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야를 밥먹듯, 차비 빌려 재판하러
        2006년 12월 30일 03: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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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스스한 얼굴. 헝클어진 머리. 까칠한 피부. 졸린 눈을 비벼가며 사무실 소파에 기대 커피를 마시고 있는 여자. 금속연맹 간부들은 출근길에 종종 그녀의 ‘망가진’ 모습을 만난다. 마음 속으로 ‘저 친구, 오늘도 사무실에서 날밤 깠나 보네’ 하면서 안쓰러움과 함께 인사를 건넨다.

       
     
     

    금속산업연맹 법률원 조수진 변호사의 나이는 스물 아홉. 다음주면 꽃다운 20대가 저문다. 그는 사회생활 첫 해이자 20대 마지막 해를 금속산업연맹 법률원에서 보냈다.

    노조를 만들었다고 해고된 노동자, 회장집에 항의하러 들어간 노동자, 성희롱을 당하고도 명예훼손으로 돈을 물어준 여성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지난 1년간 그가 만난 사람들이 필름처럼 그의 머릿속에서 지나간다.

    28일 저녁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 지하의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맥주를 주문한다. 법원이 연말연시에 재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모처럼 여유가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그의 전화기가 울린다.

    얌전한 그가 무시무시한 금속법률원에 온 이유

    그는 학교 때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가 몸담았던 풍물패는 옛날처럼 학생운동의 ‘진지’가 아니었다. “풍물패 사람들의 관심은 ‘따닥’을 어떻게 잘하느냐였어요. 학생운동을 했던 선배들과 취미생활을 하는 후배들 사이에 낀 샌드위치 학번이라고 할까요, 관심은 있었지만 그저 학생회 주변을 맴도는 정도였어요.”

    그런 ‘얌전한’ 그가 어떻게 ‘무시무시한’ 금속 법률원으로 오게 됐을까?

    그는 사법연수원에서 노동법학회에 들어갔다. 노동법학회는 2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도록 돼 있었고, 그는 한달에 1~2번 서울여성노동자회에 나갔다. 거기서 호텔 룸메이드 등 비정규직 아줌마들을 많이 만났고, 억울한 사정 많이 듣게 됐다. “돈 벌려고 변호사 된 건 아니어서 그때 생각했죠. 회사측 대리인 절대 하지 말고 노동자 대리를 하자구요.”

    그렇게 해서 작년 12월 5일 첫 출근을 했고, 올 2월 변호사 자격증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변호사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금속법률원은 ‘무지막지한’ 곳이었다. 40여건에 달하는 재판만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전화상담, 방문상담, 노동조합 질의서 회신, 구속자 접견, 노동법 강의까지 셀 수 없는 일들이 펼쳐졌다.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철야

    초짜 변호사가 엄청난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은 ‘날밤을 까는 것’ 뿐이었다. “처음 6개월은 상당히 잠 잘 시간이 없었어요. 체력좋게 낳아주신 어머니께 감사하면서 하루는 날새고, 하루는 자는 생활을 해나갔죠.”

    조금씩 능률이 오르면서 사무실에서 자는 날이 줄어들긴 했지만 지금도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사무실에서 ‘철야’를 한다. ‘칼퇴근’ 하는 날은 하루도 없다. 12시 넘기기가 일쑤고, 토요일과 일요일 중에 하루는 또 밀린 일을 하러 출근한다.

    큰 집회가 있는 날이면 금속법률원 변호사들은 민주노총 법률원과 함께 비상 대기한다. 밤이든 새벽이든 연행된 조합원들을 안심시키고 변호하기 위해 경찰서를 가야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꼬박 밤을 새서 영장실질심사를 준비한다. 비상대기 119다.

    그러다보니 일요일은 잠만 잔다. 친구들 결혼식도 참석하지 못하면서 그들과 연락이 많이 끊겼다. 당연히 연애를 할 틈도 없다. 게다가 불규칙하게 밥 먹고, 야식 먹어서 살 찌고… “건강 검진했더니 다들 어디가 아픈 거예요. 그래서 변호사들끼리 집단산재를 신청하자, 노조를 만들자, 파업을 하자 이런 농담을 했다니까요.”

    그는 월급을 370만원 정도 받는다. 개업해서 1천만원을 받는 변호사들에 비하면 작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하면 과분한 편이다. 근데 문제는 제 때 안 나온다는 거다. 25일이 월급날이었는데 안 나왔다. “월급을 밑에서부터 주거든요. 원장님은 두 달째 체불이예요. 차비를 빌려서 재판을 가신다니까요.”

    이유는 간단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해고자들 변론이 많다보니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현재 금속법률원의 미수채권은 수천만원에 이른다.

    처음 맡은 사건, 노동자들이 풀려났지만…

    그가 처음 맡은 변론은 지난 3월 노조원들이 코오롱 회장 집에 들어간 사건이었다. 회사가 어렵다고 해서 노조가 몇 년간 임금동결을 해줬는데, 회사는 합의를 깨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했다. 정리해고자가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됐으나 회사는 선거관리위원들을 매수해 노조선거가 무효라는 선언을 했고 교섭에도 나오지 않았다.

    조합원 3명은 15m 높이의 송전탑에 올라가 절규했지만 회사는 그들을 외면했다. 조합원 10명은 코오롱 회장집에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는 편지를 전달하려고 담을 넘어 들어가 거실에서 일렬로 앉아 기다렸는데 10분 뒤 형사들이 출동해 구속됐다. 언론은 노조원들을 흉악범으로 매도했다.

    10명 중 3명이 구속됐고, 지난 9월 3명이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구속 사건 맡은 게 처음이었고, 잡혀갔을 때부터 모든 과정을 지켜봐서 그런지 그 분들한테 애착이 있었어요.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는데 풀려나서 굉장히 기뻤죠.” 현재 2심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상한 게 한 두개가 아니었다. 검찰은 구속된 지 4개월이 지나서 그동안 기소하지 않았던 사건들을 추가로 기소했다. 증인들을 다시 불러내서 또 재판이 또 한달 길어졌고, 선고 기일이 잡히고 났는데 피해 액수를 늘려야 한다며 재판을 또 끌었다. 결국 노동자들은 6개월을 온전히 감옥에 갇혔다.

    “기업 회장의 집에까지 들어갔으니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혔을 것이고, 실형이 안 나올 것 같으니까 재판이라도 끌어서 콩밥 좀 먹이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재판에 영향을 미칠까봐 항의할 수도 없었다.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그는 답답했다.

    “단체교섭 안 나오면 1일 30만원 노조에 지급” 판결 끌어냈지만

    그가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사건은 이젠텍이다. 평택에 있는 이젠텍 지회 사건에서 그는 법원으로부터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1일 30만원을 노조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끌어냈다. 사용자들의 상습적인 교섭거부에 대해 이행강제금을 부과한 일은 이례적이었다. 그는 뛸 듯이 기뻤고, 이제 교섭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사는 교섭에 나오기는커녕 조합원들을 해고했고, 업무방해로 분회장과 부분회장이 구속됐다. “변호사님, 아예 처음부터 법원에서 우리 손을 안들어주기라도 했으면 애초에 포기했을 거 아닙니까? 왜 법원에서 된다고 해가지고…” 분회장의 말에 그는 “제가 변호사지만 법이 참 힘이 없네요.”라고 말했다.

    그는 “사법연수원에 다닐 때는 기고만장해서 내가 뭔가 큰 힘을 가진 것만 같았고 법대로 하기만 하면 뭔가 일들이 해결될 것 같았는데 이게 뭔가 싶어 쓸쓸했다”고 말했다. “법원이 사용자 손을 끌고 와서 단체교섭 자리에 앉히는 게 아니예요. 사용자들은 법의 모순점과 한계, 사각지대를 잘 알고 있죠.”

    “우리 노동 변호사들은 패소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불법파견, 용역, 계약직 해고 이런 건 법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이예요.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게 뭔가 싶어 힘이 빠지기도 하고, 사건에서 지고 나면 며칠 동안 힘이 빠져서 낙담을 하기도 했죠.”

    그는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일은 노동자가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변호사는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법의 한계를 노동자들의 힘으로, 투쟁으로 넘어서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법의 사각지대를 잘 아는 사용자들

    사실 돈이 많은 사용자들은 법의 사각지대를 잘 이용한다. 대기업이나 외국기업의 자문을 하는 ‘김&장’이나 중소기업 자문을 하는 ‘지성’ 같은 로펌들은 사용자들에게 노동조합을 깨는 뛰어난 노하우를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위한 법률원은 아직 힘이 미약하다.

    그는 법률원을 전국 규모로 확대해 노동자들이 사전 지식을 가지고 싸움에 나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항상 노동자들 곁에서 노동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법률원이 되야 한다는 것은 금속법률원 사람들 모두의 생각이다.

    또 그는 “금속법률원이 변호업무를 넘어 노동법을 노동자 입장에서 연구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며 “무궁무진한 사례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이론을 만들고 노동법을 개정하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 있으면 연수원을 졸업하는 변호사 세 명이 금속법률원에서 함께 일할 예정이다. 변호사가 늘어나면 그의 업무가 조금 덜어질지도 모른다. 근데 월급 체불이 더 심해질까 걱정이다. “적금 깨면 되죠 뭐.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일을 빨리 처리해 휴식과 연구의 시간을 갖는게 목표예요. 그리고 심리적으로 좀 강해져야겠어요. 울면서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의 소박한 새해 소망이다. 

    이제 15만명으로 확대된 금속노조는 조합비의 16%를 본조 기금으로 적립하고 이 중 일부를 법률기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그가 사무실에서 허구헌 날 밤을 새지 않고, 그의 소망처럼 풍부한 사례로 노동법을 연구할 수 있는 조건이 빨리 마련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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