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별노조시대를 연 숨은 주역
        2006년 12월 31일 02: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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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6월 30일, 금속산업연맹은 한국 노동운동의 새 역사를 연 산별전환 투표를 실시했다. 현대차노조도 전국의 모든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채 산별노조 전환 투표를 벌였고, 결과는 승리였다. 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현대차노조의 산별전환은 많은 노조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산별전환이 가능했던 것은 간부들과 조합원의 공로임에 틀림없다. 그 중에서 산별노조 전환의 숨은 주역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산별교육 3총사’, ‘산별특공대’로 불리운 김호규, 이용진, 이재인씨가 그들이다. 그 중 이재인 조합원을 만나 산별전환 운동의 전 과정과 생각을 들어봤다.

       
     
     

    2003년 62% 아쉬운 실패의 경험

    2003년 6월 처음으로 산별전환 투표를 실시했었지만 투표자 3분의 2의 5% 포인트가 부족한 62% 찬성률을 얻어 아쉽게 부결됐었다.

    현대차노조에서 산별 논의의 시작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당시는 논의는 초보적 수준이었고, 1997~1998년 정리해고 투쟁을 거치면서 산별노조 전환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와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2002년 10대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산별노조 전환 사업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순탄치는 않았다. 산별특별위원회를 꾸렸지만 회의조차 제대로 진행되질 않았다. 간부 중심의 간담회와 공청회에 머물렀고, 원론적 내용의 선전물이 배포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그러다 2003년 3월 산별전환 사업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2002년 민주노총 울산본부 정치위원장으로 파견되었던 이재인 조합원은 2003년 현장에 복귀하면서 산별특위장을 맡게 된다. 1~3월은 자료를 파악하고 논리를 만들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3개월의 조직기간을 거쳐 6월 전환 투표를 부쳤다.

    총자본과의 싸움인데 형식에 치우쳐

    “산별노조로의 전환은 기업별노조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이자, 총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의 강력한 무기”라 생각했던 이 조합원은 산별전환 사업에 매진했다. “2002년 실시한 설문 결과에서도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짧은 조직 기간이지만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이 조합원은 “산별전환 투쟁은 본질적으로 총자본과의 싸움임에도 실제로는 형식적으로 치우치고 말았다”며 2003년 산별전환 사업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또한 2003년 당시 현장에는 ‘대기업노조가 산별로 가면 손해 본다더라’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려면 정규직 기득권을 놔야 한다더라’ ‘조합비가 인상된다더라’는 등 ‘~카더라’ 통신이 만연했고, 조합원들도 산별전환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현장을 조직하고 온갖 논리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할 집행간부와 대·소위원들 조차도 산별에 대한 내용을 소화하지 못한 상태였고, 이는 설득력의 부족과 조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게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2002년에 이어 2003년에도 산별전환 사업의 중심이었던 산별특위의 활동이 여전히 미약한 상태로 머물렀던 것이다.

    2006년 드디어, 산별 깃발을 꽂다.

    그리고 3년 뒤, 금속산업연맹은 2006년 산별전환을 기필코 이룬다는 목표를 세웠다.

    여기에 2006년 당선된 12대 집행부가 산별전환 사업을 제 1의 사업으로 상정, 임기 축소까지 결의하면서 산별전환 사업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는 2006년 산별전환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집행부의 강력한 의지”라고 얘기한다.

    모든 집행 업무도 산별전환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 중에 교육과 선전의 역할은 매우 컸다.선전물은 2003년 경험을 토대로 핵심적이고 쟁점이 되는 내용을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시리즈와 다양한 형태로 거의 날마다 냈다.

    교육사업도 이전과는 달랐다. 전국 70여명의 교육위원들은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산별교육을 그야말로 ‘빡시게’ 공부하며 자신의 내용으로 채워갔다. 그리고 울산 본조에서 전국을 돌며 교육을 진행할 ‘산별교육팀’을 구성했다. 조합원 3명만 있어도 부르면 어김없이 달려가 2시간, 3시간의 교육을 진행했다.

    선거보다도 더 치열했던 산별전환 운동

    선거 때보다도 치밀하게, 전국을 돌며 조합원을 만났고 선전물을 직접 전달했다. 투표 1주일 전에는 순회팀을 구성해서 분산되어 있는 판매 분회까지 모두 순회했다. 전국순회는 산별전환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했다. 조합원들은 ‘선거가 아닌데도’ 열정적인 간부들의 활동에 감동했다.

    현장조직들도 산별전환을 호소하는 선전물을 내놨다. 투표 직전 한 대의원이 당시 산별전환 운동을 비판하며 선전물을 내기도 했지만 조합원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산별전환은 ‘대세’라는 것을 조합원들은 피부로 느껴가고 있었다.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3분의 2의 찬성으로 전환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없어요. 민주노총 가입할 당시만큼 압도적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투표 전에 이미 통과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교육을 다니면서 그다지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조합원들을 직접 만나면서 희망을 봤다.

    첫 단추 끼웠을 뿐, 산별 안착은 또 다른 과제

    “민주노조 운동은 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조직적으로나 영향력에서나 퇴보하고 있습니다. 노조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별노조 말고는 대안이 없습니다.” ‘총자본에 대항할 가장 유력한 무기’라고 힘주어 말하는 이재인 조합원은 산별노조의 힘을 믿는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산별노조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과정이었지만, 이제 이후가 문제다. “산별노조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했는데 결과가 그렇지 않게 된다면…” 그는 이후 계획을 고민하고 있었다. “산별로 조직형태를 바꿔낸 것은 첫 단추를 끼운 것일 뿐, 앞으로 산별노조가 안착되게 하는 것은 또 다른 과제죠.”

    “가진 것 없는 사람 대다수가 소위 ‘민’자 들어가는 거 다 싫어한답디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에 있다가 택시노동자로 나선 한 동료가 손님을 태우면서 파악한 정서란다. ‘민주노총’ ‘민주노조’ ‘민주노동당’ 등 ‘민’으로 대표되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크단다.

       
     
     

    가난한 사람들이 ‘민’자들 싫어하는 이유

    “대기업 중심으로 대표된 또는 ‘자기 배채우기’ 운동이 한계에 다다른 거죠. 평등의 기치를 세워야 하는데 자기 사업장의 임금·단체협상만 중심으로 한다면, 산별노조를 왜 세웠나 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자기 반성을 통한 다른 방식으로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기업별노조보다 못한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산별노조의 꽃은 ‘지역지부 강화’라고 한다. 이를 위한 투자의 내용과 방식, 대기업 노조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중앙교섭 성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기업노조가 하던 걸 중앙이 하는 형식이어선 안 됩니다. 대기업노조가 ‘장기보험’을 든다는 생각으로 ‘임금인상분’의 일정량을 기금으로 적립하는 등 조직노동자에 대한 고용과 실업에 대한 대책이 나와야 합니다.”

    “임금은 1년 마다 7~8만 원 정도 인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 중 호봉승급분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 또는 매월 1만원씩 ‘실업기금’ 등으로 적립하는 거죠. 회사측에도 요구해서 적립하면 연간 모아지는 금액은 엄청날 겁니다. 이를 조합원이 퇴직하면 개인 기금은 연금 방식으로 돌려주고, 실업 시에는 실업구제기금으로 지원하는 겁니다.”

    “임금인상분 월 1만원씩 실업기금 만들자”

    스웨덴의 경우 노동자가 실직되면 평균임금의 80%를 노조가 지급하고 있다. 그는 이 방식을 통해 이직률이 높고, 상대적으로 고용이 불안한 중소·영세·하청 노동자들에게 안전장치를 확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업기금을 운영하면서 취업교육을 통해 재취업도 시킨다면 ‘노동 공급권’을 노조가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산별운동이 확인되면 노동자들은 산별노조에 가입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임금체계’의 재편을 주장한다. “임금체계 논의의 뼈대는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직 아이디어 수준이지만 구체화시키면 됩니다.” 물론 그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체계가 잡히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토대가 될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완전월급제’등을 쟁취해 배치전환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현실성이 없다구요? 아뇨, 절대로 가능합니다.”

    산별노조의 핵심 중 하나인 ‘중앙교섭 성사’도 관건이다. ‘공동의 목표와 요구’로 중앙을 통해서 교섭이 이뤄진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한다. 또한 그랬을 때 그 힘은 더욱 크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한다.

    이전에도 ‘공동투쟁과 공동교섭’을 결의했지만 각 노조별로 자신의 조건에 맞춰 합의하는 경우가 있었고, 그로인해 전체 투쟁전선이 무너지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시스템이 중요한 것입니다. 조직체계와 규약으로 강제를 해 공동교섭을 성사시켜야죠”

    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선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격돌은 불가피할 것이다. 대격돌의 시기를 위해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역량을 산별에 투여하고 산별노조를 안착시키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다.

    “‘기업지부’를 한시적으로 인정한 3년 동안 산별노조가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산별노조로 첫 걸음을 뗀 지금, “산별노조를 통해서 노동운동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로 이어갈 것입니다.”

    ‘있을 때 벌어보자’는 생각을 어떻게 바꿀까?

    많은 사람들이 노동운동이 후퇴기라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전체적으로 ‘밥’이 필요할 땐 노조가 잘 되죠. 지금은 그 시기를 지난 상태인 것 같습니다. 얼마든지 자기만 잘 하면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죠. 또 노조가 필요하지만 회사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는 이념의 혼동 시기라고 정의했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노조의 지침에도 잘 따르고, 회사에게도 잘 보여 살아남으려 합니다. 사실은 위기의식이 강한 거죠” ‘있을 때 벌어보자’는 생각에 자신의 일거리만 사수하자는 정서가 강해지는 것일까. “최소한의 민주적 방식을 통해 결정하는 토대가 무너진 상태입니다. 간부만 탓할 문제는 아닙니다. 간부와 조합원 모두의 문제입니다.”

    그는 일상활동 원칙을 준수하면서 활동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야말로 노동자 의식을 확신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원칙적인 현장활동만을 요구하는 것은 수공업적이고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활동의 중요성을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닐 터.

    그럼 더 중요한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 “사회 시스템을 바꿔 그 과정에서 의식변화를 가져가는 것이 핵심”.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를 더 얘기한다. “문제는 노동자 정신을 살리는 ‘노동자 문화’가 빠져있습니다” 그렇다. 우리의 일상은 자본에 거의 노출되어 있다.

    “노동자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질문에 No

    우리 대부분은 태어날 때부터 자본주의 문화를 접하고, 그것을 교육받고 또 별 고민없이 받아들였다. ‘근로기준법’ 조차도 교육시키지 않는 나라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필요에 의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야 ‘노동자 문화’라는 것을 접하기 시작한다.

    “철도노조 산별교육에서 ‘나는 노동자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이 한두명 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철도노조 조합원들에게만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전체 노동인구의 10% 정도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지만 ‘노동자’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조합원이 얼마나 될까.

    “우리 문화를 확장하는 것은 몇 가지의 시도와 재현만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퇴폐적인 자본주의 문화를 없애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현란한 조명과 술 그리고, 도박까지 짜릿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자본의 문화를 ‘노동자 문화’로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일까. ‘밤문화’를 줄여가는 과정과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으로 접근해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산행, 집단놀이 등 새로운 조합원 공동체 교육 시도

    현대차노조는 올해 하반기 조합원 교육을 하루 8시간을 진행했다. 오전에는 다양한 주제로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교육을 강연형태로 진행하고 오후에는 조합원들이 선택해 산행을 가거나 집단놀이를 진행했다.

    현대차노조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었는데 조합원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고 한다. 조합원들은 신선하고, 자신이 직접 선택할 수 있었던 점과 교육문제 등 다양한 주제의 강연을 높이 평가했다. ‘노동자 문화회관’을 만들자는 제안도 나왔다.

    “조합원 교육 산행 시 자유발언을 진행했더니 자녀교육, 돈, 성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얘기하더라구요. 관심분야를 헤집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산업재해, 건강 등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고, 요가 등을 진행하면서 퇴폐문화가 어떻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폐해를 가져오는지 얘기할 수 있다.

    모든 노동자들이 일상으로 접하고 느낄 수 있게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집단적인 공동체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일본 같은 경우도 유흥문화 대신 소규모 공동체 문화가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그 공동체 문화가 힘든 삶을 지탱하고 이겨낼 힘을 만들어 내고 있단다. 그는 “도시내에서 공동체 문화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가 고민이다.

    공동체 문화, 그것은 산별노조의 숙제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우리 스스로를 노동자이게 하고, 노동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변화시킬 또 다른 동력을 만들어 낼 것이라 생각한다.

    “대기업 기득권 벗어나 산별노조 안착 위해 투자해야”

    3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재인 조합원에게 마지막 말을 청했다.

    “산별노조는 이제 첫 발을 뗐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걸음마를 시작해 깨지고 넘어지고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입니다. 잘 뛰게 하려면 엄청난 난관도 많겠죠. 산별노조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 뛸 수 있게 하기 위한 우리의 준비와 계획이 필요합니다. 영양분은 공급하지 않고 훈련만 시키면 제대로 크지 않듯이 산별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대기업노조라는 기득권에서 벗어나 인력과 재정 등을 중앙과 지역으로 보내야 하고, 조합원 스스로도 기득권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떠나 사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산별안착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우리들은 정의파다』에서 그토록 투쟁할 수 있었던 힘을 언니들은 얘기한다. “함께였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거. 함께 두들겨 맞고, 잡혀가고, 울고 웃었던 친구들이 있었다는 거였어요.”

    금속노동자들은 이제 산별이라는 한 배에 탔다.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 한다면 산별노조의 미래는 희망찰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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