞에서는 ‘한반도의 비핵화’라고 말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취하고 있다. 이로써 바이든 행정부의 북한정책은 트럼프 행정부의 일괄타결도 아니고,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도 아닌, 부시행정부가 6자회담에서 요구한 CVID원칙에 입각한 선 핵폐기 입장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제타격 논란의 의미와 배경, 성격

    한국은 ‘확장억제력(핵우산)’이라고 하는 미국의 안전보장 공약을 받고 있다. 확장억제력은 한국에 대한 외부 공격을 미국이 자국 본토에 대한 공격과 동일하게 인식하는 기반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을 신뢰한다면, 핵∙WMD 대응체계에 지나치게 집착할 이유는 없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새로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등장하는 ‘선제타격 논란’은 한국에 핵안보 위기가 발생하는 순간 미국이 확장억제력으로 한국을 뒷받침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일말의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한국인들의 의구심은 미국이 과연 한국을 위해 핵전쟁을 감수할 의지가 있는가이다. 이것은 반미감정, 반미민족주의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일본에서는 선제타격을 ‘적기지 공격능력’이라고 부르는데, 일본이 이지스 어쇼어 도입을 중단하고, ‘적기지 공격능력’을 보유하려는 것은 그만큼 미사일방어체제의 효용성에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사일방어체제’의 단점은 상대방의 미사일 발사능력을 원천적으로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공군이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요격하더라도, 이동식 발사대(TEL, Transporter Erector Launcher)와 미사일 저장고가 건재하다면, 북한은 미사일 보유수량이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해서 공격에 나설 것이다. 그런데 킬체인으로 불리는 선제타격은 TEL 등의 공격원점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발사되는 미사일의 총량을 감소시켜 북한의 공격을 좀 더 빨리 무력화시킬 수 있다. 또한 핵미사일 요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방사능 낙진으로부터 우리 측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위협이 증대될수록,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공격(선제타격)과 수비(미사일방어체제)의 적정 비율을 산정하여 전력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지 : 23일 방위사업청에서 제공한 ‘한국형미사일방어’ 강화계획이다. 지금부터 최소한 10년은 넘게 걸릴 장미빛 청사진이다.(출처-와이티엔).

    그렇지만 선제타격을 위해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성격의 문제들이 상존한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다. 첫째 자위권 행사를 위해서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1842년 미∙영이 ‘웹스터 애슈버턴 조약’을 체결한 이후, 국제관습법에서는 합법적인 자위권 행사를 위한 요건으로 필요성(necessity of self-defense)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국가가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는 선택의 여지도, 숙고의 순간도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이며, 만일 다른 대안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무력을 사용한다면, 국제관습법은 국가가 합법적인 자위권을 행사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제관습법은 국가가 전쟁을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둘째 한국군이 작전통제권을 완벽하게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작전통제권(이하 작통권)이 미국에 있는 한 선제타격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권한은 미국에 있다. 그런데 박근혜 행정부가 작통권 환수의 취지에 어긋나게 탐지, 결심, 격퇴, 방어 분야로 구성한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능력’이라는 독소조항을 환수 조건에 넣음으로써 작통권 환수를 어렵게 만들었다. 설사 한국이 어렵사리 작통권을 환수하더라도 선제타격을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이 선제타격을 하기 위해서는 한미연합공군구성군사령관인 미 제7공군사령관에게 공중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대상에는 공군비행기 말고도, 육군의 현무 지대지미사일, 헬기 등 전군의 공중전력 모두에 해당한다. 작통권 환수 이후에도 미 제7공군사령관이 한반도 전구의 우주항공지휘통제권을 계속해서 행사하기 때문이다.

    셋째 한반도 전구가 안고 있는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 한반도 전구는 물리적인 충돌에 따른 반응시간이 매우 짧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국과 북한은 완충지대가 없이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이 접해 있는 데다가, 양측 모두 종심(적진 깊숙한 후방)이 짧기 때문이다. 짧은 종심으로 인해 ‘한국형미사일방어’는 항상 효용성에 의문을 받아왔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확보하려는 이유도 종심지역을 확대함으로써 자국의 안전보장을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한반도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자연스럽게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북∙중 국경지대에 위치한 자강도는 북한의 주요한 군수공업시설과 미사일기지가 밀집한 곳으로, 한국이 이곳을 타격할 경우, 중국의 개입을 불러와 한반도가 미∙중 충돌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네째 공군 전술기를 늘려 육군에 편중된 타격 전력을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선제타격에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크게 볼 때 육군의 현무 지대지미사일과 공군의 타우러스 공대지미사일, 합동직격탄(JDAM) 등을 장착할 수 있는 전투기이다. 지대지미사일은 주로 고정표적을 공격하는 용도로써, TEL 같은 이동표적에 대한 타격능력이 없다. 설사 고정표적이라 하더라도 산과 같은 지형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을 경우 타격이 어렵다는 점에서 지대지미사일은 선제타격의 보조전력으로서의 위상을 갖는다. 반면에 공군전투기는 이동표적이나 지형 장애물로 인한 제약이 없고, 표적 선정에 문제가 생길 경우 발사를 중지함으로써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공군의 바늘구멍 공격(pin point attack) 능력은 탐지 및 추적, 정밀성, 파괴력 등 모든 면에서 육군을 압도한다. 따라서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책으로 미사일사령부를 미사일전략사령부로 확대개편해서 육군이 킬체인(전략표적 타격)을 주도하도록 하겠다는 동아일보발 국방부 구상은 현실성이 없다.

    사진 : 2017년 4월 17일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 방한을 맞아 보수성향 시민들이 연도에 길게 늘어섰다(출처- 뉴스인포토닷컴)

    2013년 말 미 합참의장 마틴 뎀프시는 북한과 이란 미사일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발사 왼편(The Left of Launch)’이라는 새로운 타격전략을 내놓았다.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을 기다려서 요격하는 전통적인 방식에 더하여 미사일이 지상에 있을 때 발사되지 못하도록 무력화하거나 발사된 후 몇 초 안에 타격하는 것으로써 ‘민첩한 타격(Nimble Fire)’이라고도 불렸다. ‘발사 왼편’ 전략 중의 하나인 사이버킬체인은 사이버공격으로 북한의 핵미사일지휘통제체제를 교란시킴으로써 미사일 발사를 저지하는 개념이다. 이에 대해 안키트 판다(카네기국제평화기금)는 사이버작전이 오히려 북핵을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북한은 2013년 4월 1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7차회의에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라는 법령을 채택한 바 있다. 이 법령에 따라 북한은 최고사령관의 최종명령에 의해서만 핵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는 북한의 핵지휘통제체제가 외부개입에 의해 문제가 생길 경우, 김정은 총비서의 최종발사명령 권한이 현장지휘관에게 위임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북핵의 위험성이 증대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 북한 핵∙미사일전력은 ‘화성-15형’ 대륙간탄도탄을 시험 발사한 후, 정부 성명을 통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이후에도 더 다양화되고, 발전하여 왔다. 2020년 10월 조선노동당 창건 제75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에 처음 등장한 ‘화성-17형’ 대륙간탄도탄까지 굳이 거명할 필요가 없다. 외국 전문가들은 북한이 최근 발사한 KN-23과 KN-24 미사일을 예전부터 전술핵이 장착 가능한 이중용도 무기로 평가해 왔다. 또한 8차 당대회의 사업총화보고에 나오는 ‘목적과 타격대상에 따라 각이한 수단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 개발’은 북한이 한국과 일본의 전략목표들에 대응하기 위한 별도의 전술핵교리를 채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은 2016∼2017년에 걸쳐 부산과 포항의 항만시설,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미해병대 F-35A발진기지 등을 타격목표로 설정하고 있음을 노출함으로써, 전술핵무기가 유사시 미국군의 한반도 투입을 저지하는데 우선 사용될 것임을 암시한 바 있다.

    이미지 : 2017년 8월 북한 인터네포털사이트인 내나라에 공개된 북한 선전포스터이다. 원래 보검은 왕의 의식∙의장에 사용되는 칼이다. 핵을 단순히 군사무기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출처- 미국 NKNEWS).

    북한의 태세를 두고 그들의 공격의지를 군사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김정섭(세종연구소)은 북한의 전략은 핵전력 과시를 통해 한미연합군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거부적 억제’의 성격을 띄고 있다고 본다. 반면 황일도(국립외교원)는 북한의 전략이 한미연합군의 공격에 맞서 보복을 단행함으로써 상대방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위협 목적의 ‘응징적 억제’로 바라본다. 황일도는 북한의 호전성과 확전 가능성에 주목하는 반면, 김정섭은 체제생존이 지상과제인 북한의 특성상 공격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나친 비관과 억제의 과잉을 경계할 것을 주문한다.

    황일도의 견해를 따른다면 북한은 지금 핵을 앞세워 상대방의 행동을 멈추게 하거나, 원치 않는 행동을 하게 하는 이른바 ‘강요(compellence)’라는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미국 또한 제재라는 압박을 통해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북∙미 양국은 동일한 전술로 서로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핵위협은 국제정치에서 분명히 효과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베트남전쟁, 중월전쟁, 포클랜드 전쟁과 이스라엘의 여러 차례 분쟁에 이르기까지 핵보유국이라 하더라도 비핵국과의 전쟁을 피하지는 못했다.

    1969년 10월 미국 닉슨 행정부가 시도한 일종의 벼랑끝 전술인 ‘비합리적 미치광이(irrational madman)’ 전술은 핵경보 발령을 이용하여 소련을 압박하고자 한 것이었으나, 소련은 미국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이나 2017년 ‘화염과 분노’ 같은 미국의 북한에 대한 핵위협 역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크림반도 병합에 대한 러시아 제재, 이란핵 합의 탈퇴 후 이란 제재 등 제재를 통해 미국이 목표를 달성한 예도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미 모두 서로에게 향하는 ‘강요’가 상대를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반도는 지금 대결을 뜻하는 ‘강 대 강’이 대화를 가리키는 ‘선 대 선’을 밀쳐 버리고 있는 형국이다. 중∙러는 유엔 안보리에 2019년 12월과 2021년 10월 각각 북한의 민수분야 제재를 완화하기 위한 결의안을 제출했었고, 연초의 유엔 안보리에서도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에 동의하지 않는 방식으로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 미∙일은 올해 들어서만 세 차례에 걸친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있고, 한∙미∙일 공조를 외치고 있다. ‘강 대 강’의 대결 구도가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 구도를 되살리려 하고 있다.

    세계적인 군비경쟁과 대립구도 속에서 한반도가 비핵화로 나아가는 것을 장세호(국가안보전략연구원)는 물살을 거슬러 배를 모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가 올지 모를 데탕트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너무 조급감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다. 다만, 김정은 총비서가 2019년 1월 신년사에서 의사 표시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를 문재인 행정부가 하나도 수용하지 않은 것은 현시점에서 볼 때 오판이 됐다. 이 장면은 일부 좌파가 말하는 것처럼 문재인 행정부의 속성이 ‘비미’가 아니라 ‘친미’임을 말해준다.

    문정인(세종문제연구소)은 2020년 4월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주최 세미나에서 문재인 행정부 안에서 한미동맹과 남북관계에 대한 견해에 입장차가 있음을 내비친 적이 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가운데 남북관계 개선을 하자는 입장’이고 자신은 ‘한미동맹에 조금 금이 가도 남북관계를 개선하자’는 의견인 것으로 그 차이를 설명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위협이 존재하고 동북아의 전략적 불안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미동맹을 강조했던 것이므로 그 역시 북한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이든 행정부 취임 1년이 지나도록 주한 미국대사의 지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실에 대해 한국 행정부가 가만히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원활한 한∙미공조를 원한다면 한국은 ‘CVID’로 가는 구체적이고 자세한 경로를 미국이 제시할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며, 혹시 미국이 북한핵을 한반도에 미국군을 주둔시키기 위한 필요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 <국방칼럼> 연재 링크

    필자소개
    국방문제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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