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치, 경멸의 대상 또는 문화생산 원동력
    By
        2006년 12월 30일 02:06 오후

    Print Friendly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박정자 지음, 기파랑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치를 경멸한다. 쓸데없이 명품으로 도배하고 다니는 사람이나 필요하지 않은 곳에 돈을 뿌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혀를 끌끌 차기 일쑤다. 그러나 피상적인 혐오가 사치를 막진 못한다. 사치는 일종의 코드다.

    BMW 자동차와 샤넬 핸드백은 단순히 자동차와 핸드백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들을 소유한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사치를 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 없이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사회적 도덕률을 강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명이 성립된 이래 지도층에 의해 꾸준히 자행된 사치를 우연과 방종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치의 전후맥락을 살펴보고 그 욕망의 근저를 캐볼 필요가 있다.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는 사치의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하는 책이다. 먼저 저자는 우리가 쇼핑을 하는 이유를 밝힌다. 소비를 하는 것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애인을 만날 때 매번 같은 옷을 입고 간다거나 싼 식사만 한다면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당할 확률이 높다. 졸업했는데도 백수라면 인간취급을 못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사치품을 사는 이유들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박정자 지음, 기파랑
     

    그들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돈을 벌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소비를 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허름한 옷을 입고 명품매장에 가면 비웃음 밖에 사지 않듯이 소비한도는 사회에서 그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품격을 결정한다.

    부자들이 과소비를 하는 이유는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차별화하고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음을 과시하기 위해 사치를 한다. 오히려 돈이 자신에게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 펑펑 써버릴 때 부자로서의 자신이 돋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보다 우월한 지위를 얻기 위해 물건을 소비한다. 돈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증명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돈이 자신에게 아무 소용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p.14)

    이와 같이 사치의 욕구는 타인보다 우월하고 독창적이고 싶은 심리의 반영이다. 비합리적인 낭비가 아니라 사회적 기능과 문화를 생산해 내는 원동력이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절 미술과 음악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층의 사치적인 여가활동에 있었다. 오페라를 열고 미술가가 작업실을 운영하는 자금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귀족들은 예술가를 지원함으로써 자신의 감식안과 사회적 지위를 과시했다.

    리바이스 청바지, 젊음의 상징인가 집단의 이름인가 

    “개인이나 사회가 진정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때는 단순히 생존했을 때가 아니라 초과분과 여분을 소비할 때였다. 이 초과분과 여분의 소비가 문화를 생산해냈고 또 그것이 문화 자체였다.”(p.27)

    게다가 소비는 생산을 낳고 일자리를 만든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부자들의 세금감면을 통해 소비를 장려해 경기를 상승시켰듯이, 소비사회에서 낭비는 필연적인 것이다. 더 많이 써야 더 많이 만들 수 있다. 그래야 평균소득이 오르고 고용이 안정되며 경제가 활성화된다.

    물론 경제/소득 순환의 단절적 구조의 다른 이름인 ‘양극화’ 시대에 사치적 소비, 낭비적 소비가 경제 전체 흐름에 선순환 고리로서 작용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단지 그들이 사치를 하거나 낭비를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소비욕구가 타인에 의해 부추겨진 것이라는데 있다. 리바이스 청바지를 예로 들어보자. 현대의 상품은 효용성보다는 구매자의 차이와 개성을 확립하는 도구로서의 기능에 중점을 둔다.

    기실 리바이스 청바지는 대량생산되는 제품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구매자의 개성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텔레비전과 라디오 광고에선 20대의 젊음과 에너지를 상징하는 것이 리바이스 청바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20대와 나머지 나이대의 ‘차이’를 만들어 청바지라는 상품을 소비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 광고는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는 행위를 통해 20대 젊은이들이 개성을 확보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리바이스 청바지 소비자라는 집단에 속하게 되는 것에 불과하다. 독창적이고 우월하고 싶어서 한 소비행위가 오히려 몰개성을 낳는다.

    물건을 사는가 상상의 재화를 사는가

    “루이비통 핸드백을 사며 귀족성을 산다고 믿는 젊은 여성은 가죽과 천으로 된 너무나 현실적인 실제의 물건을 사고 있을 뿐이다. 또 한편으로 좀 값이 비싸더라도 품질 좋고 실용적이어서 그 제품을 산다고 믿지만 그녀가 사는 것은 실제로는 귀족성이라는 허구의 또는 상상의 재화이다.”(p.208)

    루이비통과 BMW의 뒤에는 기업이 있고 그들에게 명품 애호자들은 그저 봉일 뿐이다. 실재가 아닌 기호와 이미지를 포장하는 광고에 현혹된 소비자들은 재화를 계속 구입한다. 결과적으로 광고는 더 늘어나고 세상은 허위와 이미지들로 가득 차게 된다.

    기업은 빼빼로 데이 때문에 빼빼로가 팔리듯 제품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고 욕망을 소비시킨다. 하지만 소비자는 빼빼로를 사고 명품을 사더라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실재하는 제품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허위적인 기호를 소비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텔레비전과 광고에 의해 욕망이 통제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소비자는 소비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한 살아있는 지갑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어디에도 그들 자신은 없다. 신분상승과 우월감이라는 떡밥에 낚이는 물고기 신세인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매개를 통한 욕망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욕망일 뿐 우리 자신의 주체적 욕망이 아니다. 그러므로 소비가 향유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좋아서 즐기면서 하는 쇼핑이 아니라 남들이 사는 것을 나도 사려고 기를 쓰고 찾아다니는 피곤한 노동이다.”(p.80~81)

    욕망의 주체화

    그래서 명품을 소비하는 부자들에게 검소해질 것을 권하는 것은 상황에 맞는 답이 아니다. 그런 권고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주체적으로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적절하다. 기업의 배만 불리는 소비를 위한 소비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소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추겨진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능동적으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소비할 때 한국의 부자 또한 졸부의 추한 소비행태에서 벗어나 품격 있는 소비를 행할 수 있다. 그것 중에는 예술가를 후원하거나 기부를 하는 것과 같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소비도 있다. 명품을 소비하는 것보다 신분과 지위를 과시하는 데 있어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페이스북 댓글