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 원포인트'
    대선 토론회에 찬성할 수 없는 이유
    [기고] 기후위기 주범들의 알리바이만 제공할 수도
        2022년 01월 25일 01: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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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위기 원포인트 대선 토론회 열자’는 에정칼럼에 대한 비판적 의견의 기고글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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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 운동가들 사이에서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원포인트 대선 후보 토론회가 주장되고 있다. 이런 목소리는 1월 10일 시사인이 내보낸 “2022년 대한민국 기후위기 보고서를 공개합니다”란 여론조사 결과 보고에 고무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여론조사는 기후위기에 대한 한국인들의 높은 관심도와 상대적으로 깊은(?) 문제의식을 보여주는데, 이는 이미 이전의 많은 여론조사에서도 밝혀진 부분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재미있는 혹은 고무적인 결과들은 꽤 있었다. 동시에 의아함이 남거나 한숨 나오게 하는 문항이나 결과도 많았다.

    예를 들어 어느 후보 공약인지 숨기고 정책에 대한 지지도를 물었더니 심상정이 가장 높게 나왔다.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이 가장 큰 집단으로 대기업과 정치권이 지목되었고 채식선택권에 대한 지지 의사도 절반을 넘었다. 반가운 결과다. 석탄발전을 중단해야 한다는 진술에 대한 동의(74.6%)가 가장 높았다. 그러나 동시에 석탄발전 중단으로 인한 고용불안이 있어도 추진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동의(68.9%)도 많다. 그런데 왜 문항이 ‘석탄발전 중단 등으로 인한 고용불안에 대해 책임있는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잡힌 것일까?

    또한 차기 정부의 과제를 묻는 문항에서는 ‘기업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가 81.9% ‘플라스틱 용기,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79%로 큰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하지만 ‘ESG 경영 추진하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지하는 응답이 80.7%로 비슷하게 나온 점은 응답자들이 ‘규제’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하게 만든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진보, 중도, 보수를 망라해 대선에서 기후위기가 내게 가장 중요한 공약이라 응답한 비율이 36.2%에서 38.9%의 범위 안에서 나왔다는 점은 같은 용어를 사용해도 각자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암시하기에 더 그렇다. 24일 나온 시사인의 팔로업 기사는 “최초의 ‘기후정치 세력’, 핵심 유권자 집단 될까”로 제목이 붙었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기후정치 세력’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기후위기 해결에 앞장서는 후보가 있다면 지지하겠다’와 ‘나에게는 이번 대선에서 다른 어떤 공약보다 기후위기 공약이 중요하다’란 문항에 대해 각각 38.8%, 36.8%가 ‘그렇다’라는 응답 나온 것도 해석이 잘 안된다.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기후위기 해결에 앞장서는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은 다른 공약보다 기후위기 공약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응답의 부분 집합이 되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런데 (아무리 오차범위 안에 있다지만) 어떻게 후자보다 전자에 동의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가 있을까? 그냥 응답자 개개인이 생각하는 기후위기와 해법이 제각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회조사 방법론에서 말하는 타당도(측정하고자 하는 걸 얼마나 제대로 측정했는가)와 신뢰도(다른 조사에서도 이런 결과가 일관적으로 나타날 것인가)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대선에서 기후위기가 전혀 이슈가 되지 않다 보니 답답함에 기후위기 원 포인트 후보 토론회를 열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선뜻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대선 후보들은 다 기후위기 정책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슈화가 안되고 있다는 것은 후보들조차 자신들의 기후위기 정책에 진심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거라 볼 수 있다(심상정 후보 제외). 더 큰 문제는 어느 후보도 (역시 심상정 후보 제외) 기후정의 원칙을 조금이나마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그래서 지지할 수 있는 정책 내용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위기 원포인트 대선 토론회가 열린다면 지금 당장 필요한 기후위기 대응 정책들이 제대로 논의되기보다는 부정의한 기후 공약에 마이크를 가져다 주는 효과만 가져오게 될 것이다. 심상정에겐 자신의 상대적으로 풍부한 문제의식과 선명성을 들어낼 수 있는 기회이긴 하겠지만 이미 SK 최태원 찾아가 치켜세워주며 친한 척했던 심상정이 강력하게 기후정의를 이야기할 거라 기대하기 어렵다. 그도 결국 ‘기술 개발’이니 ‘ESG’니 하는 프레임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냥 추상적인 수준에서 기후위기를 놓고 이재명-윤석열 식으로 토론하는 거에 심상정이 끼는 정도라면 결국 기술개발을 위한 기업 지원, SMR이나 핵발전, 전기차니 수소차 같은 이야기를 맴돌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라도 듣는 것이 ‘기후 대선’을 염원하는 우리가 바라는 일일까?

    불과 얼마 전 기후운동은 정부와 지자체, 국회에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요구하며 강력한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했었다. 그러자 226개 지자체와 국회는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발표했고 정부는 ‘그린뉴딜’과 ‘2050 탄소중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신공항 등 기후생태위기를 악화시킬 각종 토건개발 사업을 ‘녹색’으로 포장해 추진하기 시작했고 삼성, 포스코, SK와 같이 기후위기를 가져온 주범 기업들은 순식간에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착한 기업’들로 변신해버렸다.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했더니 지배 권력은 성장과 이윤에 박차를 가할 알리바이만 만들어낸 셈이다.

    만약 기후위기 원포인트 토론회가 타운홀 식으로 열려 대통령의 약속에도 일자리를 잃고 있는 석탄 비정규 노동자, 산업 전환 과정에서 전혀 고려되고 있지 못한 여성 노동자, 기업과 지자체의 무분별한 태양광 사업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농민, 원전이나 가스발전소, 쓰레기 폐기장, 제철소, 고압 송전탑 주변에 살며 피해를 입는 지역 주민, ‘정상성’에 기반한 정책으로 인해 기후재난으로부터 보호를 기대할 수 없는 장애인, 성소수자, 홈리스 등 기후위기 최전선 당사자들이 적어도 질문 한 번씩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에게도 마이크가 주어질 수 있다면 그건 지지할 수 있겠다. 그게 아니라면 이 토론회가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필자소개
    기후정의동맹(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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