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그 우울함과 공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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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02일 12: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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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이 가고 2007년이 왔다.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는 심경이야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잠시라도 막연하게나마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고, 그저 나직한 한숨 소리로 새해를 맞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 짐작된다.

    2007년은 무엇보다 대선이 있는 해이다. 물론 하루하루 피곤한 일상을 영위하며 살고 있는 필부들에게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속한다. 그저 잠시, 누가 좀더 나을까 하는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해보는 정도일 것이다.

    내 삶과 무관한 대선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집권하든 무슨 통합신당 후보가 집권하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실제로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내 삶과 무관한 대선.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대통령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낮아져만 왔다. 민주주의의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가슴 가득히 공허함이 밀려온다. 아마 과거와 같은 열정적인 대통령 선거운동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진보정당의 집권에 대한 기대로 가슴 설렐 일도 없고.

    누가 대통령이 되던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는 마당에 2007년 대선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적극적인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굳이 소극적으로 의미를 찾자면 필자가 생각하기에 87년 민주화세력의 몰락 정도가 아닐까 싶다.

    민주화세력은 2007년에 이르기까지 꼬박 10년째 집권을 했다. 그 동안 민주화세력은 국민들에게 무엇을 해주었을까. 구체적으로 삶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는 다들 몸으로 체험한 바이다. 구조조정과 실업, 비정규직, 양극화, 일자리 부족, 아파트 가격 폭등, 신용불량자 양산, 자영업과 중소기업 몰락, 출산파업 등등.

    지난 10년간 잘나가는 소수를 제외하곤 대부분 뭔가 삶이 더 괴로워진 것 같은데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동안 법과 제도를 만들고 공무원 조직을 이끌면서 정책을 주도적으로 만들고 시행해온 민주화세력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게 결국 선거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신당으로 옷을 갈아입더라도 민주화세력의 실체는 하나도 바뀌지 않는다. 결국 똑같은 사람들이 비슷한 내용의 정치를 비슷한 언어로 또 다시 반복하게 될 것이다. 10년 동안의 집권으로도 부족하다고 말한다면 철면피 수준일 것이다. 앞으로 잘하겠다는 정치인의 말을 믿을 바보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태초에 말이 아니라 행위가 있었다.

    내가 정말 슬퍼하는 것

    민주화세력이 몰락한다고 해서 슬퍼하지는 않는다. 내가 슬픈 것은 민주화세력을 대체할 새로운 진보세력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몰락해가는 민주화세력의 대안으로 등장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슬픈 것이다.

    민주노동당 내에 존재한다고 일컬어지는 정파들은 운동권들이다. 운동권으로서 실패한 민주화세력과 어차피 그 태생을 같이 하고 있다. 스스로 자위하고 자랑하는데 필요한 이념은 있었으되 대다수 국민들의 구체적인 삶을 변화시킬 능력은 없어서 지난 10년의 집권으로도 별로 한 일이 없어 보이는 민주화세력과 민주노동당내 운동권 정파들 사이에 과연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민주노동당이 대선에서 민주화세력과의 본질적인 차이를 국민들에게 설득하고자 하는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들 변화와 혁신에 대해 말하기는 한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와 혁신은 구호나 지시로 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권유할 성격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몸을 태워 향기를 발산하는 향초처럼 자기 내부로부터 시작되어 잔잔하게 퍼져나가는 그런 물결과도 같은 것이어야 할 게다.

       
      ▲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 선거운동 모습
     

    구호정치 끝내고 실력과 대안 정치를 화두로

    변화와 혁신의 화두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민주화세력의 지난 10년 집권의 경험으로부터 추론하건대 과거 운동권식 이념과 구호정치의 종말과 실력과 대안 중심의 정치를 키워드로 삼아야 맞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정파연합당 민주노동당이 민주화세력의 무능으로 결말이 난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유형의 운동권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2007년 대선은 민주화세력의 몰락을 지켜보는 재미없고 우울한 선거로 끝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념보다 실력과 대안을 중시하고, 국민에게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제대로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당, 당에 대한 충성 보다 정파에 대한 충성심이 앞서는 조직문화의 해체 없이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혁신은 없을 것이다.

    변화와 혁신이 없다면 민주노동당에 남는 것은 지금까지 당 운영의 실질적 원칙이었던 이념 정파들 사이의 절충과 타협의 문화일 것이다. 그런 당이 민주화세력의 대안세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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